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 아름다운 양수리에서

물안개 아름다운 양수리 길에서/茂正 鄭政敏 이른 봄, 아직 나무에 새순이 올라오지 않았던 3월이었다. 흐린 차창 너머로 강이 보이는 길을 따라 양평으로 가고 있었다. 주말이라 행락객이 많을 법도 한데 비가 오고 있어서인지 교통량이 많지 않아 평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강변길을 가는 것은 그 길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운치가 있고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뿌연 물안개가 강을 따라 연기처럼 올라오고 있어 그 가운데 있는 버드나무가 더욱 황홀한 모습으로 보였고 강은 먼 꿈속의 이니스프리 섬의 전경을 떠올리게 해서 몽환적인 환상에 쉽게 젖게 했다. 목적 없이 이 길을 지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양평에 찻집을 개업한 시인님의 개업 행사에 가는 길인데 동행하는 두 분이 또한 시인이었다. 한 분은 인사동 시인으로 한 휘준 시인님이었고 또 한 분은 영혼의 떨림 같은 목소리로 시를 더욱 시답게 낭송하시는 송 연주 시인 겸 낭송가였다. 강이 내려 보이는 길을 가게 될 때였다.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물새가 포르르 날아갔다. 물안개가 낀 강가에 버드나무가 늘어져 있고 그 사이를 새가 날자 선경이 이런 것이려니 생각되었다. 희미한 먼 산자락이 더욱 멋지게 보이는데 송 연주 낭송가님이 갑자기 시집 하나를 꺼내 펼쳐들고 낭송을 하겠다고 하셨다. 이런 선경에서 낭송을 하고 싶으신 것이었다. 라디오 볼륨을 줄이고 천천히 운전하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는 선경이 아까웠고 낭송하는 목소리를 더 세밀하게 듣고 싶어서였다. "몽돌해변에서/세이 하니/한 휘준 쉬지 않고 푸른 물빛 흔들어대는 그리움의 원천 다도해 돌고돌다 내 가슴에 파도치는 당신의 애절한 사랑이 더 큰 아픔으로 나를 때리며 바다의 시지프스가되어 밤낮 몽돌을 굴려 올립니다 안을 수록 다시 물결에 쓸려 멀어져 가는 안타까움 차르르 차르르 수없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끝없이 반복되는 아픈 사랑의 형별 바람의 언덕을 맴돌아 온 神話(신화)속 사랑이 울고 있다 너도 나도 가슴 한 켠 뭉그러져 몽돌되어 함께 흐느끼고 있다." 많은 낭송을 들었고 낭송회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낭송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운전하는 옆자리에서 육성으로 듣는 낭송 고요하게 흐르는 안개와 강물도 분위기을 더욱 고취시키고 작은 차 안이란 것이 음성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하여 숨 쉬는 소리까지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그래서일까 전율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낭송을 들으면서 일어나는 이런 감동은 처음이었다. 흐느끼는 영혼의 목소리 같은 빼어난 송 연주 시인 겸 낭송가의 목소리가 그랬지만 비오는 날 강가를 지나면서 듣기에 딱 알맞은 수채화 같은 한 휘준 시인님의 시도 그랬다. 더구나 주변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물안개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젖어 버렸는데 아름다운 목소리와 시는 너무 절묘하게 분위기에 맞아 나의 심금을 울리고 말았다. 삶에서 이렇게 감동받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 이런 경험을 자주 하고 싶다. 물안개란 말과 양수리 그리고 시낭송 이란 말만으로도 이날의 감동은 바로 살아난다. 언제나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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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아벨 승마장 2
  

푸른 초원/무정 정정민 하늘에 흰 구름 떠가면 내 마음은 초원을 달린다. 거칠 것 없는 널따란 대지를 검은 털이 깨끗한 말이 되어 힘껏 질주한다. 지평선 저 멀리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 꿈과 희망이 솟아나는 맑은 샘이 있다는 그 전설을 믿고 달린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듣고 나는 아버지로부터 들은 초원 끝의 그 샘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고 향기로운 과일이 열리며 온갖 새들과 짐승이 찾아와 목을 축인다는 곳 한 모금의 물로도 영원히 늙지 않고 피로가 오지 않아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그 전설을 믿고 간다. 구름은 그 샘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십자 성 푸른 잔디는 영원히 늙지 않는 내 고향 오늘도 초원을 달린다. 하늘에 떠가는 뭉게구름을 보며 ********************************** 베르아델 승마장은 말부흥에 있다. 대부도에서 제부도를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고려 말과 조선조에 말을 길러 한양으로 보냈던 곳이라 그 지명이 말부흥 혹은 말봉이 되었다.

 
 

날뛰는 말타기 수필.사진/茂正 鄭政敏 처음 하는 일 그것은 참 서툴다. 갑자기 잘할 수 있는 일이 어디 흔하다 할 수 있을까. 지천명의 나이면 이 세상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오히려 용기가 줄고 겁이 많아져서 매사가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우리 가족이 다 하는 말 타기에 도전하면서도 자꾸 겁을 내고 있다. 나이가 가장 많아 노련하게 대처할 줄 알았는데 가장 어린 막내보다 겁이 많은 내가 참 우습다. 나이뿐만 아니라 신체구조 또한 내가 다른 사람과 좀 다르기 때문에 나 자신도 조금은 겁을 내지만 내가 말을 타기 위해 장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빨간 조끼를 입는 모습을 근심 어린 표정으로 관찰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를 처음 보는 주변에 있던 아주머니였다. 그러나 그런 시선에 부담을 느낄 만큼 나는 어리지 않아서 호기를 부리며 말 가까이 다가갔다. 말 잔등은 코앞인데 그 말 위에 올라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말의 오른쪽에서 타는 일은 좀 쉬울 것 같은데 말의 왼쪽에서 타라 하니 말 주인이 나를 잘 모르는 것 같아 내가 쉽게 탈 수 있는 조건을 요구했더니 말을 후진시키고 다시 말을 내 왼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말을 탈 수 있었다. 이 세상 반백을 사는 동안 타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말은 처음 타보는 것이다. 다리가 네 개이니 넘어질 염려가 없다고 스스로 위로를 했지만 바퀴가 네 개인 자동차보다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처음 타보기 때문에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갈 수록 이런 일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싶어 기회가 된 김에 용기를 다해 탔는데 말 등은 감촉부터가 무척 좋았다. 스프링으로 된 기계가 만들어 주는 느낌이 아니라 생물이 만들어 주는 느낌은 친근감과 더불어 오래전부터 동경해 마지 않았다는 느낌이 저절로 들었다. 소설 속에서 말 타는 장면 그 중에도 초원을 힘차게 달리는 모습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였다. 나는 그런 장면을 생각하면서 지금 말 등에 올라 주변을 보면서 기수가 허리를 잔뜩 웅크리고 자신의 모자 옆에 꽂아둔 깃털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느끼며 세상을 희롱하는 것 같은 행복을 느끼려 하고 있었다. 드디어 나와 우리 가족 다섯 모두가 말 등에 올라타 나를 선두로 말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평온한 것 같았던 심장이 심하게 박동을 시작했다. 아마 긴장한 것이리라. 그렇지만, 긴장이 된다고 해서 눈을 감거나 눈을 더 크게 뜨거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에게 나를 온전히 맡기는 도리밖에 없었다. 말은 자꾸만 절벽 가까운 곳으로 가고 있었다. 내가 말이라면 가지 않을 길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 더욱 불안해 지고 내가 마치 말과 같이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리고 비참하게 거꾸러져 있는 나를 상상하니 너무 무서워 졌다. 어쩌면 말은 나를 말 등에서 떨어뜨리고 자신은 유유하게 자신의 갈 길을 갈지도 모르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책에서 보았던 다리로 말의 배를 차거나 손등으로 말의 엉덩이를 치거나 하지 못하고 우선 겁을 잔뜩 먹고 말 잔등에 놓여 있는 손잡이를 자동차 핸들을 틀듯이 자꾸 절벽의 반대쪽으로 틀었다 그러나 말은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이 가는 속도를 유지하며 때로는 말끼리 부딪히기도 하며 나무 가까이 가기도 하여 내 다리나 발등이 그런 장애물로 해서 손상을 입거나 심하게 비틀릴 것만 같은 불안을 떨어내지 못했다. 내 심정과 상관없이 말은 조용하게 자신의 길을 그냥 가는 것 같기도 했다. 괜히 나만 내 개인적인 습관적 판단으로 불안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말을 탄 한 무리가 나타나더니 발로 말의 배를 차고 채찍으로 말을 후려치며 내가 탄 말 곁을 비호처럼 지나가 버렸다. 내가 탄 말도 흥분을 하는 것 같았다.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불안하여 앉아 있으면서도 서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앉아 있지도 못하고 불안만 가중되었다. 배속까지 심하게 출렁거리는 것이 무슨 일을 만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말을 멈추게 할 브레이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지도 못하니 그냥 숨을 잘 쉬지도 못하고 말이 하는 그대로 따라서 몸을 맡기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말을 탄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그것은 극도로 불안을 느꼈기 때문에 순간으로 지난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는 생각을 말에서 내린 뒤에야 할 수 있었다. 말 위에 있을 때는 다만 말이 멈추길 바라고 빨리 내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말의 동작이나 내 볼을 스치는 바람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초원의 나무나 풀이나 꽃을 볼 여유도 없었다. 말의 등에서 느껴지는 큰 진동을 배가 우선 느끼고 온 위가 뒤집힐 것처럼 요동을 한다는 것이고 이런 요동이 무척 낯설어 어서 그만 경험하고 싶었다. 낯선 것은 불안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긴장과 공포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말이 멈추었다. 바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온 말은 정말 잘 훈련된 말 같았다. 천천히 출발을 했고 조금 빠르게 가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마구 뛰기도 하여 말 타는 내가 긴장과 초조 그리고 큰 진동을 충분히 느끼도록 하였다.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나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책 속에서 보아온 말 타기에 대한 것과는 많이 다른 도저히 잊지 못할 강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심한 공포에서 해방되고 보니 말 등에 올라 있는 동안 나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만을 했었던 것이었다. 사람이 불안이나 공포로부터 얼마나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안 시간이었다. 처음 하는 일 그것은 기대와 긴장 그리고 불안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그런 불안과 긴장이 또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매혹적인 일이 될 수도 있어서 다시 말을 타게 된다면 틀림없이 바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푸른 초원의 지형과 나무와 들꽃의 색과 향기까지 충분하게 즐기면서 말의 체온까지도 다 느끼고 말과 일체가 되는 또 다른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말이 주는 조금은 역겨운 냄새까지 향기로 느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운송수단이나 이동수단으로 원시적이라 할 수 있는 동물을 이용한 거리 이동은 기계가 주는 느낌과 달라서 내가 지금으로부터 한 500년 전쯤에 태어났다면 자가용 같은 말 하나 소유하고 빛깔 좋은 흑마를 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랙션 소리로 나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말의 투레질 소리로 나의 존재를 알리며 밤길은 헤드라이트로 달리는 자동차가 아니라 주변의 지형과 지물을 초감각적으로 냄새와 느낌으로 느끼며 달리지 않았을까 깊은 상상에 잠겼다. 때로는 뒤로 가는 삶도 앞으로만 가는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잠긴 날이었다. 초보자는 언제나 서툴다. 서툴다는 것은 새로운 일을 했다는 증거다. 그것은 그 자신에게 새로운 역사를 선물하게 된다. 그것은 기쁨이 되기도 하고 성공의 커다란 환희를 주기도 할 것이다. 내가 탔던 말의 갈기와 꼬리와 눈빛이 오늘 밤은 자꾸 아른거린다. 내가 기억하는 것처럼 그 말도 나를 기억할까. 나를 염려 하시던 아주머니가 멋지게 돌아온 나를 보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던 모습도 유난하게 생각난다. 0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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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공원 수목원 1

맥문동 꽃/무정 정정민 최근에 알게 된 작은 호수에 자주 가고 있다. 걸어서 빙 둘러본다면 한 시간 가까이 걸릴 것 같고 차로 돈다면 10분쯤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곳이 마음에 드는 것은 물새가 많 이 살고 있고 호수 주변에 야생 꽃들과 풀들이 잘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한층 더 마음에 드 는 것은 주변을 잘 정비하여 꽃과 나무를 심어 놓고 앉아서 쉴만한 의자도 놓아두었기 때문 에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의자에 앉아서 호수를 거쳐서 불어오는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 가는 즐거움을 누려보고 싶다. 풀을 눞이고 새들의 깃털을 흔드는 미풍이라 할지라도 이런 곳에서 느끼는 기분은 참 좋은 것이다. 수양 버드나무와 물속에 자라고 있는 붓꽃잎이 보기 좋다. 낚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즐겁고 물가를 걸어보는 것도 즐거워 그 호수를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지만 여러 번을 가게 되었다. 문득 얽히고 설킨 문제가 머리를 아프게 할 때도 그곳에 가 있는 나를 보기도 했다. 아직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꽃 들도 피어나서 그 꽃을 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 자색코스모스도 여러 송이 피어있는 것을 봤 다. 그런 중에 약간 그늘진 나무 아래 심어진 맥문동을 보게 되었다. 이 맥문동은 어려서부 터 대나무밭에서 봐 왔다. 다만, 이 이름을 알지 못하여 어쩌면 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까지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꽃을 조금 먼 곳에서 본다면 너무 아름답게 보여서 저 꽃 이 무엇일까 하고 관심을 가졌다. 보라색 꽃이 피어나면 화려하지 않은 그 꽃은 나를 자꾸 자신 가까이 다가가게 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었더니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모르고 그 친구가 아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늘 궁금하던 것을 해결하여 늘 그 꽃을 보면 그 친 구 생각이 절로 난다. 구름산 한 음식점에서 여름이 가는 시점에서 본 기억이 난다. 고추잠자리가 그 위에 맴돌고 그 꽃은 아름답게 피어나 나를 너무 기분 좋게 했다. 환한 대낮보다는 해가 지는 저녁 무렵 에 더욱 아름다운 꽃. 대방동 철길 옆에서도 봤고 광명시 아파트 단지에서도 봤다. 꽃이 진 자리에 파란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는 결국 까맣게 변하는데 그때 그 열매를 따서 말랑거리 는 곁 껍질을 벗기고 나면 그 속에 있는 열매가 너무 단단하여 목걸이를 만드는 것이 이것 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른 감이 있는 그 꽃망울을 이 호수에서 보게 되었 다. 아직 뿌리를 잘 내리지 않았는데 다른 맥문동은 꽃을 피울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 그놈 만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세하게 보면 맥문동 꽃 색도 자색과 보라색 등이 있는 것으 로 보였다. 나는 보라색을 좋아한다. 꽃 안개 같은 느낌을 받는 그 꽃이 피어나면 꽃이름을 말해주던 고운 친구 얼굴이 생각난다. 아름답고 친절하여 같이 있고 싶었던 친구다. 꽃망울이 하얀색이었다. 피어나면 하얀 꽃이 아닐 것이란 생각을 했다. 완전히 하얀색이 아 니라 보라색을 띠고 있는 하얀색이었으니 피어나면 아주 고운 보라색 꽃이 작게 피어나라. 그 꽃망울을 보고 온 지가 며칠이 지났으니 지금쯤은 피어나 흔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 당장 가보고 싶어진다. 차로 간다면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 리니 간다면 갈 수도 있는 거리다. 그 고운 꽃에서 늘 친구를 생각한다. 시골집의 대밭을 생 각한다. 맥문동꽃은 가까이 있어서 늘 보고 있지만 그 이름을 몰라 궁금했는데 그 이름을 말 해준 친구가 이 꽃을 볼 때마다 생각난다. 어떤 꽃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이 꽃은 꽃이름을 가르쳐준 친구가 생각난 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이 꽃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하 면 귀를 기울여 줄 사람이다. 코스모스 피어 있고 새들이 드나드는 작은 호수. 작지만 곱게 피어있을 맥문동꽃이 이 밤에 생각난다. 내일은 그 호수에 가서 그 꽃을 보고 와야겠다. 작 은 꽃이 이처럼 안부가 궁금한 날도 있다. 아마도 그리움인가보다. 꽃 속에 숨어 있는 친구 가 그리운가 보다.

열매 숲/무정 정정민 아직도 덥지만 숲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기억하는 숲은 먼 곳에도 있고 가까운곳에도 있다. 무척 더운 때는 멀리 보다는 가까운 곳이 좋겠다 싶어 인천 대공원 숲으로 갔다. 계절이 바뀌면 숲속에서 변화가 생겨 그것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아직 한 여름 같은 때였지만 인천 대공원 수목원에는 이미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양한 열매가 화목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멀지 않아 가을이 오겠다 싶었다. 점차 가을의 모습이 보일 것 같아 가을이 보고 싶다면 자주 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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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향기 수목원 201308-4 소나기

먹장구름 시 사진 / 무정 정정민 금방 비라도 쏟아 놓을 저 기세 마음이 자꾸 급하다. 마당에 널린 고추가 걱정 장군바위 아래 서당골이 어두워 집으로 향하는 내 발길 어지럽다. 듬멀둥에서 오백 미터 그 길이 십리 같을까? 송정을 지나 벽유정인 우리 집 후두둑 방앗간 양철 지붕이 요란하다. 방앗간 지나 작은 개울 발은 더욱 빨라지는데 전방 옆 탱자나무에 참새가 시끄럽다. 이제 마지막 집앞에 있는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내 가슴이 쿵쿵 젖은 사립이 외롭다. 끊어질 것 같은 허릴 참고 뜨거운 태양 볕을 견디며 오동통한 고추를 따서 그 빛깔 같은 햇살에 말리는데 이 무슨 장난인가 투명한 고추의 붉은빛 아내의 새색시 적 다홍치마였는데 내 연모의 정 같았는데 먹장구름 장난에 기진해 가로누웠다.

물향기 수목원 4 소나기/무정 정정민 올해는 유난히 장마가 길었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했다 불볕더위를 견디는 일은 비가 제격일지도 모르니까 잠시 비긴 날의 오산 물향기수목원 산책 주차장 좌측 매표에서 시작하여 작은 산을 하나 넘고 물방울 식물원까지 대부분을 구경했다. 이제는 메타쉐커이어 숲으로 향하는 습지원으로 향했다. 데크길 양옆으로 푸른 수생식물이 보기 좋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펴고 키 큰 메타쉐커이어 숲으로 들어서자 큰 나무 아래라 그런지 빗소리만 요란하고 가는 길은 아직 비가 도달하지 않아 좀 더 진행했는데 어찌나 비가 거세던지 숲이 어두웠다. 다음에 구경하기로 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바람도 세차고 비도 거침없이 내려 우산을 쓰고 있어도 하반신은 다 젖고 말았다. 신발에서 물소리가 났다. 이렇게 특별한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은 무언가 많은 것을 충전한 기분이었다.

비 오는 날의 여행 글 정정민 가벼운 여행이라면 비 오는 날이라고 거부할 필요가 없다. 비가 오면 행동의 자유가 속박당 하기는 하지만 산천초목이 비를 맞아서 더욱 싱그러워지고 산뜻하여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정말 보기 좋다. 더구나 차를 타고 가면서 주변 경계를 본다면 그 맛도 보통이 아니 다. 동행이 다정한 사이라면 오히려 비 오는 날을 택하여 여행해 볼 수도 있다. 차창으로 수 도 없이 떨어져 내리는 비가 오히려 낭만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희뿌연 빗줄기 사이를 달 리는 기분은 마치 꿈속에 나타날 어느 궁전으로 찾아가는 행복한 환상에 젖기도 한다. 이런 날은 음악도 참 기분 좋은 날이다. 서둘러 운전하지 않고 가볍게 움직이다가 분위기 있는 찻집이 보이면 서슴없이 들어가 보는 것이다. 이때 우산을 사용하지 않고 잠깐이라도 비를 맞아 본다면 그것도 보통 즐거움이 아니다. 비를 맞고 나서 칙칙한 기분이 생겨서 비를 맞기 싫지만 조금 더운 날은 몸의 온도를 식혀주 기 때문에 오히려 비를 맞아 보고 싶은 생각도 난다. 사실 그런 기분이 드는 날은 비를 맞 아 무척 기분이 좋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하늘에서 폭우로 쏟아지는 비를 옷을 다 벗고 맞 아본 적이 있다. 이때 빗줄기가 몸을 때리는 기분은 참 좋았다. 어루만지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마사지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안마를 받는 것 같기도 하여 마구 뛰어다니고 싶었다. 외 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더러 이런 기분을 즐긴다는 이야기를 드물게 듣기도 했다. 산골에 사 는 젊은 부부가 소나기가 내리는 날 서로 옷을 다 벗고 비를 맞았다고 하는데 그 기분을 뉘 라서 알까 하고 고백한 내용이다. 어느 여류작가도 그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이런 것 은 비에 한정하여 생각할 것만 아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온전히 나체가 되어 바다 앞 에 서보면 이상한 자유가 느껴진다. 나도 아주 어릴 적에 그런 자유를 누린 것을 기억한다. 비는 참 많은 상상과 추억을 불러 오기도 하는데 빗속을 달리다 보면 길섶의 많은 풀이 춤 을 추는 것 같기도 하지만 요즘 특히 많이 피어 있는 접시꽃과 망초가 보인다. 접시꽃은 그 래도 꽃이 커서 제법 눈에 띄기라도 하지만 망초는 너무 흔하고 작아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 흔한 망초가 늘 눈에 보인다. 바로 관심과 사랑으로 보 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여행길은 목적지가 진천이었다. 국지성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서는 마구 쏟아지다 어느 지역에 가면 가랑비처럼 내렸다. 어쨌거 나 비가 내리는 개천물도 보고 산등성이에 걸려 있는 구름도 보는 재미는 비 오는 날이 특 히 좋았다. 꼭 가야할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행이 목적이라면 바람만 부는 날도 햇 살이 고운 날도 비 오는 날도 분명 재미가 각각 다르다. 그러나 그 중에도 비 오는 날은 정 말 좋은 여행이 된다. 찻집이 아니라 하더라도 길옆에 서 있는 자판기에서 차를 빼내어 차 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를 듣고 보면서 마시는 기분은 누가 알기나 할까. 노천카페의 특별한 기분이다. 어디서나 흔 하게 볼 수 있는 풀이고 꽃이라 하더라도 비 오는 날은 모두가 의미가 달라진다. 친구가 그 립기도 하고 형제가 생각나기도 하고 고향이 생각나기도 한다. 비와 관련되어 특별한 사연 이 있다면 비 오는 날이 유난히 좋은 사람도 있다. 비가 오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과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이 있는데 이상하리만큼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 지는 것은 비가 주는 어떤 속박이 나에게는 안정감으로 다가서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비가 오는 날은 많은 사람이 쉬기 때문에 농촌에서 태어난 나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런 생 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이기는 해도 비 오는 날은 농촌풍경이 보고 싶어서 산골 풍경이 그리워서 혼자 운전하면 서 들길과 산길로 다녀 본적이 있다. 사람이 그립기도 하지만 그냥 좋기도 하다. 외진 길에 주차하고 가만히 풀숲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거나 차 안에 누워서 빗소리를 들어도 좋다. 그 것도 싫증나면 책을 읽기도 했는데 이번 진천으로 가는 여행길은 내가 조수석에 앉아 있었으 니 무척 편했다. 나는 바라보고 싶은 곳을 보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참 아쉬운 것이 있 었다면 시력이 많이 나빠져서 더 세밀하게 주변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움이었다. 진천에 도착하니 도시 전체가 비에 젖어 있었다. 작은 물방울이 도시 전체를 가릴 듯이 퍼 져 있는 모습이 오히려 커다란 어떤 성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사람을 만나러 가긴 했지만 진 천 시내가 아니라 외곽인지라 도심을 관통하는 기분은 좀 색달랐다. 거대한 서울에 비교하 여 조용하고 작아서 오히려 친근감이 서는 도시는 비가 주는 오묘한 기분이 겹쳐서 마치 친 구가 어디선가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길을 몰라 헤맸던 것까지도 오히려 기 분 좋은 진천은 비 오는 날 더욱 정겨운 도시였다. 앞으로 비 오는 날은 진천이 더욱 그리울 지도 모르겠다. 참 많은 저수지를 봤기 때문이다. 낚시하는 사람과 그 저수지 부근의 찻집 에 그리고 식당에서 그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맛을 다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기 때문 이다. 진천의 여행은 비 오는 날이 나에게 더욱 그리운 날이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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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

밴댕이 회 덮밥/정정민 여기저기서 봄이라고 했는데 우리 집 장독이 터져 버렸다. 봄이 오는 날 몹시 추우면 나를 유난히 사랑해 주시던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2월에 장독이 터진다더니 날씨가 참 맹고롬 허다. 징하게 춥구나! "과연 그런 것 같다. 추워도 너무 춥다. 영하 10도는 내가 감당하기 힘이 들다. 우리 집 장독은 바로 내 가슴이다. 많이 심심했던지 어디든 가고만 싶었다. 그래서 동행할 사람으로 아내를 봤더니 춥다고 싫다고 하는데 나를 가장 많이 닮은 큰딸이 따라나선다. 선재도에 가고 싶었다. 그곳 바다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측도로 건너가는 길목에 있는 바다를 보노라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친구와 갔었던 곳인데 한 번만 갔던 곳이다. 겨울이라도 햇살이 고운 날은 바다가 반짝거리고 맑은 물이 갯바위에 출렁이는 모습이 너무나 정겨운 곳이다. 더구나 바람을 막아주는 산이 있어서 산을 등지고 앉아 보는 오후는 정말 기분 좋은 비밀장소 같다. 깎아 놓은 듯한 산에는 다람쥐가 산다. 앉아 있는 내 등 뒤에서 소리가 나서 보니 다람쥐가 잽싸게 도망을 간다. 그래서 찾아간 선재도는 썰물이었다. 상상하던 그런 맑은 바다는 보기 틀렸다. 그러나 무엇이든 "있겠지!"하고 간 곳에는 뜻 밖에도 굴이 있었다. 완전히 썰물이었던 때에 와 보지 못했으니 알 길이 없었다. 딸이 여러 각도로 촬영하는 사진에 멋진 포즈를 취하고 난 뒤에 굴을 찾아 으깨서 몇 개인지 먹었다. 바다의 향취가 느껴진다. 먼바다까지 뻘로만 뒤덮인 바다는 곧 들이닥칠 물을 위해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나 워낙 추운 날씨라 바람을 막아주는 산이 있어도 오래 있기가 힘들었다. 준비해간 것이 없어서 손수건을 꺼내 그곳에 담을 수 있는 굴을 둘이서 주워담고 나왔다. 그리고 우연하게 들린 식당에서 밴댕이 회덧밥을 먹게 되었다. 밴댕이 회 무침은 먹어 본 적이 있지만 회 덮밥은 먹어 보지 못했다. 딸과 식성이 비슷해서 같이 먹어 보자고 했으나 동치미 국수를 먹겠다고 한다. 그러나 나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어쩌지 못하고 주문을 했다. 아침밥까지 굶은 터라 식욕은 아주 강했다 그런데 친절하고 정감 어린 식당 주인은 푸짐하게 내 놓는다. 총각김치와 바지락 국물이 같이 어울린 밥상이 정말 행복했다. 맹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몸과 속을 너무나 적절하게 잘 풀어 주었다. 이것을 혼자만 먹기가 너무나 아까웠다. 딸에게 권하고는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내에게 먹어 보겠느냐고 물었더니 가져 오라고 한다. 결국, 싸들고 집으로 가게 되었다. 한 손에는 굴을 한 손에는 밴댕이 회 덮밥을 들고 들어서는 나에게 집은 역시 따뜻했다. 아내도 점심을 해 놓고 기다리던 터라 그 회 덮밥은 아주 적절한 시간에 집으로 도착한 것이다. 무슨 음식이든 배가 고프면 맛이 더욱 좋지만 아침을 거르고 아침과 점심을 겸해서 먹은 나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더구나 인상이 깊은 것은 식당이 넓고 깨끗했지만 주방에 사람이 별도로 없고 주인 내외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젊은 아주머니는 틈만 있으면 문밖으로 나가서 손님이 들어오는 출입문을 열어 주는 것이다. 표정도 아주 밝아서 손님이 전혀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게 했다. 어떤 식당은 편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하여 불편하거나 주인이 이상하게 신경을 날카롭게 하게 해서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는데 이곳은 아주 작은 것까지 세심하게 손님에게 배려를 하는 것이 아주 정겹기만 했다. 조금도 불편한 것이 없어 다시 가고 싶은 식당이었다. 밴댕이 회 덮밥을 먹어본 것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식당도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람도 처음 만나서 부담이 되지도 않고 태도가 단정하고 친절하여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오늘 이 식당처럼 이 부근에서 다시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반드시 이 식당에 가게 될 것 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는지 되돌아 보고 있다. 그래서 밴댕이 회 덮밥처럼 주린 배를 황홀하게 채워주는 것과 같이 정서에 주린 사람에게 감정의 회 덮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나를 다시 돌아보는 날이 되었다. -어느 봄날의 추억-

  

밴댕이 / 무정 정정민 밴댕이를 생각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젓이다 잘 곰삭은 맛은 환상적이다 식은 보리밥도 한 그릇 뚝딱이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쌀밥도 거뜬하게 비우게 된다. 한 마리 중간 크기 정도를 숟가락에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밥 한 번 먹고 다시 그 젓가락으로 밴댕이젓을 집어 입안에 넣고 적당한 크기로 베어 물면 이 세상 부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간에 동치미를 먹어도 좋고 아삭아삭 알맞게 익은 배추김치도 좋다 이런 행복한 밥상에 대한 강한 기억 때문에 밴댕이는 언제나 맛있는 생선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래서 밴댕이 회덮밥이나 회는 저절로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면 밴댕이 젓갈만큼 단맛을 주지는 못한다 약간 비린 맛 때문일 것이다. 회무침에서는 강한 식초 때문에 비린 맛이 많이 감추어지긴 해도 젓갈에 비하면 나를 감동하게 하는 맛은 덜하다 그렇다 해도 좋아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해 가끔은 밴댕이를 먹게 된다. 화성 우리 꽃 식물원에 다녀오며 근처 온천까지 거쳤기 때문에 많이 배가 고팠던 나는 집으로 향하던 길에서 밴댕이 전문점을 보고 아내에게 같이 가줄 것을 간청했다 아내는 비린 음식이나 회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음식 취향을 알고 자신의 입맛을 양보하는 아내 때문에 밴댕이 회를 먹을 수 있었다. 아내는 회를 나는 무침을 시켜 어느 이른 봄날의 행복한 점심을 먹었다. 문득 오래전 딸과 같이 갔던 선재도에서 밴댕이 회덮밥을 먹었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한 끼의 식사에서 오래된 추억 하나 되살리며 가끔은 지나간 행복도 꺼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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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재 1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해우소解憂所 시 寫眞/茂正 鄭政敏 응어리진 가슴 문질러 봐도 성난 상처처럼 커지던 근심 혹 노래라도 부른다면 바람 속으로 사라질까 했었다. 술 한 잔이면 안으로 굳어진 백 년 된 체증이 녹아내려 짓눌린 가슴이 시원할까 아니었다 아니었다 더 커지고 단단해져 숨 쉬는 일조차 힘들었다. 배가 아프던 그날 어스름 달빛이 스며들던 밤 한 평도 안 되는 곳 모든 근심과 걱정이 다 쏟아지고 말았다. 경치가 좋아 평수가 넓어 화려하여 그리되었던가 때가 되어 해우解憂되었다.

 

습관적 낭비 수필/무정 정정민 비 오는 날의 전철은 묘한 낭만이 있다. 창가에 앉아보면 수 없이 지나가는 밖의 풍경처럼 온갖 지난날이 다 스쳐지나 간다. 비가 오는 슬픈 추억이나 꽃피는 행복한 사연이 한도 없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것은 비단 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리라 나와 같이 동승한 수많은 사람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옆자리 앉아 있던 오십 전후로 보이는 두 아주머니의 대화가 내 귀를 집중시켰다. 보라매 병원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간 건강하여 병원 갈 일도 없고 하여 병원에 가는 것이 무척 낯설어서 손쉬운 교통편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이야기였다. 갑자기 몸이 몹시 피곤하여 무슨 일인가 하고 검진을 받기 위해 가는 길이었는데 보라매 병원이라서 보라매 전철역으로 가면 되리라 생각하고 그곳에서 내려 병원을 가는데 보라매 공원을 가로 질러 가야해서 생각보다 멀었다는 것이다. 몸이 지쳐있고 피곤하여 그 길을 쉬어가며 갔는데 30분이나 걸렸다. 이렇게 하여 병원에 도착했는데 의사가 하는 말이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소변이 많이 마렵도록 최대한 참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소변이 마려워야 참지 소변이 마렵지 않을 것을 어떻게 참고 기다려야 하는지 아득하기만 해서 자신처럼 검사받으러 온 사람에게 물었더니 물을 많이 먹고 뛰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물을 먹고 또 먹고 기다려도 소변이 마렵지 않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기다린 40분이 지나도록 소변 마려운 기색은 멀기만 했단다. 그런데 한 곳에 가니 녹차를 무료로 주는 곳이 있어 자신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녹차를 얻어 마셨다. 녹차는 소변을 금방 마렵게 하는 것을 이미 경험했는데 단순하게 물만 많이 먹을 생각을 했으니 한 시간 가깝게 소모한 것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드디어 배가 불러 오고 소변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마려워 무사하게 의사의 요구조건을 충족하고 검사를 마치게 되었다.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검사 결과는 며칠 뒤에 나오기 때문이었다. 보라매 공원을 가로 질러 다시 전철역으로 가는데 병원에 갈 때보다 더욱 지치고 힘들어 어떻게 가고 있는지 정신까지 몽롱했다. 그런 와중에도 사과 파는 차가 보였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궁금하여 지나쳐 갈 수 없어 들여다 보니 싱싱하고 맛이 좋아 보이는 사과가 생각보다 값이 싸서 한 봉지 살 것을 두 봉지 사고 말았다. 몸이 피곤하여 아이들에게 과일도 제대로 사주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이 과일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서였다. 이렇게 가까스로 큰길을 건넜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자주 봤고 이용했던 버스가 눈앞에 있어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 차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무슨 서글픈 일인가. 지치고 피곤하여 속히 집으로 가고 싶은 꿈이 단숨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집이 점점 멀어지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속이 상했지만 잘 참고 어디서 다시 바꾸어 탈까 궁리를 하는데 한 두어 정거장을 갔을까 소변이 너무 마려워 견디기 힘들었다. 도리없이 막 출발하려는 차를 급하게 정지시켰다. 운전사가 짜증을 냈으나 사람 많은 버스 안에서 체면이 중요한 숙녀가 서서 오줌을 눌 수 없어 급하기도 하고 참아야 하는 조건이 충분하여 잘 견디고 뛰다시피 내렸다. 마침 은행이 보여 뛰어들어가 급한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이층으로 올라가라는데 왜 그 길이 그리 멀기만 한지 미칠 것만 같았다. 평소에 아픈 어깨가 사과 무게로 하여 더욱 아프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잘 견디고 소변도 잘 보게 되었다. 이제 좀 살 것 같아 아까 내렸던 정거장 맞은편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인데 아까와 마찬가지로 눈에 익은 차가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집으로 가는 버스일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곳까지 온 차가 집의 반대 방향이었으니 그 반대쪽 차는 더 의심할 필요도 없이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편안하게 자리까지 잡고 누적된 피곤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어 눈을 뜨고 창 밖을 보니 낯선 거리가 보였다. 한 로터리에서 빙 돌아 집과 또 다른 먼 곳으로 가고 있었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반대쪽의 버스를 탔어야 옳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피곤이 몰려 오며 또 급하게 소변이 마려웠다. 그래서 역시 급하게 내려 이번은 주유소로 들어갔다. 주유소 직원들의 야릇한 표정을 느끼면서도 너무 급하니 무시하기도 하고 참아야만 했다. 이렇게 하여 일을 보고 나와 역시 버스를 기다렸다. 이번에도 타고온 버스의 반대편이었다. 두 번이나 집으로 가는 방향일 것이라 믿고 탄 버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뒤집고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 소변이 마렵기까지 하고 아픈 어깨에 사과 두 봉지는 벅차서 혼자서 신경질이 났다. 사과고 뭐고 던져 버리고 싶었다. 발로 차서 지근지근 밟아 버리고 싶었다. 너무 지치고 약이 올라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이렇게 하여 차 안에서 소모한 시간 한 시간 병원에서 공원을 가로질러 나오느라 약 30분 너무 지쳐있었다. 검사를 위해 식사까지 거르고 있어서 온 몸이 파김치였다. 그래서 신경질이 날대로 나버린 상태였다. 이번에도 역시 타고온 버스의 맞은편으로 갔더니 자신의 집과 가까운 사거리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반가운 나머지 덥석 탔더니 약 5m 정도 갔을까 전철역 입구가 나왔다. 그것을 탔더라면 쉽게 집으로 갈 수 있는데 또 버스를 타버린 것이었다. 이번엔 생각과 다르지 않아 버스는 정확하게 그 사거리까지 갔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 소변이 얼마나 마렵던지 이번도 견디기 힘들어 거래하는 은행으로 뛰어들어가 일을 마쳤다. 이제 집이 멀지 않았으니 실수는 없을 것이다. 아는 차 번호도 많아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 집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타본 경험이 있는 차를 골라서 타고 무사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전철을 탔더라면 30분 정도에 집으로 갈 수 있는 시간 그런데 단 몇 미터를 걷기 싫었던 피곤한 몸이 눈앞의 버스를 먼저 보고 손쉬운 방법을 택했는데 아프고 지치고 소변까지 자주 마려운 악조건 속에서 2시간이나 버스를 타야 했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버스 노선을 정확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 확신이 버스 운전사에게 어디로 가는지를 묻지도 않았다. 한 번도 아닌 세 번이나 그랬다.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라는 말처럼 아는 길도 물어서 가는 지혜가 있었다면 한 번 정도의 실수로 한 시간 정도면 집으로 갈 수 있었는데 그 배인 2시간이나 소모하고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이것은 습관적 낭비였다. 물어서 가면 될 일을 묻지 않은 이상한 버릇 그것은 자신을 무척 많이 피곤하게 하고 말았다. 그분은 자신의 그런 행위를 반성은 하고 있을까 정확하지 않은 것은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묻기도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면서 살까. 여전히 묘한 습관으로 시간을 낭비하며 살까 나에게도 이런 습관이 있을까? 차창 밖은 비가 더 많이 내린다. 고단한 아주머니를 위로라도 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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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한옥 학교
 

나의 집 시. 사진/茂正 鄭政敏 대궐처럼 크지 않아도 된다 창문을 열면 뜰이 보이고 뜰에는 작은 야생화가 보이면 된다. 내 차가 드나들 길이 있고 더러 날 사랑하고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달빛을 받으며 올 수 있으면 된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작은 서재가 있으면 된다 집 뒤에 산이 있어 새소리가 들리면 된다. 잠 못 드는 새소릴 들으며 같이 외로워 하기 도하고 새벽에 우는소리에 잠에서 깨면 된다. 비가 오는 날에 빗소리가 들리면 된다 침대에 누워 아름다운 추억을 돌아볼 수 있게 가을 단풍도 한겨울 설경도 작은 창문을 통하여 볼 수 있다면 음악:천년의 침묵/김영동

 

고향 집 시. 사진/무정 정정민 내 고향 집에는 어린 날의 내 꿈이 그대로 있다. 짚 냄새 흙냄새 나는 건넛방 책장에 내가 읽었던 책들이 있어 고향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 손때 묻은 낡은 가구와 벽장 손잡이 삽과 호미까지 다정한 부모님 체온이 그대로 있다. 장롱 속에 형제와 같이 덮고 자던 이불과 벼게 책걸상엔 같이 공부하고 장난하던 형의 얼굴 누님과 동생 얼굴이 있다. 부엌과 장독대 헛간과 창고 뒤뜰과 앞뜰 사립문과 담벼락 모두가 그리운 내 고향 집

한옥 체험/정정민 화천에서 군 복무 중인 늦둥이 아들 작년 12월 중순에 춘천 신병 교육대에 입소 올 정월에 화천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그리고 벌써 백여 일이 지났는데 아직껏 만나보지 못했다. 만나러 오라 하지 않아 그저 참았다. 그런데 가족이 보고 싶어 미치겠다는 전화를 해왔다 해서 회사에 연차를 내고 아들을 만나러 갔다. 면박할 수 있다 하여 토요일 밤을 아들과 같이 보낼 요량으로 금요일 오전에 서울에서 출발 늦은 오후에 화천에 도착하였다. 가족 넷이 머물 장소를 찾던 중 아들이 복무 중인 부대에서 4킬로 아래에 부대에서 운영하는 회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들어 머물 수 있는지 물었더니 방이 딱 하나 있다고 하여 반가움이 컸다. 아들과 가까운 곳에 머물 수 있어서였다. 방은 2층이고 화장실과 샤워실이 딸린 첩첩산중에서는 호텔이나 진배없는 곳이었다. 더구나 매점도 있고 식당도 있었다. 방은 2인 1실 만원이었나 4인이 입실하여 만 육천 원을 냈다. 텔레비전도 있어 가족 모두 즐겨보는 "웃어라. 동해야!'도 보았다. 밥은 아래 식당에서 오리고기를 이만 오천 원에 사 먹고 다음 날 8시에 아들을 만나러 갔다. 내가 몸이 불편한 것을 아는 부대에서 곧바로 아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 눈물 나게 반가웠다. 아들은 아침 식사를 하다 나왔다며 가장 먹고 싶은 것이 입대 직전 먹었던 춘천 닭갈비라 했다 화천에서 50킬로의 거리인 춘천으로 향했다. 춘천에서 가장 유명한 명동 닭갈비 골목으로 가서 온 가족이 맛있는 닭갈비를 먹고 소양강 처녀로 유명한 소양강을 구경하고 아들과 같이 지낼 방을 찾았으나 토요일이라 방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여관은 쉽게 구할 수 있었겠지만 준비해간 음식을 아들에게 맛있게 요리해 주고 싶어 펜션이나 민박을 구하였더니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결국 소양강 댐 근처까지 갔으나 역시 마땅한 곳이 없어 별수 없이 다시 화천으로 회귀하였다. 아들 귀대도 생각하고 춘천보다는 시골이라 남아 있는 민박집이나 펜션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서. 화천 파로호를 지날 무렵 위 사진 속의 한옥 학교 이정표를 보고 큰딸과 나는 들어가 보자고 했고 아내는 속히 펜션을 구하자는 의견이 엇갈려 한옥 학교 입구를 1킬로쯤 지나쳤을 때 큰딸이 강하게 가보자고 하였다 결국 그 의견을 따라 차를 돌려 한옥 학교에 들어가 보니 여러 채의 집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으나 사람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사무실인지 알기 어려워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관계자를 만나고 하룻밤 자고 갈 수 있는지 타진했다. 2박3일의 한옥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데 오늘따라 그 프로그램이 없으니 특별하게 하루 유하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방 하나가 아니라 집 한 채를 통째로 빌려 주겠다고 했다 그것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황토집으로 나무 냄새가 향기로워 몸에도 좋은 집으로. 정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아들과 지내기 더없이 좋은 집 음식조리 시설도 되어 있고 냉장고도 있었다. 텔레비전도 있었고 인터넷도 가능했다 넓은 현관과 커다란 방 둘 우리 가족 5명이 보내기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제법 큰 한옥에서 살았다. 서까래가 커다란 집이었다 방은 온돌이었고 벽은 흙으로 되어 있었다. 광은 나무판자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한옥이었다. 방은 큰방이 있었고 작은방과 머리방이 있었다. 큰방 옆에는 골방이 있어 이방 저방을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큰 방은 부모와 어린 우리가 사용했고 작은 방은 누님이 머리방은 형님이 사용하였고 마당은 화단으로 누님이 봄마다 초화를 심었다. 마당은 화단 말고도 작은 텃밭이 있었는데 닭이나 강아지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청죽을 네 쪽으로 쪼개 엮어 울타리를 만들었는데 이 울타리에는 강낭콩과 나팔꽃을 올렸으며 텃밭에는 마늘과 파 상추 고추 가지 오이를 심었다. 부추도 있었고 도라지도 있었다. 이런 추억이 있는 한옥은 어디에서 봐도 반갑다 도시에서 출생하여 도시에서 자란 아들에게 내가 출생하고 성장한 고향 집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린 그와 조금은 비슷한 집에서 우리가 같이 하루를 보내게 되어 좋다고 했다. 아내는 아들에게 먹일 저녁을 준비하며 바로 보일러를 가동하고 아들은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인터넷을 하고 나와 두 딸은 근처를 구경하러 나섰다 바로 청평사였다. 천 년 고찰로 가는 길은 소양댐이 멀리 보이는 곳이었다. 길이 얼마나 가파르고 구불구불하던지 손에 진땀이 난적이 여러 번이었다. 다행히 구경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한옥마을로 들어오니 그때까지도 방 온도가 올라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한옥학교 관계자를 불러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다른 한옥으로 옮겨주었다. 바로 고향 집 시의 위 사진이 처음 들었던 한옥이고 아래 사진이 나중 들었던 집이다. 하룻밤에 두 채의 한옥을 경험하게 되어 행복했다 아들과 같이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한옥 학교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아주 특별한 경험 평생 잊지 못할 아주 귀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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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커트 글 寫眞/茂正 鄭政敏 머리가 근질근질할 때면 머리를 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보통은 이틀 정도에 감지만 때론 삼일 만에 감을 때도 있다. 매일 감는 것에 비하면 참 다행이다. 아들이나 딸은 매일 감느라 바쁜 시간에 종종거리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다 보면 머리채가 손에 잡히는 감각이 다를 때가 있다. 길다는 느낌이 드는 때다. 그러면 머리 커트를 해야 하는데 이 일이 나에게 쉽지 않다. 무조건 이발소로 가거나 미장원가면 되는데 아내의 제지를 받기 때문에 내 머리를 내 맘대로 하지 못한다. 즉 아내가 머리 커트를 하기도 하는데 너무 바빠 내가 원하는 시간이나 필요한 때에 해주지 않기 때문에 내가 혼자 할 수 없어 고민한다. 어제도 그런 고민을 하는 날이었다. 머릴 감아보니 머리가 길게 느껴지고 거울을 보니 구레나룻처럼 길게 늘어진 옆머리가 무슨 활처럼 휘어져 썩 보기 좋지 않았다. 아내에게 이야길 했더니 "내일! 내일!" 하면서 미룬 날이 한 주가 지났다. 좀 짜증도 나고 얼른 커트하고 싶어 좀 심한 말을 했더니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헌데 구세주처럼 나타난 막내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인데도 머릴 파마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불난 곳에 부채를 흔드는 격이었다. 하지만, 늦둥이 아들의 애교에 아내는 화를 내다 웃고 말았다. 하고선 둘 다 압구정에서 머릴 해결하라고 돈도 주고 시간도 내주었다. 아들과 난 우리 집의 두 남자다. 이런 일은 여자에게 있어야 하는데 세상이 거꾸로 가는지 남자에게 생겼다. 웬 떡이냐 하고 덥석 받아먹는 기분으로 전철을 타고 압구정 현대 백화점에서 내렸다. 그리고서 아내가 지정한 헤어디자이너를 찾아 갔다. 예약 손님인 것을 알고 젊은 여성 둘이 한 분은 아들을 한 분은 날 맡아 아들은 파마를 난 커트를 해주었다. 여태껏 이렇게 감미로운 손길을 경험하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머리 한 번 커트하려면 2킬로는 걸어야 했고 억센 이발사의 손으로 깎는 머리가 때론 뜯기고 때론 금속성이 차가워 늘 긴장이 되었다. 더구나 큰 손으로 머릴 감기면 머리털이 뽑히는 것 같고 머리 피부가 다 벗겨지는 것 같아 머리를 커트하는 일은 너무 싫었다. 한겨울엔 물의 온도가 일정하지 않아 뜨겁거나 차가워 머리 커트 하는 날이 감기드는 날이기도 했다. 한때는 머리에 기계 독으로 돈 버짐이 생겨 어머니가 치료약이라 하며 마늘을 문지르기도 하여 펄쩍 뛰며 죽는 줄 알았다 너무 쓰리고 아파서 눈을 감아봐도 욱신거리며 쑤시는 통증이 참 오래갔었다. 그래도 치료되지 않자 칡으로 문질렀다. 이 또한 피부가 손상되어 한없이 쓰렸다. 하지만 마늘만큼 힘들지 않았다. 그래도 치료가 안되자! 이웃집 아주머니에게서 들은 것인지 모빌유라는 기계 윤활유를 발랐다. 진득거려 벼게를 사용할 수 없어 벼게 위에 비닐이나 코팅된 비료 포장지를 놓고 잤었다.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모빌유는 특효가 있어 기계 독으로 생긴 버짐을 쫓아내고 말았다. 머리가 근지러운 것도 없어지고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이발소도 맘껏 다닐 수 있었다. 그 기간엔 학교에서 친구가 같이 앉기를 꺼렸다. 버짐이 옮는다는 것이었다. 정말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런 초등학교 시절의 겨울이 지나고 청년이 되어 스포츠형으로 머릴 자르고 다닐 때는 제법 준수한 용모가 빛났었다. 더러 포마드도 바르며 초등학교 시절의 고통스런 시간을 다 잊어 버렸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 어느 해 공교롭게도 바리캉이란 기계를 수리하고 판매하는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때야 우리나라 이 미용 업소가 얼마나 되며 머리를 깎는 기계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게 되었다. 어린 날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데 사용한 기계는 굵은 머리빗처럼 생긴 두 날을 겹치게 하고 두 날과 연결된 중심에 고정 비스를 박아 두 날이 어긋나지 않게 하고 손잡이 사이에 스프링을 끼워 엄지와 다른 나머지 손가락으로 쥐었다 폈다 하면 두 날이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그날 사이에 낀 머리털을 자르는 원리였다. 이 이발 기계는 마모가 되면 숫돌에 갈아 쓰는데 오래 사용하다 보면 유격이 커져 머리 커트가 원활하지 못하는 때가 생긴다. 그러면 두 날 사이에 머리털이 끼어 머리가 뽑히기도 한다. 정말 기분 나쁜 통증이다. 현대의 이발 기계는 사람의 손과 스프링으로 하는 두 날의 좌우 운동을 모터의 힘을 빌려서 한다. 날도 정밀하고 쇠의 강도도 높아져 아주 산뜻하고 기분 좋게 머리가 잘린다. 더구나 발전을 거듭하여 쇠가 아닌 도자기 종류로도 날을 만들어 머리 커트가 더 잘 되는 것을 봤다. 이 자동 커터기는 종류가 많았다. 잔털을 깎는 토끼 바리캉 눈썹을 깎는 눈썹 바리캉 강아지나 토끼털을 전용으로 깎는 바리캉 등 나라마다 특색이 있고 품질 좋은 바리캉이 수 없이 출시되었다. 그중에도 일본의 여러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 우리나라 50만 개나 되는 이 미용 업소에 하나 이상씩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도 이 기술이 빨리 선진화되어 일본 제품보다 우수한 자동 이발기계가 만들어지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벌써 이 일을 했던 일이 10년도 넘는 일이니 지금은 우리 제품이 많이 좋아졌으리라 믿어 본다. 이런 추억이 있는 나에게 압구정동의 이름있는 헤어디자이너에게 가서 머리 손질을 하는 일은 수많은 추억을 단숨에 불러오게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날 머리 깎을 때 이발사의 투박한 손이 머리털을 뽑듯이 깎던 일이나 두피를 벗기듯 심하게 문지르던 그 억센 손길이, 그리고 자동 이발기계로 소리 좋게 머리를 깎는 일을 보게 된 일 그 기계를 우리나라 전역에 팔고 수리했던 일이……. 이날 나는 환상을 본 것 같았다. 여인의 손길이라 그랬을까? 내 머릴 커트하는데 듬북 잡지 않았다. 아주 조금씩 머리칼을 잡아 조용하게 자르는 것이었다. 이것을 이발기계가 아닌 가위로 했다. 싹둑 잘라 기분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가려운 곳을 가볍게 긁어 주는 듯 어루만지듯 가만가만 조용하게 자르는데 봄볕에 조는 병아리가 연상되었다. 스르르 잠이 오는 나를 느꼈다. 그렇게 내 머릴 다 자르고 맘에 드느냐고 거울을 보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깊은 관심이 없는 터라 대접하는 말로 "정말 환상적입니다. 저를 잠들게 하시는 능력 존경합니다." 했더니 환하게 웃었다. 이어서 머릴 감겨 주었는데 앞으로 숙이게 하여 감기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눕게 하여 머리칼 사이 사이를 가볍게 마사지 하듯 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긴장했던 어린 날의 머리 감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지옥과 천국의 차이라 봐야 할까.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고 다시 의자에 앉자 모발건조기로 머릴 말려 주었다. 부드러운 터치 가볍게 스미는 따뜻한 바람이 내 온 전신을 휘감는 것 같았다. 어디서 불어 오는 봄바람일까 여인의 향기일까 야릇하고 향기로운 느낌이 자꾸 나를 감미롭게 했다. 꿈인 듯 눈을 감는 나에게 은쟁반 위를 굴러가는 옥 소리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다 되었습니다. 마음에 드시지 않는 곳이 있는지요?" 정말 한구석도 없었다. 맘에 꼭 들었다. 다음에도 다시 오고 싶었다. 머리가 다 자라 다시 커트를 해야 될 시기를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매일 오기 힘들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와서 황홀한 꿈결로 들어가 잠겨 보고 싶었다. 이것은 머리 커트가 아니라 예술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꽃향기 같았다. 봄바람 같았다. 아들도 맘에 들어 좋아라 하였다. "머리칼아! 어서 자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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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개설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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