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정 정민
2010. 2. 24. 22:35
2010. 2. 24. 22:35
머리 커트
글 寫眞/茂正 鄭政敏
머리가 근질근질할 때면
머리를 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보통은 이틀 정도에 감지만
때론 삼일 만에 감을 때도 있다.
매일 감는 것에 비하면 참 다행이다.
아들이나 딸은 매일 감느라
바쁜 시간에 종종거리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다 보면 머리채가 손에 잡히는
감각이 다를 때가 있다.
길다는 느낌이 드는 때다.
그러면 머리 커트를 해야 하는데
이 일이 나에게 쉽지 않다.
무조건 이발소로 가거나 미장원가면 되는데
아내의 제지를 받기 때문에
내 머리를 내 맘대로 하지 못한다.
즉 아내가 머리 커트를 하기도 하는데
너무 바빠 내가 원하는 시간이나 필요한 때에
해주지 않기 때문에
내가 혼자 할 수 없어 고민한다.
어제도 그런 고민을 하는 날이었다.
머릴 감아보니 머리가 길게 느껴지고
거울을 보니 구레나룻처럼 길게 늘어진 옆머리가
무슨 활처럼 휘어져 썩 보기 좋지 않았다.
아내에게 이야길 했더니 "내일! 내일!" 하면서
미룬 날이 한 주가 지났다.
좀 짜증도 나고 얼른 커트하고 싶어 좀 심한 말을 했더니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헌데 구세주처럼 나타난 막내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인데도 머릴 파마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불난 곳에 부채를 흔드는 격이었다.
하지만, 늦둥이 아들의 애교에 아내는 화를 내다 웃고 말았다.
하고선 둘 다 압구정에서 머릴 해결하라고
돈도 주고 시간도 내주었다.
아들과 난 우리 집의 두 남자다.
이런 일은 여자에게 있어야 하는데
세상이 거꾸로 가는지 남자에게 생겼다.
웬 떡이냐 하고 덥석 받아먹는 기분으로
전철을 타고 압구정 현대 백화점에서 내렸다.
그리고서 아내가 지정한 헤어디자이너를 찾아 갔다.
예약 손님인 것을 알고 젊은 여성 둘이
한 분은 아들을 한 분은 날 맡아
아들은 파마를 난 커트를 해주었다.
여태껏 이렇게 감미로운 손길을 경험하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머리 한 번 커트하려면
2킬로는 걸어야 했고 억센 이발사의 손으로 깎는 머리가
때론 뜯기고 때론 금속성이 차가워
늘 긴장이 되었다. 더구나 큰 손으로 머릴 감기면
머리털이 뽑히는 것 같고 머리 피부가 다 벗겨지는 것 같아
머리를 커트하는 일은 너무 싫었다.
한겨울엔 물의 온도가 일정하지 않아
뜨겁거나 차가워 머리 커트 하는 날이
감기드는 날이기도 했다.
한때는 머리에 기계 독으로 돈 버짐이 생겨
어머니가 치료약이라 하며 마늘을 문지르기도 하여
펄쩍 뛰며 죽는 줄 알았다 너무 쓰리고 아파서
눈을 감아봐도 욱신거리며 쑤시는 통증이 참 오래갔었다.
그래도 치료되지 않자 칡으로 문질렀다. 이 또한
피부가 손상되어 한없이 쓰렸다. 하지만
마늘만큼 힘들지 않았다. 그래도 치료가 안되자!
이웃집 아주머니에게서 들은 것인지
모빌유라는 기계 윤활유를 발랐다.
진득거려 벼게를 사용할 수 없어
벼게 위에 비닐이나 코팅된 비료 포장지를 놓고 잤었다.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모빌유는 특효가 있어
기계 독으로 생긴 버짐을 쫓아내고 말았다.
머리가 근지러운 것도 없어지고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이발소도 맘껏 다닐 수 있었다.
그 기간엔 학교에서 친구가 같이 앉기를 꺼렸다.
버짐이 옮는다는 것이었다.
정말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런 초등학교 시절의 겨울이 지나고
청년이 되어 스포츠형으로 머릴 자르고 다닐 때는
제법 준수한 용모가 빛났었다.
더러 포마드도 바르며 초등학교 시절의 고통스런 시간을
다 잊어 버렸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 어느 해
공교롭게도 바리캉이란 기계를 수리하고
판매하는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때야 우리나라 이 미용 업소가 얼마나 되며
머리를 깎는 기계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게 되었다.
어린 날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데 사용한 기계는
굵은 머리빗처럼 생긴 두 날을 겹치게 하고
두 날과 연결된 중심에 고정 비스를 박아 두 날이 어긋나지 않게 하고
손잡이 사이에 스프링을 끼워
엄지와 다른 나머지 손가락으로 쥐었다 폈다 하면
두 날이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그날 사이에 낀 머리털을 자르는 원리였다.
이 이발 기계는 마모가 되면 숫돌에 갈아 쓰는데
오래 사용하다 보면 유격이 커져 머리 커트가
원활하지 못하는 때가 생긴다. 그러면 두 날 사이에
머리털이 끼어 머리가 뽑히기도 한다.
정말 기분 나쁜 통증이다.
현대의 이발 기계는 사람의 손과 스프링으로 하는
두 날의 좌우 운동을 모터의 힘을 빌려서 한다.
날도 정밀하고 쇠의 강도도 높아져
아주 산뜻하고 기분 좋게 머리가 잘린다.
더구나 발전을 거듭하여 쇠가 아닌 도자기 종류로도
날을 만들어 머리 커트가 더 잘 되는 것을 봤다.
이 자동 커터기는 종류가 많았다.
잔털을 깎는 토끼 바리캉 눈썹을 깎는 눈썹 바리캉
강아지나 토끼털을 전용으로 깎는 바리캉 등
나라마다 특색이 있고 품질 좋은 바리캉이
수 없이 출시되었다.
그중에도 일본의 여러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
우리나라 50만 개나 되는 이 미용 업소에
하나 이상씩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도 이 기술이 빨리 선진화되어 일본 제품보다 우수한
자동 이발기계가 만들어지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벌써 이 일을 했던 일이 10년도 넘는 일이니
지금은 우리 제품이 많이 좋아졌으리라 믿어 본다.
이런 추억이 있는 나에게 압구정동의 이름있는
헤어디자이너에게 가서 머리 손질을 하는 일은
수많은 추억을 단숨에 불러오게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날 머리 깎을 때 이발사의 투박한 손이
머리털을 뽑듯이 깎던 일이나 두피를 벗기듯 심하게
문지르던 그 억센 손길이, 그리고 자동 이발기계로
소리 좋게 머리를 깎는 일을 보게 된 일 그 기계를
우리나라 전역에 팔고 수리했던 일이…….
이날 나는 환상을 본 것 같았다.
여인의 손길이라 그랬을까?
내 머릴 커트하는데 듬북 잡지 않았다.
아주 조금씩 머리칼을 잡아 조용하게 자르는 것이었다.
이것을 이발기계가 아닌 가위로 했다.
싹둑 잘라 기분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가려운 곳을 가볍게 긁어 주는 듯
어루만지듯 가만가만 조용하게 자르는데
봄볕에 조는 병아리가 연상되었다.
스르르 잠이 오는 나를 느꼈다.
그렇게 내 머릴 다 자르고 맘에 드느냐고
거울을 보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깊은 관심이 없는 터라 대접하는 말로
"정말 환상적입니다. 저를 잠들게 하시는 능력
존경합니다." 했더니 환하게 웃었다.
이어서 머릴 감겨 주었는데
앞으로 숙이게 하여 감기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눕게 하여
머리칼 사이 사이를 가볍게 마사지 하듯 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긴장했던 어린 날의 머리 감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지옥과 천국의 차이라 봐야 할까.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고
다시 의자에 앉자 모발건조기로 머릴 말려 주었다.
부드러운 터치 가볍게 스미는 따뜻한 바람이
내 온 전신을 휘감는 것 같았다.
어디서 불어 오는 봄바람일까
여인의 향기일까
야릇하고 향기로운 느낌이 자꾸 나를 감미롭게 했다.
꿈인 듯 눈을 감는 나에게 은쟁반 위를 굴러가는
옥 소리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다 되었습니다.
마음에 드시지 않는 곳이 있는지요?"
정말 한구석도 없었다. 맘에 꼭 들었다.
다음에도 다시 오고 싶었다.
머리가 다 자라 다시 커트를 해야 될 시기를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매일 오기 힘들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와서
황홀한 꿈결로 들어가 잠겨 보고 싶었다.
이것은 머리 커트가 아니라 예술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꽃향기 같았다.
봄바람 같았다.
아들도 맘에 들어 좋아라 하였다.
"머리칼아! 어서 자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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