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
  

고향의 달 詩 寫眞/茂正 鄭政敏 유리창 너머 고향을 비추는 달 수십 년이 지났어도 변함없다. 회한의 세월 30년 지나 20대의 고향 그 집에 누워보니 가을 풀벌레 소리 요란하고 달 밝아 잠 못 이루자 이웃집 처자 부엌에 들락 이던 모습 사립문 밖 개울가 마을 처녀 목욕하던 소리 밤늦도록 책장 넘기다 본 창문 밖에 어리던 화단의 달그림자 바람에 울던 뒤뜰 댓잎 소리 어제 일 같으나 그때 들리던 아버지 기침 소리 어머니 한숨소리 들리지 않고 내 얼굴엔 어느 사이 주름만 깊어졌다. 언제나 그리운 고향 앞산 범바위 검게 숨어 있고 작은 새소리 아련한 나팔꽃 피는 고향은 잠 못 드는 내 안에 다 있다.

혓바늘
  
보름달 뜬다는 밤이었다. 
신열이 들끓어
보리차로 속을 달래며
기침이 멈추길 기다렸다. 
밤 깊도록 설 잠만 자다
문득 창 밖을 보니 
먹장구름에 가려진 보름달은
그때도 보이지 않았다. 
새벽이면 나타날까
어지러운 머릿속을 달래는데
이른 출근하는 옆집의 문소리
꿈결인 듯 들려
또 달을 생각했다. 
여명의 빛이 달빛처럼
가슴으로 쏟아지는데 
기침으로 목이 아리고
혀도 쑤신다. 
가벼운 감기려니 했는데
이렇게 봄맞이하는가
오늘은 그립다는 말도 힘들다.
혀에 바늘이 돋아                         시 영상 무정 정정민

가을 밤/글 무정 정정민 달이 밝았다 아파트 옆길로 나 있는 산책로를 걸었다. 구절초가 청초하게 피어나 하얗게 웃고 있었다. 하늘엔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다 가을밤의 정취를 더했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천왕정이 어둠 속에서도 듬직하게 서 있었다. 달을 보면 수만 가지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리움이지만 그 그리움에는 친구에 대한, 부모·형제에 대한 고향에 대한, 옛사랑에 대한 것들이 꼬리를 물고 달려 나온다 구절초 한 송이 따서 손에 들고 향을 맡으며 길을 걸었다. 봄에 보았던 달, 여름에 보았던 겨울에도 보았는데 가을은 다른 계절과 또 달랐다. 진한 그리움의 달이었다. 나에게 그리움이 없었다면 달에 대한 시 한 편이라도 쓸 수 있었을까 가을밤의 달은 분명 그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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