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꽃무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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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석산
옮긴글. 사진/茂正 鄭政敏
석산은 수선화과의 다년초로 중국이 원산이며
개화기는 9~10월이고 키는 30~50cm정도이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통하여 관상용으로 들여왔다가
남부지방의 사찰 등지에서 자라게 된 꽃이다.
상사화는 잎이 진 후에 꽃이 피지만,
이와 반대로 석산은 꽃이 진 다음 잎이 나온다.
석산(石蒜)은 돌틈에서 나오는
마늘모양의 뿌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꽃이 무리지어 핀다하여 꽃무릇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가을가재무릇',
'붉은상사화', '용조화', '산오독', '산두초',
'야산', '바퀴잎상사화', '지옥꽃', '중꽃',
'중무릇' 등 많은 이름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인도에서는
'지상의 마지막 잎까지 말라 없어진 곳에서
화려한 영광의 꽃을 피운다' 하여
'피안화(彼岸花)' 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빨간 꽃잎 사이로 수술이 길게 나와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갈고리같이 생긴 붉은색의 꽃이다.
백로(白露)무렵부터 피기 시작해 9월 말이면 절정을 이룬다.
석산을 사찰 인근에 많은 심는 이유가 있는데,
그 쓰임새가 요긴하기 때문이다.
석산의 뿌리에 방부 효과가 있어
뿌리에서 낸 즙을 물감에 풀어 탱화를 그리거나
단청을 하면 좀이 슬지도 않고 색이 바래지도 않는다고 한다.
또 전분을 채취하여 종이를 서로 붙이거나
책을 엮는데 필요한 강력본드로 이용하였는데,
리코닌성분의 살균력 때문에
이 풀로 붙인 한지는 수천년이 지나도록
좀이 슬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인쇄문화는
불경출판이 그 효시였으니, 불경을 인쇄, 제책하던 절에서
석산을 많이 심었던 것이다.
이 꽃은 남부지방에서만 자라며,
예로부터 꽃과 잎이 같이 자라지 않는다 해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석산전설
옮긴글 사진 무정 정정민
옛날 어느 깊은 산속의 괴괴함만이 감도는 아담한 산사에,
속세를 떠나 오직 불도 닦는데만 몰두하던
한 젊은 스님이 있었다.
유난히 장대같은 비가 쏟아져 내리던 어느 여름날,
고요한 산사에 속세의 한 젊고 아리따운 여인이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비가 너무 쏟아져 산아래 마을로 내려가지 못하고
사찰 마당의 나무 아래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스님은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그 여인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하게 되고
그때부터 스님의 혼자만의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날이 갈수록 수행도 하지 않고 식음도 전폐한채,
오직 그 여인에 대한 연모에 시름시름 가슴앓이를 하던 스님은
급기야 석달 열흘만에 선혈을 토하며 쓰러졌고,
결국 상사병으로 죽고 말았다.
함께 기거하던 노스님이 이를 불쌍히 여겨
양지쪽 언덕에 묻어 주었는데,
그 무덤에서 한포기의 풀이 자라났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긴 꽃줄기에서 선홍색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이 바로 젊은 스님이 죽으며 흘린 피처럼 붉은 꽃
'석산' 이었다고 한다.
꽃말은 슬픈 생각이 듬, 슬펐던 기억, 괴로움, 당신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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