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길
  

은행나무 길에서 글 寫眞 茂正 鄭政敏 늦은 출근을 하는 나는 은행나무 길을 간다. 아기 손처럼 귀여운 은행잎이 돋던 봄 은행잎을 유난히 좋아했던 꽃집 여사장님을 생각했다. 그 사장님의 여동생이 암으로 고생하는데 동생도 역시 꽃집을 한다며 저 어린 은행잎이 피어나 강하고 굳센 잎이 되듯 동생도 그렇게 건강하여 지면 좋겠다는 소망의 말을 하여 가슴이 아팠던 일이 생각났다. 늘 씩씩하던 그분 동생의 이야길 하며 눈물짓던 모습이 은행잎과 같이 떠오르곤 했다. 만나 뵌 지 오래되어 어찌 사는지 모르지만 은행잎에 그분 얼굴이 겹친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볕이 조금 식자 은행잎 색이 조금 변했다. 그러자 탐스런 은행이 가끔 길에 떨어져 뒹굴었다. 사람의 발길에 채여 굴러가기도 하고 으깨지도 하여 좀 안쓰러웠다. 아내는 은행을 주어 보라고 했다. 한 알 두 알 모아 은행 밥을 해먹자는 것이었다. 틀린 말 같지 않아 출근하며 퇴근하며 은행을 줍기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양이 적어 불만스럽기도 했다. 은행은 냄새도 나고 보관도 어려워 주워 속히 처리하여야 하는데 날마다 하기는 좀 번거로웠다. 그래도 날마다 조금씩 모아 비닐 봉지에 넣고 꽁꽁 묶어 두었다가 날 잡아 처리하자 하고 어제도 퇴근길에 은행나무 밑을 지나는데 발밑에 은행이 떨어졌다. 둘러보니 열 개 남짓의 은행이 떨어져 있었다. 자전거를 멈추고 은행을 줍기 시작했다. 저녁 9시쯤이라 제법 어두운 길이었으나 가로등이 있어 은행이 잘 보였다. 다 줍고 막 돌아서 가려는데 등 뒤에서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은행이 길바닥에 수북하게 떨어져 있었다. 이유를 몰라 둘러보니 건강한 4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은행나무를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몸짓으로 은행을 주워가라는 것이었다. 인도와 차도 구분없이 떨어진 은행을 급하게 줍는데 인도보다 차도부터 주었다. 차가 지나가면 으깨지기 때문이었다. 이때 멀리서 달려오던 차가 비상등을 켜고 멈추어 전조등 불빛으로 쉽게 줍도록 도왔다. 그냥 자연스럽게 떨어진 은행만을 주으려 했다. 그런데 나에게 은행을 더 많이 주워가라고 지나가던 행인이 나무를 가볍게 흔들자! 은행이 우박처럼 쏟아졌고 그것을 줍는 나에게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자동차가 전조등으로 어두운 길을 밝혀 주었다.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누군지 모르지만 그들은 모두가 작은 행위를 통하여 나에게 행복을 주었다. 사람이 사람과 어울려 사는 세상 서로 부탁하지 않아도 배려하고 각자 자신이 한 분량만큼의 배려로 행복하여 지는 세상 이런 세상에 살아가는 나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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