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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땅 茂正 鄭政敏의 산문 혹한의 한겨울은 따끈한 차가 사람의 마음을 끈다. 향기나는 차와 정겨운 사람의 미소가 있는 곳이라면 그 매혹적인 만남을 사양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후략-

아름다운 땅에서 -무정 정정민- 혹한의 한겨울은 따끈한 차가 사람의 마음을 끈다. 향기나는 차와 정겨운 사람의 미소가 있는 곳이라면 그 매혹적인 만남을 사양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하신 땅이 바로 아름다운 땅이었다. 사람이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 것이 땅이라 한다면 비옥하여 식물이 잘 자라고 향기나는 꽃이 피는 온화한 기후를 가진 땅이면 좋을 것이다. 그곳에는 새들의 노래가 들릴 것이고 신선한 공기가 늘 있어서 누구나 행복한 표정 속에서 밝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은 서로 환하게 웃을 수밖에 없다. 새소리와 향기나는 꽃 앞에서 행복하지 않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가득한 사랑의 교회가 운영하는 만남의 장소가 있다. 교회가 있는 강남의 교회 근처에 있다. 그 카페 이름이 바로 "아름다운 땅"이다. 이 카페는 들어서는 입구가 조금 높은 계단에 올라서야 했다. 어쩌면 천국에 들어서는 기분부터 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카페에 들어서면 고운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 여러 개의 탁자와 의자가 있어서 가장 좋은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다. 바닥도 마루로 되어 있어서 친환경적이란 생각을 했다. 입구에서 탁자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공간이 넓어서 아주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점도 일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카페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는데 출입문도 두 개나 있고 유리창이 넓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이 환하게 보였다. 아는 사람이 지나간다면 서둘러 불러서 같이 다정하게 차를 마실 수 있겠다 싶었다. 은밀한 공간이라기보다는 누구나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대화의 공간이라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우리를 초대한 분이 계셨다. 사랑의 교회 권사님이었다. 허브차를 시켜놓고 둘러앉아 있는 사람은 네 분이었다. 길게 이어지는 반갑다는 말과 하나님을 섬기게 된 동기와 현재의 믿음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허브차의 온도보다 열기가 높았고 더 향기로웠다. 상갈에서 대전에서 그리고 서울의 독산동에서 각기 모여 처음 대하는 분도 있고 구면인 분도 있었지만 대화의 열기는 식지 않아서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여겨졌다. 그만큼 정겨운 대화가 행복하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땅에서 만나는 누구나, 향기로운 허브차 앞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교회 달력까지 안겨 주시고 시린 발목도 따뜻하게 하라고 주시는 양말은 아름다운 땅에 딱 맞는 선물이었다. 행복한 만남을 아름다운 땅에서 하게 하신 권사님 때문에 행복을 가득 충전 받고 돌아온 나는 올 겨울 동안은 발목이 시리거나 가슴이 시릴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위 글을 쓴지 10여년이나 지난 일이다 당시의 사진을 찾지 못해 최근 사진을 몇장 올렸다 지금도 "아름다운 땅"은 있다 전시회도 하고 소모임도 하고 식사도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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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한 그릇의 행복

  

라면 한 그릇의 행복/수필/무정 정정민 티크색 둥그런 탁자에 컵라면 두 그릇 노란 면발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그 향긋한 냄새에 라면그릇 앞에 앉은 두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키며 젓가락을 들고 면발을 뒤집고 있었다. 사각 면발은 흐물흐물 풀어지며 수프와 잘 혼합되며 더욱 맛있는 라면으로 변하고 있었다. 한 젓가락 뚝 떠서 입안으로 가져가니 그 부드러운 면발이 혀끝에서 살살 녹았다. 입으로 씹어보니 그 또한 얼마나 맛이 좋은지. 단숨에 다 먹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후략-

  

라면 한 그릇의 행복/수필/무정 정정민 티크색 둥그런 탁자에 컵라면 두 그릇 노란 면발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그 향긋한 냄새에 라면그릇 앞에 앉은 두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키며 젓가락을 들고 면발을 뒤집고 있었다. 사각 면발은 흐물흐물 풀어지며 수프와 잘 혼합되며 더욱 맛있는 라면으로 변하고 있었다. 한 젓가락 뚝 떠서 입안으로 가져가니 그 부드러운 면발이 혀끝에서 살살 녹았다. 입으로 씹어보니 그 또한 얼마나 맛이 좋은지. 단숨에 다 먹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을 짧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잠시 숨을 고르고 국물 한 번 맛을 보니 그 얼큰함이 또 사람을 죽인다. 육개장 라면이니 당연하다. 이번에 단무지 하나 집어 혀끝에 대어보니 새콤한 그 맛이 식욕을 더욱 자극한다. 이제 참을 수 없다. 다시 라면 한 젓갈을 집어 하늘 높이 쳐들고 그 끝을 입안으로 가져가서 면발을 입안에 채우니 아 이것은 정말 행복이다. 라면을 먹는 맛을 무엇과 비교할까.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상대를 바라보며 서로 웃는다. 나의 점심식사 장면이다. 맞은 편에는 천상미녀 아내다. 장소는 수영전망대 눈 아래는 수영복 차림의 아름다운 미녀들이 물장구치기도 하고 배영으로 수영하며 즐거운 한 때를 즐기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의 한 그릇 컵라면 아무래도 너무 맛있다. 전남 함평에 살던 내 나이 17세쯤이었을까 라면이란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내던 어느 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바로 손위 형이 내려왔다. 선물로 라면을 사왔는데 지금 같은 다양한 라면이 있었던 때는 아니었다. 가게마다 라면이 있었던 것도 물론 아니었다. 그러니 시골에 사는 내가 라면의 존재를 알 까닭이 없었다. 그런데 형이 라면이라며 내민 것을 보니 사각으로 굳어진 누드라면은 과자 같기만 했다. 한 가닥 바스러뜨려 맛보니 일자로 된 국수보다는 맛이 좋았다. 국수는 하얀색으로 일자로 되어 있는데 라면은 파마머리처럼 꼬불꼬불하고 여러 가닥이 손바닥 크기의 사각으로 성형되어 있었다. 이것을 국수처럼 먹는다고 하여 끓는 물에다 넣고 더 팔팔 끓여 맛을 보니 그 부드러움이 국수보다 더했다. 혀끝에 착 달라붙어 감기는 감미로운 맛이 사람을 죽일 것 같았다. 그때의 그 황홀한 맛을 40년이 지난 지금도 절대로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뒤로 별로 먹을 기회가 없었지만 라면은 늘 먹고 싶었다. 좀 성장하여 전주에서 학교에 다닐 때였다. 그때는 어디나 라면이 있었다. 라면이 식당 메뉴로 어느 분식점이나 있었다. 라면에 계란을 넣고 신김치까지 넣으면 그 맛은 그 어떤 음식과 비교할 수 없어서 그것을 먹는 날은 하늘까지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1500원을 주고 계란라면을 가끔 먹었다. 그중에도 잊지 못하는 한 그릇의 라면은 기숙사 생활중 몹시 아파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구의 간호도 받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기숙사에서 끙끙 앓던 때였다. 점심시간에 한 여자 친구가 기별을 보내왔다. 라면을 먹겠느냐는 것이었다. 그곳은 금녀의 집이라서 여자의 출입이 제한된 곳이라 들어오지 못하고 후배를 시켜 의사를 타진한 것이다. 처음엔 얼떨떨했었다.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그런 사이도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던 친구라서 그런 의사타진은 너무 엉뚱하여 아픈 중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오래 기다릴 처지가 되지 못한 후배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한 뒤에 나가버렸다. 그런데 잠시 후에 노란 냄비에 라면이 한 그릇 배달되어 왔다. 그 라면 냄비에서 김이 올라오고 그 향긋한 라면 향기가 방안을 진동시키니 감동도 그와 같았다. 다 먹지 못했지만 그 라면의 감동은 지금도 남아있다. 하얀 피부에 큰 키 허스키한 목소리 맑은 눈동자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너무 보고 싶다. 만나면 이번엔 내가 라면을 끓여주고 싶은데……. 학교를 졸업하고 전남 송정리 황롱강 가에서 잠시 근무할 때가 있었다. 혼자서 살았던 그곳은 관사였는데 작은 부엌도 있었다. 겨울철이라 김장 김치가 있었는데 출출한 늦은 저녁에 라면에 김치를 넣고 끓이면 그 김치와 라면 국물이 어우러진 맛은 기가 막혔다. 요리법은 김치를 많이 넣고 충분하게 끓인 다음에 김치 넣은 물이 끓으면 그곳에 라면을 넣고 다시 끓인다. 이때의 김치는 너무 맛이 좋다 라면 몇 가닥 김치 한 조각 같이 입속에 넣고 먹으면 당장 죽어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라면은 결혼 후에 아내가 끓여주어 가끔 먹었다. 그 뒤로 2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눈을 심하게 다쳐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옆자리에 젊은 청년이 있었는데 심하게 운동을 하다가 턱뼈를 다쳤다. 그래서 의사는 씹는 것은 무엇이든 먹는 것을 금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라면을 무척 좋아했는지 늦은 밤에 간호사의 눈을 피해 라면을 몰래 끓였다. 그리고 라면 국물을 먹곤 했다. 그때 나에게 다가선 그 라면 향기가 너무 좋았다. 그렇지만, 달랠수도 없고 그냥 먹고 싶어 죽을 것 같았다. 허나 배 소변이 좋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저 참아야 했다. 그때 그라면 정말 먹고 싶었다. 눈을 다친 사람은 운동도 하지 못하게 하고 절대 안정만 요구했다. 장이 좋지 않았던 나는 그 절대 안정 때문에 배 소변이 원활하지 않아 아무 음식이나 먹지 못하니 감히 라면을 먹지 못했다. 그런데 그 라면이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지금도 그때의 그 먹고 싶었던 라면이 떠오른다. 그 청년의 얼굴이나 이름은 다 잊었지만 라면 먹고 싶었던 그 간절한 마음은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된다. 지금이야 수많은 종류의 라면이 생산되고 많은 사람의 예민한 입맛을 다 맞추고 있지만 당시에는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라면은 정말 맛이 좋았다. 전 세계 라면 최대 생산국이라 하니 우리나라 라면의 다양한 종류와 양은 대단한 것으로 안다. 그런 나라의 국민으로 다양한 라면을 언제 어느 때나 어느 장소에서든 즐길 수 있어 행복하기 그지없다. 오늘도 아내와 단둘이 앉아 점심대용으로 먹는 육개장 라면은 환상적인 점심이 되었다. 황홀한 축제 같은 점심시간이었다. 이어서 아이스크림도 먹었기 때문이다. 07년에 쓴 라면을 먹으며 행복했던 추억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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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풀


 

멋진 와풀사/수필/무정 정정민 코끝을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강하게 불러 일으킨다. 글 쓰는 일에 정신 팔려 있던 내가 시계를 보니 벌써 한 시가 넘었다.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인데 아내는 보이지 않고 고소한 냄새만 나를 부른 것이다. 둘러보니 멀리 옷자락이 보였다. 무엇인가 진지하게 열중하는 아내가 보여 다가갔더니 이상한 기계 앞에서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엄중한 표정으로 반죽한 것을 굽고 있었다. 제과제빵사 자격증이 있는 아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지만 빵 굽는 기계와 비슷하나 처음 보는 기계라서 무엇인가 물었더니 와풀을 굽는 기계라는 것이었다. 와풀이 구워지는 고소한 냄새가 나를 부른 것이었다. 거리에서 언뜻 보긴 했지만 세밀하게 본적은 없다. 그리고 와풀을 맛본 적도 없다. 그런데 오늘 아내가 직접 굽고 있으니 그 맛을 보게 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더구나 시장하니 얼마나 맛이 좋을까. .

 

이미 하고 있는 가게가 한가한 때가 있어 와풀을 굽는다면 수입증대가 기대된다는 생각을 하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의도로 준비했다고 하는데 맛을 보니 간식으로 참 좋은 음식 같았다. 와풀이 달콤하고 고소하나 그냥 먹는 것보다 슬러시를 곁들여 먹어보니 더욱 먹기 좋았다. 이렇게 나를 첫 시식자로 와풀굽기에 성공한 아내는 날마다 와풀을 구워서 진열하였다. 출출한 간식 시간에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점점 재미가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집에 볼일이 있다고 나에게 가게를 맡기고 두 시간 정도 있다 오게 되었다. 혼자 남아서 별 생각 없이 가게를 지키던 나는 아주 당황한 순간을 맞이해야 했다. 와풀을 구워 달라는 아주머니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가 이곳 와풀이 너무 맛이 좋다고 하여 정말 그런지 자신도 맛보러 왔다는 것이다. 바로 구운 와풀을 맛보고 싶다는데 내가 직접 해본 것이 아니라 무척 당황하였다. 다음에 오라 하기도 묘한 것이 오늘 특별하게 시간을 내서 왔으니 꼭 구워 달라는 것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으라는 아내의 지엄한 명령을 따라 분홍 앞치마로 한껏 멋을 내고 있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와풀 굽는 아저씨 모습 그대로였다. 서툰 사람으로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머니도 망설이지 않고 나에게 와풀을 주문한 것이었다.

 

이 와풀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중국에서부터 팬케이크로 굽기 시작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지금의 와풀모양은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 모양의 시초는 1700년대 작은 가게에서 스테이크와 팬케익를 동시에 시킨 손님이 있어 주인은 스테이크를 연하게 할 생각으로 스테이크를 두들기며 굽고 있었는데 아내가 무언가 물어보는 바람에 그 대답을 하느라 고개를 돌렸는데 그때 몸이 좀 틀어져서 스테이크가 요철이 생기고 말았다. 이때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은 이곳에 시럽을 바른다면 요철로 하여 흘러내리지 않기 때문에 더욱 좋겠다고 생각하고 너무 기쁜 나머지 이 사실을 아내에게 말하고 싶어 급하게 아내에게 달려가다가 넘어져 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긴 하나 아내는 슬퍼하고만 있을 수 없어 살 궁리를 모색하다가 이 와풀에 대한 정보를 팔기로 마음먹었다. 작은 기업사장이었다. 사장은 사업성이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자신이 가진 차와 공장을 처분하고 와풀가게를 차렸다. 생각처럼 잘 되어 다소 이익을 보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가게들이 너도나도 이 와풀을 굽게 되고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팔게 되어 이 사장은 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현대의 와풀과 같은 상품이 나오게 되었는데 지금은 와풀 전문점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만큼 연구가 거듭되어 다양한 와풀이 출시 된다는 것이고 온 나라 누구나 이 와풀을 좋아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품으로 나온 것도 있으니 더 말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지금도 누군가는 새로운 와풀을 연구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일반화된 와풀을 나는 아내를 통하여 처음 대하게 되고 먹게 되었다. 좋은 아내를 만나 특별한 음식을 먹게 되어 그 영광스러움이 컸는데 이런 긴장된 순간이 올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미리 잘 익혀 둘 것을 그러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고 있었다. 아내가 굽는 전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지켜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실제 내가 해본 경험이 없어 무척 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노련한 와풀아저씨로 보는 그 눈길. 아이들이 이 집 와풀이 맛이 좋다고 했다는 그 말. 아름다운 주부라서 멋진 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욕심이 함께 작용하여 누가 봐도 능숙한 솜씨로 와풀을 반죽하고 와풀기계에 와풀반죽을 붓기 시작했다. 몇 번인가 아내가 일러준 적당량의 와풀을 붓는 요령까지 숙지하고 있어서 힘들지 않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다 구워지면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란 노래가 나오는데 그 노래가 나왔다. 냄새도 제법 고소하였다. 와풀구이 기계 덥개을 열고 와풀을 꺼내 크림과 쨈을 바르면 되는 것이다. 긴장된 순간의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숨도 멈추고 덥개을 재빠르게 열었다. 그런데 와풀이 구이기계 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구수한 냄새며 노래까지 모두 완벽하였는데 이 웬 시추에션이란 말인가. 멋진 와풀아저씨 폼이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다행이라 한다면 내 이 곤란한 장면을 아주머니는 보시지 않았다. 창 밖의 차들을 구경하고 있었고 방송에서 들려 주는 "직녀에게"란 노래에 심취하여 고소한 와풀 맛있는 와풀이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 난처한 순간에 얼마나 멋진 분인지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이 초보자 같은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넘어가 주시고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 혼자서 나를 멋진 사람으로 착각하여 멋있게 행동하다가 아주 식은땀을 바가지로 흘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남자 특유의 본능 때문이었으리라.

 

와풀 뒤집는 칼로 가까스로 떼어 내고 다시 구웠다. 아주머니는 다 되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늘 손님에게 첫 번째 구운 와풀은 드리지 않고 두 번째 구운 와풀만 드린다는 내 철학까지 섬세하게 늘어 놓고 오래 기다리는 멋진 아주머니가 참으로 교양이 남다르고 멋지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나의 노력과 아내로부터 대부분 전수받은 실력이 빛을 발하여 두 번째는 완벽한 와풀이 구워져 나왔다. 약간 노릇노릇하고 고소한 와풀. 다만, 모양은 그렇게 멋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멋진 모습과 화려한 화술 그리고 맛있는 와풀로 하여 그런 것은 다 넘어갔다. 품위있게 맛있게 드시고 인사까지 하고 갔다. 이제껏 먹어 본 와풀 중 최고였다는 정중한 인사를 하고 가셨는데 표정은 이상 야릇했다. 이제 예쁘게 모양을 내는 것만 노력하면 제과제빵사인 아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와풀전문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 여기게 되었다. 위기는 기회란 말이 생각났다. 아내가 자리를 비워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부딪치고 부단하게 노력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더구나 평소에 아내가 하는 일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관찰했던 것도 혼자 남아 그 일을 하게 되니 큰 도움이 되었다. 보고 기억하여 두는 것도 큰 공부였다. 위기는 기회. 정말 맞는 말이었다. 미남 와풀사가 이렇게 탄생된 것이다. 분홍 앞치마를 두른. 종

 

와풀/무정 정정민 책방을 몇 해던가 했지만, 생활이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접고 다른 사업을 해보기 위해 애쓰다 이전에 했던 금은방이나 가전업과는 전혀 무관한 매점을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하게 된 장소가 광명에 있는 사회체육센터 안 수영장에 위치한 매점이었다. 간단한 음료와 과자를 팔았고 라면을 끓여주기도 했다. 이 또한 수입이 좋지 않아 부가 수입을 올릴 요량으로 와플도 굽기로 했다 이때 생긴 촌극이다. 와플은 무척 고소하고 달콤했다 하지만 처음 굽는 사람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당한 반죽의 농도도 그렇지만 적절한 온도에서 꺼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물론 그 타이밍은 기계가 알려 주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기계가 알려주는 시간에 꺼낸다 해도 어떤 때는 좀 과하게 익고 어떤 때는 좀 덜 익기도 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한쪽이 더 익고 바삭하고 한쪽은 부드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힘들게 하는 것은 다 익었다는 노래가 나와 꺼내려 하는데 와풀기 위에 붙어 잘 떼어지지 않을 때였다 보통은 첫 와풀이 그랬다 그래서 연구를 많이 했지만 완전하게 자유롭게 굽고 꺼내는 일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내 삶의 길에서 와플을 구웠다는 일은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다. 그 속에는 수많은 사연이 같이 있다 그 세월 약 3년. 가끔은 그 속에 들어가 미소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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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

내비게이션/수필 무정 정정민 -전략- 내 삶의 길 인도할 내비게이션 하나 장착할 수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저축한 지식과 지혜일까 신앙의 길이 그 길일까 수 없는 갈등으로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번뇌하는 나에게 단순한 내비게이션은?

 

내비게이션/글 사진/무정 정정민 앉아서 천릿길을 아는 사람 그저 얻어진 정보는 아닐 것이다. 다리 품을 수 없이 팔아 눈으로 익힌 길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필요하면 쉽게 그것을 꺼내 자신이 다시 그 길을 가거나 그 길과 인접한 어떤 목적지에 갈 때 응용할 것이다. 누군가 그 정보가 필요하면 곧바로 꺼내서 자신이 얻은 정보를 자세하게 알려 줄 것이다.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이라 해도 내가 알지 못하면 그것은 초행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무척 유용하다. 그런데 지금은 이 일을 내비게이션이 한다. 목적지 큰 건물을 치고 검색을 하면 내가 있는 곳에서 그곳으로 가는 모든 길을 미리 알 수 있다. 모의 주행도 가능하고 우회로도 알 수 있다. 시간이 얼마큼 소요되며 거리가 몇 킬로 되는지도 안다. 주소를 치면 더 정확하게 알려 준다. 이런 세상은 내가 자라던 소년 시절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선생은 이 일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하는데 지금은 적외선 카메라로 한반도를 단숨에 촬영하고 오차도 없는 지도를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 격세지감을 느낄 법도 하다. 낯선 주소지로 물건을 배달해야 하는 택배기사나 꽃 배달을 하는 사람은 이 내비게이션이 얼마나 유용한지 모른다. 전국 여행 다니는 사람도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쉽게 검색하고 찾을 수 있어 시간과 경비를 줄일 수 있어 이런 안내자가 없다. 나도 근거리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고 때론 배달을 가기도 하는데 이 내비게이션을 하나 장만하지 못했다. 가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격이 만만하지 않아 값이 내리길 기다렸다. 백만 원이 넘던 가격이 수십만 원대로 내려가고 기능이 더욱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사지 못했다. 누군가 나에게 줄지도 모른다는 망상과 친구 중 누군가가 두 개 정도 생기면 하나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어쩌다 필요한 것을 꼭 사야 하느냐는 가족의 반대 때문이기도 했지만 낯선 곳을 가느라 찾고 헤매고 나면 다시 내비게이션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친구가 내비게이션이 둘이라 하나는 저렴하게 주겠다 하여 그것을 받아 장착했는데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았고 더구나 설명서까지 없어 처음 사용해 보는 나는 날마다 그 기능 익히는 일로 고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목적지를 갈 때 친절한 안내를 해주어 신통방통하다는 생각을 하며 기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안산에 가게 되었다. 가는 길을 친절하게 잘 인도하여 기분 좋게 갔고 모르던 지명이나 내가 알지 못했던 길로 인도하여 그 편리함에 기분이 좋았다. 다시 돌아오는 길 내가 아는 길로 가면서 이놈도 그렇게 인도하리라 믿었다. 한데 이놈은 먼 길 차가 밀리는 길로 나를 안내하였다. 어떻게 인도하는지를 봤더니 큰길 고속도로를 이용하도록 하여 통행료를 내야 했고 먼 거리를 빙 돌아서 집으로 왔다. 이놈을 전적으로 믿어선 안될 일이라 판단했다. 내가 전혀 모르는 길은 이놈에게 맡기되 아는 곳은 안내와 내가 아는 길을 동시에 생각하며 서로 맞지 않을 시 수정하면서 안내를 받으리라 생각하였다. 또 한 번은 영등포에 물건 매입을 위하여 갔었다. 목적지 안내를 잘해 주어 잘 도착하여 필요한 것을 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이놈이 어떻게 안내를 하는지. 알아보려고 목적지를 다시 치고 안내를 부탁했더니 주차한 위치에서 상당히 먼 거리로 빙 돌려서 안내하였다. 즉 내가 주차한 곳에서 후진을 5m만 하면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길을 아주 쉽고 단순하게 갈 수 있는데 이 후진하는 것에 대하여 내비게이션은 안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공중에서 GPS를 통하여 현 위치를 파악하고 자동차가 갈 길을 인도하여 사람이 보지 못하는 지형이나 땅 위 물체를 잘 볼 수 있다지만 사람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길 도로표지 등을 효율적이고 상황에 맞게 운용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 한 수 위였다. 그렇다 하여 사람이 할 수 없는 우수한 성능이 많은 내비게이션은 놀라운 현대 문명의 이기였다. 내 삶의 길 인도할 내비게이션 하나 장착할 수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저축한 지식과 지혜일까 신앙의 길이 그 길일까 수 없는 갈등으로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번뇌하는 나에게 단순한 내비게이션은?

 

내비게이션/무정 정정민 오래전 쓴 글이다. 맨 처음 내비게이션을 갖게 된 감동과 그 편리함에 놀라 썼다. 이후 몇 번인가 더 내비게이션을 교체했다 그리고 지금은 차를 살 때 아예 장착된 매립형 내비게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는 얼마간의 기간이 지나면 내비게이션을 업그레이드 해야 했다. 새로 생긴 건물이나 길을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비게이션이 혼자 업그레이드 한다 그뿐이 아니다. 후방카메라와 연결되어 주차할 때는 후방상태를 내비게이션이 보여준다 차 안의 온도를 조정할 때도 라디오를 켤 때도 내비게이션은 온도나 소리의 크기를 보여준다 길을 안내할 때도 다양한 앱과 앱 중에도 최단거리와 고속도로, 실시간, 추천 등이 있어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안내 음성도 다양하여 사투리나 목소리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한다 그뿐이던가 디자인도 각양이라 선택하는데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편리한 안내자지만 삶의 길은 인도하지 않는다 지능형이 아니기 때문에 내 요구에 응하거나 지금 가고 있는 위치를 알려 뿐이다 즉 능동적 안내가 아니라 수동이다 앞으로는 진화를 거듭하여 삶의 길을 인도할지도 모른다 혹 그런 시대가 될지라도 어떻게 사람보다 앞서기야 하겠는가 신이 우릴 만든 것처럼 내비게이션은 인간이 만든 것이니 언제나 사람의 하위에서 인간의 편리성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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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토니아 글 寫眞/茂正 鄭政敏

          "기억의 문아 열려라! 제발 열려라!" 한 식물원 입구에서 토종식물과 작은 꽃을 팔고 있었다. 붉고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1000원 2000원 5000원 하는 비교적 저렴하고 귀여운 화초가 대부분 이었다. 꽃을 파는 사람은 식물원 직원으로 보이는 30대 초반의 여자로 키가 크지 않았지만 행동이 재빠르고 친절하여 그곳을 찾는 손님은 불편함이 없이 꽃을 구경하고 흥정하고 사가고 했다.

          얼굴이 희고 약간의 주근깨가 있는 젊은 직원은 햇빛에 얼굴이 탈것을 염려하여 카우보이 모자 같은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있어 키에 비해 좀 크다 싶은 모자였지만 그것이 얼굴을 다 드러나게 하지 않아 이국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자꾸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잘 보고 싶기도 하고 꽃을 파는 사람의 눈빛을 보고 싶기도 해서였다. 그렇지만, 지나가던 사람에게 눈길을 줄 리 없었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때 60대로 보이는 점잖은 할머니 한 분이 그곳을 기웃거리다. 마음에 드는 꽃 화분이 있었는지 잠시 화분 하나를 들고 하얀 차가 있는 곳으로 가지고 가서 차 안에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 상의를 하고 있었다. 아마 일행에게 이것을 사갈까 말까 하는 것에 대한 의논을 하는 것 같았다. 이어 다시 돌아와 이것저것을 고르더니 값이 얼마냐고 직원에게 물었다.

          아주 작은 선인장 하나와 산조처럼 생긴 처음 보는 황색 꽃이 핀 화분 3개가 담겨 있었다. 가격을 보니 16000원이었다. 오천 원짜리가 3개 선인장이 1000원이었기 때문이다. 돈을 꺼내다 자신의 주머니에 만 원짜리 한 장인 것을 보고는 "좀전에 만원을 드렸지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직원은 팔 작 뛰는 것이었다. "손님 저 받지 않았어요. 저는 물건을 가져가기 직전에 먼저, 돈을 받지 않습니다. 절대로 받지 않았어요."

          참으로 난처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손님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아침에 그 식물원으로 갈 적에 며느리에게 돈이 있으면 달라 했더니 지금 40000만 원이 있다면서 손녀 것으로 꼬깃꼬깃한 40000만 원을 주어서 그것으로 점심을 18000원에 두 사람이 먹고 또 10000원은 식물원에서 핫바를 사먹어 지금 남아 있는 돈이 12000원 이어야 하는데 단돈 몇 천원 뿐이니 당신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면 그 돈이 어디로 갔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4만 원 중 3만 원 가량을 썼으니 만원 정도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그 손님의 말을 듣고 계산하여 보니 틀림없었다. 그 손님이 억지를 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봐선 틀림없어 보이기도 했다. 얼마 되지 않는 화초값을 주지 않기 위해 억지를 쓰는 그런 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와 같이 그 직원 또한 눈이 맑고 표정이 밝을 뿐만 아니라 행동이 분명하고 자신의 의사표시가 확실하여 절대로 억지를 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입장을 서로 피력하느라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반복하고 몇 차례를 했다. 손님이 자꾸 밀려드는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급기야 직원은 자신이 손님에게 받은 화초값의 돈이 들어 있는 종이박스를 보여 주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 말이 다 맞아 어느 편이 실수를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나를 불러 또 다시 자신들의 입장을 이야기하는데 두 사람 말이 모두 옳고 진실해 보였다. 솔로몬이나 와야 해결될 것 같은 조금은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곤란한 입장이 되는 순간이 오고 말았다. 직원은 저를 의심하시는 것이 아니냐고 했고 손님 또한 그것이 아니라 나도 아침에 나올 적에 며느리에게 손녀의 돈을 받아 왔기 때문에 너무나 분명하게 기억을 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일이 지속되면서 서로 무척 지루하여 지고 손님이 몰려드니 그런 상태로 자신의 말만을 주장하기는 난처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급기야 직원이 이런 제안을 하게 되었다. "제가 손님께 이것을 선물하였다 생각할 터이니 가지고 가셔서 잘 키우세요." 그러자 손님은" 이대로 안 가지고 가자니 찜찜하고 가지고 가자 하니 그것도 몹쓸 일이라 아주 난처하네." 혼자 말처럼 뇌이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돈을 준 것 같은데 억지를 써서 공짜로 화초를 가져가는 것 같아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면 자신이 지금껏 누구에게나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았다고 자부해온 사람으로 견디기 어렵고 그냥 가자 하니 당한 듯하여 그도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계속 자신의 감정처리를 어찌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그 심정을 이해한 직원이 자꾸만 강권하여 그냥 가지고 가시라 했다.

          물론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표정이나 말투도 아니었다. 어린 사람이 어른에게 하는 공손하고 아름다운 태도였다. 그렇다 해도 손님은 발길을 잘 떼지 못했다. 도무지 그냥 가지고 갈 수도 안 가지고 갈 수도 없어 기억의 문을 더듬고 있었다. 그렇지만, 손님이 계속 밀려들고 그대로 있기는 영업을 방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자꾸 바라보는지라 그대로 버티고 있기엔 낯이 뜨거웠다. 못이기는 척하면서 그 자릴 뜨긴 했지만 결코, 가벼운 발길이 아니었다.

          멀지 않은 차까지 가는 발길이 무거웠다. 표정도 어두웠다. 만약 돈을 다른 곳에 쓰고 기억하지 못하여 그대로 간다면 그것은 몹쓸 일이었다. 직원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 자신이 괴로워 감당하기 힘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떠나기 직전에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다. "만약 판매 대금이 부족하면 어떻게 하나요?" "그러면 부족분은 제가 채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말투가 공손했다. "내가 돌아가서 돈을 쓴 출처가 생각나면 즉시 송금해 드릴 터이니 전화번호를 알려 주세요. "했지만 "그냥 가세요. 제가 선물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돌아가긴 하려 하는데 발길이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자신을 기다리는 동행도 있고 직원에게 화초값을 자꾸 묻는 사람도 있고 하니 일단 물러설 수밖에. 그러면서 속으로 기도까지 했다. "기억의 문아 열려라! 제발 열려라!" 하며 화초를 들고 동행이 기다리는 차로 가서 차를 탔는데 이내 다시 차문이 열렸다. 그런데 들어갈 때의 무겁고 힘든 모습도 아니고 표정도 아니었다. 무슨 특별한 보석 상자라도 발견한 아이처럼 밝고 기쁜 조금은 들뜬 사람으로 급하게 직원을 부르더니 아주 큰 소리로 "생각났어요. 애고 미안해요. 아 글쎄 나이가 들면 이런 실수를 한다니까. 내가 식물원에 들어가면서 입장료를 지불했는데 아 글쎄 그것을 까맣게 잊고 말았어요. 이것 미안해서 어쩌지요?" 그러자 직원도 표정이 밝아지며 천원을 할인하려 했다. 그러나 손님은 받을 수 없었다. 이렇게 서로 옥신각신하자!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일처럼 손뼉을 치는 것이었다. 좀전의 양상과는 정반대라 안타깝고 답답하다가 일이 좋은 방향으로 잘 풀리고 해결되어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준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다투는 일보다 서로 유쾌하게 해결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든 실수를 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다. 그렇지만, 그 실수를 누구나 다 관대하고 슬기롭게 처리하지는 않는다. 때론 물리적 충돌이 생기기도 하고 못할 말을 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식물원 직원은 어른을 공경하는 자세를 보였고 자신이 손해를 보고라도 연세 드신 분이 불쾌하지 않도록 배려를 했다. 그의 표정과 말투를 모두 기억한다. 그때의 그 장면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보다 더 화기애애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곳에 새로운 꽃이 하나 더 피어났다. 화해와 이해라는 꽃이었다. 손님이 사간 꽃이름이 트리토니아 인 데 마치 그 꽃의 뜻이 기쁨이나 놀라움 슬픔을 의미하는 것을 알기나 한 듯이. 080409

          트리토니아/무정 정정민 벌써 수년이 된 이야기 한택식물원 구경을 마치고 나오며 경험한 것을 쓴 글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흔하지도 않은 꽃 트리토니아다 가장 비슷한 꽃을 말한다면 아기 범부채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부천 수목원에 들어서 순간 이 꽃을 보았다 나는 단박에 트리토니아인 것을 알았다 크고 화려한 꽃들 속에 있었지만 작고 아담하여 눈에도 안 들어 오지만 7년 전의 기억 속에 저장된 꽃을 알아본 것이다 서슴없이 다가가 스마트폰에 담았다 빗방울을 잔뜩 먹고 있어 울고 있는 어린아이 같았지만 내게는 그것마저 사랑스럽게 보였다. 음악 / 강가의 아침 트리토니아 수필/무정 정정민 "기억의 문아 열려라! 제발 열려라!" 한 식물원 입구에서 토종식물과 작은 꽃을 팔고 있었다. 붉고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1000원 2000원 5000원 하는 비교적 저렴하고 귀여운 화초가 대부분 이었다. 꽃을 파는 사람은 식물원 직원으로 보이는 30대 초반의 여자로 키가 크지 않았지만 행동이 재빠르고 친절하여 그곳을 찾는 손님은 불편함이 없이 꽃을 구경하고 흥정하고 사가고 했다. 얼굴이 희고 약간의 주근깨가 있는 젊은 직원은 햇빛에 얼굴이 탈것을 염려하여 카우보이 모자 같은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있어 키에 비해 좀 크다 싶은 모자였지만 그것이 얼굴을 다 드러나게 하지 않아 이국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자꾸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잘 보고 싶기도 하고 꽃을 파는 사람의 눈빛을 보고 싶기도 해서였다. 그렇지만, 지나가던 사람에게 눈길을 줄 리 없었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때 60대로 보이는 점잖은 할머니 한 분이 그곳을 기웃거리다. 마음에 드는 꽃 화분이 있었는지 잠시 화분 하나를 들고 하얀 차가 있는 곳으로 가지고 가서 차 안에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 상의를 하고 있었다. 아마 일행에게 이것을 사갈까 말까 하는 것에 대한 의논을 하는 것 같았다. 이어 다시 돌아와 이것저것을 고르더니 값이 얼마냐고 직원에게 물었다. 아주 작은 선인장 하나와 산조처럼 생긴 처음 보는 황색 꽃이 핀 화분 3개가 담겨 있었다. 가격을 보니 16000원이었다. 오천 원짜리가 3개 선인장이 1000원이었기 때문이다. 돈을 꺼내다 자신의 주머니에 만 원짜리 한 장인 것을 보고는 "좀전에 만원을 드렸지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직원은 팔 작 뛰는 것이었다. "손님 저 받지 않았어요. 저는 물건을 가져가기 직전에 먼저, 돈을 받지 않습니다. 절대로 받지 않았어요." 참으로 난처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손님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아침에 그 식물원으로 갈 적에 며느리에게 돈이 있으면 달라 했더니 지금 40000만 원이 있다면서 손녀 것으로 꼬깃꼬깃한 40000만 원을 주어서 그것으로 점심을 18000원에 두 사람이 먹고 또 10000원은 식물원에서 핫바를 사먹어 지금 남아 있는 돈이 12000원 이어야 하는데 단돈 몇 천원 뿐이니 당신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면 그 돈이 어디로 갔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4만 원 중 3만 원 가량을 썼으니 만원 정도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그 손님의 말을 듣고 계산하여 보니 틀림없었다. 그 손님이 억지를 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봐선 틀림없어 보이기도 했다. 얼마 되지 않는 화초값을 주지 않기 위해 억지를 쓰는 그런 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와 같이 그 직원 또한 눈이 맑고 표정이 밝을 뿐만 아니라 행동이 분명하고 자신의 의사표시가 확실하여 절대로 억지를 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입장을 서로 피력하느라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반복하고 몇 차례를 했다. 손님이 자꾸 밀려드는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급기야 직원은 자신이 손님에게 받은 화초값의 돈이 들어 있는 종이박스를 보여 주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 말이 다 맞아 어느 편이 실수를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나를 불러 또 다시 자신들의 입장을 이야기하는데 두 사람 말이 모두 옳고 진실해 보였다. 솔로몬이나 와야 해결될 것 같은 조금은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곤란한 입장이 되는 순간이 오고 말았다. 직원은 저를 의심하시는 것이 아니냐고 했고 손님 또한 그것이 아니라 나도 아침에 나올 적에 며느리에게 손녀의 돈을 받아 왔기 때문에 너무나 분명하게 기억을 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일이 지속되면서 서로 무척 지루하여 지고 손님이 몰려드니 그런 상태로 자신의 말만을 주장하기는 난처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급기야 직원이 이런 제안을 하게 되었다. "제가 손님께 이것을 선물하였다 생각할 터이니 가지고 가셔서 잘 키우세요." 그러자 손님은" 이대로 안 가지고 가자니 찜찜하고 가지고 가자 하니 그것도 몹쓸 일이라 아주 난처하네." 혼자 말처럼 뇌이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돈을 준 것 같은데 억지를 써서 공짜로 화초를 가져가는 것 같아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면 자신이 지금껏 누구에게나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았다고 자부해온 사람으로 견디기 어렵고 그냥 가자 하니 당한 듯하여 그도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계속 자신의 감정처리를 어찌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그 심정을 이해한 직원이 자꾸만 강권하여 그냥 가지고 가시라 했다. 물론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표정이나 말투도 아니었다. 어린 사람이 어른에게 하는 공손하고 아름다운 태도였다. 그렇다 해도 손님은 발길을 잘 떼지 못했다. 도무지 그냥 가지고 갈 수도 안 가지고 갈 수도 없어 기억의 문을 더듬고 있었다. 그렇지만, 손님이 계속 밀려들고 그대로 있기는 영업을 방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자꾸 바라보는지라 그대로 버티고 있기엔 낯이 뜨거웠다. 못이기는 척하면서 그 자릴 뜨긴 했지만 결코, 가벼운 발길이 아니었다. 멀지 않은 차까지 가는 발길이 무거웠다. 표정도 어두웠다. 만약 돈을 다른 곳에 쓰고 기억하지 못하여 그대로 간다면 그것은 몹쓸 일이었다. 직원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 자신이 괴로워 감당하기 힘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떠나기 직전에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다. "만약 판매 대금이 부족하면 어떻게 하나요?" "그러면 부족분은 제가 채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말투가 공손했다. "내가 돌아가서 돈을 쓴 출처가 생각나면 즉시 송금해 드릴 터이니 전화번호를 알려 주세요. "했지만 "그냥 가세요. 제가 선물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돌아가긴 하려 하는데 발길이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자신을 기다리는 동행도 있고 직원에게 화초값을 자꾸 묻는 사람도 있고 하니 일단 물러설 수밖에. 그러면서 속으로 기도까지 했다. "기억의 문아 열려라! 제발 열려라!" 하며 화초를 들고 동행이 기다리는 차로 가서 차를 탔는데 이내 다시 차문이 열렸다. 그런데 들어갈 때의 무겁고 힘든 모습도 아니고 표정도 아니었다. 무슨 특별한 보석 상자라도 발견한 아이처럼 밝고 기쁜 조금은 들뜬 사람으로 급하게 직원을 부르더니 아주 큰 소리로 "생각났어요. 애고 미안해요. 아 글쎄 나이가 들면 이런 실수를 한다니까. 내가 식물원에 들어가면서 입장료를 지불했는데 아 글쎄 그것을 까맣게 잊고 말았어요. 이것 미안해서 어쩌지요?" 그러자 직원도 표정이 밝아지며 천원을 할인하려 했다. 그러나 손님은 받을 수 없었다. 이렇게 서로 옥신각신하자!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일처럼 손뼉을 치는 것이었다. 좀전의 양상과는 정반대라 안타깝고 답답하다가 일이 좋은 방향으로 잘 풀리고 해결되어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준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다투는 일보다 서로 유쾌하게 해결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든 실수를 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다. 그렇지만, 그 실수를 누구나 다 관대하고 슬기롭게 처리하지는 않는다. 때론 물리적 충돌이 생기기도 하고 못할 말을 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식물원 직원은 어른을 공경하는 자세를 보였고 자신이 손해를 보고라도 연세 드신 분이 불쾌하지 않도록 배려를 했다. 그의 표정과 말투를 모두 기억한다. 그때의 그 장면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보다 더 화기애애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곳에 새로운 꽃이 하나 더 피어났다. 화해와 이해라는 꽃이었다. 손님이 사간 꽃이름이 트리토니아 인 데 마치 그 꽃의 뜻이 기쁨이나 놀라움 슬픔을 의미하는 것을 알기나 한 듯이. 0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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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야기 5 초콜릿
  

초콜릿 시 영상 무정 정정민 언젠가 내게 주었던 하얀 은박지에 싼 초콜릿 반은 녹아 형제가 변했어도 달콤한 맛은 그대로였지요 당신의 가슴에 품고 왔던 초콜릿 얼마나 뜨거운 마음이면 초콜릿이 그렇게 녹아내렸을까 그 열정 사랑을 감사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날의 초콜릿 잊지 못합니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 피부가 변하고 체형이 커졌어도 당신은 내게 영원한 초콜릿 녹아내려 변형되어도 맛이 같은

  

겨울 이야기 5 초콜릿 둘째가 초콜릿을 가져왔다. 먹어 보라며 한 알 주는데 자꾸 망설이고 있다 고지혈증이라 초콜릿을 피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생각해 냈기 때문이다 한 알을 먹는다고 죽기야 하겠는가 결국은 받아먹었다. 무척 비싼 초콜릿인데 시식회가 있어 갔더니 반값에 주더라는 외국산 초콜릿 이름도 처음 대하는 것이라 기억돼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드러운 껍질 속에 달콤한 맛이 가득하여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다 그래도 참아내며 초콜릿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내가 받았던 초콜릿 선물 제주에 갔을 때 잠시 들렸던 초콜릿 박물관 아이들이 내게 주었던 초콜릿 돌아보니 초콜릿으로 행복하였던 날도 많았다 겨울은 이런저런 추억이 생각나는 때인가 보다

  

달콤한 초콜릿 /무정 정정민 "선생님! 초콜릿!" 중년의 아름다운 여인이 나를 부르면서 건네준 것은 푸른 사각상자에 든 초콜릿이었다. 세로가 10cm, 가로가 7cm, 높이가 5cm가량 되는 크지 않은 상자였지만 정성스럽게 포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또 다른 작은 상자가 앙증스럽게 얹혀있었다. 이것도 틀림없이 초콜릿이겠지만 분홍색포장이 귀엽고 사각으로 묶여 있는 것이 소장하고 싶을 만큼 예쁘기만 했다. 아마도 시각적인 상품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생각해낸 것 같다. 단 한 알의 초콜릿이 들어 있을 만했지만 하나의 상자보다는 이렇게 하니 더욱 멋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푸른 사각상자 위에 아주 작고 귀여운 분홍 사각 상자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두 손을 공손하게 뻗어서 주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저절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밸런타인 데이기 때문에 드린다는 것이었다. 어색하여 포장마저 잘 풀지 못하는 나를 도와서 포장을 풀고는 쪽지도 들어 있으니 읽으라는 것이었다. " 봄비가 오는 날 달콤한 초콜릿을 선물할 선생님이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드리는 저는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계절의 변화와 일상의 행복한 글을 많이 써 주세요. "하는 내용이었다. 다 읽고는 그 메모지를 잘 간직했다. 그리고 이어서 기왕 이렇게 귀한 선물을 주시는 것이니 초콜릿 하나 직접 주시면 안 되겠느냐는 아이 같은 나의 말에 서슴없이 달콤한 초콜릿 포장을 벗기고 주었다. 갈색의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즐거움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불혹의 나이라 하는 40대의 중반을 넘으면서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일은 흔하다고 할 수가 없다. 이상하리만큼 그런 선물을 밸런타인데이에 선물할 기회가 없는 사람도 있다. 그분에게 그런 일이 많았는지 없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할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임이 분명하다. 설레야 하는 것이다. 그 설렘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 것이니 기쁨과 감사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선물을 아름다운 여성으로부터 받을 일이 없어지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행복한 일임이 분명한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는 두 딸에게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고 초콜릿을 선물할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빠가 욕심을 내도 되느냐고 했더니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돌아온 아이들 손에는 초콜릿이 있었다. 아주 간단한 초콜릿 이었다. 물론 포장이 되어 있거나 정성이 들어간 메모지가 들어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선물을 언제까지 받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은 감동할 때라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지 않지만 일단은 많이 먹었다. 그 모습을 보는 아이들이 행복할 것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결혼을 하게 되어도 지금 같은 상냥하고 명쾌한 기분으로 아빠에게 선물을 할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다 성장한 성인이 된 두 딸이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할 사람이 없어서 아빠에게 초콜릿을 선물했는데 나는 가족이 아닌 아름다운 여성으로부터 초콜릿을 선물 받았다.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전혀 받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다른 분들에게 받은 초콜릿이 있었다. 어떤 시인님에게서 받은 일도 있다. 친구에게서도 받았다. 그러나 밸런타인데이 딱 맞추어 정성을 다하여 포장된 초콜릿을 받은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메모를 한 쪽지까지 들어 있는 것은 도무지 기억 속에 없었다. 이것은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오래 간직하고 싶은 행복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선물을 할 때 여러 가지 마음으로 한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에게 보여준 많은 정성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기도 하고 어떤 기대를 하면서 뇌물의 성격을 가지고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마음의 선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 초콜릿을 마음의 선물이라 생각을 했다. 내가 베풀어 준 것도 없고 사회적 명성이나 가진 것이 많아서 어떤 특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초콜릿을 준 것은 그 어떤 기대나 효과를 바라고 준 것이 아니라 다만 밸런타인데이를 핑계삼아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 마음은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구로부터 관심을 받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내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 선물은 기분이 좋았다. 한 알의 달콤한 맛은 오래 기억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 순간이 무척 감동이 되었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가는 삶 동안 나도 이런 선물을 하면서 살고 싶다. 마음의 선물은 주는 것도 무척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만 선물을 할 사람이 쉽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무에게나 선물하는 것은 선물의 의미가 작다. 꼭 주고 싶은 사람이 있고 주는 것이 행복인 경우가 있다. 선물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랑과 정성으로 주는 선물은 기쁨이며 받는 사람에게 그 마음이 충분히 전달되는 것이다. 올해 밸런타인데이에 맛본 초콜릿은 유난하게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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