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밥
 

보리 밥 시. 사진/茂正 鄭政敏 찬바람 살을 에는 동짓달 찢어진 창호지로 황소바람 들어와 방은 냉골 내 몸도 얼음장이던 이른 새벽이었다. 까치울음 처량 하더니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 몸 부르르 떠시더니 세상의 모든 것을 놓아 버렸다. 이웃이 먼저 알고 찾아와 호곡하던 그 날 누런 얼굴 지친 어머니 눈물 겉보리 서 말도 안 되는데 어이 살란 말인가 통곡하던 음성 동짓달 그 차가운 바람보다 더 추웠다 심장도 오그라들게 한 소리 50년도 더 지났는데 한 그릇 보리밥을 보니 생각난다 모진 생명 죽지 않고 살다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 연세보다 더 살아 어느 사이 할아버지가 되었는데 자꾸만 어린아이가 되어간다 슬픈 추억은 나이도 먹지 않고 내 가슴에 그대로 정지해 있어. 음악:천년의 침묵/김영동

  

기와집 보리밥집 글 寫眞/茂正 鄭政敏 길을 가다가 우연하게 들린 보리밥 집 초가지붕이거나 문이 너무 허름하거나 방바닥이 우습게 보이거나 하지 않았다 너무나 정갈하고 깨끗하여 마치 부잣집 안방에라도 들어온 것 같았다. 황태와 보리밥을 주문하였다. 한 그릇 보리밥은 꽁보리밥이 아니었다 드문드문 쌀도 섞인 제법 고급 밥이었다. 내 어릴 적 먹었던 보리밥은 새까만 꽁보리 밥이었으니까 혀끝에 닿는 느낌도 깔깔하여 입안에 굴러다녔던 것 같은데 지금의 보리밥은 부드럽고 먹기도 편안하다. 지독하게 가난하여 추수가 끝나도 쌀밥 구경하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가 오랜 병고로 누워계시어 도시로 진학하지 못하고 시골로 내려와야 했던 형님과 우리 형제들이 힘든 겨울을 보내던 어느 해 아버지 소천하시던 순간을 나만 보았다. 유난히 추웠던 날 구들도 다 식어 춥고 내 몸도 추웠다. 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서러웠지만 먹을 것도 없다며 눈물 흘리시던 어머니 생각 그 서러운 눈물 오랜 병고 끝에 어린 자식들만 줄줄이 8남매 놓고 가신 아버지가 야속하고 살아갈 일이 막막해 우시던 어머니 생각도 난다. 이제는 그 보리밥을 건강식으로 먹는다 그렇지만 보리밥을 대하면 겨울 식량도 없다시며 한숨짓던 어머님 얼굴도 언제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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