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에 가고 싶다 글 寫眞/茂正 鄭政敏

가끔 식물원에 가고 싶다. 머리가 아플 때면 식물이 발산하는 푸른 기운을 듬뿍 받고 싶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몸에는 새로운 비늘이 돋는 것 같다. 이 에너지로 얼마간 살 수 있다.

머리가 아프지 않아도 식물원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겨울철이다. 푸른 잎이 사라지고 마른 잎이 거리에 가득하면 추억처럼 그리워지는 것이 푸른 계절이 아닌가 마음속에 기억하는 푸른 계절 그 계절은 식물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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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는 식물원에 간다. 그곳은 남국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흔하지 않은 열대지방의 식물을 보면 자신이 따뜻한 남쪽 나라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때론 이런 착각을 얼마나 원하든가 행복한 착각은 새로운 에너지를 준다. 그러면 누구에게나 친절할 힘이 생긴다.

나에게 귀한 손님이 오면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단둘이 앉아 있을 의자가 있는 조용한 식물원이다. 보온병에 담아 간 허브차를 그곳에서 나누어 마시면 아무래도 너무 행복하여 지고 만다.

이런 이유가 아니어도 더러는 식물원에 간다. 지금쯤 어떤 꽃이 피어 있을지 궁금하여 몹시 알고 싶어서다. 작고 볼품없어도 내가 보아 주면 씽긋 웃는 그 미소가 즐거워서다.

안산 식물원 인천 대공원 식물원 서울 숲 식물원 서울 대공원 식물원에서

식물원에 가고 싶다 무정 정정민 가끔 식물원에 가고 싶다. 머리가 아플 때면 식물이 발산하는 푸른 기운을 듬뿍 받고 싶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몸에는 새로운 비늘이 돋는 것 같다. 이 에너지로 얼마간 살 수 있다. 머리가 아프지 않아도 식물원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겨울철이다. 푸른 잎이 사라지고 마른 잎이 거리에 가득하면 추억처럼 그리워지는 것이 푸른 계절이 아닌가 마음속에 기억하는 푸른 계절 그 계절은 식물원에 있다. 여행을 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는 식물원에 간다. 그곳은 남국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흔하지 않은 열대지방의 식물을 보면 자신이 따뜻한 남쪽 나라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때론 이런 착각을 얼마나 원하든가 행복한 착각은 새로운 에너지를 준다. 그러면 누구에게나 친절할 힘이 생긴다. 나에게 귀한 손님이 오면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단둘이 앉아 있을 의자가 있는 조용한 식물원이다. 보온병에 담아 간 허브차를 그곳에서 나누어 마시면 아무래도 너무 행복하여 지고 만다. 이런 이유가 아니어도 더러는 식물원에 간다. 지금쯤 어떤 꽃이 피어 있을지 궁금하여 몹시 알고 싶어서다. 작고 볼품없어도 내가 보아 주면 씽긋 웃는 그 미소가 즐거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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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동백/무정 정정민
  
참아내지 못할 연정 가슴에 두고 
까맣게 타 버릴 것 같은 
슬픈 사랑을 
아무리 깊이 감추어도 
스스로 드러나는 붉은 꽃
엄동의 설한도 소용없다. 
삭풍의 칼끝도 어쩌지 못해
서리서리 감춘 마음 펼치는 
겹겹이 쌓인 사랑
달빛이라도 서럽다.
별빛도 눈물이다. 
피멍 든 가슴
선혈 낭자한 핏빛 그리움
죽어서도 붉은 꽃


  

동백꽃 전설 1/옮긴 글 우리 나라 서해안의 대청도라는 섬에 전해 오는 이야기입니다. 폭풍이 심하게 몰아치던 어느 날, 한 청년이 파도에 휩쓸려 이 섬에 들어오게 되었지요. 청년은 자신을 정성스럽게 간호를 해 준 대청도 처녀 덕분에 기력을 차리게 되었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처녀와 결혼하고,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 지내던중 밤이면 꿈 속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보이는지라 걱정이 돼서 고향에 다녀오기로 했지요. "꿈속에 부모님이 자주 보여 몹시 걱정이오! 금방 다녀 오리다."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그런데 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 남편의 고향에 동백꽃이 많다는 말을 들은 아내는 고향에서 돌아올 때 동백꽃 씨앗을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동백 기름으로 곱게 단장한 머리를 남편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그렇게 약속을 하고 떠난 남편은 날이가고 달이가 해가 바뀌어도 돌아오지를 않았고 동네 사람들은 그가 고향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해 살고 있을 거라고 수군거렸답니다. 하지만 아내는 끝까지 남편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아내는 날이면 날마다 바닷가로 나가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오늘 오는가, 내일 오는가, 오지 못하면 소식이나 오는가, 기별이나 오는가, 꿈에라도 오는가 노래를 부르며 슬픔을 달랬습니다. 기약도 없는 기다림에 지친 아내는 결국 병이 나서 시름시름 앓더니 이윽고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 남편은 부모님만 두고 떠나 올 수 없어서 하루 이틀 미루다가 2년 만에 동백 꽃씨를 주머니 가득 담아 가지고 대청도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불과 열흘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남편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무덤 앞에서 통곡을 했습니다. 남편이 무덤에 엎드리자 주머니에 있던 동백꽃 씨앗이 후두둑 떨어졌답니다. 이듬해 아내의 무덤가에는 동백나무가 싹을 틔웠고. 그 나무에서 아내의 그리움을 토해 내기라도 하듯이 해마다 이른 봄이면 붉디붉은 빨간 동백꽃이 피어나고 있답니다.

  

동백꽃 전설 2/옮긴 글 옛날 어느 나라에 포악한 왕이 있었는데 왕자가 없었답니다. 동생의 아들을 양자 삼으면 될 터인데 욕심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조카들을 죽이려 했으므로 착한 동생은 두 아들을 숨겨둔 채 양자 둘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왕은 기어코 두 양자를 죽여 버리고 말았으나 진짜 조카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어이 그 두 조카를 찾아내 모든 사람들 앞에서, 동생에게 [ 두 왕자는 가짜 ] 라고 말하라 강요했습니다. 평화를 바라던 동생은 왕이 시키는 대로 말했고, 그러자 왕은 칼을 주며 왕을 속인 벌로 두 가짜 왕자를 죽이라고 그랬답니다. 동생은 차마 제 손으로 사랑하는 두 아들을 죽일 수 없어서 그만 자신의 가슴에 그 칼을 꽂고 말았대요. 동생이 붉은 피를 흘리며 죽자 두 왕자는 새로 변하여 날아갔고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며 벼락이 떨어져 왕은 죽고 말았답니다. 그후 죽은 동생은 큰 동백나무로 변하고 그 나무엔 두 아들이 변하여 날아갔던 새들이 돌아와 둥지를 틀고 살기 시작했는데 이 새가 바로 눈 둘레가 은백색이어서 백안작(白眼雀)이라고도 불리는 [ 동박새 ] 라는군요. -새소리:동박새-

  

백동백/무정 정정민 한그루 외로운 저 동백 겨울이 두렵지 않은지 청잣빛 이파리 자랑스럽다. 행여 꽃피었나 살피니 아, 이 무슨 조화 선혈 낭자한 핏빛이 아니라 창백하여 백지 같은 꽃 내 알지 못하는 일 예도 있었구나 붉게 그리다 지쳐 흰 꽃으로 피다니.

  

동백꽃/무정 정정민 어릴 적 고향 집에서 처음 본 동백 눈 속에서도 요염하리 만치 고왔다. 우리 집에는 없었지만, 마을 터줏대감이라 할 부잣집에서 보았다. 부럽기도 하고 신비한 전통이 느껴졌다. 다른 곳에서 이사 온 우리는 새로 이사 온 마을에서 조금은 외톨이로 지냈지만 이내 친해지고 마을 곳곳을 쑤시고 다녔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곳은 여수 오동도 교회수련회를 가서 본 곳인데 온 섬이 동백섬이었다. 시원한 그늘 속에서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흥얼거리며 파도에 떠밀려 갔을 붉은 동백을 생각했다. 두 해 전이던가 거제도에서 동백을 보았다 가로수가 동백이었던 곳 외도에서도 보았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지심도에 동백이 많다는 이야길 듣긴 했지만 아직 가보지 못했다 또 몇 해 전에는 선운사에서 동백을 보았다. 겨울에 피기도 하지만 종류도 많았다 홑꽃도 있고 겹꽃도 있고 꽃자루가 큰 것 색상도 조금씩 다른 것 앞으로도 다양한 동백을 만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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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까치 꽃

봄 까치 꽃/무정 정정민 양지바른 어머니 무덤가 겨울바람 아직도 차가운데 군청색 꽃이 피었다. 머지않아 봄이 오겠지만 잔설 남아 있는 산등성이 동짓달의 겨울이 무섭지 않은지 푸른 잎 줄기마다 힘차고 무리지어 한꺼번에 어머니 그리운 나를 반긴다. 어머니는 산에 계시고 산죽 바람 따라 울던 날 산 까치 찾아와 노래해 나를 사랑한 어머니 그 마음처럼 봄 까치 꽃 많이도 피었구나! 서울 변두리 작은 둑길 봄 까치 꽃 볼 때마다 어머니 본 듯 반갑다.

봄 까치 꽃 2/무정 정정민 겨울 찬바람 아직 다 지나가지 않은 2월의 창가 햇살은 자꾸 온도를 높인다. 무슨 일일까 궁금하여 창문을 열면 푸른 잎 보일 듯 말듯 땅 바닥에 찰싹 붙은 작은 잎 봄 까치 꽃이다. 행여 꽃도 피었나 가까이 가면 믿어지지 않도록 작은 꽃 만져지지도 않지만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내 눈이 흐린가 크게 뜨고 봐도 눈을 문질러 다시 봐도 역시 너무 작다. 돋보기 속에서나 보이는 보라색 꽃 군청색 까치 꽃보다 너무 작다. 그래도 나비가 날아오니 분명 꿀도 있는 게지 사랑의 눈을 가진이 에게만 자신을 보이는 토종 꽃

봄 까치 꽃 /이 해인 까치가 놀러나온 잔디밭 옆에서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하도 작아서 눈에 먼저 띄는 꽃 어디 숨어 있었니? 언제 피었니? 반가워서 큰소리로 내가 말을 건네면 어떻게 대답할까 부끄러워 하늘색 얼굴이 더 얇아지는 꽃 잊었던 네 이름을 찾아 내가 기뻤던 봄 노래처럼 다시 불러보는 너, 봄까치꽃 잊혀져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나도 너처럼 그렇게 살면 좋겠네

  

봄 까치 꽃 글 /무정 정정민 언제부터인가 이른 봄에 봄 까치 꽃을 보러 간다 이전 살던 곳에서는 화단에서 먼저 보았다 어디에선가 읽기로는 봄까치꽃도 약간 분홍빛을 보이는 아주 작은 꽃은 토종이고 군청색으로 흔한 것이 귀화 식물이라 했다. 토종이라 하는 봄까치꽃은 깨알 같아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잎이며 줄기며 꽃도 너무 작아 풀인지 잎인지 꽃인지도 보이지 않지만 자세하게 잘 살펴보면 보인다. 늘 있던 곳이라 1월이나 2월이면 가서 보는데 푸른 빛이 돌면 정말 꽃이 피어나 있었다. 귀화식물이라 하는 군청색 봄까치 꽃은 둑길 어디에나 흔하다 무리지어 피어나 있으면 볼만하다. 사진 속의 꽃은 귀화식물이다. 개불알풀이라고도 하는데 열매가 개의 불알을 닮아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는데 이름이 좀 거칠어 봄까치꽃으로 부른다. 작년에 찍은 사진을 올려 보았지만 이미 올 봄까치 꽃은 많이 올라와 있다 한강이나 제주도 등 전국에서 이미 이 꽃이 피기 시작했다. 지금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무척 추운 날이지만 봄은 틀림없이 오고 있기 때문에 봄까치꽃 사진 몇 장을 올려 보았다. 한강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몇 곳에서 찍은 사진을 더 첨가해 보았다. 올해는 안산 식물원 주차장에서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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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향기/안산 식물원 20
 
 

재스민 향기/詩 寫眞 茂正 鄭政敏 닫힌 창문으로 들어와 잠자는 나를 깨운 향기 천상에서 내려온 것인가 온 가슴이 환희로다 사랑은 환희 날마다 콧노래를 불렀다 기다림은 한없이 즐거워 온 세상이 다 밝았다 그렇게 몇 날이 가고 짧은 그 사랑이 갔다 너무 사랑하여 견딜 수 없어 갔다. 남겨진 향기 어찌한단 말인가 나도 따라갈 수밖에 사랑아, 내 사랑아 . 슬픈 사랑아. ********************

 

보라색 봉오리가 맺힌 뒤에 5장의 꽃잎을 펼치고 이틀 정도 지나면 하얀색으로 변합니다. 향기가 좋은데 하얀색으로 변하면 더욱 강하여 집니다.

 
 

재스민 꽃 전설/ 옮긴 글 한 청년이 지극히 사랑하는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소심한 이 청년은 사랑 고백을 하지 못하고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다가 덜컥 눕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자리에 누워가 있다가는 죽고 말 것 같아 마지막 용기를 내서 사랑 고백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들에 나가 꽃을 한아름 꺾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평소에 소심한 성격이 그것도 여자 앞에서 더욱 작아지는 청년이 갑자기 용기가 생길 리 있겠습니까? 그 꽃 한아름을 들고 사랑한 아가씨 창가에서 잠자는 모습만 보다가 이미 지친 병든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연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진 아가씨는 잠결에 느껴지는 향긋한 향기로 하여 잠에서 깨어나 향기의 근원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바로 창가에 한아름 꽃다발이 놓인 것을 보고 그 향기에 취하여 온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잠을 자는 청년을 발견하였는데 그 청년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 불 같은 사랑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청년을 깨웠으나 이미 죽은 청년은 일어날 줄을 몰랐습니다. 모처럼 찾아온 불 같은 사랑을 감당하지 못한 이 아가씨는 정신이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머리에 그 꽃을 꽂고 온 들을 헤매다 슬픈 운명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슬픈 내용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재스민이 사랑을 일깨우는 향기란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우울하거나 위가 좋지 않거나 사랑이 소홀한 분은 재스민 화분 하나 들여 놓으세요. 제 거실에는 보라색 재스민 얼마나 많이 피어났는지. 행복한 마음을 거두지 못합니다.

재스민 향기/무정 정정민 재스민 꽃향기는 참 향기롭다 슬픈 전설 때문인지 더욱 향기가 느껴진다 사랑을 갈구하는 향기 기분 좋은 향기가 분명하지만 이런 기분 좋은 향기를 혼자서 맡으면 외로워진다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산 식물원에 봄꽃을 보러 갔다 온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청아한 새소리가 들리고 숨이 막힐 것 같은 향기가 밀려왔다 재스민 향기였다. 벌써 지는 꽃도 있었지만 이 재스민은 향기가 대단하다. 꽃향기는 어떻게 나는 것일까 맨눈으로 살펴보면 보이지 않아 도대체 향기가 꽃의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저 궁금하기만 하다. 얇은 꽃잎에서 수도 없이 퍼지는 향기 몇 날인가 지속하는 향기 그 근원은 무엇일까 신비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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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박물관 내 서예박물관

홍매화紅梅花 詩 사진/무정 정정민 노을빛 붉은 양화나루 내 마음인양 매화꽃 피었다. 천년의 세월 흐르고 흘렀을 한강처럼 조금은 잊었는가 했더니 봄마다 피는 꽃은 노을보다 더 붉다.

서예 박물관/무정 정정민 붓 한 자루로 일필휘지 써내려간 글을 보면 어찌 감탄하지 않고 배기랴 부드러운 붓끝에서 그려지는 매화를 보거나 대나무를 보거나 난을 보면 어떤 것은 꽃이 피어나는 것 같고 어떤 것은 바람에 나부끼는 듯하다 용이 살아 승천하는 글씨가 보이는가 하면 단정하여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니 글씨지만 그림 같고 그림 같으나 마음을 다스리는 도 같기도 하다 지필묵을 보고 있으면 선비의 고고한 자태 정결한 마음이 보인다 나도 한 번 그리 해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렇지만 배운 바 없고 경험도 해보지 못했으니 감히 응해볼 수 있겠는가 그저 감탄만 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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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박물관 1

coffee香氣 詩 寫眞/茂正 鄭政敏 한 잔의 coffee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그리움이 생긴다. 갈색 香氣로 다가서는 벅찬 感動 사랑하는 임만 같아 가슴 설렌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뜨거운 體溫 진한 키스처럼 달콤한 찻잔 온몸이 戰慄한다. 혼자 있는 늦은 밤에도 친구와 같이하는 cafe에서도 진한 coffee 한 잔은 내 마음의 노래 아무리 같이해도 질리지 않는 平生의 多精한 同伴者 내 그리움

  

수원박물관 1 글 정정민 주말이면 집에만 있지 않고 어딘가를 가게 된다. 춥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 산책한다 걷기를 하려는 의도다 이만한 운동이 없다는 의사의 권고를 귀담아듣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걷지는 않는다 일거양득의 효과를 위해 고궁이나 수목원 들길을 걷는다 하지만 차가운 기온일 때는 실내를 걷는다 식물원이나 박물관이 좋은 예이다 봄이긴 해도 아직 찬 기운이 남아있어 수원 박물관에 가보기로 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호기심을 안고 갔다. 우리 조상의 다양한 흔적을 보며 입구에 있는 찻집에서 차부터 한잔 했다. 노인 일자리 창출로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찻집 값도 저렴하고 춥기도 하여 일단 차부터 한잔 하며 박물관 정보를 얻고 서서히 일 층부터 구경했다 양 날개처럼 펼쳐있는 청죽과 정약용의 거중기를 보며 잔뜩 기대하고 들어갔다. 입장료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받지 않았다. 국가가 주는 혜택을 누리며 깨끗하게 잘 정돈된 건물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우선 사진전을 보았다. 동란 직후의 어려운 나라 경제 파괴된 시설물을 복구하는 사진 발달하여 달라진 시가 사진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자는 구호 오래전에 보았던 것들이라 새로운 기억으로 되살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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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화迎春花
        영춘화迎春花 詩 사진/茂正 鄭政敏 봄 마중 노란 미소 양귀비가 무색하다. 푸른 줄기마다 그려놓은 그림 임인 듯 반갑구나! 간밤에 내린 비가 너를 부른 것이더냐 창 밖에 노래하던 까치 소리에 잠이 깬 것이냐? 모두가 잠자는 이른 봄에 먼저 피어 나를 반기니 함께할 이 봄이 절로 흥겹다.

    영춘화迎春花 전설/옮긴 글 옛날 옛적 늦도록 장가를 못 간 떡거머리총각이 있었다. 하루는 나무 한 짐 그득 해가지고 장거리에 내다 팔아 물건을 사다가 아주 예쁘게 생긴 처녀를 만났다. 처녀도 물건 팔러 장거리에 와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물건값을 흥정하며 팔거니 사거니 하는 사이 자연 말이 길어졌다. 그런데다 처녀가 꼭 마음에 드는지라 괜시리 총각은 오래도록 이 이야기 저 이야기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늘어 붙어 앉았다. 처녀도 별로 꺼리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여 나중에 총각은 청혼까지 하게 되었다. 청혼을 받은 처녀는 낯을 붉히며 속삭이듯 말했다. "제가 정 마음에 드시면 매파를 저의 집까지 보내 주세요." 기쁨에 겨운 총각은 그 며칠 뒤 매파 한 분을 처녀의 마을로 보냈다. 이웃 마을 총각의 청혼을 받은 처녀네 부모님들은 펄쩍 뛰었다. "글쎄 아무리 총각이 좋다고 한들 어찌 20년이나마 고이 키운 딸의 혼사를 일언지하에 허락할 수 있겠소?" 그러자 처녀가 나서며 말했다. "지난 장날 저는 그 총각을 보았는데요." 그 말에 부모님들은 태도가 다소 누그러지는듯 했다. "글쎄, 그렇다면 별문제이지만 그래도 꼭 한번 당사자를 보고 싶으니 이제 김매기가 끝나는 대로 총각을 보내시오." 매파가 곧 돌아와 그 말을 전하자 총각은 너무나 기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하긴 십중팔구는 다 된 일이라고 단정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한스러운 것은 김매기를 끝내자면 아직도 두어 달 시간이 걸려야 했다. 총각은 일하면서 그 날짜 흘러가기만을 손꼽아 가다렸다. 하루, 이틀, 사흘....... 그러나 시간은 너무나도 느리게만 흘러갔다. "아. 이놈의 날짜가 언제 흘러 사랑하는 처녀를 만나 보겠는가? 그리고 이제 만나면 어서 성혼을 하자는 말도 훌떡 꺼내야겠는데......" 이렇게 밤낮으로 그 날을 기다리던 총각은 그만 속에 불이 활활일어 나중에는 열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장장 열흘이나 앓다가 어느 날 밤 삼경쯤 겨우 일어나 밖으로 나가 보니 보름달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그는 동구 밖으로 나가 처녀네 마을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속을 앓았다. "아, 언제 이놈의 열병이 다 가셔지고 처녀를 만남담?" 그는 하룻밤에도 몇번씩 일어나 이렇게 속을 태웠다. 그런데 설상가상 이라고나 할까, 처녀를 만나러 갈 날에 임박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나 눈썹이 몽땅 빠져 버렸던 것이다. "아하, 눈섭 하나 없이 어떻게 간담? 이대로 갔다간 당장 병신으로 몰려 쫓겨나고 말것이다." 처처 궁리하던 총각은 숫검정으로 눈썹을 그릴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그는 처녀네 집을 향해 더났다. 날씨는 몹시 무더운데다 길은 멀고 멀었다. 그는 가다가 길가의 한 느릅나무 그늘 아래에서 몸을 잠간 쉬게 되었다. 그런데 좀 있더니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면서 비가 억수로 쏟아져 내렸다. 그 통에 그가 그린 눈썹이 몽땅 지워지고 말았다. "아, 이 꼴로야 어찌 떠나겠는가?" 그는 할수 없이 집에 되돌아 왔다. 그 날 저녁이었다. 그는 이 궁리 저 궁리로 잠을 봇 이루구 마루에 나 앉아 한숨만을 쉬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난데없는 노인 한 분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여보게 젊은이, 이 일로 하여 너무 속을 썩이지 말게, 자네가 하도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기로 내 이 꽃포기를 줄 태니 어서 그 꽃한포기를 물에 끓여 그 물로 목욕을 하고 다른 한 포기 꽃으로는 눈썹 부위를 자꾸 문지르게 . 그럼, 몸에 열도 내리고 눈썹도 며칠가면 이내 자라게 될 것이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 꽃 이름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 꽃은 봄을 맞으면 곧 피어나는 꽃이라서 영춘화라고 부른다네." "아, 영춘화, 영춘화!" 총각은 너무나 반가워 그 꽃 이름을 외워 부르다가 다시 노인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하려고 했더니 노인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총각은 난생 보지 못한 세 개의 소엽으로 이루어지고 매 마디마다에 노란 색깔의 꽃이 두개씩 정답게 핀 기이한 꽃나무 한 포기를 그대로 정히 끓여 그 물로 몸을 씻은 다음, 다른 한 포기 꽃으로는 눈썹 자리를 자꾸 문질렀다. 이렇게 하기를 며칠, 화끈거리던 몸이 정상이 되고 아주 없어졌던 는썹도 하나 둘씩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제 총각은 당당히 처녀집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어였한 총각을 맞이한 처녀네 집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총각은 두 말없이 융슝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처녀가 총각을 불러 조금 나무랬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늦게 오셨나요?" 그 말에 총각은 할 수 없이 자초지종 이야기를 그대로 이실직고 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처녀도 몹시 부끄러워 하며 말했다. "사실은 저도 눈썹이라곤 없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짜로 그릴수밖에요." "아니, 그건 원래부터 그렇소?" "아니지요, 저도 당신을 사무치게 그리다 보니 열병에 걸려 그만 다 빠져버렸지 뭐여요?" "아, 그런일이 있었군요. 그럼 내 이제 가면 곧 그 신비한 봄맞이 꽃을 얻어 보내지요." 집으로 돌아온 총각은 산천을 누비다시피 하여 그 꽃을 얻으러 다녔다. 마침내 그는 그 꽃을 얻어내고야 말았다. 그 꽃을 받은 처녀는 그것을 약으로 써서 얼마 뒤 눈썹이 제대로 회복되었다. 이로부터 이 꽃을 관상용과 약용으로 널리 재배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춘화/무정 정정민 영춘화를 처음 보았던 때가 10년 전쯤 되는 것 같다 맨 위 도자기 위에 늘어진 가지에 꽃을 피운 것이 무척 인상 깊어 카메라에 담았던 때였다. 개나리 같은데 개나리와 조금 달랐다 동행한 시인께서 한참 기억을 되살리더니 영춘화라고 했다. 개나리와 비슷하나 개나리보다 조금 일찍 피고 꽃잎이 5장 혹의 6장이다 이후 보지 못했는데 두어 해 지나 과림저수지 개울에서 보았다. 다른 꽃보다 일찍 핀 개나리가 반갑다고 가까이 가서 보니 영춘화였다. 그리고 흑염소 집을 하는 친구 집에서 또 영춘화를 보았다. 비 오는 날 비를 잔뜩 맞고 물기 머금고 있던 크고 선명하고 건강한 영춘화 내가 꽃을 알아보자 친구가 놀라워했다 이 꽃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천리포 수목원에서 안산 식물원서 만나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기억나는 사진들을 모아 보았다. 모두가 반가운 얼굴을 대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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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차 시/茂正 鄭政敏 선운산 어느 자락 복분자 오디 나무 사이 매화나무가 있었다. 맑은 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 향기롭기 그지없고 아름답기는 백설도 겁낼 청초한 꽃을 피워냈다. 이 꽃을 정성스럽게 따 그늘에서 말리고 은근한 불에 달여 신선이나 먹을 것 같을 차로 만들어 나에게 선물하신 이가 있었다. 매화꽃보다 더 고운 그 향기보다 아름다운 천사 같은 그분의 향기가 매화꽃차에서 진하게 우러나온다. -茂正 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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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송호수 12
  

마른 갈대 詩 寫眞/茂正 鄭政敏 윤기 없는 까칠한 얼굴 관절마다 삐걱 리는 모습으로 삭풍을 견디어 왔다. 이제는 더는 견디기 벅차다 울 힘마저 없어 겨우 소리를 내보지만 물기 없는 소리로 서걱서걱 그래도 낡은 몸뚱이를 자꾸 뒤채이며 남아있는 것은 머지않은 봄을 만나기 위함이다 둥지를 튼 겨울새를 곱게 보내기 위해

  

왕송호수 13 글 寫眞/茂正 鄭政敏 수원박물관과 수원 화성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왕송호수를 지나갔다 잠시 주차하고 사진 몇 장을 담았다 아직 겨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몇 해 전에 찍은 사진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의왕에서 두어 해 근무했기 때문에 의왕은 반가운 곳이다 그중에서도 왕송호수는 더욱 그렇다 회사에서 멀지 않아 가끔 갔던 곳이고 식사도 같이했던 회사 직원들 가끔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생각난다 그들도 날 기억하겠지만 같이 식사하고 같은 화제로 대화할 일이 없어 그저 그리움만으로 끝나는 것 같다 만나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특별한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서로가 바쁜 세상이라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면 어려운 만남 혼자만의 추억에 젖어 왕송호수를 찾곤 한다 당시 동료와 같이 먹었던 뽈찜을 먹어 보았다 어쩐지 그때의 그 맛은 아니었다 열심히 일한 뒤의 음식이 아니어서 그런 모양이다 세월은 입맛도 변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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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2
  

수원 화성/ 詩 寫眞/茂正 鄭政敏 깃발 나부끼는 저곳 조선의 위대한 왕 정조의 원대한 꿈이 잠자고 있을까 아직 이른 봄 성벽을 스치는 바람이 차가워 차창 밖으로 바라보니 땀과 눈물로 쌓았을 벽마다 정약용의 고뇌 어린 설계 백성의 노역이 아프게 다가온다 나라를 위해 싸우리라 고된 훈련도 마다치 않았을 군병의 고함 한치의 침범도 허용치 말라는 한 장군의 호령 소리가 들리는 듯 마음은 벌써 성안으로 갔다. 내 가족 내 나라를 위해 어떤 외적도 발길 허용치 않으리라 부릅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초병은 망루가 얼마나 외로웠을꼬 찬바람 이는 겨울 살을 태울 것 같은 한여름 별 뜨는 밤 안개 올라오는 새벽도 한결같이 국가의 안녕만 생각했으리 역사는 흐르고 세월의 강도 흘러 세계문화 유산으로 남아있지만 내가 마땅히 지켜 할 것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으리

  

정조의 수원 화성의 건립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긴 것은 큰 뜻을 펴기 위해서였다. 정조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면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충성스러운 신하, 군사력, 그리고 이들을 원만하게 다룰 수 있는 자금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 필요했다. 정조는 수도인 서울에서는 이 세 가지 모두를 얻기 어려우며, 신도시를 건설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 목적의 정치 공간을 아버지의 추모 사업과 연결하여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수원부는 딱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서울과 남쪽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 활동을 위한 도시인 한편, 사도세자의 현륭원이 인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자신의 야망을 구현시킬 대역사를 당시 30세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에게 맡겼다. 처음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공사는 놀라운 속도로 진행됐다. 1796년 10월, 단 34개월(중간의 6개월 정역(停役)을 생각하면 28개월)만에 낙성연을 치렀는데 수원 화성과 같이 방대한 공사를 2년 반이라는 단기간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실학자인 정약용과 같은 젊은 피를 수혈하여 종전과 차원이 다른 계획에 따라 건설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왕권 강화를 위한 새로운 정치 공간으로서 수원부에 신도시를 건설했고, 실학자 정약용에게 화성의 축조를 맡긴다. 다산 정약용은 상업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평산성 형태를 기본으로 수원 화성을 계획한다.

  

새로운 개념의 성, 수원 화성 정약용은 수원 화성이 다른 성곽과 차별화되도록 상업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평산성(平山城) 형태를 기본으로 했다. 한국의 성곽은 전통적으로 평상시에 거주하는 읍성과 전시에 피난처로 삼는 산성을 기능상 분리했는데, 수원 화성 성곽은 피난처로서의 산성을 따로 두지 않고 평상시에 거주하는 읍성의 방어력을 강화시켰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보기 드물게 많은 방어시설을 갖추고 망루는 물론 총안(銃眼), 즉 총구멍도 설치하여 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등 성곽의 용도가 다양했다. 특히 석성(石城)과 토성(土城)의 장점만 살려서 축성하였으며 제반 시설물은 지형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효율적 방어가 가능하도록 배치했다. 팔달산 정상에 군사지휘소인 서장대를 두었으며 맞은편 높은 곳에 외부와의 통신시설인 봉수대를 벽돌로 만들어 세웠다. 화성 남북 단에는 장안문과 팔달문, 동서 단에는 창룡문과 화서문을 세우고 남서와 동북 방향 높은 지대에 각기 화양루와 동북각루를 세워 비상시 군사 요충이 되도록 했다. 화성의 또 다른 특징은 도시 기반 시설이다. 화성에는 팔달산 기슭의 행궁과 화성 유수부 앞에서 정면으로 용인 방면으로 이어지는 십자로 등 인근 지역과 연결되는 새로운 개념의 신작로가 만들어졌다. 이 십자로 주변에 상가와 시장을 배치하여 상업도시로서 화성의 성격을 명확히 했다. 정조는 화성을 물류경제와 국제무역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시키는 데 모든 힘을 쏟은 것이다.

  

수원 화성을 쌓은 첨단 기술 수원 화성이 초고속으로 완공될 수 있었던 것은 실학자인 정약용이 당대의 최첨단 기자재를 도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현대의 기중기와 같은 용도의 거중기다. 거중기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고정 도르래만 사용하지 않고 움직도르래를 도입하여 복합 도르래를 구성한 것이다. 고정 도르래는 물건의 중량에 해당하는 힘을 주어야만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지만, 움직도르래가 1개 있으면 절반의 힘만으로도 들어 올릴 수 있다. 사용하는 움직도르래가 1개 늘어날 때마다 필요한 힘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바로 이 원리를 정약용이 이용한 것이다. 거중기 덕분에 화성을 건설하는 동안 인력을 아끼고 무거운 물체를 수월하게 다루어서 사고율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화성 건설에 사용된 거중기는 모두 11대였는데, 작업능률이 4~5배로 높아졌다고 한다. 화성 축조때 사용된 녹로(왼쪽)와 거중기(오른쪽). 정약용이 화성을 과학적으로 축조했다는 사실은 화성 성벽과 여장(성의 담) 사이에 검은색 벽돌이 끼어 있다는 점으로도 알 수 있다. 생김새가 눈썹 같다고 해서 눈썹돌 또는 미석(楣石)이라고 부른다. 미석을 성벽과 여장 사이에 끼워놓은 이유는 물질이 상태가 변화할 때 부피가 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성벽의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든 채 얼어버리면 얼음의 부피가 팽창하는 힘으로 성벽이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미석을 끼워놓으면 비나 눈이 와도 물이 성벽으로 스며들어 가지 않고 미석을 타고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화성에 숨은 과학 원리는 더 있다. 화성의 성벽을 자세히 보면 전체 형태가 구불구불하다. 성벽을 구불구불하게 하여 아치를 만들면 더욱 견고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벽의 허리를 잘록하게 쌓음으로써 돌과 돌 사이가 견고하게 맞물릴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적병이 성벽을 쉽게 타고 오를 수 없도록 한 조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완벽한 아치 모양이 아닌데, 이는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재래식 기법에 익숙한 석공들이 정약용이 애초 의도한 설계 의도를 모르고 위로 가면서 돌을 밖으로 내밀어 쌓는다면 돌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화성의 성벽에는 이런 특징 말고도 몇 가지 독특한 특징들이 있다. 바로 성벽의 높이가 다른 성들에 비해 평균 4m로 비교적 낮은 것인데, 왜 정약용은 제2의 도성이 될 화성의 성벽을 이렇게 낮게 만든 것일까? 이는 당시의 전쟁 특성을 고려한 것이었다. 정조가 화성 천도를 구상하던 18세기 중후반에는 전쟁의 양상이 병사들이 성을 타고 넘어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화포로 성벽을 쏴 무너뜨려 점령하는 형태였다. 따라서 성벽을 높게 쌓아 대포의 표적이 되기보다 좀 낮더라도 대포를 맞더라도 견딜 수 있게 높이를 낮춘 것이다. 성벽의 재료도 기존 성과는 사뭇 다르다. 기존 성들이 자연석이나 직육면체로 다듬은 화강암을 주요 재료로 쌓았다면 화성은 화강암뿐만 아니라 벽돌로도 성을 쌓았다. 이는 앞서 설명한 대로 대포의 포격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화강암은 그 자체로 강도는 매우 강하나 돌과 돌의 이음새가 딱 들어맞지 않아 화포 공격과 같은 외부의 강한 충격을 받으면 쉽게 깨지거나 빠질 수 있다. 이에 반해 벽돌은 벽돌 자체로는 강하지 않지만, 벽돌과 석회로 벽을 쌓고 그 벽 안에 흙을 채우면 화포의 강한 공격에도 성벽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처럼 수원화성에는 거중기라는 당시의 최첨단 기기와 전쟁의 양상까지 고려해 제작된 첨단 건축물이었다. 수원화성의 뛰어남은 이런 첨단 건축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크기가 다른 화강암과 벽돌을 이용해 축조된 수원화성의 동암문. <출처: (재)수원화성운영재단> 정약용은 화성을 지으면서 성의 형태는 물론 성을 쌓는 방법과 재료까지 자세히 기록으로 남겼다. 성을 쌓으면서 만들었던 돌의 크기나 돌을 깎는 방법, 또 벽돌을 만드는 방법과 가마에서 굽는 방법 등 화성을 짓는 모든 것을 누구나 알아보기 쉽게 글과 그림으로 [화성성역의궤]라는 자료로 남겼다. 이는 화성을 잘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성의 보수나 관리, 유지보수에까지 신경썼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수원 화성 2/무정 정정민 워낙 거대한 성이라 가볍게 돌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성곽 밖으로 나 있는 차도만을 차로 두 번 돌며 규모를 짐작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많이 컸다. 저 길을 걸어서 돌아본다면 정말 하루가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곽만 걷기는 볼거리가 너무 많다 성안의 다양한 볼거리를 어찌 외면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계획을 세워 부분부분 구경 하리라 생각했다. 차기엔 우선 화성 열차부터 타고 천천히 성곽 길을 구경하며 전체를 보고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 박물관도 행궁도 볼 것이다. 벌써 다소 흥분된 마음이 생긴다 정조 임금의 꿈이 담긴 성 정약용의 첨단 기술로 축조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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