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손을 잡아요

제 손을 잡아요/무정 정정민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듣는 말은 늘 감동이다. 작아도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 그 자체가 감동이라 그 속에서 나오는 말들이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은 참으로 오묘하고 아름다운 것이라서 밥을 먹지 않아도 신이나고 없던 힘도 생기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방학을 맞은 중학 2년 아들과 그 친구들에게 한여름의 행복한 추억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의 단짝 친구 둘을 초대하게 하여 나와 넷이서 소라를 잡아 보자고 했다. 들떠서 나온 아이들과 달리 아들은 이미 경험이 있어서 제법 의젓하게 동행하는 것이 맘에 들었다. 바닷가에 이르자 아이들은 신선한 바닷바람과 넘실대는 파도에 무척 흥분하는 것 같았다. 넓은 바다 위를 거칠 것 없이 비행하는 갈매기의 우아한 포즈에 환호를 하기도 하고 작은 깃발을 날리면서 유유자적하는 고깃배를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정경이 한눈에 보이는 작은 갯바위에 넷이 내려섰는데 몸이 부자유한 내가 슬리퍼를 신고가서 몹시 힘들었다. 45도 경사로를 내려서는 것도 힘들었지만 갯바위가 평평하지 않고 따개비와 굴이 잔뜩 붙어 있어 걷는 것이 몹시 불안했다. 가끔 크게 부딪혀 오는 파도도 신경이 거슬릴 정도였으니 내 움직임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불규칙한 바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몸의 중심을 잡는 것이 신발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참 힘들었다. 그러나 경험 많은 나는 곡예를 하는 것처럼 중심이동을 아슬아슬하게 하여 작은 소라를 줍기 시작했다. 갯바위처럼 변해있는 작은 고둥도 같이 주었는데 그런 중에 밀려 갔다 다시 크게 부딪혀 온 파도에 발이 젖고 말았다. 기온이 높아서 오히려 시원했다. 아이들과 행복한 한때를 그렇게 보낼 수 있어서 마음마저 바다처럼 넓어지는 나를 느꼈다. 이런 바다에 와보지 않은 아들친구들은 이것저것 보이는 것 움직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여 눈빛을 빛내는데 그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가 더 기쁨을 느꼈다. 또 다른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동하려는데 내려온 경사길을 올라가려니 신발이 미끄러워 올라가는 길이 힘이 부쳤다. 아들은 얼른 달려와서 내 손을 잡아 내가 조금도 힘들지 않고 올라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어느 사이 내 키 보다 더욱 커버렸고 손도 내 손보다 커버렸다. 손에서 느껴지는 힘이 나를 이미 앞지른 것 같았다. 아들은 " 제 손을 잡아요!" 이 한마디를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나를 감동시켰다. 지금까지는 이런 구실을 내가 했는데 반대로 아들이 나를 잡아 올려주고 있었다. 시원한 바다의 전경이나 바람보다도 갈매기의 싯적인 노래보다 파도소리의 낭랑한 울림보다도 아들의 한마디는 나를 충분히 감동시켰다. 그 어떤 노래보다도 그 어떤 시보다 감동을 주는 말은 "제 손을 잡아요!" 이 한마디였다. -05년 7월 서해 측도에서-

아들 4-무정 정정민 41세에 둔 아들 위로 두 딸이 있어 이 아들이 더욱 애틋했다 결혼한 지 8년이 되었음에도 아이가 없던 부부를 위해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했다 전 교인의 기도는 매일 계속되고 부흥회까지 연결되었다 그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우리 부부에게 아들이 생겼다 사진 속 아들이다. 늦둥이가 아빠에게 자신의 손을 잡으라고 했을 때 나는 무척 감동했다 이것이 부모인 모양이다 군에 가 발목 수술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제 열심히 살고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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