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천왕정
  

눈이 내리는 날 詩. 寫眞/茂正 鄭政敏 내 사랑하는 이가 그리우면 마음속에 꽃이 피어났다. 넝쿨장미로 은은한 향기를 날리고 어서 오라고 웃고 있었다. 너무 그리우면 보름달이 되어 그대 창가를 환하게 비추고 마른 나뭇가지로 그림자를 드리우면 같이 부르던 노래를 콧노래 하는 화장하는 당신을 보았지. 참기 힘든 그리움에 시를 쓰는 날은 그대는 내 마음에 하얀 천사가 되어 눈으로 내렸지요. 흰 눈이 내리는 날은 당신이 오시는 날입니다. 오늘도 눈을 보고 창밖의 한길 건너 신호등을 보고만 있습니다.

  

천왕정/무정 정정민 연차로 하루 쉬며 밀린 몇 가지 일을 처리했다 우선 고지혈증으로 의심되니 내과 진료를 받으라는 지난 4월 병원의 권고를 이제야 수납했다. 약 처방을 받았다. 또 혈압도 다소 높으니 지속적 관심을 가지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고 나왔다 혈압이야 오르락내리락하였는데 130전 후 심신의 안정을 취한 후 다시 검진하니까 120이 나왔다 결국 지혈증 약만 한 달분을 팔천 원 주고 샀다. 이제 또 한가지 처리할 일은 이발하는 것 집 근처에 이용학원이 있어 갔다 커트는 무료였다. 벌써 세 번째 이용한 것이다 배우는 분들이 다소 서툰 솜씨로 하는 것이지만 무료니까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며 했다. 갈 때마다 사람이 바뀌니까 솜씨들이 차이가 있었지만, 마무리는 원장이 하므로 지나친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벼운 소감은 수강생에게 해주고 나온다 이전 가위와 이발기 수리를 했던 경험이 있고 이 나이까지 이발한 경험을 토대로 그분들에게 약이 되는 말을 해준다 좋아하는지 불안해하는지 다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이번에는 라면 두 개를 이벤트 상품으로 주어서 그것도 득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잠시 쉬는데 거센 눈이 내렸다 이런 날 천왕정에 가보고 싶었다 그곳에 사는 오리도 궁금했다 아무도 다니지 않은 흰 눈 쌓인 길을 걸었다 추위가 다소 불편했지만 아무도 발자국 남기지 않은 길을 걸으며 익숙한 길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무척 좋았다 오리도 천왕정도 교회도 모두 아름다웠다. 빈 의자위에 눈도 천왕산 상수리나무에 앉은 눈도 잣나무 가지에 갈대꽃 위에 있는 눈 정자와 까치집 모두가 얼마나 한가한 12월의 설경인가 혼자서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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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건릉 
 

향나무 시 사진/무정 정정민 아직도 남아 있는 겨울 바람끝이 예리하여 나무는 감히 잎을 피우지 못한다 지난가을 다 벗지 못한 묵직한 옷 한 벌로 모진 풍파를 다 견디었는지 등에는 수많은 상처가 거북 등이다 안쓰러운 마음에 다가가 가만히 만져보니 가슴이 찌르르 전율한다 나도 이 나무처럼 살았을까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많으니 헌데, 이 나무 같은 향기가 없다.

융.건릉/무정 정정민 왕릉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참배를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숲이 좋아간다. 왕릉은 소나무 숲이 좋다 적송이나 곰솔이 무척 장대하게 크고 보기도 좋을 뿐만 아니라 산책하기도 좋다 많은 사람이 공원처럼 생각하며 찾는 이유가 나 같은 이유도 있으려니 생각한다. 소나무 숲은 어느 숲보다 피톤치드가 많은 것으로 들었다. 그것만이 아니고 친근감이 생기는 나무 늘 정겨운 마음이 들기도 하여 찾는다. 많은 왕릉 가운데 가장 많이 갔던 곳은 서오릉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헌인릉 서오릉은 숲이 대단하다 능이 많아 그 면적도 무척 컸다. 헌인릉에서 본 것은 맨땅에 누워 책을 읽는 부부를 보았기 때문이다. 흙과 가까이 있다는 것과 소나무 숲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 정말 보기 좋았다. 융·건릉도 다른 능처럼 소나무 숲이 좋다 이런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와 만나기 좋은 곳이다. 이번에도 소나무 숲을 보았지만 입구에서 향나무를 보았다. 백여 년 된 세 그루 역시 반가운 나무 고향 마을 부잣집 담 너머로 보았던 몸이 뒤틀린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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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3
  

눈 내리는 날 3 詩. 寫眞/茂正 鄭政敏 눈이 내린다. 구름산이 하얗다. 상수리 나뭇잎 진 가지가 하얗다. 아파트 높다란 굴뚝에도 찻길로 나가는 샛길도 화단의 피라칸사 붉은 열매에도 하얀 눈이 소복하다. 지난밤 잠들지 못하고 밤새워 뒤척이다 설 잠 든 새벽에 들린 까치 소리 행여 누가 올까 창가에 서보니 이렇게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는 날은 잠들지 못한다. 소리없이 없이 찾아오는 손님을 맞아야 하니까.

  

눈 내리는 날 3/무정 정정민 이제는 가을이 완전하게 갔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이 흐리면 눈이라도 올 것 같다 눈이 내린다면 어디선 만나자는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다. 아무 소식도 없으면 서운한 생각이 든다 지나간 아름다운 사연을 추억하며 집 근처를 걸어보게 되기도 한다 걸으면서도 연신 차가 들어오는 길목을 보기도 하는 걸 보면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기다림은 언제나 계속되는 것 같기도 하다 기다림이 무엇일까 그것은 희망이며 행복이기도 하다 기다림 없는 삶은 삭막하고 쓸쓸하다 기대 없는 삶이 얼마나 고독한가 나에게 막연하나마 기다림이 있어 다행이다 눈 오는 날은 그 기다림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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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香氣
  

coffee香氣 詩 寫眞/茂正 鄭政敏 한 잔의 coffee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그리움이 생긴다. 갈색 香氣로 다가서는 벅찬 感動 사랑하는 임만 같아 가슴 설렌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뜨거운 體溫 진한 키스처럼 달콤한 찻잔 온몸이 戰慄한다. 혼자 있는 늦은 밤에도 친구와 같이하는 cafe에서도 진한 coffee 한 잔은 내 마음의 노래 아무리 같이해도 질리지 않는 平生의 多精한 同伴者 내 그리움 음악/눈이 내리는데

  

따끈한 커피 같은 말/정정민 찬 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바람이 들어올 틈새가 없도록 차창의 문을 꼭꼭 닫아 놓고 투명 유리창으로 보이는 바람의 흔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다정한 얼굴 하나 떠올려 보았다. 초등학교 동창이다. 한두 사람이 아니련만 그 얼굴이 떠오른 것은 나에게 늘 다정하여 그런 것 같다. 다른 친구보다 유독 내 글을 사랑하여 주고 이 세상에서 너처럼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너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괜스레 나를 부러워 해준다. 그러면 철없는 나는 내가 정말 그런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만다. 그 친구다. 가끔은 우리 만나서 맛있는 식사를 해야 되지 않느냐고 자신의 바쁜 사업에 대한 모든 일을 일단 미루고 전화까지 꺼두고 무조건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어서 가자고 한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 인지 우리는 주섬주섬하고 술도 한 잔을 한다. 나야 하지 못하니 그 친구가 술을 먹고 나는 안주를 먹는다. 돌아오는 길은 운전을 내가 해야 한다. 그런데 만난 지가 오래되었다. 한 달이 지난 것 같으니 너무 오래된 것이다. 기온이 차가우니 건강하세요. 하는 문자를 보냈더니 "춥지? 감기 조심해!" 그 말이 왜 가슴을 뜨겁게 할까. 진정한 말이기 때문이다. 짧아도 따끈한 커피 같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참으로 좋은 친구가 내게 있음이 행복이다.

  

한 잔의 커피 같은 전화 글 정정민 새장 안에 새처럼 지내는 하루가 있다. 아무리 아우성처럼 가을의 소식이 들려도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날이 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의 시간을 내서 막 얼굴을 붉히기 시작하는 벚나무 아래서 푸른 하늘을 보는데 아직 이른 나뭇잎이 푸르르 진다. 어쩌면 새가 자리를 옮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린다. 청명한 하늘에서 떨어지는 구름 한 조각 같은 부드러운 음성이다. 아름다운 산에만 가면 내가 생각난다는 말이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말해줄 사람이 너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같이 가본 산이 없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산을 같이 가 보고는 싶었다. 그녀도 나 같은 마음이 있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가을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처럼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한 통의 전화 " 나, 내장산에 있다. 네가 생각나."

  

한 잔의 커피향에 젖어 시 정정민 아름다운 여인이 보내준 향긋한 차 한 잔을 봄꽃이 가득한 동산에 음미한다. 너무 멀어 향이 전달 되지 않을 것을 염려하는 그 고운 마음이 이미 향이 되어 가슴을 전율같이 흐르는데 봄비는 소리내어 그 말이 맞다고 한다. 서로 생각하는 마음은 시공을 뛰어넘는 신비한 밀어 신선한 멜(전자메일)향이다.

  

커피 한 잔 시 정정민 식후에 마시는 커피한잔 아내와 마시는 차 한잔 세상의 시름과 세월을 마신다 주를져진 아내얼굴 세월의 짙은 향기 고운미소 내 사랑타서 마시니 따뜻함이 가슴을 적신다 창밖의 겨울이 오히려 다정함 같은 우리는 사랑하는 연인 어제마신 차가 오늘도 같지만 항상 새로운 시간을 마신다

  

커피향 같은 그리움 시/ 정정민 한 잔을 들고 그대를 생각합니다. 같이 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합니다. 세상 어떤 이야기든지 그대와 나누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자판기 커피를 유난히 좋아하던 그대를 오늘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전을 자판기에 넣는 그대를 멀리서 지켜 보는 날 생각합니다. 그대는 아름다워서 주변이 모두 정겨워 보였지요. 두 잔을 빼서 들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서는 그대는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도 행복한 표정이었지요. 그 표정에서 얼마나 기쁨이 넘쳤는지 그대는 모르지 시지요? 향긋한 차향이 넘치고 손끝에 전해지는 온기가 온 세상을 다 덮는 것 같아 차라리 눈을 감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대는 커피향 같은 그리움 내게 행복을 주는 아픔 같은 그리움입니다.

  

헤이즐럿 커피향 글 정정민 커피향을 느끼긴 하지만 특정 향을 즐기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무슨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의지보다는 아내가 타서준 커피를 그냥 마셨습니다.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피곤이 좀 가시면서 잠도 사라집니다. 물론 설탕 맛과 커피 특유의 쌉쌀한 맛도 좋아합니다. 입안이 개운한 느낌도 좋습니다. 언제부터인가는 아침 식후에 당연히 마시는 것으로 인식이 되기 시작해서 어쩌다 잊어버린 날은 뭔가를 빼먹은 것만 같은 아쉬움이 생깁니다. 잘 생각을 하면 커피를 마시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내 생활 속 깊숙이 습관화된 커피는 늘 아내와 마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제는 커피향이 좀 달라서 무슨 커피냐고 물었더니 헤이즐럿 커피라는 거네요. 평소에 마시던 것보다 좀 비싸다고 하는군요. 값이 맛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이 헤이즐럿을 말해도 몰라서 콧등으로만 들었는데 향이 많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시던 것과 다르다는 것뿐 특별한 구미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에 반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그런데 아내가 오늘은 일찍 출타했습니다. 자신이 하는 사업설명회를 들으러 간다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커피를 마시고 나갔습니다. 아들과 늦도록 누워있는 자리에는 아내가 남긴 헤이즐럿 향만 맴돌고 있었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나니 당연히 커피가 생각나고 아내의 손때묻은 싱크대에서 찾아낸 것이 아내가 마시고 간 헤이즐럿 커피였습니다. 찻물을 올리고 기다려서 타본 헤이즐럿은 혼자서 마시니 향이야 그대로 갰지만 비어있는 앞자리가 허전하기만 합니다. 같은 차라도 누구와 마시는가는 기분이 다릅니다. 아내와 늘 습관처럼 마신 차가 너무나 평범해서 당연한 것으로 알았는데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느낍니다 내일 아침이면 또 그제처럼 아내와 같이 조반 후에 커피를 마실 것이고 당연한 행복에 평화로운 시간을 가지게 되겠지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마시는 헤이즐럿 커피 새로운 메뉴의 커피향에 즐거운 인생을 살아 보렵니다

 

coffee香氣-2 詩 사진 茂正 鄭政敏 한 번의 만남으로 천 번을 만난 것 같아 그 익숙함이 오늘을 기억하게 한다. 한산한 길모퉁이 찻집 화려한 장식도 없고 고급 가구도 없다. 음악도 없다. 작은 홀 안에 진한 커피 향이 넘친다. 그 향기 때문일까 온통 갈색뿐이다. 조명도 절반은 창 밖에서 조달되는 어느 겨울날의 오후 내가 그곳에 있었다. 라떼 한 잔을 위하여.

 

길모퉁이 작은 찻집/정정민 광명 철산동 한산한 길모퉁이에 커피만을 파는 작은 찻집이 있었다. 길을 가다 잠시 쉬고 싶어 들어갔다. 피곤한 것도 아니고 누굴 만나고 싶어 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커피가 먹고 싶어 간 것도 아니다. 찻집을 좋아하여 간 것은 더구나 아니다. 길을 가다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와 내 발길을 끌어들인 것도 아니다. 진한 커피 향기가 나를 부른 것도 아니었다. 다만, 쉴 공간이 있고 차가 있어 잠시 쉬어 가려고 들린 것이다. 수많은 메뉴가 보였다 별로 아는 커피도 없어 값싼 커피 한 잔을 달랬더니 라떼를 주었다. 향이 참 진했다 약간 쌉쌀하게 다가서는 맛 뒤에 라떼의 부드러운 느낌이 더 좋았다. 어떤 여인의 입술 같다고 생각했다. 예정에 없었지만 어느 날 이렇게 만나게 된 찻집 특별한 것도 없었는데 분명하게 기억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 오늘도 생겼다.

  

커피향 그대여 글 정정민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따끈한 커피 한 잔을 한다. 조금 뜨거운 커피잔을 입술에 대는 순간 커피를 무척 좋아 하는 사람이 생각난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지만 유독 그 사람이 생각이 나는 것은 커피를 너무 행복하게 마시기 때문이다. 특별히 자판기 커피를 좋아하는 그는 커피를 한 잔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두 잔을 마시는 것도 봤다. 어떻게 마시는 것이 행복하게 마시는 것인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자판기 앞에 가면 우선 표정이 밝아 진다. 커피는 여러 곳에서 마실 수가 있지만 맛이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 생각인데 아주 작고 미묘한 차이를 알아내는 능력이 우선 부럽다. 정말 자판기 커피도 자판기마다 맛이 다른지 알 길이 없다. 그는 어디에 자판기 커피맛이 좋다는 말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무딘 내가 생각을 해 볼 때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뜨거운 커피도 좋아하지 않는다. 뜨거운 커피를 식혀서 단숨에 마시기도 하니 커피 마시는 폼으로는 아주 형편이 없다. 그런데 그는 커피를 좀 유별나게 마신다. 우선 자판기 커피를 잡는 모습부터가 다르다. 두 손으로 아주 감싸듯이 잡고 마신다. 아주 소중하고 귀한 것을 마시듯이 소중하게 모신다는 점이 나와는 아주 다르다. 또 다른 점이 있다면 난 식기를 기다려 단숨에 마시는 것에 비하여 그는 아주 조금씩 마신다. 조금씩 마실 뿐만 아니라 아주 천천히 마신다. 먹기는 먹는데 아까워서 어떻게 먹는지 알 길이 없을 정도로 마신다. 조금씩 마시면서 혀끝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노라면 존경심까지 생긴다. 어떻게 하면 커피를 신처럼 생각할까 하는 의문이 생길 지경이다. 만약 내가 보지 않는다면 혀끝으로 조금씩 음미를 하다가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다 식힐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가장 작은 단위로 마시고 어떻게 하면 가장 오래 마실지를 연구하는 학자 같다. 대단한 미각탐구자 같고 천천히 마시기의 챔피언 같다. 과연 자판기 커피는 장소에 따라서 맛이 다를까? 단지 기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맛이 다를지? 내가 아는 상식을 동원하여 본다. 사람이 빈번한 곳은 물의 온도가 다를 수 있어서 맛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또 자판기마다 커피 물의 온도 설정을 달리할지도 모르니 맛이 다를 수 있다고 추측을 해 보기도 한다. 또 하나 다른 것은 자판기 속에 들어가는 커피의 제조회사에 따라서 맛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또 하나는 커피 물로 사용하는 물의 맛도 커피맛을 좌우할 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자신이 경험한 자판기 커피가 맛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예측이 된다. 미각을 느끼는 혀끝이 잘 발달된 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람은 같은 음식이라도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서 맛을 달리 느낄 수가 있고 또 커피를 마시는 시간대에 따라서 맛을 달리 느낄 수가 있으니 어떤 장소의 자판기 커피가 맛이 있다는 말은 결국 맞는 말로 인정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아침에 입술로 전해지는 커피잔의 온도와 향긋한 차향에서 소중하게 두 손으로 종이컵을 감싸 안듯이 잡고 커피를 즐기는 한 사람을 생각한다. 작게 홀짝거리는 입 모습이 생각난다. 한 모금을 작게 마시고도 황홀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생각난다. 한 모금 한 모금이 모두다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혀끝을 적시고 목으로 들어가는 따뜻한 커피에서 느껴지는 즐거움과 행복을 나도 느끼면서 문득 그와 같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한 향기. 커피향 그대여!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지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한 모금을 마시고 나를 바라보는 그 고운 눈빛을 보고 싶다. 차가운 날씨가 더욱 그 모습을 그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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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 근린 공원의 겨울
  

춤추는 갈대꽃 詩 寫眞/茂正 鄭政敏 찬바람 가슴을 여미게 해도 철새가 반가워 웃는다 만남이 기쁨이 되는 일 알지 못하는 이도 있겠지 기다리고 기다려 그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면 어찌 가만 서서 웃기만 하랴 온몸으로 춤을 추리라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머물지 못하는 사랑이라 해도 긴 기다림이 꽃으로 피어나 겨울 한기도 이기면 가슴은 풍선처럼 부풀어 춤을 추지 않고 어찌 배기랴 한들한들

  

겨울 갈대 글 寫眞/茂正 鄭政敏 집에서 600미터 정도 내려가면 근린공원이 있다. 이 근린공원은 많이 크지는 않지만 키가 큰 소나무와 억새 갈대가 있고 중앙에는 호수가 있다. 호반길을 걸어서 돌 수 있도록 했는데 걸어 돌 수 있는 길이 2코스 바로 데크을 통하여 수생식물을 가까이서 보며 걷는 길과 이팝나무 쥐똥나무 백일홍 벚나무 목련 느티나무 숲길을 걸어서 도는 외곽길이 있다. 부지런히 걷는다면 15분 정도면 돌겠지만 곳곳에 의자가 있고 운동기구도 있어 앉아보기도 하고 운동도 하며 걷는다면 가볍게 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 공원과 연결된 길을 따로 위로 올라가면 천왕산이 나오는데 그 천왕산 자락에도 작은 호수가 있어 두 호수는 물길로 연결되어있다. 사철 물이 흐르기 때문에 이곳에 오면 언제라도 물소릴 들을 수 있다. 겨울이 시작되는 근린공원에서 갈대꽃을 보았다 하늘로 오르기 위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외로움이 아니라 환희의 춤 같은 이것은 내 기분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리라 언제던가 내게 춤을 보여주던 한 여인이 있었다. 키가 크고 늘씬한 몸매 얼굴이 하얗고 코가 오뚝했다 상의를 벗어 허리에 두르고는 춤을 추었다. 빙 돌기도 하고 환하게 웃기도 했다. 조금 차가운 성격의 여자 당시 40대 중반이었다. 작은 주근깨 오히려 정겨웠던 여인 문득 그 여인의 모습이 갈대꽃에서 연상되었다. 하늘로 오를 것 같은 갈대꽃의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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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식물원 2
  

포인세티아 시 寫眞/茂正 鄭政敏 나의 사랑 내 주님 가난하여 드릴 것 없는 이 소녀가 보잘 것 없는 이 잡초를 드립니다. 함부로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당신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저에게 이것뿐이라 감히 드리는 것입니다. 제 정성과 사랑 온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눈물까지도 받아 주세요 선물의 세상가치보다도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이여 제게 기쁨을 주시려고 잡초를 꽃처럼 만드셨습니다. 십자가 보혈 같은 포인세티아. _성탄 이브에 주께 드릴 것 없는 가난한 소녀가 잡초다발을 드린다. 그 맑고 고운 마음을 아신 주께서 그 잡초를 붉은 포인세티아로 바꾸셨다-

  

포인세티아 전설 성탄 이브에 아기 예수께 선물할 것이 없어 빈손으로 교회에 가는 멕시코 소녀 Pepita는 몹시 마음이 슬펐다. 이때 동행하던 사촌은 Pepita에게 "아무리 작은 선물이라 해도 정성과 사랑으로 준비한 선물은 값이 고가인 어떤 선물보다도 그분이 기뻐 하실 거야."라고 위로 했다 이때 교회로 향하던 소녀의 눈에 길가의 잡초가 보였다. 그 잡초를 정성껏 모아 다듬어 작은 다발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그분에게 드릴 것 없었던 소녀가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하지만, 잡초다발을 준비했다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기보다는 더욱 큰 슬픔을 주었다. 너무 보잘것없고 초라하여 죄송한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서였다. 한편, 사촌이 자신에게 한 말을 다시 상기했다. 선물이 작아도 정성과 사랑으로 준비했다면 그분이 기뻐 하실 것이란 그 말이었다. 눈물범벅이 된 정말 죄송한 마음으로 제단으로 나아가 잡초다발을 받쳤다. 이 광경을 목격한 교인들은 선물도 아닌 잡초를 받친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 이 소녀의 갸륵한 마음을 보시고 그 선물을 가납했다. 그러자 이 잡초가 선명한 붉은색으로 변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의 보혈처럼 이것을 기적이라 하지만 정성과 사랑은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놀라운 일이 생기는 법이다. 이 소녀가 드린 그 잡초가 포인세티아가 된 것이다. The Poinsettia (flowers of the Holy night)

  

안산 식물원 2/무정 정정민 이런 겨울에 식물원은 정말 좋다 꽃도 볼 수 있고 향기도 맡는다 작지 않아 가볍게 걷기도 좋다 이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사는지 모른다 이런 식물원은 중부 남부 북부 등의 식물을 실내에서 키우기 때문에 기온 차가 많은 지방도 바로 가는 것과 같기도 하다 단풍이 다 져버린 계절에 단풍을 보기도 하고 꽃을 볼 수 없는 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다. 이른 봄이면 또 이곳이 먼저 꽃을 보여준다. 언제라도 갈 수 있는 실내정원 바로 나를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이 겨울 몇 번은 더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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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식물원 1

새장 시 사진 / 茂正정정민 새장 안에 새가 산다 그 새가 나를 본다 무엇을 위해 그리 힘들게 사는지 안쓰러운 눈빛으로 본다. 갇힌 새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새로 대접받으며 편안하게 노래하며 사는데 새장 밖으로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목 마를까 물을 대령하고 배가 고플까 모이를 주고 누가 해칠까 철장도 만들어 주었다. 먹고 배설하고 노래하면 되었다 청소도 해준다. 내가 새장 속 새보다 자유롭단 말인가 먹을 것 입을 것을 위해 체면과 염려로 시간에 쫓기며 얼마나 분주한가 누군가 나를 위해 할지 몰라 밤이면 문까지 잠그지 않던가 혹 마음마저 도둑맞을까 마음에도 빗장을 걸었다. 차라리 새장에 살걸 물도 모이도 집까지 주는데

안산 식물원/무정 정정민 새장이 보이면 새장 곁으로 간다 그 안에 사는 새를 본다 새도 나를 본다 관상조는 인간을 바라보며 인간이 자신을 찾아와 인간을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가 새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새가 나를 구경한다. 자유가 무엇일까 성경에서는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고 했다. 예수의 구속이 진정한 자유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아무 곳이나 가고 아무 곳에서나 자는 것이 자유가 아니고 무엇으로부터 나를 지킴 받는 것이 진정한 자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예수를 믿으면 자유롭다 죄로부터 자유롭고 불안이나 염려로부터 자유롭다. 먹고 마시는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이 자녀인 너희를 돌보지 않을까 보냐고 했으니까 새는 창공을 마음껏 날지 못해도 오히려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새장 안에 살기 때문에 먹을 것 다른 공포로부터 해방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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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두깨 칼국수

홍두깨 칼국수 詩 寫眞/茂正 鄭政敏 하얀 밀가루에 물을 넣고 두 손으로 반죽 해볼까 기왕 하는 것 콩가루도 넣고 있는 힘 다해 왼 속으로 바른손으로 뒤집고 주무르고 누르고 이제는 홍두깨로 밀어 볼까 납작하게 잘 밀어보자 가끔 밀가루를 뿌려가며 밀어보자 힘들어도 먹을 것을 생각하니 없는 힘도 절로 동그란 달덩이 같구나 언제 저리 아름다운 달이 떴나 부꾸미처럼 접어 칼로 썰어보자 숭숭 썰어 국수로 만들고 바지락으로 만든 국물에 텅범텅범 넣어볼까 부글부글 끓는 것을 어찌 보기만 하랴 당근 채도 넣고 김 가루도 넣어 어서 먹어보자 아 시원하다 아 부드럽다 이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다 홍두깨 칼국수 한 그릇이면

  

홍두깨 칼국수/무정 정정민 홍두깨 칼국수란 말이 반갑다 칼국수를 썰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칼국수를 썰어 본 적이 있는 것은 시골 일이 바쁘면 형수께서 밀가루 반죽을 썰어 보라고 하시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홍두깨로 한 것이 아니고 다듬잇방망이로 했다. 적당한 크기로 반죽을 떼어내 손으로 조물조물 한 뒤에 호떡처럼 만든 다음에 원형 다듬이 방망이로 민다 그러면 얇은 원형이 된다. 이때 밀가루를 뿌리고 부꾸미처럼 접어 칼로 썰면 칼국수가 된다. 물론 이것을 팔팔 끓는 멸칫국물에 넣는 것이다. 홍두깨 칼국수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만들겠지만 바지락이 들어간다 호박과 당근도 같이 들어간다. 국물이 시원하라고 오만둥이 같은 것도 같이 넣는다 그러면 더없이 시원한 바지락 칼국수가 되는데 홍두깨 칼국수 집은 바지락도 좀 많이 넣고 손님에게 내올 때 맨 위에 김 가루를 뿌리고 깨도 같이 뿌린다. 그래서 맛이 좋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김치가 일품이다. 겉절이 김치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아 바지락 칼국수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가격도 저렴하여 7,000원 부담도 되지 않고 맛도 좋고 먹기도 좋은 칼국수 아내는 안산식물원 앞 칼국숫집을 좋아한다 안양에서 일을 보고 안산으로 가려 하니 무려 17킬로나 되었다. 그럼에도 망설이지 않고 간 것은 바로 김치맛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 맛이 좋았다. 한 그릇 비우고 나니 속이 든든하고 배도 잔뜩 불렀다. 산책하듯 앞에 있는 식물원을 구경하니 모든 것이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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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설경

풍경소리 시. 사진/茂正 鄭政敏 고요한 내 마음에 그리움이 일렁일 때마다 아련하게 들리는 소리 산굽이 돌아 흘러내리는 청강한 물소리 인가하면 잠 못 이루는 아기 새의 잠투정 같기도 하여 두 귀를 바짝 새우면 끊긴 듯 잠긴 듯 먼 듯 가까운 듯 밤새워 들리는 소리 잠 못 드는 그리움이었어.

  

내 누님 남홍 스님/무정 정정민 내 누님 남홍스님, 꽃 같은 스무 살에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셨다. 회색 승의를 입고 빛이 나는 머리를 우로 약간 비스듬히 하고 걷는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내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늘 "정 선생!'하고 부르셨던 누님은, 속세의 인연을 끊기 위해 동생을 동생이라 부르지 않았다. 내 이름이 있건만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동생까지도 높이는 누님의 철저한 사랑 앞에 오늘은 목을 놓아 울고 싶다. 누님이 이승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내가 성장한 뒤에는 누님이라 부르지 못했다. 누님을 늘 남홍스님이라 불렀다. 세상의 이름은 이미 버렸으니,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셨다. 사랑이 많아서, 앞에서 엄격하고 뒤돌아서서 우시는 누님을 생각하니, 지금 같은 가을이 정말 서럽다. 167cm의 늘씬한 키와 가냘픈 몸매, 그리고 약간 긴듯한 얼굴이 얼마나 미인이셨는지 모른다. 내가 어렸을 적에 나를 본 사람들은, 나를 만져보고 가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귀엽고 아름다운 아이였다고 한다. 내가 그 누님과 너무나 닮았으니, 얼마나 미인인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많은 청년들이 누나 만나기를 소원하여, 어린 나는 과자도 참 많이 얻어먹을 수 있었다. 나이 차가 10년이 조금 못되니, 그럴 만했다. 그런 누님이, 어느 날,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갑자기 이 속세가 싫어서 그런것 같지는 않았다. 사랑의 실연으로 아파서 그랬던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병이 있어서 부모와 형제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결행을 하신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20대 꽃다운 나이에 얼마나 비탄에 잠겼을까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프다. 내 두 딸도 그 나이를 넘어섰으니 이해가 조금 간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흘렀다. 비구니 생활에 익숙한 세월이 되기도 했지만 병은 호전되지 않아서 더욱 몸이 약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내 나이 28세 되던 해였다. 전기에 관한 책을 내고 병이 생겨버렸다. 직장에 나가면서, 밤에는 학원강의를 나갔고, 새벽에는 어학원에 다니면서 한참, 많은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시간의 분주함은, 지나치게 긴장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건강을 놓치고 말았다. 결국, 병이 생겨버린 것이다. 병원에 갔을 때는 요양을 요하는 심한 병이, 폐를 깊숙이 침투한 뒤였다. 정말 바쁘고 분주한 나이에, 가장 힘찬 도약을 하고 있는 나이에,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모른다. 죽음 보다 더한 절망이었다. 육신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그것을 할 수가 없었다. 이때 생각나는 분이 누님이셨다. 남홍스님이라 부르던 내 누님이었다. 자신도 아파서 스스로 몸도 잘 이기지 못하던 누님은 나에게 한 달 동안 주사를 놓았다. 엉덩이가 주사자국으로 굳어져 아파하면, 눈물을 흘리면서, 따뜻한 수건을 가져다주셨다. 본인도 누군가의 수발을 받아야 하는 아픈 몸인데도, 남들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처지임에도, 가여운 동생을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 동생을 돌봤다. 그렇게 하기를 6개월을 하고 나니, 나는 많이 호전이 되었지만, 누님은 더욱 많이 지쳤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너를 돌 볼 수 없으니, 네 건강은 네가 알아서 챙겨라!" 하시고는 뒤돌아서서 우셨다. 내가 앓았던 병이 결핵이었으니, 당시의 속설로는 잘 먹어야 산다고 했다. 그래서 고기를 먹어야 하고, 심지어는 사탕(뱀탕)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희귀한 음식을 먹는 것이 어렵다거나, 준비하는 것이 어렵다기보다는 내가 요양을 하는 곳에서 먹기가 어려웠다. 살생을 금하고 육식을 금하는 사찰에서 그런 음식을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음식을 먹었다. 사찰의 규율도 엄격하고 지켜야할 도리도 있었지만 동생을 사랑하는 누님의 사랑은 수십 년을 속세와 담을 쌓고 살아오신 엄격한 규율도 지키지 못하게 하고 말았나 보다. 지금 나는 그 누님을 생각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그처럼 사랑한 누님을 생각하면서 울고 있다.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나무에 매달린 잎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떨어뜨리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는지, 찬 바람과 함께 천상에서 떨어지는 비는, 나무를 모두 두들겨 패는 듯하다. 그 비는 나뭇잎을 두들기는 것만 아니다. 가을에 쓸쓸하여 외로운 내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하고, 가슴 까지 두들기고 있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눈물이다. 연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큰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을 갚지 못한 자의 눈물은 당연하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은 유난히 몸이 아팠던 과거를 되살리면서, 이제는 추억만 남아 버린 내 누님 남홍스님의 얼굴을 그리워한다. 내 그리움은 눈물이 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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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미토스 
  

눈 내리는 날 4 詩 寫眞/茂正 鄭政敏 관악산 기슭에 흰 눈이 내리면 내리는 눈처럼 내 마음 진정하지 못한다. 신림동 고시촌 카페 미토스 서툰 솜씨로 원두커피를 내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다가와 커피 잔을 놓고 가던 여인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 진한 차향 창밖으로 보이는 관악산 내 창에서도 그 산이 보인다. 내 마음에 그 찻집이 보인다.

  

coffee香氣 詩 寫眞/茂正 鄭政敏 한 잔의 coffee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그리움이 생긴다. 갈색 香氣로 다가서는 벅찬 感動 사랑하는 임만 같아 가슴 설렌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뜨거운 體溫 진한 키스처럼 달콤한 찻잔 온몸이 戰慄한다. 혼자 있는 늦은 밤에도 친구와 같이하는 cafe에서도 진한 coffee 한 잔은 내 마음의 노래 아무리 같이해도 질리지 않는 平生의 多精한 同伴者 내 그리움

 

난로 가에 앉아 있으면 생각난다/정정민 창 밖의 기온이 몹시 낮으면 환하게 불을 밝힌 사무실이 유난히 따뜻해 보인다. 난로 불을 켜놓고 앉아 있으면 마음도 따라서 훈훈해 진다. 이런 날은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평범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보통인데 유난히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기억해 보면 난로 가에 같이 앉아 본 적이 없다. 조용한 카페에서 차를 같이 나눈 기억도 없다. 다정하게 여행을 다닌 기억도 없다. 그렇지만, 가장 외로운 시간에 가장 많이 그리웠던 친구. 그는 지금 무엇을 할지 너무 궁금하다. 10대 후반에 맨 처음 받아본 편지가 고작인데 그 편지에는 구구절절이 그립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같은 문자로 그토록 영롱한 이슬 같은 글을 가슴이 저려서 지탱하기 힘들도록 쓸 수가 있었는지. 읽고 또 읽어도 질리기는커녕 또 다시 읽게 하였다. 수십 번을 읽고 다 외워버린 글을 그래도 또 읽고 편지가 흐물거릴 정도로 읽었지만 그 편지는 너무 소중하여 가슴에 넣고 다녔다. 혼자만 읽기가 아까워 친구에게도 보여줬는데 얼굴도 모르는 내 친구의 글을 곁에서 읽던 친구도 황홀하여 거진 다 외워 버렸다. 그런데 그 친구가 결혼해 버렸다. 그 엄청난 그리움을 안고 어떻게 시집을 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마지막 만났던 날 천천히 돌아서서 가면서 다시 돌아보고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으로 사라져 갔다. 그날은 눈도 많이 왔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내리는 눈은 서로 깨끗하게 갈라 놓았다. 그래서 그 편지는 갈가리 찢겨 졌다. 가슴에 패이도록 새긴 편짓글도 그렇게 찢겼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던 다정한 이름이 기억하기 싫은 이름이요. 듣기만 해도 기분 나쁜 이름이 되어 여러 경로를 통하여 들어올 때마다 아픔 같은 상처들이 가시가 되어 돋아나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 30년 지나갔다. 아름답고 황홀한 시간을 생각하면서 긴 아름다움보다 짧은 이별의 순간을 더 많이 생각하는지. 스스로 의문을 재기했더니 다시 아름다워졌고 감사가 되었다. 다만, 편지를 주고받았던 사이가 무슨 원수지간처럼 되어서야 말도 안된다는 생각.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고 결혼에 대한 선택이 꼭 나만 되어야 한다는 법칙도 없는데 나도 결혼했으면서 먼저 결혼한 것에 대하여 비난할 자격이 있기나 한 것처럼 굴었다. 잔주름 생기고 흰 머리칼이 생긴 뒤에 만나자는 말을 해왔었다. 그런데 나는 늘 거절해 왔다. 아무래도 미워했었나 보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단둘이 만나게 되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늘 미안했다는 말이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오늘은 그 친구가 생각난다. 눈가에 어리던 이슬 같은 것이 생각난다. 나도 자꾸 미안해 지는 마음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난로 가에서 한 잔의 차를 나눌 수는 없을까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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