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정민/시

정월 대보름

무정 정 정민 2021. 2. 26. 09:00


정월 대보름
  

만월/茂政 정정민 아파트 샛길 지나 잎 진 대추나무 가지에 소리 없이 앉아 있는 너 닫힌 창문을 열고 가슴까지 열고 너를 맞으면 가라앉아 있던 추억의 비늘이 일제히 일어서 춤추기 시작한다 어느 골목길 쌓여있던 가을 잎을 부서지는 달빛을 받으면 밟고 그녀에게 가던 일 교회당 가는 먼길이 하얀 눈이 덮이고 산 그림자 어리는 밤에 차가운 달빛마저 울던 밤 이별하고 돌아오던 서러운 바람이던 나 기대와 이별이 지나간 추억을 달빛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면 흰 얼굴이 코앞에 서있다 너는 만월이었니?

  

음력 정월 보름, 한국의 대표적인 세시 명절의 하나. 음력 새해의 첫 보름날을 뜻하며, 전통적인 농경사회였던 한국에서는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해 농사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날이었다. <삼국유사>에 대보름에 대한 첫 기록이 남아 있으나, 그 이전부터도 대보름은 한국의 중요한 절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제의 형태로 다양한 제사와 의례가 전해지고 있으며, 지신밟기와 쥐불놀이처럼 농사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놀이도 전승되었다. 약식과 오곡밥, 묵은나물, 부럼깨기와 같은 절기 음식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음력으로 새해 들어 처음 맞이하는 보름날. 전통적으로 농사의 시작일이라 하여 매우 큰 명절로 여겼다. 지방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대보름날 자정을 전후로 마을의 평안을 비는 마을 제사를 지냈고, 오곡밥과 같은 절식을 지어 먹으며, 달맞이와 달집태우기, 지신밟기와 쥐불놀이 등의 전통행사가 진행된다.

  

유래 정월 대보름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권 1 <기이(紀異)> 편이다. 신라의 21대 왕인 소지왕(炤知王)이 정월 보름을 맞아 경주 남산의 천천정(天泉亭)에서 산책을 하는 중에 쥐와 까마귀가 왕에게 다가왔다. 쥐가 사람처럼 소지왕에게 말하되, 까마귀를 좇아 가보라고 하였다. 병사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니 한 노인이 나타나 왕에게 올릴 글을 바쳤는데, 봉투에 이 봉투를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열어보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씌어 있었다. 한 신하가 소지왕에게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소지왕을 뜻하니 열어보라고 권했다. 소지왕이 글을 열어보자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통을 쏘라는 뜻)"이라고 적혀 있었다. 소지왕이 대궐로 돌아와 거문고 통을 활로 쏘니, 그 안에 숨어 있던 왕비와 승려가 간음을 하고 반역을 꾀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소지왕은 자신에게 이를 알린 까마귀에 보답하기 위해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명명하고, 해마다 약식(약밥이라고도 한다)을 지어 제사를 드리게 했다고 전한다. 이 제사의 풍습이 남아 '달도(達道, 모든 일에 조심한다는 뜻)'라고 전해지는데, 대보름 후 첫번째 오는 돼지날, 쥐날, 말날에는 모든 일을 삼가며 행동거지를 경망스럽게 하지 않도록 했다. 정월 보름에 대한 의례의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나온다. 신라에서는 정월 보름에 연등을 달아 기념했다는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이 풍속은 후에 초파일의 연등 행사로 바뀌어 남아 있다.

  

의례와 풍습 소지왕의 기록 이전에도 한반도에서는 대보름에 여러 형태의 제사를 지냈던 것으로 유추된다. 새해 첫날인 정월 명절에 각 가정 단위로 제사를 지내고 가족간의 행사를 치루었다면, 정월 대보름의 제사는 가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 단위로 이루어졌는데, 달맞이나 달집태우기 같은 풍습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따라 대보름날 밤에 뒷동산에 올라가 달맞이를 하며 소원 성취를 빌고 1년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달빛이 희면 많은 비가 내리고 붉으면 가뭄이 들며,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 오고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마을 공동체의 제사인 동제(洞祭)나 의례의 명칭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주민들의 화합을 다지는 행사의 의미가 있었다. 제사의 형태는 제관이 축문을 읽는 유교적인 방식이 많지만, 무속과 같은 민간신앙이 결합하여 굿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서낭굿, 별신굿 등의 명칭이 있는데 하회별신굿, 은산별신제, 전남 해남의 도둑잡이굿, 전남 완도 장보고당제, 전남 보성 벌교갯제, 충남 연기 전의장승제, 전북 고창 오거리당산제, 경북 안동 도산부인당제, 경북 안동 마령동별신제, 강원도 강릉 남근제, 전북 김제 마현당제 등이 대표적인 무속 행사이다. 대보름의 풍년과 복을 비는 행사로는 볏가릿대세우기· 용알뜨기·놋다리밟기 등이 있고, 놀이로는 지신밟기· 용궁맞이·쥐불놓이(놀이)·사자놀이·줄다리기· 차전놀이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더위팔기도 있다. 쥐불놀이에 대한 기록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나타나 있다. 대개 정월부터 대보름 사이에 행해지는데, 논두렁의 잡초와 병충을 없애며, 재가 날려서 거름이 되는 효과가 있었다.

  

절식 대보름에는 찹쌀과 밤, 대추, 꿀 등을 넣어 쪄서 만드는 약식을 만들어 먹는다. 또 오곡밥을 지어 먹으며, 아침 일찍 부럼이라고 하는 껍질이 단단한 과일을 깨물어서 마당에 버리는데, 이렇게 하면 1년 내내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부럼깨기). 아침에는 데우지 않은 찬 술을 마시는데, 이를 귀밝이술이라 하며, 일년 내내 귀가 잘 들리고 좋은 소식만 듣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소지왕 이래 지역마다 약밥이나 보리밥 등을 나물과 함께 담위에 얹어 놓아 까마귀가 먹도록 했는데 이를 까마귀밥을 차린다고 했다. 정월 대보름에는 묵은나물과 복쌈을 먹는 풍습도 있었다. 고사리· 버섯· 호박고지·무말랭이· 가지나물·산나물 등을 말려두었다가 보름날이나 그 전날 나물을 무쳐 오곡밥이나 약밥과 같이 먹도록 했는데, 묵은나물을 먹으면 그 해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김이나 취잎사귀로 오곡밥을 싸서 먹는 것을 복쌈이라고 하여 복이 들어온다고 믿었다.

  

금기 한국은 전통적인 농경사회였으므로, 정월 대보름에는 이에 피해가 될 것을 미리 경계하는 금기가 많았다. 대보름에는 찬물을 먹지 못하게 했는데, 여름 내내 더위를 먹으며, 논둑이 터진다고 생각했다. 비린 것을 먹지 말라는 금기도 있었다. 보름날에 비린 생선을 먹으면 여름에 파리가 준동하고 몸에는 부스럼이 생긴다고 여겼다. 보름날 까마귀에게는 밥을 주지만,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는 밥을 주지 않도록 했다. 개에게 밥을 주면 개가 여름 내내 잠을 많이 자며 개에게 파리가 많이 달려든다고 보았다. 칼질을 하면 상서롭지 않다고 보아 보름날에는 칼질을 하지 않았으며, 집의 문에 키 작은 사람이나 아이가 가장 먼저 출입하는 것을 삼갔는데, 만일 그럴 경우에는 농작물이 잘 안 자란다고 생각했다. 대보름날 아침에는 마당을 쓸지 않았는데, 마당을 쓸면 한 해 복이 나간다고 여겼고, 오후에 빗자루질을 할 때에도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을 향하도록 했다. 이와 같이 정월 대보름은 한해의 풍요와 기원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쥐불놀이 /무정 정정민 보름 무렵이면 불놀이를 자주 했다. 어른들께서 당연히 꾸지람 하시니 모르게 밖으로 나가서 해야 했다. 화제위험 때문에 넓은 보리밭에서 해야 하는데 꽁꽁 언 보리밭 위에서 씽씽 돌리는 불 깡통은 얼마나 신이 나는지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그 전율이 그대로 살아난다. 이것이 바로 쥐불놀이였다 당시에 쥐불놀이라 하지 않고 불 깡통을 돌린다고 하였다. 이런 불 깡통 놀이를 하려면 평소에 깡통을 준비해 두어야 필요한 시기에 사용을 할 수가 있었다. 페인트 깡통이든 통조림 깡통이든 상관없는데 직경이 15cm 내외가 좋고 높이는 20cm 정도가 좋은데 사각진 것 보다는 동그란 깡통이 돌리는 것이나 모 양면에서 아주 좋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 그것을 확보하는데는 쉽지가 않았다 시골인점과 60년대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여름부터 이런 물건을 보면 집안 어디에든 감추어 두어야 했다. 때가 되면 옆면을 못으로 구멍을 숭숭 내고 깡통입구 양쪽 가장자리에 철사로 줄을 달아야 한다. 구멍으로 공기가 들어가야 불이 활활 잘 타고 철사로 연결을 해야 하는데 이유는 불이 활활 탈 때 온도가 높기 때문에 다른 끈으로는 감당하지 못하고 타버리기 때문이다. 이때 불 쏘시개로는 작은 마른 나뭇가지를 사용하는데 나는 오래된 잘 마른 대를 사용했다. 한참을 씽씽 돌리면 뚫어진 구멍으로 불들이 넘실대고 둥그런 원형으로 보이는 불이 가슴을 뛰게 했다. 앞산의 검은 모습이 무서울 때도 있었고 불빛의 가장자리가 더욱 어두워서 무서웠지만 불빛을 보는 재미보다는 강하지 못했다. 돌리는 과정 중 작은 불꽃들이 비산을 하는데 몸의 한기를 막아주기도 했지만 그 불똥으로 옷에 구멍들이 많이 생겼다. 때론 눈썹도 태우고 머리 위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면 그날은 정말 죽도로 꾸지람을 들었다. 그래도 그 다음날 또 몰래 하는 불놀이 무슨 마력이 그리도 컸을까 빙빙 돌리다 하늘 멀리 던지면 작은 불꽃들이 은하수처럼 흩어지고 땅에 꽝하고 떨어지면서 흩어지는 불꽃들이 가슴을 얼마나 크게 뛰게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불에 달구어진 깡통은 힘이 없어 땅에 부딪히면서 찌그러지거나 찢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한참 신나는 기분에 말할 수 없는 허망함이 생기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불쏘시개 재료도 많지가 않아서 오래오래 할 수는 없었다. 또 있다고 하더라도 깡통이 열에 사그라 들어서 결국은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야 하니 항상 아쉬운 쥐불놀이였다 작은 불씨로 하늘을 밝히던 노력이 내 작은 하늘 공간이 밝아지던 신비가 어둠공간에 불 수를 놓던 기쁨이 가슴을 세차게 두둘겼다. 그 환희를 꺾지못해 부모님의 꾸지람도 잊은체 옷을 태우고 머리까지 태우고 화상을 입으면서도 돌리고 돌렸다. 지금도 그 가슴 뛰었던 불놀이가 뛰어다녔던 고향집 언 보리밭이 깡통을 숨겼던 내 비밀장소가 남몰래 모아 두었던 불 쏘시개 재료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정든 고향집 생각에 시골형님 내외분이 유난히 생각나는 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