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정 정민
2013. 12. 25. 08:15
2013. 12. 25. 08:15
2013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기도
시. 寫眞/茂正 鄭政敏
나에게
사랑할 사람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나의 전부를 다 드리고 싶어
안달이 나도 좋을
밤에는
너무 보고 싶어 잠을 이루지 못해도 좋고
수많은 편지를 쓰고 써도
그 샘이 마르지 않아도 좋을
같이 걸어 보고 싶은
흰눈이 내리는 산길이 생각나
어서 눈이 내리길 바라고
자꾸 창문을 열어 보는
그런 마음이 생겨도 좋을
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찻집
하루 내내 앉아 있어도
둘이라면 지치지 않을 사람이
나에게 생기면 좋겠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더욱 생각나
무작정 거리를 거닐다
캐럴이 반짝이는 교회에서
꼭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 사람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28살의 크리스마스
글. 寫眞/茂正 鄭政敏
35년 전 가을 이른 아침
충무로 하숙집 근처
일어 학원으로 향하던 나는
갑자기 기침을 심하게 했다.
3층에 있는 학원에는 처녀 선생님이
서너 사람의 수강생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도 그 수강생의 한 사람이었다.
계단을 올라도 멈추지 않아
잠시 2층 화장실에 들려
마지막 기침을 하려고 좀 심하게 했는데
목구멍에서 비릿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뱉어 보니 각혈하고 있었다.
너무 놀랍고 걱정되어 머리라 텅 빈 것 같았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기침을 참고
수강하던 중 창백한 나를 본 선생님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감기인가 보다고 대답을 했지만
각혈했던 기분 나쁜 생각이 그 냄새가
수강시간 내내 나를 불안하게 했다.
하숙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성수동에 있는 회사로 향했다.
하지만 일손이 잡히지 않아
왕십리 내과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예상대로 폐결핵이었다.
그렇지만 믿어지지 않아
을지로 백병원에 들러 다시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역시 결과는 같았다.
아침엔 일어를 배우고 낮엔 회사에 나가고
저녁엔 남영동에 가서 학원강의를 하면서
젊은 날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사이 내 몸 안에 결핵이 침투하여
나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도저히 서울에 있을 수 없어
익산시 마동에 있는 한 사찰에 머물게 되었다.
결핵의 기초치료라 할 스트렙토마이신을
매일 주사 맞고 약도 먹었다.
위가 좋지 않아 약을 먹고 나면 한 두 시간
잠에 빠져야 했다. 식곤증인지 약곤증인지
졸음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치료를 두어 달 하던 어느 날
사찰 뒤에 있는 작은 산을 산책하게 되었다.
그곳엔 5평쯤 되어 보이는 작은 토담교회가 있는 것을 봤다.
근처엔 난민 몇 가족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예배드리는 교회 같았다.
큰 사찰 뒷길 소로에 그런 교회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뒤로 그 산길을 자주 산책하노라면
그 교회에서 찬송가 소리도 들리고
아이들 소리도 들리는 것이었다.
사찰 앞엔 작은 논들이 펼쳐져 있는데
추수가 다 끝난 길에 까치들이 날아와
먹이를 찾던 싸락눈이 내리던 12월 24일
그날도 약을 먹고 비몽사몽 간에 어느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 소리도 들렸다.
내가 기거하던 방에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는데
작은 토담교회 찬송가 소리가 들리자
전주에서 친구들과 같이 대학생 성경 읽기에 나가
예배드리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가 내 나이 27세의
성탄절이었고 내 생애 처음으로 연극을 했었다.
전주 예수병원 의사와 중고교 선생님
직장인과 대학생으로 구성된 그 모임에서
난 처음으로 아주 열성적으로 일대일 성경공부를 했고
연극도 하게 되었다. 예수를 기다리는 안나의 남편역으로
대사가 많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때 그 모임 친구들은 모두가 너무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아주 순수했다. 해외선교도 나가고
직장 내에서도 제자 훈련을 하는
아주 열성적인 친구만 모였었다.
금요 모임에서는 생활 속에서 발견한 믿음에 대하여
편지글로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는데
처음으로 그런 종류의 편지글도 써보았다.
그 자리에 참석한 친구들이
내 편지를 읽자 무척 놀라워했었다
믿음이 좋다는 말보다 편지를 잘 쓴다고 표현했었다
모두 아름다운 친구로 기억하는데
그해 난 서울로 가게 되었고
몸이 아파 익산에 내려와 요양하던 중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쓸쓸하고 외로운
누워서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친구도 없고 교회에 가지 못하고
사찰 뒤 작은 토담교회에서 들리는
아이들 캐럴을 들으며 눈물지었었다.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지만
오늘 문득 그때 일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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