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
詩 사진 茂正 鄭政敏
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삼베적삼 땀에 흠뻑 벤
담배밭 이랑에서
제게 주시던 그 젖 냄새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초등학교 가던 날
사립문 밖에까지 나와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계시던 모습
오늘은 더욱 생각납니다.
수십 년 아파 계시던 아버지
어머니가 무명옷감 짜시던
그 베틀 부여잡고
당신을 부르다 하늘나라로 가실 때
서럽게 우시던 모습
오늘은 눈물이 됩니다.
제가 결혼하자
주름진 얼굴 환하게 펴며
아내의 등을 두들기시던
인자한 미소가
또 보고파 힘들어요.
흰 머리 파리한 손가락
흐린 눈빛으로 찾아와
용돈 모아 산 와이셔츠니
어서 입으라시던 마지막 모습
다시 뵈올 수 있다면
카네이션 한 바구니 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030715
어머니, 영원한 그리움
글 사진 무정 정정민
막내아들이 신형 카네이션을 사왔다.
이제껏 스스로 만든 종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었는데
중학생이 된 뒤에는 보다 값이 나가는 선물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하나에 4000원 하는 카네이션 두 개를
7000원에 사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 꽃을 보며 왜 그냥 기쁘지 않고
가슴을 저미는 것일까?
아들의 성장에 대한 기쁨과 그 마음씀에 대한 기쁨도
분명 있었지만 이 꽃을 보는 순간
어머니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늘나라에 가신지 수십 년이 되지만
기쁘게 해드린 추억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골의 밭일로 손마디가 굵어지시고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얼굴
못난 아들의 좌절을
가슴 치며 속 울음 삼키시던 모습이,
피멍 든 가슴을 부여잡고 혼자 우셨을 것이
내가 부모 된 지금
얼마나 죄송스러운지 편하지 않다.
"너를 보는 것은 내 가슴이 터지는 슬픔이다.
차라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라!"
부모가 자식에게 할 말이겠는가
그것도 몸이 불편한 자식에게,
절망하여 좌절의 늪에 허덕이는 자식에는
더더욱 할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말을 하고 우셨을 어머니
얼마나 통한의 세월을 사셨으면
삼가야 할 독약 같은 말을
기어코 자식에게 하고야 마셨을까 생각하면
내 마음 견디기 힘든 슬픔이 폭풍처럼 밀려 온다.
자식이 건강하지 못하면
자식이 좌절하며 절망하면
부모는 그 이상 넘어지며
죽지도 못할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었다.
원망하며 비난하며
이미 힘들어 한 올의 힘도 없을 어미를 난도질했으니
지금 그것을 깨달았다 한들 너무나 큰 죄인인 것이다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는 말을
효를 하려 하나 부모가 계시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그것이 나와 상관이 있는 말로 이해하는데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처럼 지난 일을 후회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인가
지금도 못다한 효 때문에 어머니가 그리운 것 보다
내가 힘들 때 어머니가 더욱 그리운 것은
어머니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셨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언제나 어린아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리운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어린아이가 될 수 없음이
어른으로 살아야 되는 것이
고단하고 힘든 세월 속에서
아픔으로 오는 것 같다.
이처럼 지난 것을 그리워하는 것이
또한, 삶일지 모르겠다.
어머니!
그 이름은 항상 그리운 이름
천 번을 되뇌어 봐도 싫지 않은 이름
언제나 가슴이 저리도록 그리운 이름이다.
혼자서 나직하게
"어머니!"하고 불러 본다.
어버이 날
글 사진 무정 정정민
어버이 날이 되면 부모님 생각이 난다
오랜 병고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
가난한 집안의 여러자식들 먹거리로
아버지 병수발로 고생하시다 가신 어머니
특히나 운명하시던 두분의 모습이
비오는 어버이날 더욱 생각나 눈물이 된다.
어려서부터 지팡일 가지고 다녔던 날
부모는 가슴이 쓰린 눈으로 보셨다.
한 번은 아버지가 화를 내시며 지팡일 부러트리셨다.
당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쓰러운 눈으로 보시던 분인데
다시는 지팡일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다.
무섭기 까지 했다
당시의 아버지 마음을 헤아려 본다
얼마나 아프셨으면 그리 하셨을까?
어머님도 마찬가지였다
"너를 보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이 편하다."
이 말은 원수지간이나 정말 보기 싫은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사랑하는 자식을 두고
그것도 다리를 저는 자식을 두고
어머니가 하실 말씀이 아니었다.
오죽 하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그렇게 부모를 힘들게 한 내가
벌써 긴 세월을 살았다
무수한 고비를 넘기고 살아왔지만
두 딸과 늦둥일 두었다.
막내가 벌써 24세 직장에 다닌다.
어제 밤에는 비를 맞고 들어와 돈 봉투를 내민다
어버이날이라며 엄마에게 십만원 나에게 십오만원
아빠는 오늘이 생일이니까 오만원을 더 드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봉투
그 속에는 두장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존경하는 아빠에게 감사하다는 말
언제나 아빠와 엄마를 위해 기도 한다는 말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가자는 말
그리고 여자 친구의 편지
생일을 축하드리며 오빠와 잘 지내겠단다
모두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말들이었다.
큰아이는 오늘 저녁에 케익을 사온단다
둘째는 무엇을 해드릴까 고민하고 있었다.
자식이 많은 것은 장수의 전통에 화살이 가득한 것과 같다는
성경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살게 해주시고 자식을 선물주신 하나님
아름다운 아내와 행복한 여정을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땅의 어버이들이 모두가 자식의 효도로
사회적 안정장치로 노년이 행복하게 하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