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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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도 詩 寫眞/茂正 鄭政敏 조개구이 냄새가 갯내음보다 먼저 반기는 오이도엔 등대가 있다. 길을 잃어 방황할 뱃길을 안내하는 등대가 아니라 그곳을 찾는 사람에게 서해 바다를 보여주는 새로운 기능을 가진 등대 등대가 보이는 길을 따라 방조제를 걷노라면 거대한 바다를 가로지르는 시화 방조제가 보인다. 한쪽은 바다요 한쪽은 호수가 된 명소 여전히 낙조가 아름다우나 바다는 자꾸 몸살이다. 갯벌이 죽고 조개가 죽고 새가 죽고 파도마저 죽어 사람이 걱정이다.

 

오이도 유래 오이도는 시흥시의 최서남단에 위치한 섬으로, 옛 이름은 오질애(吾叱哀)였고, 그후 오질이도(吾叱耳島)였다가 조선조 말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말이 섬이지 육지와 연결되어 버스 등 각종 차량들이 섬의 구석구석까지 왕래하고 있다. 오이도와 육지와의 연육(連陸)은 1922년 오이도 일대에 일인들이 군자염전을 만들기 위해 제방을 쌓은 후부터이다. 그러나 이들 염전에도 1988년부터 시화지구사업의 일환으로 시흥공단이 조성되었고, 서쪽으로는 대부도와 연계하는 제방이 조성되어 지금은 관광의 명소로 더 알려져 있다. 오이도는 한자로 풀이하면 까마귀의 귀처럼 생겼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실제는 전술한 오질이도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오이도에서 제일 높은 당봉(안말 뒷산)에서 오이도 일대를 살펴보아도 까마귀와는 거리가 멀다. 전설이 많이 전해질 것 같지만 실제 전해지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 중에 좀 알려진 얘기는 옛날 제밀(제물포)에서 어느 임금이 배를 타고 중국으로 향하다가 오이도 서쪽에 있는 팔미도(八尾島) 앞 바다에서 조난하자 이 섬에 표류했다고 한다. 마침 무더운 여름이라 임금님이 목이 말라 물을 찾았더니 이 섬에 사는 어느 어부가 물을 떠왔는데, 그 그릇이 옥(玉)으로 만든 그릇이다. 임금님이 놀라 귀가 번뜩 띄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이 섬은 '옥귀도(玉島貴)'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하며, 또는 옥귀섬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흥시 문화원 제공> ************************************************ 수 많은 음식점이 즐비한 곳입니다. 낙조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바다를 체험하기 너무 좋은 곳이지요 수도권에서 접근하기 참 좋은 곳입니다. 12킬로의 시화방조제을 차로 달리면 대부도가 나옵니다. 그 일 하나만으로도 신나는 곳입니다. 아주 천천히 구경하고 싶은 너무 멋진 곳입니다. 오늘 동창회를 그곳에서 했는데 모두가 "회장님 최고!"라고 했습니다. 좋은 곳으로 안내했다는 말이었습니다. ㅎㅎ 같이 갈까요? 이런 칭찬을 들었던 동창회 모임이 있었던 그 오이도를 이번에도 다녀왔습니다. 낙조도 찍고 초승달도 찍었는데 오이도 등대와 등대 앞 노점 둑길에 있는 화가의 모습이나 점치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도 좋은 구경거리였지요 등대 위에서 둑길과 차도 인도를 찍어보니 좀 색달라 보였습니다. 전어 한 접시 사서 먹으며 낙조를 보노라니 철새도 날아갔습니다. 바람이 어찌나 시원한지 천국 같았습니다. ㅎㅎ Mary Hamilton / 박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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