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詩 사진/ 무정 鄭政敏
너의 이름을 몰라
소리쳐 부르지 못했지만
가슴에 가득한 모습
꿈엔들 잊을까?
스쳐가는 인연이라도
남아 있는 향기
봄마다 돋아나니
너는 가슴에 피운 꽃이다
잊으려 한 적 없지만
문득 다시 생각나면
청초한 모습 그 향기
내 사랑이다.
오늘 낯선 곳에서
우연하게 너를 보니
꿈이 아닌 것이
이렇게 큰 기쁠 일 줄이야
겨울 이야기 1/무정 정정민
추위가 기승을 부리면
집을 나서는 일은 망설이게 마련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는다
내 마음속에 저장된 추억이
일부는 컴퓨터 속에도 있어 검색하여 찾아내고
그때로 돌아가곤 한다.
한 10년은 되었을 것이다
꽃가게를 했던 일
그리고 누군가를 만났던 겨울
다시 돌아보니 나이도 그만큼 젊어진 느낌이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일이지만
창밖이 잘 보이는 컴퓨터 앞에서
돌아본 추억은 역시 아름다웠다.
그때 과천 시민회관 전시실에서 찍은
꽃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같이 올려 보았다.
한겨울 삭막한 풍경 속에서 보면
더욱 상쾌할 것 같아서
들꽃향기/정정민
아내는 꽃을 좋아한다.
꽃바구니를 만들거나 꽃다발을 만드는 일을
무척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꽃에 대한 공부를 하더니
화웨장식기능사 자격을 취득하고
이어 사범자격과 플로리스까지 되었다.
이제는 꽃집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해서 여기 저기 꽃집 매물이 나온 것을 알아 보더니
기어코 작은 꽃집 하나를 인수했다.
꽃집 이름이 들꽃향기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무척 번화가 였는데 정류장이
조금 이동하여 간뒤로 너무 한가했다.
결국 2년여의 꽃집을 마무리 해야 했다.
꽃집은 꽃만을 생각하면 화려하지만
그 뒤처리는 농사일과 다르지 않다.
화분관리도 그렇고 관엽식물을 배달하는 일
절화를 새벽에 사러 가는 일
사오면 장미는 가시를 제거해야 하고
꽃바구니나 꽃다발을 만들고 나면
남은 잎이나 줄기를 처리해야 하고
시든 꽃이나 죽은 식물을 처리하는 일은
작은 노동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내가 꽃을 너무 좋아하여
꽃집을 하게 되었고 그 향기 속에서
얼마간 행복하기도 했고 치열한
경쟁속에서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모른다.
졸업시즌이나 입학 때는
꽃을 들고 거리에 나가 팔기도 했다.
온가족이 동원되어 밤잠을 자지 않고 만들고
또 같이 나가 목이 아프도록 "꽃사세요!" 외쳤던가
지난 일이라 지금은 그것을 추억하며 웃는다.
겨울 찻집에서
글 정정민
어느 작은 역이 있는 조용한 찻집이었다.
붉은색 2층으로 되어 있는 이 집은
아래층을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날씨가 차가운 겨울에 가기 좋은 집이었다.
창가에는 오후의 햇살이 정겹게 비추고
그 창 너머로 한강이 어설프게 보였다.
간단한 식사도 할 수가 있으니
오래 앉아 있어도 되는 집으로 보였다.
배가 고프면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싶다면
차를 마시면 되는 너무 편한 집이었다.
이런 집에 혼자 앉아 있다면 너무 청승맞다.
호기심을 견디지 못할 누군가를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면
바람이 지나가는 창문 밖의 겨울이
더욱 낭만적으로 생각될만한 곳이다.
잘 웃는 사람을 만나서
전설처럼 아득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몹시 슬픈 과거가 있었어도
당당하고 담담하게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건강하고 멋있게 보일까?
서러운 가슴을 노래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내 못하는 노래를 보태어
한순간 일지라도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싶다.
짧은 겨울 햇살이 한강으로 숨어 버리기 전에
들꽃 향기 같은 작은 목소리로
다 드러나지 않은 행복의 문을 열어 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눈물이 있는 것이다.
그 눈물을 위로받고 싶은 날이 있고
위로가 되고 싶기도 하는 것이니
한가한 겨울의 찻집은 그런 마음을 내려놓기
참으로 좋은 곳이지 않는가.
찻잔에서 느끼는 온기처럼
창문을 투과한 햇살의 온기처럼
겨울 특유의 위로가 찻집에는 있을 법하다.
꿈꾸는 소년처럼
동화 같은 이야기를 생각하고
해가 지는 한강을 바라보는 그 맞은 편에는
소녀 같은 눈을 가진 어떤 여인이
꿈을 꾸는 사람처럼 역시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의 찻집은
아름다운 풍경이 노을 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