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정 정민
2013. 7. 6. 08:42
2013. 7. 6. 08:42
밴댕이
밴댕이 회 덮밥/정정민
여기저기서 봄이라고 했는데 우리 집 장독이 터져 버렸다.
봄이 오는 날 몹시 추우면 나를 유난히 사랑해 주시던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2월에 장독이 터진다더니 날씨가 참 맹고롬 허다.
징하게 춥구나! "과연 그런 것 같다. 추워도 너무 춥다.
영하 10도는 내가 감당하기 힘이 들다.
우리 집 장독은 바로 내 가슴이다.
많이 심심했던지 어디든 가고만 싶었다.
그래서 동행할 사람으로 아내를 봤더니 춥다고 싫다고 하는데
나를 가장 많이 닮은 큰딸이 따라나선다.
선재도에 가고 싶었다. 그곳 바다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측도로 건너가는 길목에 있는 바다를 보노라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친구와 갔었던 곳인데 한 번만 갔던 곳이다.
겨울이라도 햇살이 고운 날은 바다가 반짝거리고
맑은 물이 갯바위에 출렁이는 모습이 너무나 정겨운 곳이다.
더구나 바람을 막아주는 산이 있어서 산을 등지고 앉아 보는 오후는
정말 기분 좋은 비밀장소 같다. 깎아 놓은 듯한 산에는 다람쥐가 산다.
앉아 있는 내 등 뒤에서 소리가 나서 보니 다람쥐가 잽싸게 도망을 간다.
그래서 찾아간 선재도는 썰물이었다.
상상하던 그런 맑은 바다는 보기 틀렸다.
그러나 무엇이든 "있겠지!"하고 간 곳에는 뜻 밖에도 굴이 있었다.
완전히 썰물이었던 때에 와 보지 못했으니 알 길이 없었다.
딸이 여러 각도로 촬영하는 사진에 멋진 포즈를 취하고 난 뒤에
굴을 찾아 으깨서 몇 개인지 먹었다. 바다의 향취가 느껴진다.
먼바다까지 뻘로만 뒤덮인 바다는 곧 들이닥칠 물을 위해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나 워낙 추운 날씨라
바람을 막아주는 산이 있어도 오래 있기가 힘들었다.
준비해간 것이 없어서 손수건을 꺼내 그곳에 담을 수 있는 굴을
둘이서 주워담고 나왔다. 그리고 우연하게 들린 식당에서
밴댕이 회덧밥을 먹게 되었다.
밴댕이 회 무침은 먹어 본 적이 있지만 회 덮밥은 먹어 보지 못했다.
딸과 식성이 비슷해서 같이 먹어 보자고 했으나
동치미 국수를 먹겠다고 한다.
그러나 나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어쩌지 못하고 주문을 했다.
아침밥까지 굶은 터라 식욕은 아주 강했다
그런데 친절하고 정감 어린 식당 주인은 푸짐하게 내 놓는다.
총각김치와 바지락 국물이 같이 어울린 밥상이 정말 행복했다.
맹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몸과 속을 너무나 적절하게 잘 풀어 주었다.
이것을 혼자만 먹기가 너무나 아까웠다.
딸에게 권하고는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내에게 먹어 보겠느냐고 물었더니
가져 오라고 한다. 결국, 싸들고 집으로 가게 되었다.
한 손에는 굴을 한 손에는 밴댕이 회 덮밥을 들고 들어서는 나에게
집은 역시 따뜻했다.
아내도 점심을 해 놓고 기다리던 터라
그 회 덮밥은 아주 적절한 시간에 집으로 도착한 것이다.
무슨 음식이든 배가 고프면 맛이 더욱 좋지만
아침을 거르고 아침과 점심을 겸해서 먹은 나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더구나 인상이 깊은 것은 식당이 넓고 깨끗했지만
주방에 사람이 별도로 없고 주인 내외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젊은 아주머니는 틈만 있으면 문밖으로 나가서
손님이 들어오는 출입문을 열어 주는 것이다.
표정도 아주 밝아서 손님이 전혀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게 했다.
어떤 식당은 편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하여 불편하거나
주인이 이상하게 신경을 날카롭게 하게 해서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는데 이곳은 아주 작은 것까지
세심하게 손님에게 배려를 하는 것이 아주 정겹기만 했다.
조금도 불편한 것이 없어 다시 가고 싶은 식당이었다.
밴댕이 회 덮밥을 먹어본 것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식당도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람도 처음 만나서 부담이 되지도 않고
태도가 단정하고 친절하여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오늘 이 식당처럼 이 부근에서 다시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반드시 이 식당에 가게 될 것 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는지 되돌아 보고 있다.
그래서 밴댕이 회 덮밥처럼 주린 배를 황홀하게 채워주는 것과 같이
정서에 주린 사람에게 감정의 회 덮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나를 다시 돌아보는 날이 되었다.
-어느 봄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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