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정 정민
2016. 2. 5. 19:59
2016. 2. 5. 19:59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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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쓰고 싶은 날
글 정정민
누군가가 몹시 그리운 날이 있다.
당장에라도 달려서 가고 싶은 시간이 있다.
달려간다면 틀림없이 환하게 웃는 낯으로 맞이해 줄 것만 같은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한 날이 있다.
어떤 모습으로 있건 어떤 시간이든 반겨줄 사람이 있다면
그 행복이 얼마나 크다 할 수가 있을까.
차를 같이 마시고 싶은 날이 있다.
가늘게 비가 내리면 따뜻한 온기가 넘치는 차를 같이 마시고 싶다.
마른 잎 위에 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마른 잎이 젖어들 듯
마음도 같이 젖고 싶은 날이 있다.
큰 빗줄기가 내려도 역시 차를 같이 마시고 싶다.
어쩌면 큰 빗줄기 속에서는 차 안에서 마시고 싶을 것이다.
차창을 타고 내리는 빗줄기를 같이 보는 즐거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과 같이 마시는 차는
콧노래가 저절로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차의 천정에서 빗방울 듣는 요란스런 소리가 즐겁기만 할 사람과
같이 하는 행복은 아주 커서 눈을 감고 웃지도 못할 것이다.
큰 소리로 웃어야 할 테니까.
노래를 같이 불러보고 싶은 날이 있다.
혼자서도 부를 수 있는 것이 노래이지만 둘이 불러야 더욱 즐거운
노래가 되는 경우도 있다.
혼자 부른다 하더라도 잘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불러 보고 싶은 날도 있다.
손을 마주 잡고 불러 보고 싶은 날도 있다.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도 있다. 부른 뒤에 박수를 받고 싶은
날도 있다. 꼭 그 사람에게 박수를 받고 싶은 날이 있다.
전화하고 싶은 날이 있다.
꼭 해야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에게만 하고 싶은 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보고 싶다는 말이다.
또한,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은 날도 분명히 있다.
서로 연결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되는
그런 마음이 있다.
전화기를 통하여 들려오는 목소리나 숨소리가 가슴을 뛰게 하고
온몸에 힘이 나게 하는 일이 생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얼굴이 몹시 보고 싶은 날이 있다.
낡은 사진첩에서 몇 번이고 같은 얼굴을 보면서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늘 떠나지 않는 그리움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꼭 이유가 있어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고 싶은 것이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그런 날은 사진첩을 보고 내려놓고 다시 보는 것이
참 안타까울 때가 있다. 마주보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맛있는 식사를 같이하고 싶은 날이 있다.
서로 권하면서, 먹는 모습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먹는 모습이 보고 싶고 그것은 즐거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먹는 것도 기쁨이 되지만 같이 먹는 행복이
환희로 가슴을 벅차게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꽃을 같이 보고 싶은 날이 있다.
마주보는 눈도 아름답지만 같은 사물을 보는 기쁨도 크기 때문이다.
향기를 같은 공간에서 향유하는 것은 행복이 된다.
고운 꽃과 향기를 혼자만 보고 맡는 것이 아깝기 때문이다.
꽃이 주는 기쁨을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깝기 때문이다.
둘이 보는 행복이 더 증폭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이 가득한 날은 편지를 쓰고 싶다.
내 마음이 이렇다는 말을 쓰고 싶다.
그대도 나 같은 마음이었던 적이 있었느냐고
길고 긴 편지를 밤을 세워서 쓰고 싶다.
또 밤을 세워서 쓴 편지를 달콤하게 받고 싶다.
그대가 그리운 날은 편지를 쓰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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