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한옥 학교
 

나의 집 시. 사진/茂正 鄭政敏 대궐처럼 크지 않아도 된다 창문을 열면 뜰이 보이고 뜰에는 작은 야생화가 보이면 된다. 내 차가 드나들 길이 있고 더러 날 사랑하고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달빛을 받으며 올 수 있으면 된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작은 서재가 있으면 된다 집 뒤에 산이 있어 새소리가 들리면 된다. 잠 못 드는 새소릴 들으며 같이 외로워 하기 도하고 새벽에 우는소리에 잠에서 깨면 된다. 비가 오는 날에 빗소리가 들리면 된다 침대에 누워 아름다운 추억을 돌아볼 수 있게 가을 단풍도 한겨울 설경도 작은 창문을 통하여 볼 수 있다면 음악:천년의 침묵/김영동

 

고향 집 시. 사진/무정 정정민 내 고향 집에는 어린 날의 내 꿈이 그대로 있다. 짚 냄새 흙냄새 나는 건넛방 책장에 내가 읽었던 책들이 있어 고향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 손때 묻은 낡은 가구와 벽장 손잡이 삽과 호미까지 다정한 부모님 체온이 그대로 있다. 장롱 속에 형제와 같이 덮고 자던 이불과 벼게 책걸상엔 같이 공부하고 장난하던 형의 얼굴 누님과 동생 얼굴이 있다. 부엌과 장독대 헛간과 창고 뒤뜰과 앞뜰 사립문과 담벼락 모두가 그리운 내 고향 집

한옥 체험/정정민 화천에서 군 복무 중인 늦둥이 아들 작년 12월 중순에 춘천 신병 교육대에 입소 올 정월에 화천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그리고 벌써 백여 일이 지났는데 아직껏 만나보지 못했다. 만나러 오라 하지 않아 그저 참았다. 그런데 가족이 보고 싶어 미치겠다는 전화를 해왔다 해서 회사에 연차를 내고 아들을 만나러 갔다. 면박할 수 있다 하여 토요일 밤을 아들과 같이 보낼 요량으로 금요일 오전에 서울에서 출발 늦은 오후에 화천에 도착하였다. 가족 넷이 머물 장소를 찾던 중 아들이 복무 중인 부대에서 4킬로 아래에 부대에서 운영하는 회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들어 머물 수 있는지 물었더니 방이 딱 하나 있다고 하여 반가움이 컸다. 아들과 가까운 곳에 머물 수 있어서였다. 방은 2층이고 화장실과 샤워실이 딸린 첩첩산중에서는 호텔이나 진배없는 곳이었다. 더구나 매점도 있고 식당도 있었다. 방은 2인 1실 만원이었나 4인이 입실하여 만 육천 원을 냈다. 텔레비전도 있어 가족 모두 즐겨보는 "웃어라. 동해야!'도 보았다. 밥은 아래 식당에서 오리고기를 이만 오천 원에 사 먹고 다음 날 8시에 아들을 만나러 갔다. 내가 몸이 불편한 것을 아는 부대에서 곧바로 아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 눈물 나게 반가웠다. 아들은 아침 식사를 하다 나왔다며 가장 먹고 싶은 것이 입대 직전 먹었던 춘천 닭갈비라 했다 화천에서 50킬로의 거리인 춘천으로 향했다. 춘천에서 가장 유명한 명동 닭갈비 골목으로 가서 온 가족이 맛있는 닭갈비를 먹고 소양강 처녀로 유명한 소양강을 구경하고 아들과 같이 지낼 방을 찾았으나 토요일이라 방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여관은 쉽게 구할 수 있었겠지만 준비해간 음식을 아들에게 맛있게 요리해 주고 싶어 펜션이나 민박을 구하였더니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결국 소양강 댐 근처까지 갔으나 역시 마땅한 곳이 없어 별수 없이 다시 화천으로 회귀하였다. 아들 귀대도 생각하고 춘천보다는 시골이라 남아 있는 민박집이나 펜션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서. 화천 파로호를 지날 무렵 위 사진 속의 한옥 학교 이정표를 보고 큰딸과 나는 들어가 보자고 했고 아내는 속히 펜션을 구하자는 의견이 엇갈려 한옥 학교 입구를 1킬로쯤 지나쳤을 때 큰딸이 강하게 가보자고 하였다 결국 그 의견을 따라 차를 돌려 한옥 학교에 들어가 보니 여러 채의 집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으나 사람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사무실인지 알기 어려워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관계자를 만나고 하룻밤 자고 갈 수 있는지 타진했다. 2박3일의 한옥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데 오늘따라 그 프로그램이 없으니 특별하게 하루 유하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방 하나가 아니라 집 한 채를 통째로 빌려 주겠다고 했다 그것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황토집으로 나무 냄새가 향기로워 몸에도 좋은 집으로. 정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아들과 지내기 더없이 좋은 집 음식조리 시설도 되어 있고 냉장고도 있었다. 텔레비전도 있었고 인터넷도 가능했다 넓은 현관과 커다란 방 둘 우리 가족 5명이 보내기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제법 큰 한옥에서 살았다. 서까래가 커다란 집이었다 방은 온돌이었고 벽은 흙으로 되어 있었다. 광은 나무판자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한옥이었다. 방은 큰방이 있었고 작은방과 머리방이 있었다. 큰방 옆에는 골방이 있어 이방 저방을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큰 방은 부모와 어린 우리가 사용했고 작은 방은 누님이 머리방은 형님이 사용하였고 마당은 화단으로 누님이 봄마다 초화를 심었다. 마당은 화단 말고도 작은 텃밭이 있었는데 닭이나 강아지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청죽을 네 쪽으로 쪼개 엮어 울타리를 만들었는데 이 울타리에는 강낭콩과 나팔꽃을 올렸으며 텃밭에는 마늘과 파 상추 고추 가지 오이를 심었다. 부추도 있었고 도라지도 있었다. 이런 추억이 있는 한옥은 어디에서 봐도 반갑다 도시에서 출생하여 도시에서 자란 아들에게 내가 출생하고 성장한 고향 집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린 그와 조금은 비슷한 집에서 우리가 같이 하루를 보내게 되어 좋다고 했다. 아내는 아들에게 먹일 저녁을 준비하며 바로 보일러를 가동하고 아들은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인터넷을 하고 나와 두 딸은 근처를 구경하러 나섰다 바로 청평사였다. 천 년 고찰로 가는 길은 소양댐이 멀리 보이는 곳이었다. 길이 얼마나 가파르고 구불구불하던지 손에 진땀이 난적이 여러 번이었다. 다행히 구경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한옥마을로 들어오니 그때까지도 방 온도가 올라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한옥학교 관계자를 불러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다른 한옥으로 옮겨주었다. 바로 고향 집 시의 위 사진이 처음 들었던 한옥이고 아래 사진이 나중 들었던 집이다. 하룻밤에 두 채의 한옥을 경험하게 되어 행복했다 아들과 같이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한옥 학교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아주 특별한 경험 평생 잊지 못할 아주 귀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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