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아벨 승마장 2
  

푸른 초원/무정 정정민 하늘에 흰 구름 떠가면 내 마음은 초원을 달린다. 거칠 것 없는 널따란 대지를 검은 털이 깨끗한 말이 되어 힘껏 질주한다. 지평선 저 멀리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 꿈과 희망이 솟아나는 맑은 샘이 있다는 그 전설을 믿고 달린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듣고 나는 아버지로부터 들은 초원 끝의 그 샘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고 향기로운 과일이 열리며 온갖 새들과 짐승이 찾아와 목을 축인다는 곳 한 모금의 물로도 영원히 늙지 않고 피로가 오지 않아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그 전설을 믿고 간다. 구름은 그 샘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십자 성 푸른 잔디는 영원히 늙지 않는 내 고향 오늘도 초원을 달린다. 하늘에 떠가는 뭉게구름을 보며 ********************************** 베르아델 승마장은 말부흥에 있다. 대부도에서 제부도를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고려 말과 조선조에 말을 길러 한양으로 보냈던 곳이라 그 지명이 말부흥 혹은 말봉이 되었다.

 
 

날뛰는 말타기 수필.사진/茂正 鄭政敏 처음 하는 일 그것은 참 서툴다. 갑자기 잘할 수 있는 일이 어디 흔하다 할 수 있을까. 지천명의 나이면 이 세상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오히려 용기가 줄고 겁이 많아져서 매사가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우리 가족이 다 하는 말 타기에 도전하면서도 자꾸 겁을 내고 있다. 나이가 가장 많아 노련하게 대처할 줄 알았는데 가장 어린 막내보다 겁이 많은 내가 참 우습다. 나이뿐만 아니라 신체구조 또한 내가 다른 사람과 좀 다르기 때문에 나 자신도 조금은 겁을 내지만 내가 말을 타기 위해 장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빨간 조끼를 입는 모습을 근심 어린 표정으로 관찰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를 처음 보는 주변에 있던 아주머니였다. 그러나 그런 시선에 부담을 느낄 만큼 나는 어리지 않아서 호기를 부리며 말 가까이 다가갔다. 말 잔등은 코앞인데 그 말 위에 올라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말의 오른쪽에서 타는 일은 좀 쉬울 것 같은데 말의 왼쪽에서 타라 하니 말 주인이 나를 잘 모르는 것 같아 내가 쉽게 탈 수 있는 조건을 요구했더니 말을 후진시키고 다시 말을 내 왼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말을 탈 수 있었다. 이 세상 반백을 사는 동안 타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말은 처음 타보는 것이다. 다리가 네 개이니 넘어질 염려가 없다고 스스로 위로를 했지만 바퀴가 네 개인 자동차보다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처음 타보기 때문에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갈 수록 이런 일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싶어 기회가 된 김에 용기를 다해 탔는데 말 등은 감촉부터가 무척 좋았다. 스프링으로 된 기계가 만들어 주는 느낌이 아니라 생물이 만들어 주는 느낌은 친근감과 더불어 오래전부터 동경해 마지 않았다는 느낌이 저절로 들었다. 소설 속에서 말 타는 장면 그 중에도 초원을 힘차게 달리는 모습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였다. 나는 그런 장면을 생각하면서 지금 말 등에 올라 주변을 보면서 기수가 허리를 잔뜩 웅크리고 자신의 모자 옆에 꽂아둔 깃털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느끼며 세상을 희롱하는 것 같은 행복을 느끼려 하고 있었다. 드디어 나와 우리 가족 다섯 모두가 말 등에 올라타 나를 선두로 말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평온한 것 같았던 심장이 심하게 박동을 시작했다. 아마 긴장한 것이리라. 그렇지만, 긴장이 된다고 해서 눈을 감거나 눈을 더 크게 뜨거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에게 나를 온전히 맡기는 도리밖에 없었다. 말은 자꾸만 절벽 가까운 곳으로 가고 있었다. 내가 말이라면 가지 않을 길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 더욱 불안해 지고 내가 마치 말과 같이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리고 비참하게 거꾸러져 있는 나를 상상하니 너무 무서워 졌다. 어쩌면 말은 나를 말 등에서 떨어뜨리고 자신은 유유하게 자신의 갈 길을 갈지도 모르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책에서 보았던 다리로 말의 배를 차거나 손등으로 말의 엉덩이를 치거나 하지 못하고 우선 겁을 잔뜩 먹고 말 잔등에 놓여 있는 손잡이를 자동차 핸들을 틀듯이 자꾸 절벽의 반대쪽으로 틀었다 그러나 말은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이 가는 속도를 유지하며 때로는 말끼리 부딪히기도 하며 나무 가까이 가기도 하여 내 다리나 발등이 그런 장애물로 해서 손상을 입거나 심하게 비틀릴 것만 같은 불안을 떨어내지 못했다. 내 심정과 상관없이 말은 조용하게 자신의 길을 그냥 가는 것 같기도 했다. 괜히 나만 내 개인적인 습관적 판단으로 불안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말을 탄 한 무리가 나타나더니 발로 말의 배를 차고 채찍으로 말을 후려치며 내가 탄 말 곁을 비호처럼 지나가 버렸다. 내가 탄 말도 흥분을 하는 것 같았다.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불안하여 앉아 있으면서도 서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앉아 있지도 못하고 불안만 가중되었다. 배속까지 심하게 출렁거리는 것이 무슨 일을 만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말을 멈추게 할 브레이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지도 못하니 그냥 숨을 잘 쉬지도 못하고 말이 하는 그대로 따라서 몸을 맡기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말을 탄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그것은 극도로 불안을 느꼈기 때문에 순간으로 지난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는 생각을 말에서 내린 뒤에야 할 수 있었다. 말 위에 있을 때는 다만 말이 멈추길 바라고 빨리 내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말의 동작이나 내 볼을 스치는 바람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초원의 나무나 풀이나 꽃을 볼 여유도 없었다. 말의 등에서 느껴지는 큰 진동을 배가 우선 느끼고 온 위가 뒤집힐 것처럼 요동을 한다는 것이고 이런 요동이 무척 낯설어 어서 그만 경험하고 싶었다. 낯선 것은 불안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긴장과 공포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말이 멈추었다. 바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온 말은 정말 잘 훈련된 말 같았다. 천천히 출발을 했고 조금 빠르게 가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마구 뛰기도 하여 말 타는 내가 긴장과 초조 그리고 큰 진동을 충분히 느끼도록 하였다.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나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책 속에서 보아온 말 타기에 대한 것과는 많이 다른 도저히 잊지 못할 강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심한 공포에서 해방되고 보니 말 등에 올라 있는 동안 나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만을 했었던 것이었다. 사람이 불안이나 공포로부터 얼마나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안 시간이었다. 처음 하는 일 그것은 기대와 긴장 그리고 불안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그런 불안과 긴장이 또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매혹적인 일이 될 수도 있어서 다시 말을 타게 된다면 틀림없이 바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푸른 초원의 지형과 나무와 들꽃의 색과 향기까지 충분하게 즐기면서 말의 체온까지도 다 느끼고 말과 일체가 되는 또 다른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말이 주는 조금은 역겨운 냄새까지 향기로 느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운송수단이나 이동수단으로 원시적이라 할 수 있는 동물을 이용한 거리 이동은 기계가 주는 느낌과 달라서 내가 지금으로부터 한 500년 전쯤에 태어났다면 자가용 같은 말 하나 소유하고 빛깔 좋은 흑마를 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랙션 소리로 나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말의 투레질 소리로 나의 존재를 알리며 밤길은 헤드라이트로 달리는 자동차가 아니라 주변의 지형과 지물을 초감각적으로 냄새와 느낌으로 느끼며 달리지 않았을까 깊은 상상에 잠겼다. 때로는 뒤로 가는 삶도 앞으로만 가는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잠긴 날이었다. 초보자는 언제나 서툴다. 서툴다는 것은 새로운 일을 했다는 증거다. 그것은 그 자신에게 새로운 역사를 선물하게 된다. 그것은 기쁨이 되기도 하고 성공의 커다란 환희를 주기도 할 것이다. 내가 탔던 말의 갈기와 꼬리와 눈빛이 오늘 밤은 자꾸 아른거린다. 내가 기억하는 것처럼 그 말도 나를 기억할까. 나를 염려 하시던 아주머니가 멋지게 돌아온 나를 보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던 모습도 유난하게 생각난다. 0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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