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정 정민
2018. 2. 5. 07:21
2018. 2. 5. 07:21
라면 한 그릇의 행복
라면 한 그릇의 행복/수필/무정 정정민
티크색 둥그런 탁자에 컵라면 두 그릇
노란 면발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그 향긋한 냄새에 라면그릇 앞에 앉은 두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키며 젓가락을 들고 면발을 뒤집고 있었다.
사각 면발은 흐물흐물 풀어지며
수프와 잘 혼합되며 더욱 맛있는 라면으로 변하고 있었다.
한 젓가락 뚝 떠서 입안으로 가져가니
그 부드러운 면발이 혀끝에서 살살 녹았다.
입으로 씹어보니 그 또한 얼마나 맛이 좋은지.
단숨에 다 먹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후략-
라면 한 그릇의 행복/수필/무정 정정민
티크색 둥그런 탁자에 컵라면 두 그릇
노란 면발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그 향긋한 냄새에 라면그릇 앞에 앉은 두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키며 젓가락을 들고 면발을 뒤집고 있었다.
사각 면발은 흐물흐물 풀어지며
수프와 잘 혼합되며 더욱 맛있는 라면으로 변하고 있었다.
한 젓가락 뚝 떠서 입안으로 가져가니
그 부드러운 면발이 혀끝에서 살살 녹았다.
입으로 씹어보니 그 또한 얼마나 맛이 좋은지.
단숨에 다 먹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을 짧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잠시 숨을 고르고 국물 한 번 맛을 보니
그 얼큰함이 또 사람을 죽인다. 육개장 라면이니 당연하다.
이번에 단무지 하나 집어 혀끝에 대어보니
새콤한 그 맛이 식욕을 더욱 자극한다.
이제 참을 수 없다. 다시 라면 한 젓갈을 집어
하늘 높이 쳐들고 그 끝을 입안으로 가져가서
면발을 입안에 채우니 아 이것은 정말 행복이다.
라면을 먹는 맛을 무엇과 비교할까.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상대를 바라보며 서로 웃는다.
나의 점심식사 장면이다.
맞은 편에는 천상미녀 아내다.
장소는 수영전망대
눈 아래는 수영복 차림의 아름다운 미녀들이
물장구치기도 하고 배영으로 수영하며
즐거운 한 때를 즐기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의 한 그릇 컵라면 아무래도 너무 맛있다.
전남 함평에 살던 내 나이 17세쯤이었을까
라면이란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내던 어느 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바로 손위 형이 내려왔다.
선물로 라면을 사왔는데 지금 같은 다양한 라면이
있었던 때는 아니었다. 가게마다 라면이 있었던 것도
물론 아니었다. 그러니 시골에 사는 내가 라면의 존재를
알 까닭이 없었다. 그런데 형이 라면이라며
내민 것을 보니 사각으로 굳어진 누드라면은
과자 같기만 했다. 한 가닥 바스러뜨려 맛보니
일자로 된 국수보다는 맛이 좋았다. 국수는 하얀색으로
일자로 되어 있는데 라면은 파마머리처럼 꼬불꼬불하고
여러 가닥이 손바닥 크기의 사각으로 성형되어 있었다.
이것을 국수처럼 먹는다고 하여
끓는 물에다 넣고 더 팔팔 끓여 맛을 보니
그 부드러움이 국수보다 더했다.
혀끝에 착 달라붙어 감기는 감미로운 맛이
사람을 죽일 것 같았다. 그때의 그 황홀한 맛을
40년이 지난 지금도 절대로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뒤로 별로 먹을 기회가 없었지만 라면은 늘 먹고 싶었다.
좀 성장하여 전주에서 학교에 다닐 때였다.
그때는 어디나 라면이 있었다.
라면이 식당 메뉴로 어느 분식점이나 있었다.
라면에 계란을 넣고 신김치까지 넣으면 그 맛은
그 어떤 음식과 비교할 수 없어서
그것을 먹는 날은 하늘까지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1500원을 주고 계란라면을 가끔 먹었다.
그중에도 잊지 못하는 한 그릇의 라면은
기숙사 생활중 몹시 아파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구의 간호도 받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기숙사에서
끙끙 앓던 때였다.
점심시간에 한 여자 친구가 기별을 보내왔다.
라면을 먹겠느냐는 것이었다.
그곳은 금녀의 집이라서 여자의 출입이 제한된 곳이라
들어오지 못하고 후배를 시켜 의사를 타진한 것이다.
처음엔 얼떨떨했었다.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그런 사이도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던 친구라서
그런 의사타진은 너무 엉뚱하여 아픈 중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오래 기다릴 처지가 되지 못한 후배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한 뒤에 나가버렸다.
그런데 잠시 후에 노란 냄비에 라면이 한 그릇 배달되어 왔다.
그 라면 냄비에서 김이 올라오고 그 향긋한 라면 향기가
방안을 진동시키니 감동도 그와 같았다.
다 먹지 못했지만 그 라면의 감동은 지금도 남아있다.
하얀 피부에 큰 키 허스키한 목소리 맑은 눈동자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너무 보고 싶다.
만나면 이번엔 내가 라면을 끓여주고 싶은데…….
학교를 졸업하고 전남 송정리 황롱강 가에서
잠시 근무할 때가 있었다.
혼자서 살았던 그곳은 관사였는데 작은 부엌도 있었다.
겨울철이라 김장 김치가 있었는데
출출한 늦은 저녁에 라면에 김치를 넣고 끓이면
그 김치와 라면 국물이 어우러진 맛은 기가 막혔다.
요리법은 김치를 많이 넣고 충분하게 끓인 다음에
김치 넣은 물이 끓으면 그곳에 라면을 넣고 다시 끓인다.
이때의 김치는 너무 맛이 좋다 라면 몇 가닥 김치 한 조각
같이 입속에 넣고 먹으면 당장 죽어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라면은 결혼 후에 아내가 끓여주어 가끔 먹었다.
그 뒤로 2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눈을 심하게 다쳐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옆자리에 젊은 청년이 있었는데
심하게 운동을 하다가 턱뼈를 다쳤다.
그래서 의사는 씹는 것은 무엇이든 먹는 것을 금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라면을 무척 좋아했는지
늦은 밤에 간호사의 눈을 피해 라면을 몰래 끓였다.
그리고 라면 국물을 먹곤 했다.
그때 나에게 다가선 그 라면 향기가 너무 좋았다.
그렇지만, 달랠수도 없고 그냥 먹고 싶어 죽을 것 같았다.
허나 배 소변이 좋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저 참아야 했다. 그때 그라면 정말 먹고 싶었다.
눈을 다친 사람은 운동도 하지 못하게 하고
절대 안정만 요구했다. 장이 좋지 않았던 나는
그 절대 안정 때문에 배 소변이 원활하지 않아
아무 음식이나 먹지 못하니 감히 라면을 먹지 못했다.
그런데 그 라면이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지금도 그때의 그 먹고 싶었던 라면이 떠오른다.
그 청년의 얼굴이나 이름은 다 잊었지만 라면 먹고 싶었던
그 간절한 마음은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된다.
지금이야 수많은 종류의 라면이 생산되고
많은 사람의 예민한 입맛을 다 맞추고 있지만
당시에는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라면은 정말 맛이 좋았다. 전 세계 라면 최대 생산국이라 하니
우리나라 라면의 다양한 종류와 양은
대단한 것으로 안다. 그런 나라의 국민으로
다양한 라면을 언제 어느 때나 어느 장소에서든
즐길 수 있어 행복하기 그지없다.
오늘도 아내와 단둘이 앉아 점심대용으로 먹는
육개장 라면은 환상적인 점심이 되었다.
황홀한 축제 같은 점심시간이었다.
이어서 아이스크림도 먹었기 때문이다.
07년에 쓴 라면을 먹으며 행복했던 추억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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