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왕저수지 정통밥집 7
 

물왕골 연가 詩 사진 무정 정정민 들꽃향기 가슴에 한 아름 안고 안개처럼 조용히 조는 물왕골 적막을 찢는 까치소리 크다. 어느 연인의 슬픈 사랑을 숨기고 싶어 잔물결마저 깊게 얼었는가 긴 침묵을 다짐하는 자라처럼 심연의 모래톱 속에 숨었다. 그래도 다하지 못한 사랑을 달빛은 서러워 눈물을 흘리고 그 씨앗이 꿈꾸는 개나리 꽃망울 되었다. 겨울나무는 산에서 자고 바람이 숨죽여 지나는 하늘은 지나가지 못한 구름이 떠있어 봄은 멀리 있지만 남아있는 마른 꽃 향기 희미한 사랑은 노란 개나리로 피어나리라.

보리밥/무정 정정민 보리밥이란 말은 먼저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할머니가 생각나고 어머니 모습이 아른거린다. 무명검정치마와 흰 고무신을 신고 부엌으로 부지런히 들어가고 나오던 누님의 모습이 떠올라서 더욱 그럴 것이다. 맛있고 든든한 음식이었다는 생각보다는 배고픈 시절의 요긴한 식량으로, 먹고 난 뒤에도 곧 배가 고팠던 서글픔으로 추억되는 음식이지만, 그래도 그 음식을 먹고 자란 향수가 지금은 그리움으로 생각나서 보리밥집은 정겨운 집이 된다. 위가 좋지 않은 나는 고기보다는 보리밥을 먹자는 말을 좋아한다. 소화가 잘 되고 성인병예방에 좋다는 생각에서다. 푸성귀를 넣어서 비벼먹는 맛은 먼 과거로 쉽게 돌아갈 수 있고 그 속에서 어린 날의 추억을 쉽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적 기억으로 맛있게 먹었던 보리밥은 박으로 만든 바가지에 아주 조금 익은 열무김치를 넣고 고추장도 넣어서 보리밥과 잘 비비는 것이다. 이때도 아주 엷게 저민 생마늘을 넣어서 참기름과 같이 잘 비비는 것을 잊지 않는다. 간을 맞추는 의미에서 된장을 넣기도 하는데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았던 때의 식욕이라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배도 부르지 않고 질리지 않는 맛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그리움 같은 것이다. 이 보리밥에서는 향긋한 박 냄새가 났다. 바로 바가지 냄새다. 그뿐만 아니라 고추장의 얼큰한 맛과 톡 쏘는 마늘 시원한 열무김치의 조화는 환상의 맛이다 혀끝의 미각을 자극하기 때문에 후각과 미각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먹는 일에만 열중하게 된다. 나중에 일어서면 너무 배가 부른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맛있게 먹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허기를 끄기 위한 서글픈 음식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성장하면서 맛있는 음식으로 재입력되어 있다. 그래서 보리밥은 언제나 먹고 싶은 음식 중 하나다. 그러던 차에 보리밥을 먹어보자는 제안을 해오신 분이 있었다. 얼마나 기분 좋은 전화던가. 최근에 먹어보지 못하여 허기진 사람처럼 먹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는데 내 심정을 꿰뚫어 보고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토속적인 향기가 물씬 나는 집에 가서 하얗게 언 저수지를 보면서 보리밥을 먹자고 하니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 집은 저수지 바로 곁에 있고 구들이 따끈따끈하여 외로움에 지치고 얼어버린 마음까지도 녹일 수 있다니 그 달콤한 말에 넘어가지 않는다면 너무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이 밥을 먹은 뒤에 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따라나섰다. 기대는 서글픈 눈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 밥집은 많은 사람이 북적일 정도로 내 기대를 조금도 깎아내리지 않고 충분하게 만족시켰다. 들어서는 입구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널따란 주차장이 그랬고 잎 진 등나무가 그랬다. 흙마루에 깔려 있는 자갈과 맷돌이 저절로 시골을 연상케 했다. 반듯한 기와집이 아닌 것도 맘에 들었다. 지붕이 어설프고 집의 구조 또한 현대식 건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깨끗하게 윤이나는 마루며 방바닥 그리고 밝은 불빛이 썩 맘에 들었다. 단정한 종업원의 옷차림과 태도도 맘에 들었다. 굳어 있는 표정이 아니라 마치 친척을 대하는 것 같아 접근이 조금도 어색한 집이 아니었다. 보리밥 전문집인 것이 확실한 듯 메뉴도 간단했다. 두세 가지였을 뿐이었다. 어떤 것을 시켜도 보리밥이 결국은 나오고 말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 집에 간 이유가 보리밥이니 보리밥을 시켰다. 맨 먼저 나온 것은 숭늉이었다. 커다란 대야 같은 그릇에 누룽지가 가라앉아 있는 알맞게 데워진 숭늉은 국자로 떠서 컵에 담아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 곁에는 옥인지 대리석인지 직경이 내 한 뼘이 됨직한 그릇이 있고 절굿공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릇 속에는 잘게 부서진 깨들이 있었다. 동행의 설명에 의하면 이 그릇 속에 깨를 넣고 잘게 부순 뒤에 보리밥에 넣어서 비벼 먹는 맛도 즐겁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장난처럼 깨를 넣어 절구로 찧는 일을 올 때마다 하면서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김치 담그던 일을 기억한다고 했다. 나도 그 즐거운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 줌의 깨를 넣고 절구로 찧자 깨가 으깨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툭툭 터지는 비명소리가 즐거운 나는 아무래도 인정머리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그릇이 몇 개인지 모를 정도로 상 가득 반찬이 차려졌다. 맨 먼저는 작은 공기에 가늘게 뽑아놓은 국수를 새콤하게 말아 내놓고 작은 종기에는 부드럽게 수프처럼 만든 달걀 탕을 내놓고는 구절판처럼 생긴 커다란 접시에 각종 비빔 채소를 곱게 차려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계속하여 보리밥과 비빌 커다란 양푼 같은 그릇 그리고 열무김치 도토리 묵 등 다 헤아리기 벅찬 반찬이 차려졌다. 아무래도 내가 어렸을 적에 먹었던 것보다는 초호화판이다. 더구나 채소까지 놓고 갔다. 쌈을 드실 분은 드시라는 것 같았다. 커다란 수제비 그릇을 보는 것 같은 얼어버린 저수지를 창 너머로 보면서 그 하얀 얼음 위로 나는 철새를 보니 늘 추웠던 어린 시절의 겨울이 바로 손끝을 얼게 할 것처럼 여겨졌지만 따끈따끈한 구들에 엉덩이가 재미있어 그 속에 손을 넣어 보니 그 달콤한 온도에 보리밥이 유난히 맛이 있어졌다. 사실 이 밥을 먹기 위해 점심까지 거른 나였기 때문에 이처럼 초호화판 보리밥이 맛이 없다면 그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경험이다. 마주한 사람까지 정겨움이 더하는 보리밥집이었다. 맛있는 식사는 같이한 사람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마술을 가졌다. 겨울의 보리밥집은 같이 간 사람을 더욱 정들게 하는 것 같다. 정이 들고 싶다면 이런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말았다. 추억의 보리밥은 단순히 허기를 때우는 일만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겹고 행복한 어린 날로 돌아가서 허탕한 세상일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행복의 요람 같은 곳이었다. 다음도 반드시 가야 할 곳이라고 다짐을 해두었다. 같이 갈 사람은 마음속에만 두었다. 060112 아주 오래전에 쓴 글이다 다시 읽어보니 그날이 선명하여 바로 어제 일 같다 이번은 가을이었지만 같이 갔던 몇 사람의 얼굴이 생각났다 저렴하고 색달라 밥 한 그릇 먹는 것도 즐거움이 되는 곳 이 가을이 가기 전 아름다운 단풍을 보며 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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