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적고 싶은 전화번호

  

가슴에 적고 싶은 전화번호/무정 정정민 오늘은 우연히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를 봤다. 다 아는 사람의 전화번호이고 가끔은 통화를 하는 전화번호인데 알아도 별 필요없는 전화번호가 있었다. 저장을 할 때만 해도 내가 전화할 일이 있었고 걸려오기도 한 전화번호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할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잘 지내느냐는 말조차 아깝다. 서로 그만큼 어색해진 것 같다. 정이 떠나버린 친구는 아름다운 추억이라도 남는 법인데 남아버린 추억마저 기억하기 싫은 것이 되었다면 사람을 실망시킨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진실보다 아름다운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채색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을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화려한 눈빛과 화장으로 가린 얼굴이 아니라. 서툴러도 진실한 말 그보다 아름다운 말은 없는 것 같다. 오늘도 나를 반성하는 말 가장 화려한 말은 진실한 마음으로 하는 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전화번호는 가슴에 적어 두고 싶다. -내 글인데 자신의 글처럼 사용하는 사람. 작가의 이름을 빼고 "좋은 글"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이름 없는 내글을 내게 보내오니 받아 보는 묘한 느낌-

  

-내 글인데 자신의 글처럼 사용하는 사람. 작가의 이름을 빼고 "좋은 글"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이름 없는 내글을 내게 보내오니 받아 보는 묘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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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자 2/마을 단풍

가을 여자 2/무정 정정민 가을이 좋은 여자 기다리던 사람 있어 가을이 찬란하다 낙엽이 하나 둘 지면 그 붉은 잎 지는 길에서 갈색 커피 한 잔의 따끈한 약속이 꿈처럼 익어간다 사라져 갈 추억이 아니라 다가올 기쁨이 뜰 앞 등나무를 자꾸 채색해 간다 가을은 꿈처럼 아름다운 기다림의 계절 찬 바람이 반갑기만 하다.

가을 여자 2/무정 정정민 찬 바람 거리를 휩쓸면 문득 단풍이 생각난다 접근이 가장 쉬운 마을 길을 걸어본다 이제 어디에 어떤 단풍나무 그리고 어떤 가을 열매가 익어가는지 제법 알고 있어 그곳으로 간다 앞에서 옆에서 위에서 아래서 다양한 모습으로 담아 본다 그리고 차 한 잔의 추억도 떠올린다 많은 사람과 만났던 찻집 한 섬에서 그리고 사찰에서 허브랜드에서의 차 한 잔이 생각났다 올해는 누구와 어떤 곳에서 한 잔의 차에 대한 추억을 만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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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홍엽紅葉/茂正 鄭政敏 그립다는 말 차마 못하여 붉게 물든 얼굴 작은 바람에도 소스라치듯 놀라 파르르 떨린다 떨어지고 부서져 가루가 된다 해도 언제나 너의 곁에만 있겠다.

  

소요산/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요약: 경기도 동두천시와 포천시 신북면에 걸쳐 있는 산. 개설: 소요산의 높이는 536m이고, 산세가 웅장하지는 않으나 석영반암의 대암맥이 산능선에 병풍처럼 노출되어 성벽을 이루고 있는듯하며, 경기소금강(京畿小金剛)이라고 할 만큼 경승지이다. 동두천역에서 약 4㎞ 떨어져 있는데, 소요산 하면 진달래· 단풍·두견과 폭포를 연상할 만큼 꽃과 단풍으로 알려진 산이다. 명칭 유래:974년(광종 25)에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서화담양달래와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고 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자연환경:소요산의 입구에 청량폭포(淸凉瀑布) 및 원효폭포가 있는데, 청량폭포가 있는 곳을 하백운대(下白雲臺)라 하고 그 위쪽의 원효폭포가 있는 곳을 중백운대라고 한다. 원효폭포 주변에는 방음봉·이필봉·약수봉 등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중백운대에는 신라시대에 원효가 세운 자재암(自在庵)이 있고, 다시 그 위쪽으로 나한대·의상대 등을 거쳐 30m 돌층계를 오르면 원효대에 닿는데 이 곳을 상백운대라고 부른다. 산의 정상에서 보면 북쪽으로는 한탄강이, 남쪽으로는 서울방면의 산맥이 굽이쳐 전망이 매우 좋다. 현황:소요산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수많은 전설이 많은 명승지를 품고 있다. 처음 계곡을 오르면 원효폭포가 있는데 이곳이 하백운대다. 그 오른쪽에 원효대사가 앉아 고행을 했다는 원효대가 있으며, 이를 지나면 백운암(白雲庵)이 있다. 백운암을 지나 오르면 소요교가 있고 이를 건너면 자재암(自在庵)이 나타난다. 그 앞에 청량폭포는 중백운대이고 이곳에는 옥로봉, 관음봉, 이필봉 등 기묘한 봉우리들이 있다. 옥로봉을 넘어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나한대와 의상대가 있는데 이곳이 상백운대이다. 또한 소요산에서 봄에는 철쭉축제가 열리고, 가을에는 단풍축제가 열려서 서울·경기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문화행사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소요산 가는 길/무정 정정민 "소요산의 단풍이 아름다우니 우리 가보자! 국화 축제와 민속놀이 재현도 있단다 이 순간을 우리가 놓치면 후회할 거야!" 중학교 동창들의 말이었다. 현 회장으로 다수가 원하는 뜻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해 같이 가기로 했다. 하지만 걱정이 있었다 집에서 멀어 그렇고 가봐야 할 곳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른 시간 이사하는 곳도 가봐야 해 심적 부담과 신체적 약점이 장거리 전철을 타야 하는 불안을 잠재우지 못했다. 결국, 그 불안은 도봉역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집에서 도봉까지는 자리 잡고 편안하게 갔는데 갈아타야 하는 도봉역에는 인파가 구름 같았다. 도봉에서 소요산역까지는 13 정거장 단 네 정거장도 서서 가지 못하는 나에게 13이란 숫자는 벅차기만 했다. 하지만 누군가 아름다운 양보를 해줄지도 모른다는 실 같은 희망을 안고 탔는데 아무도 아름다운 양보를 해주지 않았다 힘든 인내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몸을 비비 꼬며 전철이 빨리 가길 바라고 바라며 몇 번이나 남은 역을 세고 또 세어 봤지만, 그 줄어드는 숫자는 한없이 더디기만 했다. 그런데 내가 섰던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분이 조용히 일어나 내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뒤도 아니고 뒤에 뒤에 계시던 한 분이 투혼을 발휘해 내 뒷사람을 밀치고 심지어 나까지 밀치고 본인이 턱 하니 앉아 버렸다 그 놀라운 순발력은 금메달감이었다 그런 동작을 발휘할 실력이면 서서 가도 되련만 목발 하나와 스틱까지 가진 나는 안중에도 없으니 그 배려심은 발바닥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견디고 이기는 것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무릎의 통증과 허리협착의 고통은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살아오며 죽을 고비도 넘겼고 수많은 난관도 극복한 내가 이깟 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찌 대장부라 하겠는가 당연히 방법이 있을 것으로 생각 정상적인 신체를 활용하여 약한 부분을 최대한 피로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나는 관절염 후유증으로 좌 하지를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서 있을 경우 오른발 하나로 상체를 받쳐야 해서 단 5분도 서 있기 힘들다. 젊은 시절에는 회복속도가 빨라 그래도 버틸 만 했지만 70에 가까우니 그 피로 속도가 더욱 빨라져서 잠시만 서 있어도 무릎관절이 아프고 허리까지 아팠다. 건강한 사람은 다리 한쪽에 힘을 주고 그 다리가 피곤하면 다른 쪽에 힘을 주며 다리를 교대로 하여 쉬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서 있을 수 있지만 내 경우는 다리 하나로 서 있어 그 다리가 피곤하면 앉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앉을 공간도 없는 만원 전철에서 견디어야 하니 묘책이 필요했다. 이때 내 머릴 스치는 것이 건강한 사람처럼 두 다리를 교차적으로 힘을 주고 또 쉬게 하는 방법을 변형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지혜가 생겼다. 해서 오른손으로는 머리 위의 손잡이를 잡고 왼손은 목발과 스틱을 한꺼번에 잡은 뒤에 걷는 것처럼 오른발에 힘을 주고 그 다리가 피곤하면 목발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목발이 왼발을 대신하여 상체의 하중을 받치도록 지속해서 반복했다. 결국, 전진 없는 걷기인데 머리 위의 손잡이를 잡았으니 오른쪽 다리의 부하가 제법 많이 줄었다. 관절이 받는 하중도 줄여주어 결국 13 정거장을 무사히 견디었다. 힘도 제법 남아 국화 축제도 보고 소요산도 올라갔다 비록 정상정복은 하지 못했지만, 가을 산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다. 산 가득 찬란하게 빛나던 홍엽들과 산 저쪽으로 흘러가는 구름 친구들이 싸 온 주전부리와 맛있는 점심과 노래방까지 삶의 희열이 이만할 때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苦盡甘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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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노래방 연정 詩 사진/무정 정정민 내 마음을 알아주세요 남몰래 그리는 마음 수줍어 차마 말하지 못해 노래로 대신합니다 오늘은 직녀에게 애절한 가사 애타는 마음 바로 이내 심사 있는 힘을 다해 간절한 마음으로 부릅니다 부를 때마다 내가 먼저 울고 있네요 알아주지 않아도 이렇게 부르고 나면 그 마음이 전달된 듯하여 혼자서 마음이 편안합니다 잠시 붉게 물들다 이내 사라지고 마는 석양빛처럼 내 마음도 꽃 바람처럼 지나갑니다.

 

한밤의 데이트/무정 정정민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이다. 비가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시간에 어디든 가는 것은 삼갈 일이다. 나이도 있어서 눈이 밝지가 않기 때문에 어둠이 시야를 가리고 빗물마저 시야를 가리는 늦은 밤길은 운전하는 일이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늦은 밤 시간에 서울을 벗어나서 한강변에 있는 자유로를 달리고 있었다. 전방을 주시하면서 실수하지 않도록 이정표를 보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자칫하면 엉뚱한 곳으로 가기 싶다. 내가 가야 할 길은 행주산성이있는 곳이다. 서부간선도로에서부터 질주하는 차들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면서 자유로에 들어섰는데 그곳도 질주하는 차들이 나를 놀라게 했다. 늦은 밤시간과 빗속에서 나는 운전이 서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길을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늦은 밤의 데이트 약속 때문이다. 노래방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만나지 않으면 큰일이 나거나 서로 그리워서 애가 터지도록 그리워하는 사이도 아니면서 만나러 가는 나를 잘 알지 못하겠다. 사업상 만나야만 되는 것도 아니면서 늦은 밤의 빗속을 달리는 것은 도무지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그러나 약속을 했으니 가야한다. 나는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 왔으니 어기는 일은 너무 서툴다. 나를 부른 사장님은 늦은 시간이라 길이 막히지 않아서 30분이면 족할 것이라 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50분 정도가 걸렸다. 약속장소에 갔지만 그분은 없었다. 늦은 시간에 거리를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 거리는 그 시간도 분주하기만 했다. 음식점과 술집이 많은 곳이라 그랬다. 나와 약속한 시간에 다른 곳에 가실 일이 급하게 생겨 다소 늦게 출발을 하라고 했는데 내가일찍 도착을 하면 기다리겠다는 말을 한지라 서로 부담없이 나는 약속 장소로 그분은 자신의 일을 보러 간 것이지만 그분은 마음이 급하여 신호를 여러 번 위반을 했다는 말을 하셨다. 이렇게 만난 둘이는 곧장 노래방으로 가게 되었다. 두 번의 만남이라 얼굴은 알지만 어색하지 않을까하는 조심스런 마음도 들었는데 소탈하시고 넉넉하여 잠시의 내 걱정도 사라져 버렸다. 둘이는 오붓하게 앉아서 무슨 노래를 할 것인지 의논 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사랑의 기도" 였다. 그런데 노래방 기계에서 나오는 반주가 너무 커서 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었다. 목이 아프도록 불러 봤지만 여전히 형편없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넉넉하신 사장님은 잘한다는 박수를 빼놓지 않으셨다. 여자이면서도 남자의 노래를 주로 하셨다. 철학이 담긴 노래를 하셨고 슬픈듯한 노래를 선곡하셨다. 내가 아는 노래가 대부분이었지만 알지 못하는 노래도 있었다. 가사에 신경을 쓰면서 노래하는 모습과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내 느낌도 소중하게 간직했다. 얼마나 불렀는지 모른다. 시간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래 중간 중간 대화를 하면서 이어진 시간은 묘한 즐거움이었다. 이런 일은 내 평생에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늦은 시간에 노래방에 있어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남자친구와도 가족과도 혼자라도 있었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사장님과 한밤의 데이트는 너무 신기한 일이었다. 살아가면서 기묘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상식을 벗어나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한밤의 데이트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보통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늦은 밤에 노래방에 갈 생각을 한 발상이 독특하기도 하지만 잘하는 노래도 아니면서 무슨 노래에 한이라도 맺힌 것처럼 둘이서 웃고 노래를 불렀으니 얼마나 맹랑한 일인가. 평소에 자주 만나서 이렇게 해 보자고 한 사이도 아니다. 그렇다고 몹시 그리워하면서 만나기를 열망한 사이도 아니다. 사춘기적 발상을 할 나이도 지난 우리는 너무 엉뚱하게 늦은 밤에 노래방 데이트를 한 것이다. 아내에게 같이 갈 것을 권유했는데 아내는 피곤하다고 혼자 가라고 해서 결국 단둘의 데이트가 되어 버린 셈이다. 뉴스거리는 아닐지라도 일반의 상식으로 남과 여가 늦은 밤에 만나서 노래를 하는 것은 신기한일이다. 이런 경험이 없지만 매우 독특했다. 자꾸 웃음이 난다. 철없는 아이들처럼 웃기를 반복했다. 노래로 힘든 배를 설렁탕집에서 채우면서 높은 빌딩 숲의 중간쯤에 있는 식당유리창으로 텅 빈 거리를 보는 재미도 남달랐다. 자극적인 만남은 아니었을지라도 삶의 이야기는 순간순간계속되었다. 주로 친구들의 이야기였지만 이런 만남이 없었기 때문에 이 만남 자체가 평생의 기억 속에 남아 있으리라. 늦은 밤에 가로등 불빛을 보게 되면 노래방과 설렁탕집 생각이 그 사장님 얼굴과 같이 떠오를 것이다. 만남, 그것이 이벤트다. 같이 노래해 보는 것이 특별하지 않는가? 누가 노래를 못하는지 알기 위한 만남인 것처럼 여겨졌어도. 05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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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로운 말/무정 정정민 "아프지 마세요." 이 말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내 귀에 향기롭게 들렸기 때문이다. 무척 기분이 좋았다. 정말 병이 나아 버린 것 같았다. 나를 걱정하여 주는 말이 기분이 좋았다. 가져주는 관심이 행복하게 한 것이다. 너무 간단한 말이지만 꿈꾸는 봄날의 꽃향기 같기만 하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이 마주친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을까. 다정한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해서 무조건 기분이 좋았을까. 짧지만 진심 어리고 애정이 어린 말일 때 그 말은 감동을 주는 것 같다. 내가 신뢰하고 내가 아끼는 사람이 나와 같은 감정으로 그런 말을 할 때 그 말은 신묘한 약처럼 들린다. 사랑으로 하는 말. 정감 어린 말. 나에게 소중한 당신은 아프면 안 된다는 말 그 말이 소중하게 생각된다. 몸에서 신비한 힘이 생긴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너무 고맙다. 세상의 말은, 단어적인 뜻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마음으로 전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고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도 중요하다. 아프지 말라는 단순한 말 한마디가 나를 아프지 않게 하는 기도가 되었다. 한마디 말로 천 냥의 빚을 갚았다는 말. 한마디 말로 살인을 했다는 말 한마디 말로 사람을 살렸다는 말 수 없이 들었다. 말에는 분명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 "아프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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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적고 싶은 전화번호/무정 정정민 오늘은 우연히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를 봤다. 다 아는 사람의 전화번호이고 가끔은 통화를 하는 전화번호인데 알아도 별 필요없는 전화번호가 있었다. 저장을 할 때만 해도 내가 전화할 일이 있었고 걸려오기도 한 전화번호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할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잘 지내느냐는 말조차 아깝다. 서로 그만큼 어색해진 것 같다. 정이 떠나버린 친구는 아름다운 추억이라도 남는 법인데 남아버린 추억마저 기억하기 싫은 것이 되었다면 사람을 실망시킨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진실보다 아름다운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채색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을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화려한 눈빛과 화장으로 가린 얼굴이 아니라. 서툴러도 진실한 말 그보다 아름다운 말은 없는 것 같다. 오늘도 나를 반성하는 말 가장 화려한 말은 진실한 마음으로 하는 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전화번호는 가슴에 적어 두고 싶다. -내 글인데 자신의 글처럼 사용하는 사람 작가의 이름을 빼고 "좋은 글"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오늘은 내글을 다른 곳에서 내게 보내온 것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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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대교 휴게소
  

우체통이 있는 풍경 글 사진 무정 정정민 나른한 여름날의 오후다. 점심을 먹고 나니 더욱 졸리기 시작한다. 늦은 점심이라 좀 과식을 했는지 무거운 눈꺼풀을 달랠 길 없다. 따끈한 커피 한 잔을 타서 탁자에 올려놓고 무심하게 창밖을 보기 시작했다. 눈길이 닿는 곳에는 빨간 우체통이 놓여 있었다. 가로세로 50cm 정도는 됨직하고 높이는 1m가 조금 못될 것 같은데 지붕은 도움형태로 되어 있고 아이들도 쉽게 편지를 넣을 높이에 봉투 투입구 두 곳이 나란하게 붙어 있었다. 이 우체통을 보기는 여러 날이다. 한 달이 넘는 것 같다. 이사 온 지가 그만큼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편물을 넣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거둬 가는 우편물을 보지도 못했다. 내가 보는 시간에 그런 행위를 한 사람이 없었는지 아니면 핸드폰이나 메일이 더 편리해 편지를 쓰는 사람이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 그렇지만, 우체통을 보면 내가 편지를 쓰고 받았던 청년 시절이 생각나 우체통은 아름다운 추억이고 기쁨이며 즐거움이다. 이렇게 무료하고 나른한 오후에 아름다운 사연을 편지에 쓰고 우체통에 넣는 사람을 있다면 어떤 마음이 생길지 생각하는데 원피스를 입은 20대 후반으로 느껴지는 젊은 여성이 우체통 앞에 서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물방울 검은 무늬가 있는 분홍색 옷이었다. 종아리가 삼 분의 이쯤 보였는데 약간 힘을 주어 자신의 키를 높이는 것인지 곡선이 곱던 종아리가 근육이 생기는 모습이 보였다. 그 여성이 키가 크지 않아 자신의 키를 키우기 위해 발끝으로 선 것인지 허리를 굽히느라 그래서인지 몰라도 종아리를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른다. 너울거리는 치마와 크지 않은 아담한 키 흰 피부와 윤기 나는 종아리 약간 통통한 것처럼 느껴지는 몸매 그런 여성이 무슨 사연을 누구에게 보내는 것이었을까를 생각하니 내 젊은 날 누군가는 나에게 저런 모습으로 저런 우체통에 내게 보낼 사연을 저렇게 보냈으려니 생각하며 혼자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되었다. 우체통은 언제나 그리운 사연을 안고 나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간이역 같은 곳이었다는 새삼스러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삶에서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 언제나 어디서나 일어난다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일도 모레도 시간이 생길 때마다 저 우체통을 보게 될 나는 지나간 편지에 얽힌 많은 사연을 생각하며 누가 어떤 우편물을 넣는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될 것에 대하여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본다. 나도 저 우체통을 이용하게 될 날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대 그리운 날에는 시 사진 무정 정정민 창문 너머 들리는 풀벌레소리가 가슴으로 파고드는 날은 막을 수 없는 그리움에 창 밖을 보지요 달빛이 곱게 내리는 단풍나무 사이로 아른거리는 환영이 올 리 없는 그대이길 바라는 철부지 아이가 되지요 오늘 밤 보고 싶다는 편지를 또 씁니다.

  

영종대교 휴게소에서-무정 정정민 우연히 영종대교 휴게소에 들렸다 대교 저쪽 서해가 한눈에 들온 풍경도 좋고 시원한 갯바람이 가슴을 지나는 것도 좋았다 그중에도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우체통이었다. 지나간 내 청춘 시절에 있었던 아름다운 사연들 그것을 가슴에 안고 있다 나에게 전해주던 우체통 고향에 있었던 허름한 우체통 또 꽃집을 하며 창밖에 있던 우체통을 바라보던 일 이젠 아련한 일이 되었지만 그 일을 돌아보는 일만도 행복한 것이 분명했다 헌데 뜻밖의 장소에서 우체통을 보니까 반가웠다. 더운 날이었으니 어느 여름날 우체통을 보며 쓴 글이 생각났다 그리고 오늘 밤 그것을 정리하는데 창밖에서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여 다정한 얼굴들이 생각나 편지와 관련된 시도 하나 골라 보았다 이제는 가을 편지를 쓸 때가 되었다는 생각도 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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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에 가고 싶다-안산 식물원  (0) 2016.03.06

물안개 아름다운 양수리에서

물안개 아름다운 양수리 길에서/茂正 鄭政敏 이른 봄, 아직 나무에 새순이 올라오지 않았던 3월이었다. 흐린 차창 너머로 강이 보이는 길을 따라 양평으로 가고 있었다. 주말이라 행락객이 많을 법도 한데 비가 오고 있어서인지 교통량이 많지 않아 평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강변길을 가는 것은 그 길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운치가 있고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뿌연 물안개가 강을 따라 연기처럼 올라오고 있어 그 가운데 있는 버드나무가 더욱 황홀한 모습으로 보였고 강은 먼 꿈속의 이니스프리 섬의 전경을 떠올리게 해서 몽환적인 환상에 쉽게 젖게 했다. 목적 없이 이 길을 지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양평에 찻집을 개업한 시인님의 개업 행사에 가는 길인데 동행하는 두 분이 또한 시인이었다. 한 분은 인사동 시인으로 한 휘준 시인님이었고 또 한 분은 영혼의 떨림 같은 목소리로 시를 더욱 시답게 낭송하시는 송 연주 시인 겸 낭송가였다. 강이 내려 보이는 길을 가게 될 때였다.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물새가 포르르 날아갔다. 물안개가 낀 강가에 버드나무가 늘어져 있고 그 사이를 새가 날자 선경이 이런 것이려니 생각되었다. 희미한 먼 산자락이 더욱 멋지게 보이는데 송 연주 낭송가님이 갑자기 시집 하나를 꺼내 펼쳐들고 낭송을 하겠다고 하셨다. 이런 선경에서 낭송을 하고 싶으신 것이었다. 라디오 볼륨을 줄이고 천천히 운전하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는 선경이 아까웠고 낭송하는 목소리를 더 세밀하게 듣고 싶어서였다. "몽돌해변에서/세이 하니/한 휘준 쉬지 않고 푸른 물빛 흔들어대는 그리움의 원천 다도해 돌고돌다 내 가슴에 파도치는 당신의 애절한 사랑이 더 큰 아픔으로 나를 때리며 바다의 시지프스가되어 밤낮 몽돌을 굴려 올립니다 안을 수록 다시 물결에 쓸려 멀어져 가는 안타까움 차르르 차르르 수없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끝없이 반복되는 아픈 사랑의 형별 바람의 언덕을 맴돌아 온 神話(신화)속 사랑이 울고 있다 너도 나도 가슴 한 켠 뭉그러져 몽돌되어 함께 흐느끼고 있다." 많은 낭송을 들었고 낭송회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낭송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운전하는 옆자리에서 육성으로 듣는 낭송 고요하게 흐르는 안개와 강물도 분위기을 더욱 고취시키고 작은 차 안이란 것이 음성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하여 숨 쉬는 소리까지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그래서일까 전율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낭송을 들으면서 일어나는 이런 감동은 처음이었다. 흐느끼는 영혼의 목소리 같은 빼어난 송 연주 시인 겸 낭송가의 목소리가 그랬지만 비오는 날 강가를 지나면서 듣기에 딱 알맞은 수채화 같은 한 휘준 시인님의 시도 그랬다. 더구나 주변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물안개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젖어 버렸는데 아름다운 목소리와 시는 너무 절묘하게 분위기에 맞아 나의 심금을 울리고 말았다. 삶에서 이렇게 감동받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 이런 경험을 자주 하고 싶다. 물안개란 말과 양수리 그리고 시낭송 이란 말만으로도 이날의 감동은 바로 살아난다. 언제나 그럴 것이다.

물안개 아름다운 양수리 /茂正 鄭政敏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 잊힌 기억 양수리에 갔던 추억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주도하여 갔던 것이 아니고 친구가 운전하여 간 차 안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른 새벽이었고 그 지점이 어디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고 생각한 양수리에 두 번이나 갔었다 물론 이번에 간 지점이 아닐 수도 있다. 이른 새벽 양수리 물안개는 분명 환상이었다 이제야 기억하고 그때의 친구들을 기억했다.

살구 꽃 봉오리를 보니 옮긴글 寫眞/茂正 鄭政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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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오덕 선생님 편지 받았습니다. 왠지 눈시울이 화끈 더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랑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라는 것을, 선생님 글월에서 느꼈습니다. 출생지가 남의 나라였던 저는 여지껏 고향조차 없는 외톨박이로 살아왔습니다. 아홉 살 때 찾아온 고국 땅이, 왜 그토록 정이 들지 않는지요? 나에게 한국이라는 조상의 나라가 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무면 치마폭에서만 느씰 수 있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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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당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고국은 나에게 전쟁과 굶주림, 병마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위에 몸소리처지는 외로움을. 자기나라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답니까? 나는 무던히 나의 이 한국 땅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메말라진 흙 속에 물 한 방울 찾을 수 없어, 여지껏 목말라 허덕였습니다. 솔직히 저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더욱이 거짓말 잘하는 어른은 보기도 싫었습니다. 나 자신이 어린이가 되어 어린이와 함께 살다 죽겠습니다. 선생님만은 제 마음 이해해 주실 겝니다. 나라고, 바보 아닌 이상 돈을 벌 줄 모르겠습니까? 돈이면 다아되는 세상이 싫어, 나는 돈조차 싫었습니다. 돈 때문에 죄를 짓고, 하늘까지 부끄러워 못 보게 되면 어쩌겠어요? 내게 남은 건, 맑게 맑게 트인 푸른 빛 하늘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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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오덕 선생님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 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김선영 선샌께서 그곳에 찾아가셨겠지요? 조선일보사에서 찾아다 주신 상금을 받아 쥐고, 김선생 딱한 사정을 들었습니다. 차비조차 변변히 받으려 하지 않고, 추운 산모롱이 길을 가다가 손을 흔들던 모습이 지금은 자꾸자꾸 보여집니다. 그래서 또 울고 싶어지고. 아무래도 나는 울기쟁인가 봅니다. '토끼나라' 원고를 보냅니다. 내 원고는 거의 쉰에서 백 장이 되어 취급하기가 곤란하지 않을까요? 지금 가지고 있는 작품, 미발표만으로 이십여 편(일천 장)을 가졌습니다. 어떻게 하시든지, 선생님 의견만 따르겠습니다. 아동문학가협회 가입서를 동봉합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열한 시가 가까워 옵니다. 손이 시러 더 쓸 수도 없군요. 피곤해서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안녕히! 1973년 2월 8일 권정생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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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은 아름다운 편지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에서 이 책은 두 사람이 20년 넘게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은집이다. 소박하고 간결한 편지글 사이에서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외로움과 서로에 대한 존경과 격려, 인생과 세상에 대한 생각들이 배어나오고, 글에 대한 고민과 문학계의 풍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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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무정 정정민 어떤 꽃이 피면 어떤 사람이 생각나는 때가 있다. 나에게도 꽃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앵두꽃이 피면 여승으로 살다 불혹에 입적하신 회색 승의의 누님이 생각난다. 목련꽃이 피면 피부가 하얀 고운 여자친구가 생각난다. 그녀의 생일이 4월이라 목련꽃과 같은 그녀를 생각하며 창작한 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목련꽃 피는 어느 날 하늘나라로 간 또 다른 친구가 생각나기도 한다. 살구 꽃 봉오리를 볼 때면 내 누님의 친구동생이 생각난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이 위였는데 언니의 심부름으로 누나를 만나러 왔다가 누나가 출타 중이어서 나와 같이 한 시간 정도 같이 있었는데 사춘기의 시골집에서 단둘이 있자니 야릇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겨울이라 안방에 앉아 서로 다른 삶의 세계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당시 그녀는 목포여고를 졸업했었는데 키가 크고 얼굴에 여드름이 한둘 있었다. 싱그러운 얼굴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든지 마음속에서 자꾸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소를 묻고 편지를 주고받았다. 젊은이들의 일상이야기였지만 작은 산골 작은 마을에서 살던 나에게는 도시처녀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순진무구한 시골소년이 싫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기 6개월 갑자기 편지의 답장이 오지 않았다. 두어 번 더 편지를 보내다 결국 포기했는데 나중에 누나로부터 듣게 된 소식은 그녀가 시집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금 서운한 생각에 뜰을 거니는데 살구꽃 봉오리가 터지려 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살구꽃 봉오리는 눈물이었다. 사랑한 사이도 아닌데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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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이야기/무정 정정민 살구 맛이 좋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장마로 물기가 잔뜩 들어간 살구는 보기엔 탐스러워도 한 입 베어 물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임실에 사는 친구가 자신의 동네는 옥정호라는 호수가 가깝고 산새가 아름다워 과실도 맛있다고 하였다 믿지 않았지만, 그곳에 가게 되었다 그곳의 살구는 맛이 정말 좋았다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새콤달콤한 맛 몇 해 전이다 존경하는 원로 작가님께서 집으로 초대하여 갔는데 살구가 막 익기 시작하는 때였다 알이 굵지는 않았지만 맛있게 보였다 한 바구니 가득 따 주시며 맛보라 하시었다 햇살이 눈 부신 초여름의 살구는 그 어느 때보다 향기로웠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수많은 이야기를 저축해 가는 것이다 그것을 풀어 보며 미소 짓는 것이 요즘의 나다.


안산식물원

식물원에 가고 싶다 무정 정정민 가끔 식물원에 가고 싶다. 머리가 아플 때면 식물이 발산하는 푸른 기운을 듬뿍 받고 싶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몸에는 새로운 비늘이 돋는 것 같다. 이 에너지로 얼마간 살 수 있다. 머리가 아프지 않아도 식물원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겨울철이다. 푸른 잎이 사라지고 마른 잎이 거리에 가득하면 추억처럼 그리워지는 것이 푸른 계절이 아닌가 마음속에 기억하는 푸른 계절 그 계절은 식물원에 있다. 여행을 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는 식물원에 간다. 그곳은 남국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흔하지 않은 열대지방의 식물을 보면 자신이 따뜻한 남쪽 나라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때론 이런 착각을 얼마나 원하든가 행복한 착각은 새로운 에너지를 준다. 그러면 누구에게나 친절할 힘이 생긴다. 나에게 귀한 손님이 오면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단둘이 앉아 있을 의자가 있는 조용한 식물원이다. 보온병에 담아 간 허브차를 그곳에서 나누어 마시면 아무래도 너무 행복하여 지고 만다. 이런 이유가 아니어도 더러는 식물원에 간다. 지금쯤 어떤 꽃이 피어 있을지 궁금하여 몹시 알고 싶어서다. 작고 볼품없어도 내가 보아 주면 씽긋 웃는 그 미소가 즐거워서다.

안산식물원-무정 정정민 매년 봄이면 어떤 꽃이 웃고 있을지 조금 알고 있는 곳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면 아내와 간다 올봄에는 너무 이른 탓인지 많은 꽃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3월 중순쯤은 되어야 꽤 많은 꽃을 보게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직 개나리도 없었고 산당화는 봉오리만 뾰쪽하게 보였다 하지만 매화는 이미 진 것도 있었다 영춘화는 만개 상태였으나 천리향은 아직 만개는 아니었다 여러가지 꽃을 보니까 화성 우리 꽃 식물원보다 조금 늦었다 온실 온도를 낮게 잡아 그런 것이려니 혼자서 생각했다 안산 식물원에 가면 식물원 앞 홍두깨칼국숫집에도 들린다 바지락의 양이 많고 겉절이 배추와 총각김치가 일미인 점도 있다 두 가지 즐거움을 누리는 곳 안산 식물원 삼월에도 다시 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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