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 5

눈 내리는 날 5 눈이 내려요 하얀 눈이 내려요 창 밖이 온통 하해요 그곳에도 눈이 내리나요 아름다운 눈을 같이 보고 싶어요 손을 잡고 하염없이 같이 걷고 싶어요 눈이 내리는 날은 내 마음에도 눈이 내려요 그리움 처럼 자꾸만 내려요 이 쌓이는 눈을 어찌하나요 커튼을 내려도 그치지 않네요. -詩 茂正 鄭政敏-

첫눈이 내리면/무정 정정민 첫사랑은 설렘이다. 10대 중반에 사랑하게 된 소녀가 있어 진정되지 않은 마음은 길을 걸어도 식사 중에도 책을 보던 중에도 평소의 마음이 분명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같이 걷고 싶고 같이 식사하고 싶고 같이 책을 읽고 싶었다. 당시의 그런 마음은 생활의 리듬이 깨져서 한편은 불편하기도 했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이것이 성장통과 같은 것이었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 미완의 몸이 아픈 것처럼 완성에 이르기 위한 작은 고통이었다. 이렇게 첫 사랑을 경험한 뒤에 첫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그녀와 곧 헤어지게 되었다. 그녀가 이사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곧 편지 하마던 그녀는 몇 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을 전해오지 않았다. 친구에게는 편지를 띄우면서도 나에게는 단 한 통의 소식도 전해오지 않아 얼마나 섭섭했던지. 하루를 천년처럼 기다린 보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없었다. 50년쯤이 지난 어느 날 그녀의 초청을 받아 그 집에 가게 되었다. 중3이던 딸과 같이 살던 그녀는 초로의 다소 늙어버린 여인으로 나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손수 극진하고 정성을 다해 준비한 저녁을 나 앞에 내놓아 마주앉아 먹을 수 있었다. 밥맛을 잘 알 수 없었다. 십대의 그 마음은 아니었지만 역시 편하고 포근하지 않았다. 떨림이었을까. 회한이었을까? 궁금했던 것이 무너지는 아쉬움이었을까? 연민의 정이 넘쳐서 그랬을까? 하지만, 몇 년이 지난 그 시간이 다시 분명하게 떠오른다. 첫사랑은 무엇일까 설렘이다. 한 해의 첫눈은 첫사랑 같은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도 늘 설렌다. 그런데 첫눈이 내리면 만나자던 사람이 있었다.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던 분이다. 재미있으라고 한 말이라 생각했는데 첫눈이 내리는 시간에 문자를 보내왔다. 약속 장소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문자를 받았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연인가 몸은 비록 늙어가도 늙지 않는 마음 하늘에서 수없이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가 천사가 축복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시야를 가리는 눈이 운전을 방해하여 힘들었어도 마음은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삶의 순간순간이 이처럼 이벤트 인 것을 낭만을 아는 마음은 언제나 청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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