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정 정민
2015. 4. 15. 07:57
2015. 4. 15. 07:57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닭 칼국수/정정민
겨울 내내 운동이 부족하고
친구가 그리워 허기진 마음을
어떻게 달래볼까 고민을 하던 차
우연하게 들리게 된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아름다운 음악이야 있고 글 향이 넘치는 곳이지만
온라인상이니 얼굴을 마주하는 것과는 다른 곳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날 보고 싶다고 했다.
하며 덧붙인 말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야!'"하지 않는가.
누군가 만나 커피 향이라도 나누고 싶었던 나를
아주 손쉽게 자극하는 말이었다.
정말이냐고 확인을 했는데 농담이 아니란 말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바로 가겠다는 약속을 해버렸다.
그 대신 점심은 사야 한다고 조건을 걸었다.
그런데도 흔쾌히 승낙하는 친구를 향해
흥겨운 봄 나들이를 하고야 말았다.
전태일 흉상이 있는 청계천 다리
동대문 종합시장과 평화시장 사이를
푸른 청계천이 흐르고 산책 나온 사람이 한가한
개천은 작은 쑥이 올라오고 둑길은 어느 사이
원추리 잎이 한 뼘이나 자라 있었다.
말쑥하게 정돈된 거리를 친구와 같이 걷는 것은
어느 봄날의 행복이 아닐 수 없었다.
고서와 모자 원단과 기계가 뒤섞인 거리
그 작은 샛길에 들어서니 닭 칼국수 집이 있었다.
생선 굽는 냄새가 골목을 꽉 메우는 가운데
유난히 사람이 북적이는 집으로 들어섰다.
앉을 자리가 부족하여 이미 와 있는
낯선 사람과 동석하여 친구와 나란히 앉았다.
초등학교 동창이라 해도
단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다.
같은 동창이란 점은 참 많은 대화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데 그럴 기회가 생기지 않으면
서로에 대하여 인사만 할 뿐 마땅한 말을
주고받기 힘들다. 그런데
닭 칼국수 집에 마주하니 너무 편했다.
양은 솥에 영계가 팔팔 끓고 있었다.
고추 양념 다지미통이 각자 앞에 놓이고
김치와 가래떡 각종 양념 통이 있었다.
친구가 소스를 만들어 주어 매콤새콤한
소스에 잘 익은 연한 닭고기를 먹어 보니
질리지도 않고 부드러워 혼자서 다 먹다시피 했다.
이어서 닭국 물에 칼국수를 넣어 마저 먹게 되니
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지
졸음이 다 쏟아졌다. 배가 부르고 햇볕이 따뜻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친구가 있는데 내게 부족한 것이
하나라도 있었겠는가. 3인분을 둘이 먹고
그 대부분을 내가 먹었으니 오죽하겠는가.
나른한 어느 봄날
친구를 만나 생소한 메뉴의 닭 칼국수를 먹는 일은
청계천이 보이는 길에서는 낭만이다.
구수한 국물 맛이 오늘도 생각나는 것은
정겨운 친구의 우정이 양념이 되어서일 것이다.
다시금 몇 번이라도 오란 당부를 뒤로한
내 발길은 청계천 분수 같았을까?
물속을 유영하는 고기 같았을까?
아니다. 그 하늘을 나는 비둘기였을 것이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행복했단다.
-한 8년 전의 봄날 친구가 사준 닭 칼국수
친구가 장사하는 근처에 가게되어
문득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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