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모도 보문사

옹이/무정 정정민 천방지축 날뛰던 세 살의 아이 장애물도 낭떠러지도 없어 지붕 위에 날아 내리고 마루에서도 엎어지고 문턱도 평지 같았다. 무릎이 부서져 신열이 들끓어도 지팡이 하나 딛고 천하를 주유하다. 스무 여덟에 가슴이 아렸다. 이 병원 저 병원 기웃거리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꽃보다 아름다운 천사를 만났건만 하나의 옹이가 더 필요했던 게지 세상을 한 눈으로만 봐야 했으니 귀여운 둘째 딸이 태어난 다음해였다. 세 개의 옹이는 지워지지 않고 지천명의 나이엔 더 단단하고 더 커지고 말았다. 그래도 내 나무는 옹이가 아닌 곳이 훨씬 더 많다.

석모도 보문사/무정 정정민 사찰에 가면 자꾸 자신을 돌아본다 몸이 아파 사찰에서 요양한 것도 있지만 그 시절 얼마나 처절했던지 잊을 수가 없다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내 생을 그렇게 마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위기감 마저 들던 때였다. 몸이 이곳저곳 아파하던 일을 할 수 없었으니 절망감만 생겼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몸이 점차 회복되어 지금까지 살아가는 것을 보면 사람의 생각은 오히려 자신을 더 죽일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을 바라고 무엇으로 희망을 품는가가 바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이다. 사찰보다 너무 보잘것없는 작은 교회가 사찰 뒷길에 있었다 가끔 산책하며 그곳을 지나갔다 몇 명 안되는 아이들이 놀던 곳 황토가 무척 질척거리던 토담교회 그곳에서 나던 찬송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성탄절 캐럴도 들리고 웃음소리도 들렸다. 지금 그것을 기억한다.

'시인 정정민 >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대공원 수목원 2 단풍편지  (0) 2013.08.29
보문사 감로다원  (0) 2013.08.27
석모도 2  (0) 2013.08.25
석모도 가는 길  (0) 2013.08.25
강화도 전등사 3  (0) 2013.08.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