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카페에서/정정민 부천에 옹기 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옹기가 전시되어 있는지 궁금하여 한 달 전쯤에 가게 되었다. 가는 중 맞은 편에 커다란 교회당이 보여 잠시 눈길을 주고 있는데 그 교회 일 층에 아름다운 카페가 있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라 크지는 않았지만 무척 한가하고 조용하여 들어가 보고 싶었다. 실내장식도 어느 카페에 비교하여 손색이 없었고 음악도 조용했다. 커피 한 잔을 시키자 그 잔이 무척 컸다 일반 커피잔이 아닌 밥그릇 수준이었다 값도 저렴하여 이천 원 커다란 머그잔을 앞에 두고 웃었다. 한 사람이 먹기는 벅차 아내와 나누어 마셨다. 어떤 날은 이렇게 작고 조용하고 색다른 카페에서 잠시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은은한 음악과 커피 향기에 젖어 세상의 복잡한 일을 잊고 싶기도 하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나에게 더욱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자주 가지는 않겠지만 가끔 생각 날 만한 카페 아름다운 카페 한가하게 노닐던 강아지도 생각난다 마거릿 꽃도 생각난다.

  

안면도 오션캐슬/무정 정정민 둘째 딸이 잡아 놓은 숙소였습니다. 큰아이와 막내는 회사출근과 학교 때문에 가지 못하고 셋이서만 간 여행이었습니다. 가는 날 서울은 몹시 화창했지만 안면도는 흐리기만 했습니다. 8층은 전망이 참 좋았습니다. 바로 아래 꽃지 해수욕장의 금모래가 보였고 꿈꾸는 바다처럼 뿌옇게 흐린 바다가 파도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오션동 바로 아래 바람 아래 광장이 있는데 그곳에 바로 무대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지만 흰 의자에 앉아 흑송이 보내주는 솔향기도 잠시 맡아 보고 파도소리와 해변에 빛나는 가로등불빛을 듣고 보며 모랫길을 걸어 보기도 했습니다. 한가한 월요일 밤은 그래서 참 좋았습니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바다로 난 창이 희뿌옇게 발아 오길레 저 모습을 카메라로 담고 싶다는 생각에 얼른 촬영했는데 플래시를 사용하였더니 좋지 않아 수동모드로 촬영했더니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새벽 빛이 잘 나타났습니다. 창문을 열자 파도소리와 빗소리 그리고 새소리까지 제법 크게 들렸습니다. 그렇지만, 좀 춥기도 하여 창문을 조금 열어 두고 이불을 쓰고서 자연의 소리를 감상했습니다. 창문을 크게 열고 다시 작게 열고 함에 따라 들어오는 소리의 크기가 달라지는 현상을 느꼈습니다. 마치 라디오 볼륨 같았습니다. 아내도 조용하게 태고에서부터 있었던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수만 가지 생각과 수만의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누리는 하루의 행복 이것이 짧아 아쉽지만 오래 기억될 것 같았습니다. 지난여름은 큰 아이가 제주 한라산 중턱에 있는 한화콘도를 2박3일 예약하여 온 가족이 같이 있다 왔는데 이곳 안면도는 둘째가 하루를 예약하여 호사를 누린다는 행복에 젖어 보며 도심의 고달픈 일상에서 한가한 휴식을 취하는 오늘이 무척 행복했습니다. 비가 오는 안면도와 서해 바다, 파도소리는 바람소리와 창문에 이르러 거세게 밀려 오는데 가끔 갈매기와 까치소리도 섞여 들어와 묘했습니다. 빗소리는 쉼 없이 들렸기 때문에 화창한 날씨가 아니었어도 무척 좋았습니다. 곧 가야 할 시간이란 생각 때문에 사랑하던 어떤 사람이 이런 곳에서 이별을 한다면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한 편의 시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은 한 편도 쓰지 못했습니다. 잔잔한 감동만 가슴속으로 자꾸 여울져서 언제고 이 마음과 현상을 단편이나 수필로 쓰겠다는 다짐을 한 날이었습니다. -정정민의 커피 한 잔의 추억 15 수년 전 안면도에서의 하룻밤 이야기-



  

회사 옥상 주차장에서 글. 寫眞/茂正 鄭政敏 내가 다니는 회사는 주차장이 두 곳이다 지하 주차장과 옥상 주차장이다. 옥상 주차장에 주차 하려면 지하 주차장에서 자동차 엘리베이터에 차를 태워 옥상으로 올라와 주차 시키는데 나는 주로 옥상 주차장을 이용한다. 점심 시간에 옥상에 있는 차안에서 과일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주변 풍경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서다. 물론 음악 감상도 한다. 비가 오는 날은 비를 보고 눈이 내리면 눈을 본다. 가까운 산에서 새가 날아와 울면 그 소리도 듣고 옥상의 장미원에 장미가 피면 그 꽃을 보기 때문에 옥상을 참 좋아한다. 더구나 퇴근 하는 시간에는 하늘의 별을 보기도 하고 달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미등을 켜놓아 자동차 바테리가 방전 시동이 걸리지 않아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던 적도 있고 소낙비가 너무 내려 자동차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 차를 두고 퇴근하였던 적도 있어 때론 불편하지만 가을 산을 보거나 설산을 보는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아 악천후에도 옥상 주차장을 이용한다. 백 년만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옥상에 주차했다 설경을 즐기고 싶어서...... 의왕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부천으로 출근하니까 그때 일이 그립기도 하다 잠시 그때를 추억해 보았다.


커피 한 잔의 추억 12 닭칼국수

닭 칼국수/정정민 겨울 내내 운동이 부족하고 친구가 그리워 허기진 마음을 어떻게 달래볼까 고민을 하던 차 우연하게 들리게 된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아름다운 음악이야 있고 글 향이 넘치는 곳이지만 온라인상이니 얼굴을 마주하는 것과는 다른 곳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날 보고 싶다고 했다. 하며 덧붙인 말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야!'"하지 않는가. 누군가 만나 커피 향이라도 나누고 싶었던 나를 아주 손쉽게 자극하는 말이었다. 정말이냐고 확인을 했는데 농담이 아니란 말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바로 가겠다는 약속을 해버렸다. 그 대신 점심은 사야 한다고 조건을 걸었다. 그런데도 흔쾌히 승낙하는 친구를 향해 흥겨운 봄 나들이를 하고야 말았다. 전태일 흉상이 있는 청계천 다리 동대문 종합시장과 평화시장 사이를 푸른 청계천이 흐르고 산책 나온 사람이 한가한 개천은 작은 쑥이 올라오고 둑길은 어느 사이 원추리 잎이 한 뼘이나 자라 있었다. 말쑥하게 정돈된 거리를 친구와 같이 걷는 것은 어느 봄날의 행복이 아닐 수 없었다. 고서와 모자 원단과 기계가 뒤섞인 거리 그 작은 샛길에 들어서니 닭 칼국수 집이 있었다. 생선 굽는 냄새가 골목을 꽉 메우는 가운데 유난히 사람이 북적이는 집으로 들어섰다. 앉을 자리가 부족하여 이미 와 있는 낯선 사람과 동석하여 친구와 나란히 앉았다. 초등학교 동창이라 해도 단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다. 같은 동창이란 점은 참 많은 대화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데 그럴 기회가 생기지 않으면 서로에 대하여 인사만 할 뿐 마땅한 말을 주고받기 힘들다. 그런데 닭 칼국수 집에 마주하니 너무 편했다. 양은 솥에 영계가 팔팔 끓고 있었다. 고추 양념 다지미통이 각자 앞에 놓이고 김치와 가래떡 각종 양념 통이 있었다. 친구가 소스를 만들어 주어 매콤새콤한 소스에 잘 익은 연한 닭고기를 먹어 보니 질리지도 않고 부드러워 혼자서 다 먹다시피 했다. 이어서 닭국 물에 칼국수를 넣어 마저 먹게 되니 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지 졸음이 다 쏟아졌다. 배가 부르고 햇볕이 따뜻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친구가 있는데 내게 부족한 것이 하나라도 있었겠는가. 3인분을 둘이 먹고 그 대부분을 내가 먹었으니 오죽하겠는가. 나른한 어느 봄날 친구를 만나 생소한 메뉴의 닭 칼국수를 먹는 일은 청계천이 보이는 길에서는 낭만이다. 구수한 국물 맛이 오늘도 생각나는 것은 정겨운 친구의 우정이 양념이 되어서일 것이다. 다시금 몇 번이라도 오란 당부를 뒤로한 내 발길은 청계천 분수 같았을까? 물속을 유영하는 고기 같았을까? 아니다. 그 하늘을 나는 비둘기였을 것이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행복했단다. -커피 한 잔의 추억 12-8년 전 이른 봄에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의 추억 11 / 한 잔의 커피같은 전화
  

한 잔의 커피 같은 전화 글 정정민 새장 안에 새처럼 지내는 하루가 있다. 아무리 아우성처럼 가을의 소식이 들려도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날이 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의 시간을 내서 막 얼굴을 붉히기 시작하는 벚나무 아래서 푸른 하늘을 보는데 아직 이른 나뭇잎이 푸르르 진다. 어쩌면 새가 자리를 옮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린다. 청명한 하늘에서 떨어지는 구름 한 조각 같은 부드러운 음성이다. 아름다운 산에만 가면 내가 생각난다는 말이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말해줄 사람이 너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같이 가본 산이 없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산을 같이 가 보고는 싶었다. 그녀도 나 같은 마음이 있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가을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처럼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한 통의 전화 " 나, 내장산에 있다. 네가 생각나." -정정민의 커피 한 잔의 추억 11-

  


커피 한 잔의 추억 10 잔잔한 그리움

  

잔잔한 그리움/무정 정정민 아련한 세월의 저편 속에서도 오롯하게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사랑했던 연인도 아니고 빈번하게 오가며 정을 쌓아둔 사이도 아니련만 그곳을 생각하게 되면 그 누구보다도 먼저, 생각나고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잔잔한 파도가 되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올해로 지천명이 되었다. 제법 당당한 체격을 하고 차도 고급을 타고 다닌다. 그럼에도, 전혀 자신을 높이려 들지 않았다. 거만하지도 않았고 늘 정겹게 인사를 했다. 기다리지 않고 먼저 눈을 맞추고 가볍게 인사를 하는데 큰소리로 하지도 않고 그저 "안녕하세요, 친구는요?" 하면서 지나가는데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형식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아주 적당하다. 어떤 날은 오징어가 맛이 있어 가져 왔다며 아직도 구은 열기가 다 가시지 않는 놈을 검정 비닐로 칭칭 감아 가져오기도 한다. 그곳에는 맛 좋은 땅콩도 같이 들어 있다. 그리고는 캔 맥주도 가져온다. 때론 케이크를 들고 오기도 한다. 대학생 딸과 아들이 있는데 자신의 아이들은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곱게 포장하여 가져 오기도 한다. 남편도 나이가 같은 동갑내기 부부로 늘 바쁜 가게 일로 몸살이 날 지경이라 했다. 그런 중에도 우리 가게 앞을 지나면서 늘 눈을 맞추고 좀 특별하다거나 지나치지 않게 딱 알맞은 인사를 한다. 비 오는 어느 날은 잘 삶아 양념도 잘 된 통닭을 가져왔다. 노릇노릇 정말 잘 익어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녀가 하는 가게가 결혼식 피로연을 하는 커피와 맥주를 파는 곳인데 자신의 가게에 있는 것을 가져오는 것이다. 우연하게 우리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아내를 보고 얼굴이 유난히 정이 가고 같은 또래 같아서 친구하고 싶었다는 이유뿐이다. 어떤 날은 아내가 꽃을 꽂고 있으면 말을 붙이고 싶어도 차마 방해 될까 봐 그냥 지나가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의 가게에 놀러 오란 수 번의 초청도 우린 한 번도 들어주지 못하고 이사를 와버렸다. 이제 먼 거리에 살게 되니 그녀가 생각난다. 잔잔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맛있는 무엇을 준비하여 그녀를 찾아가고 싶다. 아내와 둘이 간다면 틀림없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할 사람 같다. 이런 이웃 이런 사람 하나 알고 사는 세상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커피 한 잔의 추억 10/정정민 Coffee예찬을 탈레랑은 "커피는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과 같이 뜨겁고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키스처럼 달콤하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우리나라도 대단한 커피 소비국이다 상가 밀집지역에 가게 되면 한 집 건너 커피를 파는 곳이 있는 걸 보면 쉽게 수긍이 간다 이렇다 보니 부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다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남긴다거나 커피 생산국 국민의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적은 수입을 생각하면 커피는 마시는 사람의 낭비가 크다는 지적도 있다 원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크면 좋겠다는 여론도 많다 오늘은 블랙커피를 두잔 했다 피곤한 오후가 커피 덕에 거뜬하게 지나갔다

  

따끈한 커피 같은 말 -정정민- 찬 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바람이 들어올 틈새가 없도록 차창의 문을 꼭꼭 닫아 놓고 투명 유리창으로 보이는 바람의 흔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다정한 얼굴 하나 떠올려 보았다 초등학교 동창이다 한두 사람이 아니련만 그 얼굴이 떠오른 것은 나에게 늘 다정하여 그런 것 같다 다른 친구보다 유독 내 글을 사랑하여 주고 "이 세상에서 너처럼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너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라고 괜스레 나를 부러워 해준다 그러면 철없는 나는 내가 정말 그런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만다 그 친구다 가끔은 우리 만나서 맛있는 식사를 해야 되지 않느냐고 자신의 바쁜 사업에 대한 모든 일을 일단 미루고 전화까지 꺼두고 무조건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어서 가자고 한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 인지 우리는 주섬주섬하고 술도 한 잔을 한다 나야 하지 못하니 그 친구가 술을 먹고 나는 안주를 먹는다 돌아오는 길은 운전을 내가 해야 한다 그런데 만난 지가 오래되었다 한 달이 지난 것 같으니 너무 오래된 것이다 "기온이 차가우니 건강 조심 하세요." 하는 문자를 보냈더니 "춥지? 감기 조심해!" 그 말이 왜 가슴을 뜨겁게 할까 진정한 말이기 때문이다 짧아도 따끈한 커피 같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참으로 좋은 친구가 내게 있음이 행복이다.

  

목련꽃 피는 날의 슬픔/무정 정정민 대학병원 중환자실 손에 빨간 액체를 바르고 청의를 입고서야 들어갔다 날 반겨 맞아야 할 사람이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숨을 쉬는지조차 구분하지 못할 내 청력을 의심했다 움직임도 멈춘 지 오랜 것 같았다 표정도 없고 흔들림도 없는 사람을 살아 있다고 해야 하는가 난 그를 알고 있어서 갔지만 그는 누가 오는지 가는지 관심 밖의 일처럼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올해로 56세의 미남자였다. 두 딸과 아내가 있는 참으로 잘 생긴 꽃미남 춤을 잘 추고 친구를 좋아하는 건실한 사람이었지만 이 세상의 무엇이 그를 그토록 만들었는지 자신의 가게문을 닫고 이틀의 폭음 뒤에 집으로 들어와 문지방을 넘다가 넘어졌다는데 수도 없이 드나들던 문턱이 그날은 유난히 높았단 말인가 그것이 자신의 집 문턱을 겨우 넘어보는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는 다만 누워 있을 뿐이다 살아 있다는 말이 맞기는 한 것인가 사랑하는 아내가 아무리 큰소리로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애지중지 키운 두 딸이 아빠라는 말을 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이것을 살아 있다고 해야 하는가 산소호흡기만 의지하여 겨우 지낸다는 말 그의 아내는 나를 보자 눈물부터 쏟아 냈다 우리는 어릴 적 부터 친구였는데 이제는 아는 체도 하지 않는다 아내와 딸도 모른 체 하는 사람이 나를 아는 체 하겠는가만 왜 그리도 섭섭할까 만나면 손을 잡고 흔들던 모습이 곱게 웃던 모습이 영영 떠나지 않는데 이제는 그 손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것이 나를, 얼마나 서럽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다시 손을 잡고 흔들며 웃고 싶다는 것을 알까 어깨동무하면서 어릴 적 같이 하던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것을 최신 유행 곡을 서로 부르고 싶다는 것을 알까 못하는 술이나마 마주치고 싶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같이 하던 이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면 그 행복한 순간을 누가 같이 해줄까 어서 일어나거라 환한 목련꽃 같은 미소를 나에게 흘려다오 가만히 만지던 내 손을 어서 만져다오 나에게 잘 지냈느냐고 안부도 물어야 하지 않니? 중환자실은 너무 비싼 곳이야 이제 집으로 가야 하지 않겠니? 개나리 꽃이 피기 시작한 너의 집으로 가서 우리 진한 커피 한 잔을 같이하자, 친구야! ps: 8년전 이른 봄 한양 대학병원에서 하늘나라로 가고 만 친구 결국 커피 한 잔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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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가을 편지 3 글 寫眞/茂正 鄭政敏 해마다 맞이하는 가을 올가을의 마음은 평온이다 이만큼 평안한 가을이 얼마 만인가 생각해보니 많지는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나이 들어가는 한 남자로 혼자 경험하는 수많은 것들이 평탄하고 고요하기만 했겠는가 자신의 몸이 아파 그럴 때도 있었다 아내가 아파 그렇기도 했고 아이들의 진학이나 이성 교제로 하여 가시방석에서 보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아이들이 모두 취업해서 직장에 잘 다닌다 가족이 심하게 아픈 사람도 없다 이만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물론 자잘한 근심이야 없다 할 수 없다. 나이 들어가며 무릎이 시큰거리기도 하고 허리도 아프고 시력도 약해졌다 아내도 아픈 곳이 많고 아이들이 더욱 더 좋은 직장에 다니길 소망하는 것이나 결혼 문제도 생각해보지만 마음 급하게 먹는다고 아픈 곳이 좋아지거나 좋은 직장에 다니게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일상 큰 근심 없다면 그것이 감사의 조건이라 생각하게 되니까 마음이 평온하다 이 가을 내가 감사한 사람이 누구인가 내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본다 그분에게 편지를 써볼 생각이다 주소를 모른다 해도 써보자 가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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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상 詩 寫眞/茂正 鄭政敏 어느 천사가 그려 놓은 그림일까 정갈하여 눈길 돌리지 못한다. 이모저모 살피느라 굴뚝 같은 식욕마저 잠재운다. 어머니가 차려 주시던 정이 담뿍 들어 있던 밥 한 상 수십 년 먹으며 감사를 몰랐는데 돌아가신 수십 년 이제야 그 정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인생 아내가 차려주는 한 상에서 세상의 온갖 즐거움 생기더니 어언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내 머리도 억새꽃이 된 지금도 간장 한 종지 된장 한 점 김치 한 젓가락이 아름답다. 배를 채우는 식탁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 깃든 음식 예술이 차려진 곳에서 정과 미와 향에 취한다.

  

 
 

흑임자 아구찜
        흑임자 아구찜 글 사진/茂正 鄭政敏 어떤 날은 어떤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이른 봄이었던가 아구찜이 먹고 싶어 내가 갔던 곳 중 아구찜을 맛있게 하는 집이 있었던가 생각하였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집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로 했다 인천에 아구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집이 밀집해 있지는 않았어도 작은 마을에 오래전부터 아구만을 해온 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궁금해지기도 하여 주소를 검색하여 찾아 나섰다. 북적거리는 음식거리는 아니었지만 아구메뉴를 내건 음식점이 꽤 되었다. 그중 한 집을 골라 들어가게 되었다. 들어서는 입구에 신발장이 있었다. 그리고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깨끗하다는 인상은 덜 주는 집이었다 그렇지만 기왕 들어왔으니 맛이나 보자는 생각으로 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후덕한 인상을 주는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무언가를 하시다가 나와 우릴 맞았다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조금은 적극성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시는 분이었다. 메뉴를 보니 검은깨 아구가 있었다 주인도 자신이 개발한 신메뉴라 하며 권하여 그것을 주문하고 둘러보니 주인이 가진 포부와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고추꼬투리를 다듬다 만 흔적도 있어 그야말로 생활공간의 한 곳으로 생각되었다. 오래전부터 내외가 해왔다는데 그 소박함이 오히려 잘 정돈된 식당보다 정이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까만 아구찜이 나왔다 바로 검은깨 아구찜이었다. 양이 대단히 많았다. 값에 비에 너무 양이 많아 놀랬다. 한참이나 먹었지만, 양이 줄지 않았다 후덕한 인상 그대로였다.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 나오려는데 키조개에서 떼어낸 관자를 한 봉지나 주셨다 값으로도 적지 않을 양 그리고는 채소도 큰 봉지에 담아 주셨다 덤으로 주시는 것이 밥값을 상외할만 하였다. 이렇게 장사해도 돼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점 문을 나서면 다시 오고 싶은 집이 있고 발길을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집이 있다 이곳의 음식 맛은 좋았다 양도 대단했다 거기다 무엇보다도 바로 가족과 같이 식사하는 듯한 분위기는 무엇보다도 좋았다 장사 잘 되고 건강하기를 기원했다.

우렁 밥 詩 사진 무정 정정민 퇴근하여 돌아온 집에는 우렁각시가 차려 놓은 밥상이 있다 하루 노동으로 피곤한 육신을 진수성찬으로 달래준다 우렁이 없을지라도 꿀맛 같은 식욕은 모든 음식을 꿀처럼 먹는다. 날마다 먹어도 물리지 않고 행복한 음식 정성과 사랑으로 차리니 건강한 밥상이 된다. 잘 먹고 잘 살아 절로 흥이 난다. 저 김치 어제 담근 것 여기 갈치 속 젓 강화도에서 사온 것 김 나는 청국장 시골 큰집에서 보내온 것 싱싱한 쌈 집 앞 시장에서 윤기나는 쌀밥 강원도 철원 쌀 마주 앉아 이 반찬 권하고 서로 보고 웃고 한 쌈 입이 터지도록 넣고 또 웃는다 우렁각시가 차린 우렁이 없지만 맛 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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