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토니아
글 寫眞/茂正 鄭政敏
"기억의 문아 열려라! 제발 열려라!"
한 식물원 입구에서 토종식물과
작은 꽃을 팔고 있었다.
붉고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1000원 2000원 5000원 하는
비교적 저렴하고 귀여운 화초가 대부분 이었다.
꽃을 파는 사람은 식물원 직원으로 보이는
30대 초반의 여자로 키가 크지 않았지만
행동이 재빠르고 친절하여
그곳을 찾는 손님은 불편함이 없이
꽃을 구경하고 흥정하고 사가고 했다.
얼굴이 희고 약간의 주근깨가 있는 젊은 직원은
햇빛에 얼굴이 탈것을 염려하여
카우보이 모자 같은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있어
키에 비해 좀 크다 싶은 모자였지만
그것이 얼굴을 다 드러나게 하지 않아
이국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자꾸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잘 보고 싶기도 하고
꽃을 파는 사람의 눈빛을 보고 싶기도 해서였다.
그렇지만, 지나가던 사람에게 눈길을 줄 리 없었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때 60대로 보이는 점잖은 할머니 한 분이
그곳을 기웃거리다.
마음에 드는 꽃 화분이 있었는지
잠시 화분 하나를 들고
하얀 차가 있는 곳으로 가지고 가서
차 안에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 상의를 하고 있었다.
아마 일행에게 이것을 사갈까 말까 하는 것에 대한
의논을 하는 것 같았다.
이어 다시 돌아와 이것저것을 고르더니
값이 얼마냐고 직원에게 물었다.
아주 작은 선인장 하나와
산조처럼 생긴
처음 보는 황색 꽃이 핀 화분
3개가 담겨 있었다.
가격을 보니 16000원이었다.
오천 원짜리가 3개
선인장이 1000원이었기 때문이다.
돈을 꺼내다 자신의 주머니에
만 원짜리 한 장인 것을 보고는
"좀전에 만원을 드렸지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직원은 팔 작 뛰는 것이었다.
"손님 저 받지 않았어요.
저는 물건을 가져가기 직전에
먼저, 돈을 받지 않습니다. 절대로 받지 않았어요."
참으로 난처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손님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아침에 그 식물원으로 갈 적에
며느리에게 돈이 있으면 달라 했더니
지금 40000만 원이 있다면서
손녀 것으로 꼬깃꼬깃한 40000만 원을 주어서
그것으로 점심을 18000원에 두 사람이 먹고
또 10000원은 식물원에서 핫바를 사먹어
지금 남아 있는 돈이 12000원 이어야 하는데
단돈 몇 천원 뿐이니
당신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면
그 돈이 어디로 갔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4만 원 중 3만 원 가량을 썼으니
만원 정도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그 손님의 말을 듣고 계산하여 보니 틀림없었다.
그 손님이 억지를 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봐선 틀림없어 보이기도 했다.
얼마 되지 않는 화초값을 주지 않기 위해 억지를 쓰는
그런 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와 같이 그 직원 또한 눈이 맑고 표정이 밝을 뿐만 아니라
행동이 분명하고 자신의 의사표시가 확실하여
절대로 억지를 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입장을 서로 피력하느라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반복하고 몇 차례를 했다.
손님이 자꾸 밀려드는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급기야 직원은 자신이 손님에게 받은
화초값의 돈이 들어 있는 종이박스를 보여 주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 말이 다 맞아 어느 편이 실수를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나를 불러
또 다시 자신들의 입장을 이야기하는데
두 사람 말이 모두 옳고 진실해 보였다.
솔로몬이나 와야 해결될 것 같은
조금은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곤란한 입장이 되는
순간이 오고 말았다.
직원은 저를 의심하시는 것이 아니냐고 했고
손님 또한 그것이 아니라 나도 아침에 나올 적에
며느리에게 손녀의 돈을 받아 왔기 때문에
너무나 분명하게 기억을 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일이 지속되면서
서로 무척 지루하여 지고 손님이 몰려드니
그런 상태로 자신의 말만을 주장하기는
난처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급기야 직원이 이런 제안을 하게 되었다.
"제가 손님께 이것을 선물하였다 생각할 터이니
가지고 가셔서 잘 키우세요."
그러자 손님은" 이대로 안 가지고 가자니 찜찜하고
가지고 가자 하니 그것도 몹쓸 일이라 아주 난처하네."
혼자 말처럼 뇌이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돈을 준 것 같은데
억지를 써서 공짜로 화초를 가져가는 것 같아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면
자신이 지금껏 누구에게나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았다고
자부해온 사람으로 견디기 어렵고
그냥 가자 하니 당한 듯하여 그도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계속 자신의 감정처리를 어찌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그 심정을 이해한 직원이 자꾸만 강권하여
그냥 가지고 가시라 했다.
물론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표정이나 말투도 아니었다.
어린 사람이 어른에게 하는 공손하고 아름다운 태도였다.
그렇다 해도 손님은 발길을 잘 떼지 못했다.
도무지 그냥 가지고 갈 수도 안 가지고 갈 수도 없어
기억의 문을 더듬고 있었다.
그렇지만, 손님이 계속 밀려들고 그대로 있기는 영업을 방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자꾸 바라보는지라
그대로 버티고 있기엔 낯이 뜨거웠다.
못이기는 척하면서 그 자릴 뜨긴 했지만
결코, 가벼운 발길이 아니었다.
멀지 않은 차까지 가는 발길이 무거웠다.
표정도 어두웠다.
만약 돈을 다른 곳에 쓰고 기억하지 못하여
그대로 간다면
그것은 몹쓸 일이었다. 직원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
자신이 괴로워 감당하기 힘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떠나기 직전에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다.
"만약 판매 대금이 부족하면 어떻게 하나요?"
"그러면 부족분은 제가 채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말투가 공손했다.
"내가 돌아가서 돈을 쓴 출처가 생각나면
즉시 송금해 드릴 터이니
전화번호를 알려 주세요. "했지만
"그냥 가세요. 제가 선물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돌아가긴 하려 하는데
발길이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자신을 기다리는 동행도 있고
직원에게 화초값을 자꾸 묻는 사람도 있고 하니
일단 물러설 수밖에.
그러면서 속으로 기도까지 했다.
"기억의 문아 열려라! 제발 열려라!"
하며 화초를 들고 동행이 기다리는 차로 가서
차를 탔는데 이내 다시 차문이 열렸다.
그런데 들어갈 때의 무겁고 힘든 모습도 아니고
표정도 아니었다. 무슨 특별한 보석 상자라도 발견한
아이처럼 밝고 기쁜 조금은 들뜬 사람으로
급하게 직원을 부르더니 아주 큰 소리로
"생각났어요. 애고 미안해요. 아 글쎄 나이가 들면
이런 실수를 한다니까. 내가 식물원에 들어가면서
입장료를 지불했는데 아 글쎄 그것을 까맣게 잊고 말았어요.
이것 미안해서 어쩌지요?"
그러자 직원도 표정이 밝아지며 천원을 할인하려 했다.
그러나 손님은 받을 수 없었다.
이렇게 서로 옥신각신하자!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일처럼 손뼉을 치는 것이었다.
좀전의 양상과는 정반대라 안타깝고 답답하다가
일이 좋은 방향으로 잘 풀리고 해결되어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준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다투는 일보다
서로 유쾌하게 해결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든 실수를 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다.
그렇지만, 그 실수를
누구나 다 관대하고 슬기롭게 처리하지는 않는다.
때론 물리적 충돌이 생기기도 하고
못할 말을 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식물원 직원은 어른을 공경하는 자세를 보였고
자신이 손해를 보고라도
연세 드신 분이 불쾌하지 않도록 배려를 했다.
그의 표정과 말투를 모두 기억한다.
그때의 그 장면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보다
더 화기애애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곳에 새로운 꽃이 하나 더 피어났다.
화해와 이해라는 꽃이었다.
손님이 사간 꽃이름이 트리토니아 인 데
마치 그 꽃의 뜻이 기쁨이나 놀라움 슬픔을
의미하는 것을 알기나 한 듯이. 080409
트리토니아/무정 정정민
벌써 수년이 된 이야기
한택식물원 구경을 마치고 나오며
경험한 것을 쓴 글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흔하지도 않은 꽃 트리토니아다
가장 비슷한 꽃을 말한다면
아기 범부채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부천 수목원에 들어서 순간
이 꽃을 보았다
나는 단박에 트리토니아인 것을 알았다
크고 화려한 꽃들 속에 있었지만
작고 아담하여 눈에도 안 들어 오지만
7년 전의 기억 속에 저장된 꽃을 알아본 것이다
서슴없이 다가가 스마트폰에 담았다
빗방울을 잔뜩 먹고 있어
울고 있는 어린아이 같았지만
내게는 그것마저 사랑스럽게 보였다.
음악 / 강가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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