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정 정민
2013. 3. 16. 22:25
해우재 1
해우소解憂所
시 寫眞/茂正 鄭政敏
응어리진 가슴 문질러 봐도
성난 상처처럼 커지던 근심
혹 노래라도 부른다면
바람 속으로 사라질까 했었다.
술 한 잔이면 안으로 굳어진
백 년 된 체증이 녹아내려
짓눌린 가슴이 시원할까
아니었다
아니었다
더 커지고 단단해져
숨 쉬는 일조차 힘들었다.
배가 아프던 그날
어스름 달빛이 스며들던 밤
한 평도 안 되는 곳
모든 근심과 걱정이
다 쏟아지고 말았다.
경치가 좋아 평수가 넓어
화려하여 그리되었던가
때가 되어 해우解憂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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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 낭비
수필/무정 정정민
비 오는 날의 전철은 묘한 낭만이 있다.
창가에 앉아보면 수 없이 지나가는 밖의 풍경처럼
온갖 지난날이 다 스쳐지나 간다.
비가 오는 슬픈 추억이나 꽃피는 행복한 사연이
한도 없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것은 비단 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리라
나와 같이 동승한 수많은 사람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옆자리 앉아 있던 오십 전후로 보이는 두 아주머니의 대화가
내 귀를 집중시켰다.
보라매 병원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간 건강하여 병원 갈 일도 없고 하여
병원에 가는 것이 무척 낯설어서 손쉬운
교통편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이야기였다.
갑자기 몸이 몹시 피곤하여 무슨 일인가 하고
검진을 받기 위해 가는 길이었는데
보라매 병원이라서 보라매 전철역으로 가면 되리라 생각하고
그곳에서 내려 병원을 가는데 보라매 공원을 가로 질러 가야해서
생각보다 멀었다는 것이다. 몸이 지쳐있고 피곤하여
그 길을 쉬어가며 갔는데 30분이나 걸렸다.
이렇게 하여 병원에 도착했는데
의사가 하는 말이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소변이 많이 마렵도록 최대한 참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소변이 마려워야 참지 소변이 마렵지 않을 것을
어떻게 참고 기다려야 하는지 아득하기만 해서
자신처럼 검사받으러 온 사람에게 물었더니
물을 많이 먹고 뛰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물을 먹고 또 먹고 기다려도 소변이 마렵지 않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기다린 40분이 지나도록
소변 마려운 기색은 멀기만 했단다.
그런데 한 곳에 가니 녹차를 무료로 주는 곳이 있어
자신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녹차를 얻어 마셨다.
녹차는 소변을 금방 마렵게 하는 것을 이미 경험했는데
단순하게 물만 많이 먹을 생각을 했으니
한 시간 가깝게 소모한 것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드디어 배가 불러 오고 소변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마려워
무사하게 의사의 요구조건을 충족하고 검사를 마치게 되었다.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검사 결과는 며칠 뒤에 나오기 때문이었다.
보라매 공원을 가로 질러 다시 전철역으로 가는데
병원에 갈 때보다 더욱 지치고 힘들어 어떻게 가고 있는지
정신까지 몽롱했다. 그런 와중에도 사과 파는 차가 보였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궁금하여 지나쳐 갈 수 없어
들여다 보니 싱싱하고 맛이 좋아 보이는 사과가
생각보다 값이 싸서 한 봉지 살 것을 두 봉지 사고 말았다.
몸이 피곤하여 아이들에게 과일도 제대로 사주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이 과일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서였다.
이렇게 가까스로 큰길을 건넜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자주 봤고 이용했던 버스가 눈앞에 있어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 차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무슨 서글픈 일인가. 지치고 피곤하여
속히 집으로 가고 싶은 꿈이 단숨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집이 점점 멀어지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속이 상했지만 잘 참고 어디서 다시 바꾸어 탈까 궁리를 하는데
한 두어 정거장을 갔을까 소변이 너무 마려워 견디기 힘들었다.
도리없이 막 출발하려는 차를 급하게 정지시켰다.
운전사가 짜증을 냈으나 사람 많은 버스 안에서
체면이 중요한 숙녀가 서서 오줌을 눌 수 없어 급하기도 하고
참아야 하는 조건이 충분하여 잘 견디고 뛰다시피 내렸다.
마침 은행이 보여 뛰어들어가 급한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이층으로 올라가라는데 왜 그 길이 그리 멀기만 한지
미칠 것만 같았다. 평소에 아픈 어깨가 사과 무게로 하여
더욱 아프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잘 견디고 소변도 잘 보게 되었다.
이제 좀 살 것 같아 아까 내렸던 정거장 맞은편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인데 아까와 마찬가지로
눈에 익은 차가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집으로 가는
버스일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곳까지 온 차가 집의 반대 방향이었으니
그 반대쪽 차는 더 의심할 필요도 없이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편안하게 자리까지 잡고 누적된 피곤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어
눈을 뜨고 창 밖을 보니 낯선 거리가 보였다.
한 로터리에서 빙 돌아 집과 또 다른 먼 곳으로 가고 있었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반대쪽의 버스를 탔어야 옳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피곤이 몰려 오며 또 급하게 소변이 마려웠다.
그래서 역시 급하게 내려 이번은 주유소로 들어갔다.
주유소 직원들의 야릇한 표정을 느끼면서도
너무 급하니 무시하기도 하고 참아야만 했다.
이렇게 하여 일을 보고 나와 역시 버스를 기다렸다.
이번에도 타고온 버스의 반대편이었다.
두 번이나 집으로 가는 방향일 것이라 믿고 탄 버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뒤집고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
소변이 마렵기까지 하고 아픈 어깨에 사과 두 봉지는 벅차서
혼자서 신경질이 났다. 사과고 뭐고 던져 버리고 싶었다.
발로 차서 지근지근 밟아 버리고 싶었다.
너무 지치고 약이 올라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이렇게 하여 차 안에서 소모한 시간 한 시간
병원에서 공원을 가로질러 나오느라 약 30분 너무 지쳐있었다.
검사를 위해 식사까지 거르고 있어서 온 몸이 파김치였다.
그래서 신경질이 날대로 나버린 상태였다.
이번에도 역시 타고온 버스의 맞은편으로 갔더니
자신의 집과 가까운 사거리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반가운 나머지 덥석 탔더니 약 5m 정도 갔을까 전철역 입구가 나왔다.
그것을 탔더라면 쉽게 집으로 갈 수 있는데 또 버스를 타버린 것이었다.
이번엔 생각과 다르지 않아 버스는 정확하게 그 사거리까지 갔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 소변이 얼마나 마렵던지
이번도 견디기 힘들어 거래하는 은행으로 뛰어들어가 일을 마쳤다.
이제 집이 멀지 않았으니 실수는 없을 것이다.
아는 차 번호도 많아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 집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타본 경험이 있는 차를 골라서 타고 무사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전철을 탔더라면 30분 정도에 집으로 갈 수 있는 시간
그런데 단 몇 미터를 걷기 싫었던 피곤한 몸이 눈앞의 버스를 먼저 보고
손쉬운 방법을 택했는데 아프고 지치고 소변까지 자주 마려운
악조건 속에서 2시간이나 버스를 타야 했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버스 노선을 정확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 확신이 버스 운전사에게 어디로 가는지를 묻지도 않았다.
한 번도 아닌 세 번이나 그랬다.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라는 말처럼
아는 길도 물어서 가는 지혜가 있었다면 한 번 정도의 실수로
한 시간 정도면 집으로 갈 수 있었는데 그 배인 2시간이나
소모하고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이것은 습관적 낭비였다.
물어서 가면 될 일을 묻지 않은 이상한 버릇
그것은 자신을 무척 많이 피곤하게 하고 말았다. 그분은
자신의 그런 행위를 반성은 하고 있을까 정확하지 않은 것은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묻기도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면서 살까. 여전히 묘한 습관으로 시간을 낭비하며 살까
나에게도 이런 습관이 있을까? 차창 밖은 비가 더 많이 내린다.
고단한 아주머니를 위로라도 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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