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감주 꽃과 열매 모감주 나무 詩.寫眞/茂正 鄭政敏 높은 하늘에 걸어 놓은 작은 풍선처럼 모감주 나무는 가을을 매달아 두고 날마다 흔들고 있네! 한여름 푸른 깃발 이파리 사이 황금빛 꽃등을 수도 없이 걸어두어 벌 나비 잔치를 벌이더니.. 가을바람은 갈색 추억 가득한 열매 속에서 숨어 있는 흑진주를 꺼내고 있다. 그것이 극락인 것을 아는지. 나무, 마을에 살다/영남일보 박관영기자기자 2013-08-15 07:52:14 이문구 작가의 단편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에는 마을 하나에 나무 하나, 그렇게 엮인 이야기가 여럿 담겨있다. 장평리 찔레나무, 장석리 화살나무, 장천리 소태나무, 장이리 개암나무, 장동리 싸리나무, 장척리 으름나무, 장곡리 고욤나무들이 그것이다. 그 마을들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살았거나 살고 있는 동네엔 어떤 나무든 반드시 있게 마련이므로. 우리의 기억과 추억에 나무가 나오지 않았던 때는 단 한번도 없었으므로…. 발산리는 포항시 동해면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흥인군(흥선대원군의 형 이최응, 1815∼82)의 공덕비는 발산(鉢山)으로 적혀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발산(發山)이 되었다. 승려의 밥그릇이나 주발을 가리키는 ‘발(鉢)’과, 일어나고 쏘고 떠난다는 의미의 ‘발(發)’, 두 문자의 이동 내력이 난감하다. 지형이 수행승이 지고 다니는 바랑처럼 생겼다고 해서 ‘바랑골’ 또는 ‘발미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발(鉢)’은 바랑과 통한다. 주발과 바랑은 닮은꼴이다. 또 ‘발(發)’은 수행승과 그 의미가 만난다. 수행승은 늘 떠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발산리 주민의 8할은 발산교회의 신도다. 발산교회는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여하간 이 발산리에도 나무가 산다. 모감주나무와 병아리꽃나무다. 모감주나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희귀목이다. 지리적으로 중국, 일본에 분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바닷가에서 산다. 키가 크고 줄기가 굵으며, 가지가 위쪽으로 퍼져 자란다. 잎은 봄에 돋아 가을에 지고, 꽃은 한여름에 피며,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가뭄과 공해에 강하다.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선비의 기품과 품위를 지녔다고 해서 ‘선비수’ 또는 ‘학자수’라고도 한다. 포항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포항시가 지정한 시의 천연기념물 1호로, 시목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최근엔 포항의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있다. 발산리 외에도 모감주나무가 모여 사는 곳이 10여군데 더 된다. 남구 쪽에서는 동해면의 흥환리와 입암리, 장기면의 양포리, 구룡포읍의 뇌성산(雷城山) 등지이고, 북구 쪽에서는 양학동 뒷산, 연일읍 유강리 제산(弟山) 등지이다. 한여름에 피는 노란 꽃은 마치 비가 황금색으로 내리는 모습이다. 서양에서도 보는 눈은 다르지 않아서 ‘golden rain tree’, 즉 황금비를 뿌리는 나무라고 부른다. 또한 그 꽃이 가만 보면 실이 엉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잎 떨어지는 키 큰 모감주나무를 ‘란(欒)’이라고 하기도 한다. ‘란(欒)’은 실이 엉켜 계속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한여름이면 모감주나무 덕에 군락지를 비롯한 포항 여기저기가 황금빛으로 마음까지 부시게 한다. 가을에는 꽈리 모양의 열매가 달리고 그 안에 검은색 윤기가 나는 단단한 씨앗이 찬다. 그 씨앗으로 예로부터 염주를 만들어왔다. 그래서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실제로도 염주를 만들기 위해서 절 주변에 피나무와 더불어 많이 심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모감주나무는 시인들의 심상을 꽤 건드린 듯싶다. 높은 하늘에 걸어 놓은 작은 풍선처럼 모감주 나무는 가을을 매달아 두고 날마다 흔들고 있네! 한여름 푸른 깃발 이파리 사이 황금빛 꽃등을 수도 없이 걸어두어 벌 나비 잔치를 벌이더니.. 가을바람은 갈색 추억 가득한 열매 속에서 숨어 있는 흑진주를 꺼내고 있다. 그것이 극락인 것을 아는지. (정정민의 ‘모감주나무’) 또 다른 시인 정일근은 ‘법열의 나무’라고 칭했다. 법열(法悅)이란 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황홀한 기쁨을 뜻한다. 곽철한의 ‘불교사전’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듣거나 배우는 기쁨, 그리고 진리를 깨달았을 때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을 법열이라 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게다가 모감주나무가 속한 무환자나무과의 ‘무환자(無患子)’ 뜻이 거룩하기 그지없다. 바로 ‘심으면 자식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이다. 병아리꽃나무는 장미과의 나무다. 장미가 최고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듯이 병아리꽃나무의 꽃 또한 어여쁘기 한량없다. 넉 장의 하얀 꽃잎이 둥글게 붙어 있는데 그 모습이 은은하고 소박하다. 병아리꽃이란 이름 또한 병아리의 앙증스러움에서 비롯되었다. 병아리꽃나무는 키가 작고 밑동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나무다. 잎은 봄에 돋아 가을에 지고, 꽃은 4~5월에 피며, 열매는 9월에 익는다. 키가 적당히 작아서 새나 곤충의 보금자리로 안성맞춤이다. 큰 나무들이 바람에 부러지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숲의 옷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의하면 병아리꽃나무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죽도화, 이리화, 자마꽃, 개함박꽃나무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봄에 피는 노란 황매화를 두고도 죽도화라고 하는 것을 보면 별명은 별명일 뿐, 꽃이 가진 이름의 계통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2 나무, 이야기를 품다 장군은 나무 아래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하얀 병아리꽃이 떨어지고 노란 모감주나무꽃이 피어나기까지 여인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아이는 이제 울지 않았다. 더 또랑또랑해진 눈으로 바다만 살필 뿐이었다. 서러운 꿈 때문에 잠을 설친 아이는 그의 넓은 등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장군은 여인을 사랑했고, 그래서 여인의 아이도 사랑했다. 여인은 봄날 벙근 병아리꽃 같았다. 작고 순결했다. 또 여인은 여름날 흐드러진 모감주나무꽃 같았다. 가냘프고 나긋했다. 장기 계원리에서 시집온 그녀는 아이를 낳기도 전에 혼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여인은 물질로 아이를 키웠다. 여인의 물질이 장군은 늘 불안했다. 무엇으로든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죽은 남편에게 붙박여 그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가 깨어 꼬물거리더니 장군의 귀에 대고 작은 간지럼처럼 말했다. “엄마는?” “아직… 이구나.” “그럼 바닷가에 또 가요. 엄마 오나 안 오나 보게.” “그래. 그러자꾸나.” 장군은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천천히 바닷가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리고 밤이 이슥하도록 기다렸다. 그렇게 장군과 아이는 돌이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그 돌을 일컬어 ‘장군바위’라고 부른다. 장군이 왜 아이를 업고 바닷가에 서 있는지, 정말로 그런 사랑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바위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무덤하고 심상하게 서있을 뿐이다. 이야기는 바위를 보는 자의 몫이다. 장군바위는 나무 군락지에서 고작 1리(5백여m) 거리에 있다. 7월은 모감주나무 꽃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이다. 줄지어 서있는 모감주나무 군락이든, 우아하게 수형을 잡고 서있는 정원의 독립수이든 한껏 피워난 이 나무의 꽃송이들을 만나면 황금빛 물결을 보듯 화려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얻게 된다. 이토록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 어떻게 그처럼 싱그럽게 자랄 수 있을까 ! 주변환경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는 천진스런 어린 아이의 웃음처럼 그 꽃색은 밝기만 하다. 모감주나무는 무환자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아교목이다. 노란 꽃잎을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 붉은 점이 있어 더욱 애교스럽다. 그밖에도 가장자리에 톱니가 나 있는 잎의 모양, 꽃이 지고 난 후 마치 나무에 달린 꽈리를 보듯 주머니에 싸여 있는 특별한 모양의 열매 등 가지가지 개성이 넘친다. 지방에 따라서는 모감주나무를 두고 염주나무라고 부른다. 열매 주머니를 벗기면 드러나는 씨앗이 까맣고 반질거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진다. 외형적인 모습도 염주로 적합하지만 더욱 신기한 것은 염주를 엮기 위해 열매에 구멍을 뚫는데 2∼3㎜정도만 실로 꿰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뚫어진다. 하지만 모감주나무 염주는 워낙 귀한 탓에 높은 스님들의 차지였다고 한다. 모감주나무란 이름은 닳거나 소모되어 줄어둔다는 뜻의 모감(耗減)에서 유래, 염주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중국에서는 즐거운 나무 또는 열매란 뜻의 이름을 가지며 영어 이름은 Golden rain Tree, 즉 황금비 나무이다. 모감주나무가 가장 유명한 곳은 천연기념물 138호로 지정된 안면도 승언리 마을이다. 해안가에 모감주나무 군락이 있어 신기하게 여기고, 여러 학자들이 중국에 있는 이 나무의 열매가 바닷물을 타고 떠내려와 이곳에 닿아 자라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영일만에 대군락이 발견된 이후 완도, 백령도, 대구 및 충북 월악산 중턱에서까지 발견되어 이 아름다운 나무가 한반도 전체에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추위에 견디는 힘이 다소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중부지방에서는 무난하고 바닷가에 자라니 내염성은 물론 공해에도 비교적 강한 편이다. 또 척박한 곳에서도 자라니 관심을 갖고 키워볼만한 좋은 나무임에 틀림없다. 한방에서는 난수화라하여 꽃잎을 말려 간염, 장염, 지질 등에 쓴다고 한다. <산림청 국립수목원 이유미> 길을 가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꽃을 보았다 모감주 나무 꽃이다 대부분의 꽃이 10일을 넘기지 못하니 정원수가 아니면 꽃을 보지 못하고 다음 해를 기다려야 하는 예가 많은데 올해는 우연히 길을 가다 모감주나무 꽃을 보았다 안양의 안양천 둑길 카메라에 담아 보며 그동안 모았던 사진 글을 펼쳐 보았다.
모감주 나무 詩.寫眞/茂正 鄭政敏 높은 하늘에 걸어 놓은 작은 풍선처럼 모감주 나무는 가을을 매달아 두고 날마다 흔들고 있네! 한여름 푸른 깃발 이파리 사이 황금빛 꽃등을 수도 없이 걸어두어 벌 나비 잔치를 벌이더니.. 가을바람은 갈색 추억 가득한 열매 속에서 숨어 있는 흑진주를 꺼내고 있다. 그것이 극락인 것을 아는지. 나무, 마을에 살다/영남일보 박관영기자기자 2013-08-15 07:52:14 이문구 작가의 단편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에는 마을 하나에 나무 하나, 그렇게 엮인 이야기가 여럿 담겨있다. 장평리 찔레나무, 장석리 화살나무, 장천리 소태나무, 장이리 개암나무, 장동리 싸리나무, 장척리 으름나무, 장곡리 고욤나무들이 그것이다. 그 마을들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살았거나 살고 있는 동네엔 어떤 나무든 반드시 있게 마련이므로. 우리의 기억과 추억에 나무가 나오지 않았던 때는 단 한번도 없었으므로…. 발산리는 포항시 동해면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흥인군(흥선대원군의 형 이최응, 1815∼82)의 공덕비는 발산(鉢山)으로 적혀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발산(發山)이 되었다. 승려의 밥그릇이나 주발을 가리키는 ‘발(鉢)’과, 일어나고 쏘고 떠난다는 의미의 ‘발(發)’, 두 문자의 이동 내력이 난감하다. 지형이 수행승이 지고 다니는 바랑처럼 생겼다고 해서 ‘바랑골’ 또는 ‘발미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발(鉢)’은 바랑과 통한다. 주발과 바랑은 닮은꼴이다. 또 ‘발(發)’은 수행승과 그 의미가 만난다. 수행승은 늘 떠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발산리 주민의 8할은 발산교회의 신도다. 발산교회는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여하간 이 발산리에도 나무가 산다. 모감주나무와 병아리꽃나무다. 모감주나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희귀목이다. 지리적으로 중국, 일본에 분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바닷가에서 산다. 키가 크고 줄기가 굵으며, 가지가 위쪽으로 퍼져 자란다. 잎은 봄에 돋아 가을에 지고, 꽃은 한여름에 피며,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가뭄과 공해에 강하다.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선비의 기품과 품위를 지녔다고 해서 ‘선비수’ 또는 ‘학자수’라고도 한다. 포항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포항시가 지정한 시의 천연기념물 1호로, 시목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최근엔 포항의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있다. 발산리 외에도 모감주나무가 모여 사는 곳이 10여군데 더 된다. 남구 쪽에서는 동해면의 흥환리와 입암리, 장기면의 양포리, 구룡포읍의 뇌성산(雷城山) 등지이고, 북구 쪽에서는 양학동 뒷산, 연일읍 유강리 제산(弟山) 등지이다. 한여름에 피는 노란 꽃은 마치 비가 황금색으로 내리는 모습이다. 서양에서도 보는 눈은 다르지 않아서 ‘golden rain tree’, 즉 황금비를 뿌리는 나무라고 부른다. 또한 그 꽃이 가만 보면 실이 엉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잎 떨어지는 키 큰 모감주나무를 ‘란(欒)’이라고 하기도 한다. ‘란(欒)’은 실이 엉켜 계속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한여름이면 모감주나무 덕에 군락지를 비롯한 포항 여기저기가 황금빛으로 마음까지 부시게 한다. 가을에는 꽈리 모양의 열매가 달리고 그 안에 검은색 윤기가 나는 단단한 씨앗이 찬다. 그 씨앗으로 예로부터 염주를 만들어왔다. 그래서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실제로도 염주를 만들기 위해서 절 주변에 피나무와 더불어 많이 심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모감주나무는 시인들의 심상을 꽤 건드린 듯싶다. 높은 하늘에 걸어 놓은 작은 풍선처럼 모감주 나무는 가을을 매달아 두고 날마다 흔들고 있네! 한여름 푸른 깃발 이파리 사이 황금빛 꽃등을 수도 없이 걸어두어 벌 나비 잔치를 벌이더니.. 가을바람은 갈색 추억 가득한 열매 속에서 숨어 있는 흑진주를 꺼내고 있다. 그것이 극락인 것을 아는지. (정정민의 ‘모감주나무’) 또 다른 시인 정일근은 ‘법열의 나무’라고 칭했다. 법열(法悅)이란 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황홀한 기쁨을 뜻한다. 곽철한의 ‘불교사전’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듣거나 배우는 기쁨, 그리고 진리를 깨달았을 때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을 법열이라 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게다가 모감주나무가 속한 무환자나무과의 ‘무환자(無患子)’ 뜻이 거룩하기 그지없다. 바로 ‘심으면 자식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이다. 병아리꽃나무는 장미과의 나무다. 장미가 최고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듯이 병아리꽃나무의 꽃 또한 어여쁘기 한량없다. 넉 장의 하얀 꽃잎이 둥글게 붙어 있는데 그 모습이 은은하고 소박하다. 병아리꽃이란 이름 또한 병아리의 앙증스러움에서 비롯되었다. 병아리꽃나무는 키가 작고 밑동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나무다. 잎은 봄에 돋아 가을에 지고, 꽃은 4~5월에 피며, 열매는 9월에 익는다. 키가 적당히 작아서 새나 곤충의 보금자리로 안성맞춤이다. 큰 나무들이 바람에 부러지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숲의 옷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의하면 병아리꽃나무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죽도화, 이리화, 자마꽃, 개함박꽃나무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봄에 피는 노란 황매화를 두고도 죽도화라고 하는 것을 보면 별명은 별명일 뿐, 꽃이 가진 이름의 계통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2 나무, 이야기를 품다 장군은 나무 아래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하얀 병아리꽃이 떨어지고 노란 모감주나무꽃이 피어나기까지 여인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아이는 이제 울지 않았다. 더 또랑또랑해진 눈으로 바다만 살필 뿐이었다. 서러운 꿈 때문에 잠을 설친 아이는 그의 넓은 등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장군은 여인을 사랑했고, 그래서 여인의 아이도 사랑했다. 여인은 봄날 벙근 병아리꽃 같았다. 작고 순결했다. 또 여인은 여름날 흐드러진 모감주나무꽃 같았다. 가냘프고 나긋했다. 장기 계원리에서 시집온 그녀는 아이를 낳기도 전에 혼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여인은 물질로 아이를 키웠다. 여인의 물질이 장군은 늘 불안했다. 무엇으로든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죽은 남편에게 붙박여 그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가 깨어 꼬물거리더니 장군의 귀에 대고 작은 간지럼처럼 말했다. “엄마는?” “아직… 이구나.” “그럼 바닷가에 또 가요. 엄마 오나 안 오나 보게.” “그래. 그러자꾸나.” 장군은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천천히 바닷가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리고 밤이 이슥하도록 기다렸다. 그렇게 장군과 아이는 돌이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그 돌을 일컬어 ‘장군바위’라고 부른다. 장군이 왜 아이를 업고 바닷가에 서 있는지, 정말로 그런 사랑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바위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무덤하고 심상하게 서있을 뿐이다. 이야기는 바위를 보는 자의 몫이다. 장군바위는 나무 군락지에서 고작 1리(5백여m) 거리에 있다. 7월은 모감주나무 꽃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이다. 줄지어 서있는 모감주나무 군락이든, 우아하게 수형을 잡고 서있는 정원의 독립수이든 한껏 피워난 이 나무의 꽃송이들을 만나면 황금빛 물결을 보듯 화려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얻게 된다. 이토록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 어떻게 그처럼 싱그럽게 자랄 수 있을까 ! 주변환경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는 천진스런 어린 아이의 웃음처럼 그 꽃색은 밝기만 하다. 모감주나무는 무환자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아교목이다. 노란 꽃잎을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 붉은 점이 있어 더욱 애교스럽다. 그밖에도 가장자리에 톱니가 나 있는 잎의 모양, 꽃이 지고 난 후 마치 나무에 달린 꽈리를 보듯 주머니에 싸여 있는 특별한 모양의 열매 등 가지가지 개성이 넘친다. 지방에 따라서는 모감주나무를 두고 염주나무라고 부른다. 열매 주머니를 벗기면 드러나는 씨앗이 까맣고 반질거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진다. 외형적인 모습도 염주로 적합하지만 더욱 신기한 것은 염주를 엮기 위해 열매에 구멍을 뚫는데 2∼3㎜정도만 실로 꿰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뚫어진다. 하지만 모감주나무 염주는 워낙 귀한 탓에 높은 스님들의 차지였다고 한다. 모감주나무란 이름은 닳거나 소모되어 줄어둔다는 뜻의 모감(耗減)에서 유래, 염주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중국에서는 즐거운 나무 또는 열매란 뜻의 이름을 가지며 영어 이름은 Golden rain Tree, 즉 황금비 나무이다. 모감주나무가 가장 유명한 곳은 천연기념물 138호로 지정된 안면도 승언리 마을이다. 해안가에 모감주나무 군락이 있어 신기하게 여기고, 여러 학자들이 중국에 있는 이 나무의 열매가 바닷물을 타고 떠내려와 이곳에 닿아 자라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영일만에 대군락이 발견된 이후 완도, 백령도, 대구 및 충북 월악산 중턱에서까지 발견되어 이 아름다운 나무가 한반도 전체에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추위에 견디는 힘이 다소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중부지방에서는 무난하고 바닷가에 자라니 내염성은 물론 공해에도 비교적 강한 편이다. 또 척박한 곳에서도 자라니 관심을 갖고 키워볼만한 좋은 나무임에 틀림없다. 한방에서는 난수화라하여 꽃잎을 말려 간염, 장염, 지질 등에 쓴다고 한다. <산림청 국립수목원 이유미> 길을 가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꽃을 보았다 모감주 나무 꽃이다 대부분의 꽃이 10일을 넘기지 못하니 정원수가 아니면 꽃을 보지 못하고 다음 해를 기다려야 하는 예가 많은데 올해는 우연히 길을 가다 모감주나무 꽃을 보았다 안양의 안양천 둑길 카메라에 담아 보며 그동안 모았던 사진 글을 펼쳐 보았다.
나무, 마을에 살다/영남일보 박관영기자기자 2013-08-15 07:52:14 이문구 작가의 단편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에는 마을 하나에 나무 하나, 그렇게 엮인 이야기가 여럿 담겨있다. 장평리 찔레나무, 장석리 화살나무, 장천리 소태나무, 장이리 개암나무, 장동리 싸리나무, 장척리 으름나무, 장곡리 고욤나무들이 그것이다. 그 마을들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살았거나 살고 있는 동네엔 어떤 나무든 반드시 있게 마련이므로. 우리의 기억과 추억에 나무가 나오지 않았던 때는 단 한번도 없었으므로…. 발산리는 포항시 동해면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흥인군(흥선대원군의 형 이최응, 1815∼82)의 공덕비는 발산(鉢山)으로 적혀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발산(發山)이 되었다. 승려의 밥그릇이나 주발을 가리키는 ‘발(鉢)’과, 일어나고 쏘고 떠난다는 의미의 ‘발(發)’, 두 문자의 이동 내력이 난감하다. 지형이 수행승이 지고 다니는 바랑처럼 생겼다고 해서 ‘바랑골’ 또는 ‘발미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발(鉢)’은 바랑과 통한다. 주발과 바랑은 닮은꼴이다. 또 ‘발(發)’은 수행승과 그 의미가 만난다. 수행승은 늘 떠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발산리 주민의 8할은 발산교회의 신도다. 발산교회는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여하간 이 발산리에도 나무가 산다. 모감주나무와 병아리꽃나무다. 모감주나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희귀목이다. 지리적으로 중국, 일본에 분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바닷가에서 산다. 키가 크고 줄기가 굵으며, 가지가 위쪽으로 퍼져 자란다. 잎은 봄에 돋아 가을에 지고, 꽃은 한여름에 피며,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가뭄과 공해에 강하다.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선비의 기품과 품위를 지녔다고 해서 ‘선비수’ 또는 ‘학자수’라고도 한다. 포항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포항시가 지정한 시의 천연기념물 1호로, 시목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최근엔 포항의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있다. 발산리 외에도 모감주나무가 모여 사는 곳이 10여군데 더 된다. 남구 쪽에서는 동해면의 흥환리와 입암리, 장기면의 양포리, 구룡포읍의 뇌성산(雷城山) 등지이고, 북구 쪽에서는 양학동 뒷산, 연일읍 유강리 제산(弟山) 등지이다. 한여름에 피는 노란 꽃은 마치 비가 황금색으로 내리는 모습이다. 서양에서도 보는 눈은 다르지 않아서 ‘golden rain tree’, 즉 황금비를 뿌리는 나무라고 부른다. 또한 그 꽃이 가만 보면 실이 엉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잎 떨어지는 키 큰 모감주나무를 ‘란(欒)’이라고 하기도 한다. ‘란(欒)’은 실이 엉켜 계속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한여름이면 모감주나무 덕에 군락지를 비롯한 포항 여기저기가 황금빛으로 마음까지 부시게 한다. 가을에는 꽈리 모양의 열매가 달리고 그 안에 검은색 윤기가 나는 단단한 씨앗이 찬다. 그 씨앗으로 예로부터 염주를 만들어왔다. 그래서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실제로도 염주를 만들기 위해서 절 주변에 피나무와 더불어 많이 심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모감주나무는 시인들의 심상을 꽤 건드린 듯싶다. 높은 하늘에 걸어 놓은 작은 풍선처럼 모감주 나무는 가을을 매달아 두고 날마다 흔들고 있네! 한여름 푸른 깃발 이파리 사이 황금빛 꽃등을 수도 없이 걸어두어 벌 나비 잔치를 벌이더니.. 가을바람은 갈색 추억 가득한 열매 속에서 숨어 있는 흑진주를 꺼내고 있다. 그것이 극락인 것을 아는지. (정정민의 ‘모감주나무’) 또 다른 시인 정일근은 ‘법열의 나무’라고 칭했다. 법열(法悅)이란 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황홀한 기쁨을 뜻한다. 곽철한의 ‘불교사전’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듣거나 배우는 기쁨, 그리고 진리를 깨달았을 때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을 법열이라 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게다가 모감주나무가 속한 무환자나무과의 ‘무환자(無患子)’ 뜻이 거룩하기 그지없다. 바로 ‘심으면 자식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이다. 병아리꽃나무는 장미과의 나무다. 장미가 최고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듯이 병아리꽃나무의 꽃 또한 어여쁘기 한량없다. 넉 장의 하얀 꽃잎이 둥글게 붙어 있는데 그 모습이 은은하고 소박하다. 병아리꽃이란 이름 또한 병아리의 앙증스러움에서 비롯되었다. 병아리꽃나무는 키가 작고 밑동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나무다. 잎은 봄에 돋아 가을에 지고, 꽃은 4~5월에 피며, 열매는 9월에 익는다. 키가 적당히 작아서 새나 곤충의 보금자리로 안성맞춤이다. 큰 나무들이 바람에 부러지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숲의 옷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의하면 병아리꽃나무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죽도화, 이리화, 자마꽃, 개함박꽃나무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봄에 피는 노란 황매화를 두고도 죽도화라고 하는 것을 보면 별명은 별명일 뿐, 꽃이 가진 이름의 계통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2 나무, 이야기를 품다 장군은 나무 아래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하얀 병아리꽃이 떨어지고 노란 모감주나무꽃이 피어나기까지 여인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아이는 이제 울지 않았다. 더 또랑또랑해진 눈으로 바다만 살필 뿐이었다. 서러운 꿈 때문에 잠을 설친 아이는 그의 넓은 등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장군은 여인을 사랑했고, 그래서 여인의 아이도 사랑했다. 여인은 봄날 벙근 병아리꽃 같았다. 작고 순결했다. 또 여인은 여름날 흐드러진 모감주나무꽃 같았다. 가냘프고 나긋했다. 장기 계원리에서 시집온 그녀는 아이를 낳기도 전에 혼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여인은 물질로 아이를 키웠다. 여인의 물질이 장군은 늘 불안했다. 무엇으로든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죽은 남편에게 붙박여 그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가 깨어 꼬물거리더니 장군의 귀에 대고 작은 간지럼처럼 말했다. “엄마는?” “아직… 이구나.” “그럼 바닷가에 또 가요. 엄마 오나 안 오나 보게.” “그래. 그러자꾸나.” 장군은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천천히 바닷가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리고 밤이 이슥하도록 기다렸다. 그렇게 장군과 아이는 돌이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그 돌을 일컬어 ‘장군바위’라고 부른다. 장군이 왜 아이를 업고 바닷가에 서 있는지, 정말로 그런 사랑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바위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무덤하고 심상하게 서있을 뿐이다. 이야기는 바위를 보는 자의 몫이다. 장군바위는 나무 군락지에서 고작 1리(5백여m) 거리에 있다. 7월은 모감주나무 꽃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이다. 줄지어 서있는 모감주나무 군락이든, 우아하게 수형을 잡고 서있는 정원의 독립수이든 한껏 피워난 이 나무의 꽃송이들을 만나면 황금빛 물결을 보듯 화려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얻게 된다. 이토록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 어떻게 그처럼 싱그럽게 자랄 수 있을까 ! 주변환경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는 천진스런 어린 아이의 웃음처럼 그 꽃색은 밝기만 하다. 모감주나무는 무환자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아교목이다. 노란 꽃잎을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 붉은 점이 있어 더욱 애교스럽다. 그밖에도 가장자리에 톱니가 나 있는 잎의 모양, 꽃이 지고 난 후 마치 나무에 달린 꽈리를 보듯 주머니에 싸여 있는 특별한 모양의 열매 등 가지가지 개성이 넘친다. 지방에 따라서는 모감주나무를 두고 염주나무라고 부른다. 열매 주머니를 벗기면 드러나는 씨앗이 까맣고 반질거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진다. 외형적인 모습도 염주로 적합하지만 더욱 신기한 것은 염주를 엮기 위해 열매에 구멍을 뚫는데 2∼3㎜정도만 실로 꿰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뚫어진다. 하지만 모감주나무 염주는 워낙 귀한 탓에 높은 스님들의 차지였다고 한다. 모감주나무란 이름은 닳거나 소모되어 줄어둔다는 뜻의 모감(耗減)에서 유래, 염주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중국에서는 즐거운 나무 또는 열매란 뜻의 이름을 가지며 영어 이름은 Golden rain Tree, 즉 황금비 나무이다. 모감주나무가 가장 유명한 곳은 천연기념물 138호로 지정된 안면도 승언리 마을이다. 해안가에 모감주나무 군락이 있어 신기하게 여기고, 여러 학자들이 중국에 있는 이 나무의 열매가 바닷물을 타고 떠내려와 이곳에 닿아 자라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영일만에 대군락이 발견된 이후 완도, 백령도, 대구 및 충북 월악산 중턱에서까지 발견되어 이 아름다운 나무가 한반도 전체에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추위에 견디는 힘이 다소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중부지방에서는 무난하고 바닷가에 자라니 내염성은 물론 공해에도 비교적 강한 편이다. 또 척박한 곳에서도 자라니 관심을 갖고 키워볼만한 좋은 나무임에 틀림없다. 한방에서는 난수화라하여 꽃잎을 말려 간염, 장염, 지질 등에 쓴다고 한다. <산림청 국립수목원 이유미> 길을 가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꽃을 보았다 모감주 나무 꽃이다 대부분의 꽃이 10일을 넘기지 못하니 정원수가 아니면 꽃을 보지 못하고 다음 해를 기다려야 하는 예가 많은데 올해는 우연히 길을 가다 모감주나무 꽃을 보았다 안양의 안양천 둑길 카메라에 담아 보며 그동안 모았던 사진 글을 펼쳐 보았다.
나무, 마을에 살다/영남일보 박관영기자기자 2013-08-15 07:52:14 이문구 작가의 단편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에는 마을 하나에 나무 하나, 그렇게 엮인 이야기가 여럿 담겨있다. 장평리 찔레나무, 장석리 화살나무, 장천리 소태나무, 장이리 개암나무, 장동리 싸리나무, 장척리 으름나무, 장곡리 고욤나무들이 그것이다. 그 마을들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살았거나 살고 있는 동네엔 어떤 나무든 반드시 있게 마련이므로. 우리의 기억과 추억에 나무가 나오지 않았던 때는 단 한번도 없었으므로…. 발산리는 포항시 동해면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흥인군(흥선대원군의 형 이최응, 1815∼82)의 공덕비는 발산(鉢山)으로 적혀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발산(發山)이 되었다. 승려의 밥그릇이나 주발을 가리키는 ‘발(鉢)’과, 일어나고 쏘고 떠난다는 의미의 ‘발(發)’, 두 문자의 이동 내력이 난감하다. 지형이 수행승이 지고 다니는 바랑처럼 생겼다고 해서 ‘바랑골’ 또는 ‘발미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발(鉢)’은 바랑과 통한다. 주발과 바랑은 닮은꼴이다. 또 ‘발(發)’은 수행승과 그 의미가 만난다. 수행승은 늘 떠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발산리 주민의 8할은 발산교회의 신도다. 발산교회는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여하간 이 발산리에도 나무가 산다. 모감주나무와 병아리꽃나무다. 모감주나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희귀목이다. 지리적으로 중국, 일본에 분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바닷가에서 산다. 키가 크고 줄기가 굵으며, 가지가 위쪽으로 퍼져 자란다. 잎은 봄에 돋아 가을에 지고, 꽃은 한여름에 피며,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가뭄과 공해에 강하다.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선비의 기품과 품위를 지녔다고 해서 ‘선비수’ 또는 ‘학자수’라고도 한다. 포항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포항시가 지정한 시의 천연기념물 1호로, 시목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최근엔 포항의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있다. 발산리 외에도 모감주나무가 모여 사는 곳이 10여군데 더 된다. 남구 쪽에서는 동해면의 흥환리와 입암리, 장기면의 양포리, 구룡포읍의 뇌성산(雷城山) 등지이고, 북구 쪽에서는 양학동 뒷산, 연일읍 유강리 제산(弟山) 등지이다. 한여름에 피는 노란 꽃은 마치 비가 황금색으로 내리는 모습이다. 서양에서도 보는 눈은 다르지 않아서 ‘golden rain tree’, 즉 황금비를 뿌리는 나무라고 부른다. 또한 그 꽃이 가만 보면 실이 엉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잎 떨어지는 키 큰 모감주나무를 ‘란(欒)’이라고 하기도 한다. ‘란(欒)’은 실이 엉켜 계속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한여름이면 모감주나무 덕에 군락지를 비롯한 포항 여기저기가 황금빛으로 마음까지 부시게 한다. 가을에는 꽈리 모양의 열매가 달리고 그 안에 검은색 윤기가 나는 단단한 씨앗이 찬다. 그 씨앗으로 예로부터 염주를 만들어왔다. 그래서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실제로도 염주를 만들기 위해서 절 주변에 피나무와 더불어 많이 심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모감주나무는 시인들의 심상을 꽤 건드린 듯싶다. 높은 하늘에 걸어 놓은 작은 풍선처럼 모감주 나무는 가을을 매달아 두고 날마다 흔들고 있네! 한여름 푸른 깃발 이파리 사이 황금빛 꽃등을 수도 없이 걸어두어 벌 나비 잔치를 벌이더니.. 가을바람은 갈색 추억 가득한 열매 속에서 숨어 있는 흑진주를 꺼내고 있다. 그것이 극락인 것을 아는지. (정정민의 ‘모감주나무’) 또 다른 시인 정일근은 ‘법열의 나무’라고 칭했다. 법열(法悅)이란 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황홀한 기쁨을 뜻한다. 곽철한의 ‘불교사전’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듣거나 배우는 기쁨, 그리고 진리를 깨달았을 때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을 법열이라 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게다가 모감주나무가 속한 무환자나무과의 ‘무환자(無患子)’ 뜻이 거룩하기 그지없다. 바로 ‘심으면 자식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이다. 병아리꽃나무는 장미과의 나무다. 장미가 최고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듯이 병아리꽃나무의 꽃 또한 어여쁘기 한량없다. 넉 장의 하얀 꽃잎이 둥글게 붙어 있는데 그 모습이 은은하고 소박하다. 병아리꽃이란 이름 또한 병아리의 앙증스러움에서 비롯되었다. 병아리꽃나무는 키가 작고 밑동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나무다. 잎은 봄에 돋아 가을에 지고, 꽃은 4~5월에 피며, 열매는 9월에 익는다. 키가 적당히 작아서 새나 곤충의 보금자리로 안성맞춤이다. 큰 나무들이 바람에 부러지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숲의 옷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의하면 병아리꽃나무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죽도화, 이리화, 자마꽃, 개함박꽃나무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봄에 피는 노란 황매화를 두고도 죽도화라고 하는 것을 보면 별명은 별명일 뿐, 꽃이 가진 이름의 계통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2 나무, 이야기를 품다 장군은 나무 아래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하얀 병아리꽃이 떨어지고 노란 모감주나무꽃이 피어나기까지 여인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아이는 이제 울지 않았다. 더 또랑또랑해진 눈으로 바다만 살필 뿐이었다. 서러운 꿈 때문에 잠을 설친 아이는 그의 넓은 등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장군은 여인을 사랑했고, 그래서 여인의 아이도 사랑했다. 여인은 봄날 벙근 병아리꽃 같았다. 작고 순결했다. 또 여인은 여름날 흐드러진 모감주나무꽃 같았다. 가냘프고 나긋했다. 장기 계원리에서 시집온 그녀는 아이를 낳기도 전에 혼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여인은 물질로 아이를 키웠다. 여인의 물질이 장군은 늘 불안했다. 무엇으로든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죽은 남편에게 붙박여 그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가 깨어 꼬물거리더니 장군의 귀에 대고 작은 간지럼처럼 말했다. “엄마는?” “아직… 이구나.” “그럼 바닷가에 또 가요. 엄마 오나 안 오나 보게.” “그래. 그러자꾸나.” 장군은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천천히 바닷가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리고 밤이 이슥하도록 기다렸다. 그렇게 장군과 아이는 돌이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그 돌을 일컬어 ‘장군바위’라고 부른다. 장군이 왜 아이를 업고 바닷가에 서 있는지, 정말로 그런 사랑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바위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무덤하고 심상하게 서있을 뿐이다. 이야기는 바위를 보는 자의 몫이다. 장군바위는 나무 군락지에서 고작 1리(5백여m) 거리에 있다.
7월은 모감주나무 꽃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이다. 줄지어 서있는 모감주나무 군락이든, 우아하게 수형을 잡고 서있는 정원의 독립수이든 한껏 피워난 이 나무의 꽃송이들을 만나면 황금빛 물결을 보듯 화려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얻게 된다. 이토록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 어떻게 그처럼 싱그럽게 자랄 수 있을까 ! 주변환경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는 천진스런 어린 아이의 웃음처럼 그 꽃색은 밝기만 하다. 모감주나무는 무환자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아교목이다. 노란 꽃잎을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 붉은 점이 있어 더욱 애교스럽다. 그밖에도 가장자리에 톱니가 나 있는 잎의 모양, 꽃이 지고 난 후 마치 나무에 달린 꽈리를 보듯 주머니에 싸여 있는 특별한 모양의 열매 등 가지가지 개성이 넘친다. 지방에 따라서는 모감주나무를 두고 염주나무라고 부른다. 열매 주머니를 벗기면 드러나는 씨앗이 까맣고 반질거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진다. 외형적인 모습도 염주로 적합하지만 더욱 신기한 것은 염주를 엮기 위해 열매에 구멍을 뚫는데 2∼3㎜정도만 실로 꿰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뚫어진다. 하지만 모감주나무 염주는 워낙 귀한 탓에 높은 스님들의 차지였다고 한다. 모감주나무란 이름은 닳거나 소모되어 줄어둔다는 뜻의 모감(耗減)에서 유래, 염주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중국에서는 즐거운 나무 또는 열매란 뜻의 이름을 가지며 영어 이름은 Golden rain Tree, 즉 황금비 나무이다. 모감주나무가 가장 유명한 곳은 천연기념물 138호로 지정된 안면도 승언리 마을이다. 해안가에 모감주나무 군락이 있어 신기하게 여기고, 여러 학자들이 중국에 있는 이 나무의 열매가 바닷물을 타고 떠내려와 이곳에 닿아 자라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영일만에 대군락이 발견된 이후 완도, 백령도, 대구 및 충북 월악산 중턱에서까지 발견되어 이 아름다운 나무가 한반도 전체에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추위에 견디는 힘이 다소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중부지방에서는 무난하고 바닷가에 자라니 내염성은 물론 공해에도 비교적 강한 편이다. 또 척박한 곳에서도 자라니 관심을 갖고 키워볼만한 좋은 나무임에 틀림없다. 한방에서는 난수화라하여 꽃잎을 말려 간염, 장염, 지질 등에 쓴다고 한다. <산림청 국립수목원 이유미> 길을 가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꽃을 보았다 모감주 나무 꽃이다 대부분의 꽃이 10일을 넘기지 못하니 정원수가 아니면 꽃을 보지 못하고 다음 해를 기다려야 하는 예가 많은데 올해는 우연히 길을 가다 모감주나무 꽃을 보았다 안양의 안양천 둑길 카메라에 담아 보며 그동안 모았던 사진 글을 펼쳐 보았다.
7월은 모감주나무 꽃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이다. 줄지어 서있는 모감주나무 군락이든, 우아하게 수형을 잡고 서있는 정원의 독립수이든 한껏 피워난 이 나무의 꽃송이들을 만나면 황금빛 물결을 보듯 화려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얻게 된다. 이토록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 어떻게 그처럼 싱그럽게 자랄 수 있을까 ! 주변환경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는 천진스런 어린 아이의 웃음처럼 그 꽃색은 밝기만 하다. 모감주나무는 무환자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아교목이다. 노란 꽃잎을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 붉은 점이 있어 더욱 애교스럽다. 그밖에도 가장자리에 톱니가 나 있는 잎의 모양, 꽃이 지고 난 후 마치 나무에 달린 꽈리를 보듯 주머니에 싸여 있는 특별한 모양의 열매 등 가지가지 개성이 넘친다. 지방에 따라서는 모감주나무를 두고 염주나무라고 부른다. 열매 주머니를 벗기면 드러나는 씨앗이 까맣고 반질거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진다. 외형적인 모습도 염주로 적합하지만 더욱 신기한 것은 염주를 엮기 위해 열매에 구멍을 뚫는데 2∼3㎜정도만 실로 꿰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뚫어진다. 하지만 모감주나무 염주는 워낙 귀한 탓에 높은 스님들의 차지였다고 한다. 모감주나무란 이름은 닳거나 소모되어 줄어둔다는 뜻의 모감(耗減)에서 유래, 염주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중국에서는 즐거운 나무 또는 열매란 뜻의 이름을 가지며 영어 이름은 Golden rain Tree, 즉 황금비 나무이다. 모감주나무가 가장 유명한 곳은 천연기념물 138호로 지정된 안면도 승언리 마을이다. 해안가에 모감주나무 군락이 있어 신기하게 여기고, 여러 학자들이 중국에 있는 이 나무의 열매가 바닷물을 타고 떠내려와 이곳에 닿아 자라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영일만에 대군락이 발견된 이후 완도, 백령도, 대구 및 충북 월악산 중턱에서까지 발견되어 이 아름다운 나무가 한반도 전체에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추위에 견디는 힘이 다소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중부지방에서는 무난하고 바닷가에 자라니 내염성은 물론 공해에도 비교적 강한 편이다. 또 척박한 곳에서도 자라니 관심을 갖고 키워볼만한 좋은 나무임에 틀림없다. 한방에서는 난수화라하여 꽃잎을 말려 간염, 장염, 지질 등에 쓴다고 한다. <산림청 국립수목원 이유미>
길을 가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꽃을 보았다 모감주 나무 꽃이다 대부분의 꽃이 10일을 넘기지 못하니 정원수가 아니면 꽃을 보지 못하고 다음 해를 기다려야 하는 예가 많은데 올해는 우연히 길을 가다 모감주나무 꽃을 보았다 안양의 안양천 둑길 카메라에 담아 보며 그동안 모았던 사진 글을 펼쳐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