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로 선생님께 받치는 시
시.사진/무정 정정민
서울 종로의 어디선가
출생하셨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가회동 거리는 아니었을까요?
아명이 영복이라 들었습니다.
겨우 5세의 어린 나이로
술 항아리 정복을 꿈꾸던
개구쟁이도 그런 개구쟁이가 있을까요?
그런 영복이를 매로 다르시지 않고
오히려 술 바가지로 달래시던
남다른 어머니를 두신 선생님은
위로 두 형을 두었지만 아버님이 주신
술잔의 특혜는 혼자만 누리셨다지요.
언어의 특출한 재능이 있어
고등학교 1학년이나 됨직한 16세에
영시를 쓰셨다니 놀라움 큽니다.
하기야
1915년 조선중앙기독청년회학교
영어반 3년 과정을 6개월 만에 마치고
부설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1918년에는 자신이 졸업하지 못한
모교의 영어교사로
삼일 운동 독립선언문을 영어로 번역
해외로 보내셨다니 더 말해 무엇하리요.
이후 여러 문학지와 동인 활동을 통하여
주옥과 같은 수많은 시를
우리에게 남겨 주시어
이 나라 문학사에
찬란한 빛을 발하고 계십니다.
교과서에서 알게 된 논개
고강동 기념상에서 본 봄비
읽고 또 읽어도 그 민족혼과
부드럽고 재기 넘치는 시심을
넘볼 수 없어 한없는 존경심만 생깁니다.
만인으로부터 시성이란 칭찬을 들었던
선생님은 말년에 "명정 40년"이란 수필로
한국 주당계를 평정하셨다지요.
시면 시 수필이면 수필로
민족시와 암울한 시대를 풍자와 해학의 수필로
한국 문학계의 찬란한 별로 자리하신 선생님
조상 500년의 터전인 부천 고강동 수주로에
육신은 고이 영면하시지만
우리의 민족의 가슴속에
우리 문학인의 가슴속에
여전히 푸른 강낭콩으로
불붙는 정열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부천에서 매년 실시하는
수주 변영로 문학제로
한국 문인협회 강서지부 특집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사랑은 겁없는 가슴으로서
부드러운 님의 가슴에 건너 매여진
일렁일렁 흔들리는 실이니
사람아 목숨 가리지 않거든
그 흔들거리는 실 끊어지기 전
저편 언덕 건너가지
"사랑은"이란 선생님의 시를 끝으로
저의 마음을 바칩니다. 07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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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고강동 일대에 있는 변영로 시인의
기념상 생가 묘역 그리고 뒤풀이 추어탕집
묘비앞에서 3인의 헌시 순서가 있었습니다.
소설가 한 분 시인 한 분 그리고 막내로
제가 이 시를 낭송했습니다.
부천 고리울 가로공원/무정 정정민
이번으로 두 번째 가게 된 고리울 가로공원
첫 번째는 호수공원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호수공원에서 부천 고강동으로
넘어가니 공원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했다.
그날이 작년 부활절이라 학생들이 건네준
삶은 달걀을 벤치에 앉아 먹었던 기억이 또렷했다
그래서 부천 고강동으로 해서
서서울 호수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겠다 싶어
며칠 전에 시도한 것이 까치울 구름다리에
올라서며 생긴 일이다
그때는 고강선사유적지만 구경하고
좀 멀다 싶어 서서울 호수공원까지
가는 것은 멈추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 정확한 위치와 가는 법을 알고 싶어
다시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결국 다시 서서울 호수공원서
고강동으로 넘어가며 고리울초등학교와
가로공원이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았다.
가로공원은 별로 크지 않지만
지역만이 쉼을 얻기 더없이 좋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벚나무가 많고 산밑이며 더구나
조금만 더 가면 서서울 호수공원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위의 사진 속 무대에서
몇 년째 음악회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 수주로도 알았다
바로 수주 변영로 시인의 흔적이 있는 곳
동상과 시비가 있었다.
사시던 집도 있어 한국 문인협회 회원과
묘역도 찾아보고 시 낭송회도 했던 일이 생각났다.
부천 고리울/옮긴 글
“꽃고리울 지킴이 이야기”
-주관기관: 수주도예연구소
-협력기관: 고강복지회관
-활동 지역: 고강본동 및 고강1동 주민 (어르신, 주부, 아동(4-6학년))
수주도예연구소는 고강복지회관과 협력하여
2012년 ‘고리울이야기로 빚는 아날로그 골목길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고리울 옛이름 찾기
도자기지도 및 옛지명 안내판을
고리울 가로공원 및 고강동 3곳에 제작, 설치하였고
이어 2013년에도 ‘꽃고리울 지킴이 이야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강동은 2천5백년 역사의 청동기-초기철기 선사문화유적이
존재하는 부천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입니다.
고리울은 고강동의 옛 이름이고, ‘꽃’은 다른 사물과 덧붙으면
최고의 상황을 나타내며 ‘지킴이’는 한 집이나 마을,
공동 구역을 지켜주는 신을 일컫는 순우리말입니다.
“꽃고리울 지킴이 이야기”는 주민과 예술 및 복지단체가
만들어가는 동네 브랜딩(branding)의 기초계획입니다.
4개월에 걸쳐 고강본동 및 1동 주민들과
고강동 리서치 및 스토리텔링 작업을 통해
고강동의 수호신 캐릭터인 고리송이(봉황새)와
고리산이(현무)를 시각 일러스트물로 개발하였습니다.
주민들은 작게는 자기 자신의 숨겨진 예술적
혹은 일상의 바램 또는 욕망에서부터
집안에 내려오는 가족이야기, 동네의 애환,
동네 곳곳 옛 이름에서 유래하는 이야기와
부천의 오래된 세시풍속, 옛 동네 분들의 생활문화 등을
스토리텔링하여 꽃고리울의 지킴이(고리산이와 고리송이)를
다양한 채색토우(土偶, 흙으로 만든 인물상
또는 동물상)의 재미난 형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본 프로젝트는 동네의 특성이 응집된 캐릭터를 만들고,
동네문화거점공간(주민센터)에 전시함으로써
향후 고리울선사문화제나 전통시장 지역복지 프로젝트와
연계해서 동네이미지를 상승시켜 동주민들의 참여의식과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동네의 복지, 예술, 교육 단체들과의
다채로운 협업을 통해 건전한 동단위의 주민공동체 문화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버들강아지 3/무정 정정민
봄이 먼저 오는 곳이 물일까
버들강아지는 물가에 살며
이른 봄소식 전한다.
언뜻 보면 벌레 같아도
부드러운 솜털에
순박한 모습
작은 꽃 피우며 벌을 부른다
겸손한 자태 감춘향기
나는 알거니
찬바람 가시지 않는 호수에서
너를 보니 꿈인 듯 반갑다.
서서울 호수공원 12/무정 정정민
서서울 호수공원의 봄은 어떨까
분명 봄꽃이 필 것 같았다.
작년에도 궁금하여 간적있다
다르다면 작년에는 3월이었고
올해는 2월이다
당연히 기대한 꽃은 없었다
버들강아지도 이제 눈을 비비고 있고
히어리도 싹이 조금 돋아나고 있을 뿐이었다.
작년에 찍었던 버들강아지 사진을
조금 확대하여 올려 보았다.
군자란(君子蘭)
글&寫眞/茂正 鄭政敏
사철 푸른 기상
어느 풀이 넘볼까
윤기나는 넓은 잎
어느 난보다 크다.
군자의 마음이 큰 것처럼
널따란 푸른 잎
과히 왕이다.
꽃 또한 크고
색 또한 강하고
열매도 열리니
어느 난이 그럴까
난이 아니어도 난처럼 살고
수선화이면서도
난 왕으로 불리니
군자라 함이 틀리랴!
군자란 전설/옮긴 글
아프리카 한 부족마을에 추장과 부족민이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멀리 원정 사냥을 나가곤 했었습니다.
그날도 날센 사냥꾼과 추장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식량을 할 짐승 사냥을 떠났습니다.
마을을 지킬 젊은이를 남겨두고 떠났지요
이때 이 마을의 동태를 늘 주시하던
멀지 않은 곳에 살던 식인종은
추장이 사냥 떠난 것을 알고
자신의 군대을 대거투입하여
마을을 지키던 젊은이를 죽이고
힘없고 약한 아녀자를 끌고 자신의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멀리 사냥갔다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된 추장은
아연실색하며 식인종을 추격하였습니다.
꼬박 삼일을 쉬지 않고 추격하여 그들이 사는 근거지를 알았습니다.
헌데 무작정 공격하기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식인종이 수상부족으로 나무에서 살았고
그들은 몸이 날쌔서 나무를 건너 뛰는 재주가 있기 때문에
공격하여 이길 승산이 없었습니다.
지혜를 짜던 중 마을 둘레에 연기를 피운다면
이들이 불난 줄 알고 나무에서 내려 올것이라 판단하고
이때 공격하면 이길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예상이 적중하여 일망타진이 되는 싯점에
이들의 일행이 사냥갔다 돌아오다
마을이 공격 당하는 것을 보고 합세하자
추장은 안팍에서 협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을 이기지 못하고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이 추장이 죽은 무덤에서
추장의 슬픈 마음처럼 붉은 꽃이 피어났습니다.
추장의 화려한 머리장식같은 꽃이 피어났는데
이 꽃을 군자란이라 했답니다.
군자란(君子蘭)/옮긴 글
꽃말/고귀
君子蘭(군자란)은 이름 끝에 ‘란’이라고 되어있어서
난 종류일거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난과는 전혀 관계없는 식물이다.
이름은 동양적지만 고향은 남아프리카이다.
잎을 주로 관상하는 관엽식물이지만 긴 꽃대 끝에
여러 송이가 함께 피는 꽃 모양이 매우 아름답다.
겨울철 꽃이 참 귀할 때인데 비록 실내이긴 하지만
꽃을 보여주니 참 고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쭉 뻗은 가죽질의 크고 싱싱한 잎이나
화려한 꽃을 감상하는 분화용으로 주로 이용된다.
최근 원예용으로 꽃 색이나 모양이 다른 것,
잎에 무늬가 들어 있거나 잎 모양이 다른 것 등
품종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다.
군자란은 수명이 30년 이상 장수하는 식물이다.
어린 묘로부터 시작하면 3년은 지나야 꽃이 피지만
일단 꽃을 피운 것은 이듬해부터는 매년 꽃을 피운다.
씨앗으로 번식해도 되지만 꽃이 피기까지
5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보통은 포기나누기(분주) 방식으로 증식한다.
씨앗은 11월경에
충분히 성숙된 것을 따서 뿌리면 되는데
다소 저온인 16-21℃에서 발아가 잘된다.
포기나누기는 늦은 겨울이나 이른 봄에 한다.
수선화과에 속하는 상록성의 다년생 식물로써,
강변이나 숲 속의 물기가 충분히 있는 곳에 자생하며
세계적으로 4종이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주로 미니아타종이 있다.
식물이 꽃을 피운다는 것은
대를 이을 자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군자란도 따스한 온실에서만 있으면
대를 이을 힘이 생기지 않는다.
웬만큼 자랐을 때
반드시 어느 정도 외기의 싸늘한 풍파를 거쳐야
그 힘이 생기게 된다. 사람도 그저 어려움 없이
안온한 상태로 살아온 사람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자기만의 개성과 능력을
개발해가는 사람들이 보다 알찬 삶을
사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싶다.
군자란 추억/무정 정정민
흑염소 집을 운영하는 친구 집에 가면
군자란이 어찌나 건강한지 놀래곤 했다.
몸집도 크고 잎도 윤기가 흐르고
꽃도 클 뿐 아니라 색상도 선명했다.
친구는 그 이유를 약을 짜내고 남은 것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이유로는 창가에 두었기 때문에
햇볕도 알맞게 받고 밤이면
기온이 조금 내려가 서늘하여
군자란이 생육하기 더없이 좋은 환경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것을 몇 장 카메라에 담았었다
그리고 서울 대공원 식물원, 안산식물원
서서울 꽃시장에서 찍어와 모아 보았다
몇 년씩 찍은 사진을 이렇게 모아보는 즐거움
검색하여 찾아내는 일이 다소 어렵지만
보람이 되기도 했다.
바로 내가 찍었다는 점이다.
전문적인 사진작가라면 더 멋진 작품이 되었겠지만
아직 초보라 잘 찍지 못해도
틈만 나면 사진을 찍어본다
풍경 소리/茂正 鄭政敏
고요한 내 마음에
그리움이 일렁일 때마다
아련하게 들리는 소리
산굽이 돌아 흘러내리는
청강한 물소리 인가하면
잠 못 이루는 아기 새의
잠투정 같기도 하여
두 귀를 바짝 새우면
끊긴 듯 잠긴 듯
먼 듯 가까운 듯
밤새워 들리는 소리
잠 못 드는 그리움이었어.
할미꽃
시. 寫眞/茂正 鄭政敏
사랑은 운명
거역할 수 없는 천형
너무 아파 죽을 수조차 없어도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친다.
바람 불어 피고
또 바람불어 지는 찰라라 해도
사랑 하나면
존재가 없어도 좋아
그림자로 살아도 좋아
일 년에 한 번
봄에만 잠시 피고
또 그렇게 일 년을 기다리는
가슴 터지는 사랑이라도
사랑 그 사랑 안고
또 봄을 기다리겠다.
할미꽃 전설/무정 정정민
외진 산골 오두막에 연로하신 할머니와
부모를 일찍 여읜 두 손녀가
같이 살고 있었다.
두 소녀가 장성하여 결혼할 때가 되자
산너머 마을에서 매파가 왔다
어여쁜 처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중매를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큰 손녀는 눈치가 빨라
매파에게 친절하게 하였다.
그로 하여 매파는 얼굴 곱고 눈치가 빠른 큰 손녀를
부자에게 중매했다.
하지만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는 둘째는
산너머 약초꾼에게 중매하였다.
이렇게 애지중지 키우던 두 손녀가 시집가자
할머니는 외롭고 쓸쓸했다.
더구나 병약하여 혼자서 생활하기 어렵게 되자
큰손녀를 찾아가게 되었다.
부자로 사는 손녀가 자신의 몸 하나
의지하기는 어렵지 않으리라 판단한 까닭이다
하지만 얼마간의 날이 지나자
마음씨 곱지 않던 큰손녀가 은근히 눈치를 주어
견디기 어렵게 된 할머니는
둘째 손녀에게 가게 되었다.
한겨울 눈보라 속을 뚫고 가기엔
길이 멀고 몸이 약하여 결국
둘째 손녀의 집이 보이는 언덕에서
동사하고 말았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둘째 손녀는
몹시 가슴 아파 하며
양지바른 곳에 할머니 묘를 만들었다.
이른 봄 할머니 무덤에서 꽃이 피었다
백발의 할머니를 닮은 꽃
허리가 굽은 모습이 영락없는 할머니 모습이었다.
이 꽃을 사람들은 할미꽃이라 부르게 되었다.
할미꽃 추억/무정 정정민
할미꽃 전설을 누나로부터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슬픈 전설 때문인지 할미꽃을 보면
그저 지나치지 못했다
한 번 더 보고 전설을 생각했다
이른 봄 화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꽃 중의 하나
올봄에는 어디에서 보게 될까
내 카메라에 담아 본 꽃들을 모아 보았다.
한택식물원에서 인천대공원에서
안산식물원 그리고 한강의 선유도에서 찍어온 할미꽃
누나가 들려준 전설도 다시 정리해 보았다.
복수초福壽草
詩 茂正 鄭政敏
엇갈린 사랑
이룰 수 없어도
내 마음 돌릴 수 없어
그대를 기다립니다.
별이 되어도 기다릴 수밖에
너무 멀어 갈 수 없어도
날마다 바라보게 되겠지.
그렇지만 꽃이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지킬 수 있고
가까이 볼 수 있으니
사랑아
내 사랑아
변하지 못하는 나는
언제나 그대만을 사랑하겠어.
눈 속이라도
노랗게 핀 그대 모습
절대로 잊지 않을게
내가 지킬게.
복수초/무정 정정민
차가운 눈 속에 피는 복수초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딱 한 번
그날따라 카메라가 없어 담아내지 못했지만
자꾸 그때 일이 생각난다
강화도 백련사 아래 있는 찻집 차향따라
그 앞 작은 호수에서 보았다.
잔설을 뚫고 나와 노랗게 핀 꽃
신기하고 귀엽고 고마워 오랫동안 보았다.
다시 기회가 생기지 않아 보지 못했는데
개복수초라 하는 꽃을
눈 속이 아닌 온실에서 보았다.
화성 우리 꽃 식물원
그리고 한택식물원에서 많이 보고
카메라에 담았다.
복수초는 아무래도 눈 속에서
피어난 것이 색다르다
그 기상이 장하고
흰색 눈 속에서 노랗게 피기 때문에
그 색도 선명하다
그런 복수초 다시 보게 될지 모르지만
만약 다시 보게 된다면 더욱 반가우리라.
복수초 전설
복수초 (Adonis amurensis, 뜻: 동양-영원한 행복, 서양 - 슬픈 추억)
옛날 옛날, 하느님만이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하늘나라에 크노멘 공주라는 아름답고 젊은 여신이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여신들은 모두 다 아름답웠지만
그 중에서도 크노멘공주는 특히 아름다웠습니다.
공주가 긴 드레스 자락을 하늘하늘 나부끼며 걸으면 태양은 황홀하여
더욱 밝게 빛을 내고 바람은 멍하니 멈추어 서서 공주를 바라 보았습니다.
윤기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만져 보려고 비는 서둘러서 내렸고,
달은 공주의 얼굴을 보려고 낮게 내려왔습니다.
"크노멘 공주를 누구에게 시집보내면 좋을까?"
공주가 나이가 들자 아버지인 하느님은 매일매일 고민했습니다.
하늘나라에는 젊은 남신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젊은 남신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고민했습니다.
"꽃 신은 착하지만 믿음직스럽지 못해.
냇물 신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툭하면 제멋대로 날뛰고,
원숭이 신은 똑똑하지만 버릇이 없어. 새 신은 날쌔지만 말이 많고,
물고기 신은 부지런하지만 가난해.
산 신은 부자지만 터무늬없는 겁쟁이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참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하느님이 고른 것은 두더지 신이었습니다.
"두더지는 누구보다도 용감해. 정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싸우고 아주 날렵하고 똑똑하지.
게다가 착하고 산 신보다 부자야. 땅도 많이 가지고 있지."
두더지 신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땅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땅으로,
땅에서 땅속까지가 거의 두더지 신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용감하고 똑똑하고 착하고 부자인 두더지에게는
딱 한가지 결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젊은 신들 중에서
가장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마음만 올바르고 아름다우면
겉모습은 문제될 게 없다고 판단하고
두더지 신을 크노멘 공주의 신랑으로 정했습니다.
먼 옛날 하늘나라에서는 아버지가 딸의 신랑을 정했던 것입니다.
"우리 크노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해 주게나."
하느님은 두더지를 찾아가서 부탁했습니다.
"너무 행복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두더지는 예의를 갖춰서 정중하게 말했지만
가슴 속은 불같이 타 올랐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노멘 공주와 결혼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크노멘 공주를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두더지는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을 하면 약속의 증표인
보도(매우 귀중한 칼)를 내놓았습니다.
하느님도 보도를 꺼냈습니다.
두사람은 서로 약속의 증표인 칼을 교환하고
크노멘 공주와 두더지의 결혼을 맹세했습니다.
"너를 두더지에게 시집보내기로 했다."
하느님의 이야기를 듣고 크노멘 공주는 깜짝 놀랬습니다.
"뭐라구요? 왜 제가 하필이면 하늘나라에서
제일 못생긴 두더지와 결혼해야 되지요?"
크노멘 공주가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것은 못생긴 외모였습니다.
손발이 길쭉한 거미 신도, 우툴두툴한 두꺼비 신도,
꿈틀거리는 지렁이 신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두더지는 더 심해요. 눈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코는 너무 크고,
키는 작달막하고게다가 팔자걸음이잖아요. 싫어요.
저는 절대로 두더지와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화가 난 크노멘 공주를 하느님이 달랬습니다.
"네가 보고 있는 것은 외모 뿐이지 않느냐?
두더지의 마음도 한 번 생각해 보아라.
착하고 매우 똑똑하고 매우 용감하지 않느냐?
나쁜 곳이라곤 한 군데도 없다.
게다가 넓은땅도 가지고 있지 않느냐?"
"싫은 건 싫은 거에요"
크노멘 공주는 소리를 지르며 아버지의 궁전을 뛰쳐 나갔습니다.
공주가 싫어하는 것도 모르고
두더지는 매일같이 선물을 보냈습니다.
봄에는 두더지의 영토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을,
여름에는 가장 북쪽 땅에서 잘라 온 얼음으로 만든 백조를,
가을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 열매를....
크노멘 공주는 두더지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화를 내며 망가뜨릴 뿐이었습니다.
초겨울에는 비단옷을 보냈습니다.
한 가닥 한 가닥 정성들여 실을 뽑아 옷을 짓고,
그 위헤 크노멘 공주의 모습을 수놓은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봐라."
아버지는 크노멘 공주 앞에 비단옷을 펼쳐 보였습니다.
옷 위에 수놓아진 공주의 모습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선명했습니다.
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두더지는 한 올 한 올에 정성을 다하여
며칠에 걸쳐 옷을 짰던 것입니다.
비단 옷 다음에는 금비녀를 보냈습니다. 조그맣고 빨간 돌로 크노멘
공주의 이름을 새긴 아름다운 비녀였습니다.
"너는 아직도 두더지의 마음을 모르느냐?"
아버지는 크노멘 공주를 꾸짖었습니다.
"나와 두더지는 하늘나라의 법에 따라 보도를 교환했다.
그러니 너는 두더지와 결혼식을 올려야만 한다."
하늘나라의 법에 따르면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죽여도 괜찮았습니다.
두더지는 화를 내며 크노멘 공주의 아버지를 죽여도 되는
입장인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성을 들여 선물을 보내고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억지로라도 너를 두더지에게 보내야겠다."
칼을 교환한지 300일이 지난 날,
하느님이 크노멘 공주에게 말했습니다.
"싫어요."
크노멘 공주는 딱 잘라 말하고 금비녀를 집어 던졌습니다.
비단옷을 쥐고는 엉망진창으로 찢어 버렸습니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그런 짓은 용서할 수 없다."
크노멘 공주는 화가 나서 잡으려고 하는
아버지를 피해서 도망쳤습니다.
어둡고 추운 겨울 밤이었습니다. 북풍이 휘몰아치고
눈도 조금씩 내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도와 주세요."
크노멘 공주는 곰에게 부탁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도와줄 수는 없지."
곰은 모르는 척 했습니다.
"나를 좀 숨겨 주세요."
푸른 나뭇가지를 늘어뜨리고 서있는
소나무에게 부탁했습니다.
"안 됩니다.
두더지의 마음을 몰라주는 당신을 좋아할 수 없습니다."
소나무는 딱 잘라 말했습니다.
"나를 어디 먼 곳으로 데리고 도망쳐 줘요.
두더지가 없는 곳으로 가 버리고 싶어요."
크노멘 공주는 북풍에게 부탁했습니다.
"두더지의 땅은 세상 끝까지 걸쳐 있습니다.
이 세상엔 두더지가 없는 곳은 없어요.
내 마음은 차갑지만
지금도 계속 두더지가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하고,
목숨을 걸고 소중히 하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북풍인 나도 그런 두더지의 마음을 아는데 나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당신이 왜 두더지의 마음을 모르지요?"
북풍은 차갑게 말했습니다.
"싫은 걸 어떻해요."
발을 구르는 크노멘 공주의 귀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제멋대로인 너를 더 이상 내 딸이라고 여기지 않겠다.
내가 내리는 벌을 받아라."
두더지의 마음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크노멘 공주는
아름다운 젊은 여신의 모습을 잃어 버리고,
금색의 조그만 꽃이 되어 버렸습니다.
쌓인 눈 속에서 태어난 꽃은
복수초라고 이름지었습니다.
그로부터 몇백 년,
몇천 년이 지난 지금도 복수초는 눈 속에서 핍니다.
흰 눈이 잔뜩 쌓인 아침
복수초 주위에 많은 발자국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꽃이 되어 버린 크노멘 공주를
지금도 그리워하는 두더지의 발자국입니다.
금색의 꽃이 숨어 버리지 않도록 두더지는
밤새도록 복수초 주위의 눈을 쓸고 있는 것입니다.
미나리아재비과(―科 Ranunculaceae)에 속하는 다년생초.
뿌리줄기는 짧고 굵으며 흑갈색의 잔뿌리가 많아
수염뿌리처럼 보인다. 잎은 어긋나고 깃털처럼 갈라지며,
잎자루 밑에 녹색 턱잎이 있다.
4월초에 노란색 꽃이 잎이 활짝 벌어지기 전에 피며
지름은 3~4㎝쯤 된다. 꽃받침잎과 꽃잎이 많으나,
꽃잎이 더 길며 수술과 암술도 많다.
열매는 수과(瘦果)로 익고 경기도 이북 지방에서 흔히 자라고 있다.
봄이 되어 눈이 녹기 시작하면 꽃을 피운다.
북쪽 지방에서는 눈 사이에 피어난 꽃을 볼 수 있으므로
눈색이꽃이라고도 부르며,
중국에서는 눈 속에 피어 있는 연꽃이라 하여
설연(雪蓮)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른봄에 노랗게 피어나는 꽃이 기쁨을 준다고 해서 복수초라고 한다.
배수가 잘 되는 부식질 토양에서 잘 자라며 봄에 꽃이 필 때는
해가 잘 비쳐야 하나 꽃이 지고 나면 나무 그늘 밑에서도 잘 자란다.
뿌리는 밑으로 곧게 자라 해마다 층(層)을 이루며 층과 층 사이에는
숨은 눈[隱牙]이 생긴다.
이 눈을 잘라 심으면 쉽게 번식하지만 씨를 뿌리는 경우에는
꽃이 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뿌리나 줄기 등에 아도니톡신(adonitoxin)이 들어 있어
한방에서 강심제 및 이뇨제로 사용된다.
申鉉哲 글
구름다리 2
詩 사진 茂正 鄭政敏
날 부르는 메아리
저 산에서 들린다
그리운 목소리
어서 오라 하건만
골이 깊어 발길 더디다
구름 타고 건넌다면
나무 위로 날라
그대 기다리는 곳
나비처럼 내려서련만
무심한 세월만 그 몇 해던가
간절한 마음 알기나 한 듯
구름다리 생겼다
이제는 날마다
노래 부르며 가리
사랑하는 그대가 있는 곳으로
고리울 구름다리/무정 정정민
봄이 지척에 온 듯하여 이른봄풍경을 보러 나섰다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은 신월동의 서서울 호수공원
보통은 남부순환도로에서 들어가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쪽인 부천시 고강동에서
들어가 보고 싶었다.
어디든 뒤에서 보는 즐거움도 생기는 법이니까
먼저 부천의 까치울로 가서 지난번에 올라보지 못한
까치울 구름다리부터 보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물어
목적지로 접근하기 시작했는데
먼저 가게 된 곳이 고강선사유적지
철쭉 동산을 따라 오르다 보니
고리울 구름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 다리 어찌 그냥 지나치랴
가볍게 건너보았다.
장승과 솟대를 구경하고
손바닥만 한 쌈지공원까지 둘러보았다.
이 다리는
경인고속도로로 인해 단절된
부천시 오정구 '고강 선사유적공원'과 '성곡 자연공원'을
아치형의 육교로 연결한 고리울 구름다리
바람막이까지 있어 사람에 대한 배려까지 한
섬세함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고강동과 고리울의 참고자료/옮긴 글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의 동북부 끝에 있는 동이다.
조선 시대에 부평부의 하오정면에 속해 있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리울 · 장장굴 · 강상굴을 합해
부천군 오정면 고강리로 되었다. 고강리란 지명은
'고리울'과 '강상굴'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1973년 김포군 오정면 고강리로 되었다가
1975년에 다시 부천시에 편입되었다.
이때 원종동과 고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성지동이 설치되었다.
1989년 원종동과 고강동은 각각 독자적인 행정동으로 되었고,
1991년 고강동이 강본동과 고강1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중구와 남구가 설치될 때 중구에 속했다가,
1993년 중구가 원미구와 오정구로 나뉠 때 오정구 관할이 되었다.
『호구총수』에 부평부 하오정면 고리동리(古里洞里)가
기록되어 있는데, 곧 옛 '고리울'의 한자식 지명이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제작된 『조선지형도』에
대고리동(大古里洞)과 소고리동(小古里洞) 표시와 함께
일본어 가타카나로 '큰고리울'과 '작은고리울'
발음도 표시되어 있다. 장장굴과 강장굴은
각각 한자로 '장장동(莊將洞)'과 '강장동(康壯洞)'으로 표기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강동 [古康洞,
Gogang-dong]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2008.12, 국토지리정보원)
솟대 2
시. 사진/茂正 鄭政敏
장대 위에 앉아
세월을 본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지도 않고
폭풍이 불거나 한설이 내려도
피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비가 대수였을까
혹서도 끄덕하지 않고
공사장 굉음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날개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귀가 없는 것도 아닌데
박제된 마음
변하지 않는 기다림이 숙명이라.
부천 고강 선사유적공원/무정 정정민
길을 가다 스치는 선사유적지
부천 고강동이었다.
조금 지나치긴 했지만 곧 뒤돌아 갔다
쉽게 접지 못하는 호기심 때문
솟대도 장승도 구름다리도 있고
오래된 우리 조상의 유적도 있었다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찬바람과
질퍽한 길이 오래 머물게 하지 못했지만
철쭉 동산도 있는 것을 보았다.
새소리도 정겹고
주변을 둘러보는 즐거움이 절로 생겨
꽃피는 봄 잊지 않고
철쭉을 보러 오리라 생각했다.
언젠가 내게 주었던
하얀 은박지에 싼 초콜릿
반은 녹아 형제가 변했어도
달콤한 맛은 그대로였지요
당신의 가슴에 품고 왔던 초콜릿
얼마나 뜨거운 마음이면
초콜릿이 그렇게 녹아내렸을까
그 열정 사랑을 감사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날의 초콜릿 잊지 못합니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
피부가 변하고 체형이 커졌어도
당신은 내게 영원한 초콜릿
녹아내려 변형되어도 맛이 같은
2014 밸런타인데이
올 밸런타인데이에는 어떤 초콜릿을
선물로 받게 될지 궁금했다.
아내는 어떤 것을 줄까
두 딸은 또 얼마큼 줄까
회사 동료도 주지 않을까
출근한 나에게 여직원이
초콜릿을 주었다.
농담으로 전날 이야기한 것인데
정말 사왔다.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다소 고민했다
될 수 있는 대로 먹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설이면 안 될 것 같아
바로 한 알을 집어 먹고
컵 속에 담아 준 것은 오후에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은근한 기대를 하고 아내에게 물었더니
아이들이 줄 거란다
준비하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요즘 바빠 늦게 퇴근하는 두 딸이
소박한 초콜릿을 주었다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사소한 것으로 행복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먼 훗날 이 사진을 보며
이날을 추억하리라
내 딸들이 준 초콜릿이라고
손자 손녀가 생기면
보여 주며 행복해하겠지
겨울 장미/무정 정정민
아름다운 계절이 갔다
찬란하게 빛나던
내 사랑이 갔다.
너무 슬퍼 눈물로 지새던 밤이
그 얼마던가
그 여름 지나 가을도 갔다
낙엽도 진 쓸쓸한 겨울
내게도 흰 눈이 내렸다.
모든 것이 잊힌 줄 알았다.
차가운 눈 속에 피어나는
핏빛 동백 같은 사랑
나는 포기할 줄 모른 장미였다
계절도 모르는
붉게 타는 겨울 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