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정 정민
2014. 5. 17. 21:27
2014. 5. 17. 21:27
부여 부소산 백화정/낙화암
낙화암
시.사진/무정 정정민
패망한 나라에 남아
침략국의 포로로 사는 일
그것은 죽는 일보다 못하다
욕되게 사느니
차라리 한 점 꽃잎으로 지리라
천길 낭떠러지
푸른 물이 얼마나 두려웠을꼬
꽃다운 나이
살아갈 날이 많다 하여도
내 나라 내 땅이 아니면
수중왕국에 살리라 하였다.
백화정 높이 앉아
낙화암 내려다보며
흐르는 백마강에 그 혼을 위로하니
만고 푸른 천년송도
그 충절 알더라
꿈꾸는 백마강 /배호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서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는데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구나
낙화암/옮긴 글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하자 백제의 3,000 궁녀가
백마강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백제 멸망 이후 타사암을 미화하여 낙화암이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고기에는 부여성 북쪽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 강물을 임하였는데 의자왕과 모든 후궁이
함께 화를 면치 못할 줄 알고 차라리 자살할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 하고 서로 이끌고 와서
강에 투신하여 죽었다 하여 타사암(墮死巖)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의자왕은 웅진성에서 항복한 후,
당에 압송된 후 병으로 죽었다. 3,000 궁녀도 부여성이 함락된 후
당의 군사들을 피해 도망치던 아녀자들이었다는 설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위면에 '落花岩'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낙화암에서/무정 정정민
역사의 현장 낙화암
삼천궁녀가 치마를 둘러쓰고
투신하였다는 바위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죽는 일은 정말 두렵고 떨리는 일인데
천길 낭떠러지로 스스로 투신하여
백마강의 혼이 있었다니
그 슬픈 사연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온 백성이 합심하여 나를 지켜야 함에도
왕은 사치와 술로 세월을 허송하여
결국 스스로 패망을 자초한 것은 아닌가
백제 후손의 한 사람으로
아픈 역사를 돌아보았다.
부소산은 높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낙화암과 백마강
늦은 나이에 가보게 되어 다행이었다
무릎이 시큰거렸지만, 더 늦어지면
이만한 곳에도 가보는 것은 어려우리라
천천히 걸어 봄날의 부소산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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