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
  

백마강 시.사진/무정 정정민 물새 우는 백마강 계절마다 새로운 꽃이 피련만 한번 가신 백제의 삼천궁녀 여전히 말이 없다. 무명 병사의 혼이 잠자는 곳 녹슨 병장기는 세월의 흔적을 말하고 그 통한의 시간을 돌아보는 나룻배는 날마다 백마강을 어루만진다. 고란사의 종소리 지금도 애달프다 말이 없는 백마강은 유유히 흐르지만 어찌 잊고 있을까 백제의 복원 마르지 않는 물과 같으리라

  

백마강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에 종소리가 들리어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메어 울면 계백장군 삼척님은 님 사랑도 끊었구나 아~ 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

  

백마강/옮긴 글 사자하(四泚河)·백강(白江)·마강(馬江)이라고도 한다. 그 범위는 정확하지 않지만 청양군 장평면과 부여군 규암면 경계를 따라 흐르는 금강천(錦江川:또는 金剛川)이 금강에 합류하는 지점에서부터 부여군 석성면 위쪽까지를 백마강이라 부른다. 부소산(扶蘇山)을 끼고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심하게 곡류하는 사행하천이다. 부소산의 북쪽 사면을 침식하여 절벽을 이루고 부여읍 남부 일대에 넓은 퇴적사면을 발달시켰다. 공격사면인 부소산에는 낙화암이라 하는 높이 약 10m 가량의 침식애(浸蝕崖)가 있으며, 낙화암 상류 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강 가운데 조룡대(釣龍臺)라 하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이 적을 쫓아 금강을 건너려 할 때 강물 속에 교룡(蛟龍)이 방해하므로 교룡이 좋아하는 흰 말을 미끼로 조룡대 바위 위에서 잡아올렸다고 하여 강 이름을 백마강, 낚시했던 바위를 조룡대라 했다고 한다. 663년(문무왕 3)에 백제와 나당연합군과 일본의 수군이 격전을 벌였던 백촌강(白村江)의 싸움터가 백마강이라는 설이 있다. 백마강의 남부에는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으나 하상이 높아 범람이 잦은 홍수 상습지역이다. 따라서 홍수피해를 막고 경지의 효율성을 증대시켜야 하며, 백마강의 자연경관은 백제권의 문화관광자원과 함께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백마강에서/무정 정정민 매표소를 지나 천천히 부소산성을 지났다 세월호 참사로 관광객도 없다는 관리인의 말을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 제자를 잃은 선생님 친구를 잃은 학생 선생을 잃은 제자 그리고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 얼마나 가슴 아플지 다 헤아리기 어려우리라 백제의 흔적을 찾아 올라가는 길에는 오랜 세월로 크게 자란 나무가 무성했다.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 안되어 낙화암 바로 위에 있는 백화정에 올랐다. 바위에 높게 앉아 백마강을 바라보는 백화정 그 옆에 벚처럼 서 있는 천 년 소나무 아래로 구비쳐 흐르는 백마강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분명한데 그 역사는 아픈 사연이 많다 특히 삼천궁녀의 사연은 그렇다. 이곳에서 다시 고란사로 향했다. 가파른 경사로를 걸어 내려가자 초파일 연등이 걸려 있었다. 고란사를 지나 고란사 나루터로 향했다. 배를 타볼 요량이었다. 사람이 없어 운행을 자주 하지 않았다 승선인원이 7명이 되어야 한다는데 대기자가 나와 아내뿐이라 포기하고 돌아서려는데 일가족 4명이 이내 당도해서 그들과 같이 배에 올랐다. 고란사 나루터에서 구드래 나루터 까지는 5분의 거리 이렇게 백마강에서 배를 타보았다 낙화암 전설과 백마강 전설을 들으며 이 강에 투신한 삼천궁녀 그리고 격렬했던 전쟁을 생각했다. 모두 역사의 뒤안길이지만 돌아보며 아픈 역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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